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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MyoungKyu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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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받은 상패

퇴임을 맞아 받은 대통령의 훈장, 총장의 상패도 뜻깊지만 자녀들로부터 받은 뜻밖의 감사패가 감동으로는 단연 으뜸이다. 정말 이제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일까?
연구실을 비우며

20여년 사용하던 연구실을 비웠다. 오랜 자료들, 손때 묻은 책자들을 버리고 정리하면서 익숙했던 공간으로부터 작별하는 의식을 치뤘다. 7평 남짓 좁은 곳이었지만 나는 이곳에서 과거로 미래로 해외로 때론 우주로 상상의 여행을 즐겼다. 떠난 후의 상실감이 다소 염려가 되지만 새로운 플랫폼에서 더 좋은 만남과 자극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매암동인

제자들과 온라인으로 정년기념 모임을 가졌다. 약속했던 글씨를 놓고 이야기하는 형식을 빌었지만 오랜만에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온 학문과 인생을 논하는 즐거운 자리였다. 고풍스레 퇴계의 싯구를 빌어 ‘매암동인’이라고 이름 한 포스터까지 제작한 정성이 고맙고 오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말들에서 뭉클했다. 나 혼자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아름다운 매화가 좋은 제자, 후배들과의 만남 속에서 꽃피운 것 같다.
물
이승윤이란 무명가수가 새로운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관심이 뜨겁다. 그가 결선에서 부른 이적의 물이란 노래가 마음에 남는다. 목마르다, 물 좀 주라, 내 머리를 적셔달라는 절규 l 같은 노랫말이 이 시대의 상황, 젊은 세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 같다. 이적의 또 다른 노랫말 나침반이 생각나기도 하고 예수의 일생을 떠올리게 하는 종교적 메시지와도 오버랩되었다.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 모든 계층, 모든 세대가 목말라하며 찾고 있는 물은 어디서 얻어질 것인가. 노자가 말한 물의 덕을 떠올린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아서 생명을 살리고 선두를 다투지 않으며 아래로 흐른다. 상선약수의 정신과 저 격렬한 뮤지션의 몸짓이 웬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각의 디지털화
미국에 있는 외손녀 이든이가 대전에 있는 외손자 재우를 영상으로 보면서 ‘오빠’ 하고 부르며 좋아한다. 영상을 통해 오빠의 존재를 알아가는 것이 신통하다. 가까운 타자를 알아보는 것이 자아 발달의 중요한 단계라 하는데 대면 접촉과 비대면 접속의 효과가 동일할지 궁금하다. 코로나 상황이 아니더라도 지금과 같은 정보화, 디지털화가 진행되면 비대면 접속, 플랫폼 연계가 일상의 상호작용을 대체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조만간 후각과 촉각도 디지털화할지 모른다. 디지털 감각, 감각의 디지털화 – 그 미래가 궁금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회복력
새벽에 눈이 떠졌다. 불현 듯 회복이란 단어가 떠올라 일어나 책장에 꽃혀있던 [회복력] 책을 집어들었다. 저자가 말하는 는 위기의 시대에 회복력은 비전이 된다고 보고 성장지상주의에서 회복력 지상주의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에게도 몸과 마음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저자가 회복력의 핵심원리라고 든 7가지 요소를 곰곰이 살펴보았다. 다양성, 모듈화, 사회적 자본, 혁신, 중첩성, 피드백 루프, 생태계 서비스가 그것이다. 그리고 네가지 추진전략을 강조한다. 그것은 공유재의 확보, 민주주의 재창출, 사회연대경제의 구축, 그리고 인류와 지구적 문제에 대한 가치측정이다. 그리고 사회-생태-경제적 변화를 위해 필요한 네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첫째는 지구와 그 하위체계인 지역을 보는 방식을 바꿀 것 둘째는 상호 간 및 지구와의 관계에 대한 균형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적 경로를 찾을 것 셋째는 스스로 학습하고 확장시키는 우리의 지식을 널리 공유할 것 마지막으로 기존의 자만하는 태도를 근절시킬 경로를 확보할 것.
책을 버리며
묵은 짐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책장의 책들 가운데 앞으로 읽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부터 모아 일부는 버리고 일부는 헌책방에 넘겼다. 어떤 책들은 처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책을 구하느라 애쓰던 기억, 한 때 그 내용을 보며 흥분했던 과거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낡은 책을 버리는 일은 옛 경험, 손때들을 정리하는 것이고 내 망설임도 책 자체의 효용성보다 그런 추억과의 결별이 힘든 탓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적절한 망각과 결별도 소중하다. 모든 추억을 껴안고 사는 방식은 퇴행으로 이어지거나 자기만족에 갇힐 우려가 크다. 과감히 추억들이 뭍어 있는 책들을 정리하면서 내 마음도 새롭게 재구성되길 빌어본다. 그리 쉽게 될 일은 아닐 듯 싶어 걱정도 없진 않지만….
신축년 코비드 2년
새 해가 밝았다. 소의 덕목들을 이용한 인사들이 오간다. 무한히 흐르는 시간을 일정한 길이로 잘라 시대를 나누는 것은 인류의 흥미로운 발명품이다. 2021년이란 숫자를 쓰거나 신축년이란 간지를 사용하거나 그 정신은 같을 터여서 지금도 우리의 일상은 이런 시간감각에 지배당한다. 코로나 19의 충격이 워낙 커서 코비드 발생을 전후하여 BC와 AC를 새롭게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올해를 ‘코비드 2년’이라 지칭하면 인류가 공통의 운명체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데는 꽤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전세계가 갈라져 남 탓하기 바쁜 오늘을 생각하면 코비드 연호에 담기는 문명적 의미를 적극 활용함직 하다. 코로나 19의 충격이 인류를 하나로 묶을 것인가 아니면 국가와 민족들 사이를 더 갈라놓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