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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번역성경

신복룡 교수가 신구약 성경을 번역하고 그간 학연을 이어왔거나 관심을 보인 사람들에게 그 파일을 직접 보내주셨다. 구약과 신약, 천주교 판과 개신교 판의 네 개 파일로 이루어진 오랜 작업의 결과물을 보면서 감탄과 함께 깊은 감동을 느낀다. 성경을 통독하거나 필사하는 신자는 더러 있지만 번역을 한다는 것은 실천은 물론이고 생각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배후에는 라틴어 성경의 번역작업을 수행한 에라스무스와 루터가 있었고 이후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위클리프, 메튜 등의 역할이 컸다. 한국의 경우에도 로스와 이수정, 언더우드, 서경조 등이 성경 번역에 큰 역할을 담당했고 독자적인 성경번역을 수행한 개인이나 집단이 없지 않다. 성경이 정경 (canon) 으로서의 번역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적 권위를 지닌 위원회나 공회가 번역의 주체가 되는 것을 당연시해 왔지만 구체적인 번역작업을 수행한 분들의 헌신과 역량을 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공식출판에까지 이르지 못했고 본인 스스로 번역이 아니라 ‘교감’이라고 표현했지만 성경의 개인번역이 시도된 것 자체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신교수는 신학적 논란에 개입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작업을 원칙으로 내세웠지만 이런 번역을 시도하게 된 내면의 문제의식, 기존 번역에 대한 미흡함이 없을 수 없고 군데 군데 고민의 흔적을 각주의 형태로 담고 있다. 가끔 과감한 독자적인 번역을 시도한 부분도 발견된다. 예컨대 요한복음의 첫 부분에 나오는 Logos를 삼위일체의 두 번째 자리인 “성자”(聖子)로 번역한 것을 들 수 있겠다. 영문판 Bible은 이를 “Word”라고 번역했고, 중국어 판본은 “도”(道)라고 번역했으며, 일본어 판본은 言(ことば)로 되어 있는 부분이다. ‘말씀’이라는 번역어는 매우 잘 된 선택일 수도 있고 종종 그렇게 해석되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성자라는 뜻으로 이해되는 것이 옳다는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하고 있다.

사실 성경의 번역은 늘 세계문명사의 중요한 계기적 사건이었다. 기원전 3세기 히브리어 구약이 희랍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여 70인역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기독교의 유럽전파의 주요한 기초가 되었다. 르네상스는 라틴어 정경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됨으로써 말씀을 누구나 자기 언어로 접할 수 있게 된 종교혁명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일어난 대전환이었다. 성경이 독일어로, 불어로, 영어의 King James 판으로, 다시 미국의 NIV나 현대인을 위한 성경으로 번역되는 과정은 좁게는 번역의 역사이지만 크게는 세계종교의 보편사, 인류문명의 일대 전환을 수반한 사건이었다. 그런 흐름은 동아시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중기인 1790년대에 4복음서의 30% 정도가 번역된 [성경직해]가 간행되었으니 한국에서도 성경번역의 역사는 꽤 오래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성경번역 300년] 책에서는 중국 경교의 소개, 고려시대의 동방기독교 , 임진왜란에서의 천주교 수용 등을 ‘성경수용의 여명기’라고 서술하면서 성서번역의 역사를 최소한 300년 이전으로 소급할 것을 주장한다. 한글성경이 오늘과 같은 체제로 나타난 것은 19세기 말인데 번역자에 따라 용어선택이 달라 ‘하나님’과 ‘상제님’과 ‘천주’가 같이 쓰이고 ‘도’와 ‘말씀’이 같은 역어로 혼용되기도 했다. 성서해석학의 진전에 따라 용어의 통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지만 지금도 신구교 사이에, 또 각 교단별로 사용되는 번역어가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보수적인 일부교단에서는 ‘성서무오설’을 번역본에도 적용하려 하지만 상이한 언어로의 번역에서 의미 변형과 왜곡의 문제를 피할 수 없어서 시대에 따라 늘 새로운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 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신복룡 교수가 개인적으로 신구약 성경을 새롭게 교감하고 독자적인 번역작업을 수행한 것은 놀랍고 특기할 만한 사건이다. 신복룡 교수는 이미 [플루타르크 영웅전]과 [삼국지]를 다양한 원어와 판본들을 비교하면서 한국어 번역본을 출간한 바 있다. 그 이전에는 구한말 선교사들이 남긴 한국관련 기록들을 정확하게 번역소개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런 작업들은 다양한 동서양 언어에 통달해야 함은 물론이고 상이한 시대의 문화, 언어관습, 문화의 전승과 교류에 대한 폭넓은 인문학적 이해가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번의 성경 번역에서도 신구교가 공동 번역한 [성서](서울 : 대한성서공회, 2001)와 한국 천주교의 [성경]. The New English Bible(NEB : Oxford/ Cambridge Version, 1970 )을 저본으로 삼고,The Holy Bible(New International Version : NIV, 2002), The Holy Bible(New Revised Standard Version : NRSV, 1991), [우리말 성경](두란노서원, 2004), 일본어 판본인 [聖書](東京 : 日本聖書協會, 2002), 중국어 판본인 [聖經](臺灣 : 聖經資源中心, 2017 : 和合本)을 참고하여 작업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오랜 시간과 신심이 담겨있을 이 작업이 더욱 새로운 의미와 영성의 진작에 기여할 것을 기대하며 신교수님의 수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