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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학회 이사장 취임

한국사회학회 임시총회에서 새로이 학회 이사장으로 선임되었다. 특별한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회장을 역임한 회원 가운데서 법인이사회를 대표할 사람을 한 명 선정하여 이사장 역할을 부탁하는 절차에 불과하지만 사회학 공동체 안에서 평생 살아온 학자로서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돌이켜보면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학회와 이런 저런 인연을 맺었다. 70년대만 해도 학회는 법인격을 갖춘 것도 아닌 관련 학자들의 자발적 결사체에 불과했다. 학회 행사도 비공식 세미나 같이 오손도손한 분위기였다. 학회가 조직적인 특성을 띠고 체계적으로 관리되면서 법인이 되었는데 좋은 점도 불편한 점도 공존하는 듯하다.

앞으로 학회라는 조직은 어떻게 변해갈까? 힘과 돈이 없는 순수학술단체로서의 학회가 급변하는 지식유통과 문화소비의 바람 속에서 어떻게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 개개인의 역량과는 별도로 결집된 정체성은 약화되고 있는 분과학문 공동체의 앞날이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아 마음 한켠이 무겁다.

life · 오늘의 화두

성묘길 단상

부모님 유해가 묻혀있는 무덤을 찾는 성묘문화는 오랜 전통에 뿌리박고 있어서 21세기 첨단문명의 시대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기독교 가정에서 제사의 관행과 멀리 떨어져 자란 나조차도 성묘를 가지 않는 부담을 느낀다. 추석인사에 으례 성묘 다녀왔느냐는 말이 건네지고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니 앞으로도 그 생명력이 길 듯 싶다.

조부의 묘역에 비석을 세우고 단장하는데 정성을 쏟던 부친에게 모친은 늘상 타박을 하곤 했다. 돌아가신 조상보다 살아있는 자식이 더 중하고 썩어질 육체보다 죽지 않는 영혼이 더 소중하다는 소신이 뚜렷했다. 두 분 사이에는 유교문화의 세계관과 기독교적 세계관이 사사건건 충돌했다. 찾는 이 없이 세월과 더불어 퇴락해가는 조부모의 산소를 둘러보면서 그 때의 여러 모습들이 떠올려졌다.

곰곰 생각해보면 이 긴장은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아니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 내 머리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과장법을 동원한다면 동양과 서양의 충돌이고 근대와 전통의 긴장일 수도 있다. 늦게나마 성묘길에 오르는 내 행동의 바탕에는 도교와 유교가 뒤섞인 정서와 합리적이고 기독교적인 가치가 부딪치는 긴장을 해소하고픈 욕구가 자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life · 오늘의 화두

화림계곡의 문화유산

코로나로 인해 추석이 한참 지나 고향을 다녀왔다. 오랫만에 나들이를 한 누이들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네 앞 가을 들녂은 추수를 앞둔 황금빛 볏자락으로 넘실댔다. 아들 종인이가 군대를 가기 직전에 부모님 산소 주변에 심었던 감나무가 꽤 자라 큰 감이 여럿 열렸다.

오는 길에 화림동 계곡을 들러 맑은 물가에서 잠시 정담을 나누었다. 이 계곡 이곳 저곳에 세워져있는 농월정, 동호정, 거연정의 모습은 개발광풍의 바람으로부터 그다지 침해를 받지 않아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출사보다는 은일을 중시하던 산림 선비들의 삶을 보는 듯 했다.

조부는 이 화림동을 좋아해서 아호를 화사라 했다. 조부가 세웠던 애산당 기동에 의친왕의 글씨로 ‘화림사보 은사정취(花林史暜 隱士情趣)’라 쓰인 현판이 있었다. 숨은 선비의 정취를 예찬하는 글이겠는데 식민지 시대를 벗어난지 반세기도 더 넘은 21세기 세계화의 시대에 은사의 정취란 낡은 유물에 불과할 것인가. 오는 길에 머리를 스쳐간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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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헌장과 한글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유네스코헌장 전문을 전지 두 폭에 쓴 병풍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기증했다. 한국문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유네스코를 찾는 국내외 인사들의 기념촬영과 각종 회의의 배경으로 사용될 만한 한글작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한경구 사무총장의 부탁에 따라 지난여름 나름 공들여 썼던 글이다. 의미 있는 문화상징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 헌장 첫 머리의 이 문장은 유네스코 설립의 기본정신을 온전히 드러낸다. 모든 분쟁의 원인도 해법도 모두 인간에게 있다는 이 명제는 두 차례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으면서 뜻있는 학자, 예술가, 교사, 과학자, 문인 들이 숙고하면서 합의한 결론이자 원칙이다. 제정된 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지만 지금도 그 메시지의 울림은 강하고 명료하다.

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한글의 조형원리가 문화다양성과 평화방벽을 강조하는 유네스코 정신과 묘하게 부합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글의 개별 획은 정형화된 기하학적 모양을 띠지만 글자의 조합에서는 자유로운 여백과 강약이 허용되어 글씨마다 개성이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의 조형미 속에 담긴 이 역동적인 힘이 오늘의 BTS도 K-Pop도 가능하게 해준 문화적 자산일 수 있겠다 생각해보는 한글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