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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학사협의회

6월 19-20 목포에서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학사협의회가 열렸다. 부임 이래 동료 교수들과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던 나로서는 특히 반가운 모임이었다. 공식 회의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석학교수 신분이어서 조용히 그간의 강의와 내 연구활동을 되돌아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과 온라인 수업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매 강의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던 지난 2년은 여러모로 미지의 내일을 향한 탐구여행이었다. 이제 그 지적 여정에서 어디쯤 와 있는지를 점검해볼 때가 되었고 이 조용한 바닷가는 그런 성찰에 적절한 장소란 생각을 했다. 때마침 이곳에 교수회의를 하러 온 국방대학교 김병조 부총장을 오랫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뜻밖의 기쁨이었다. 내가 가르쳤던 육사 42기 교수와도 인사를 나누면서 잠시 80년대 초반 시절을 되돌아보는 여유도 가졌다.

숙소인 현대호텔에서 내려다 본 목포 앞바다 정경은 아름다왔다. 영산강 하구가 시원한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작은 섬들이 다리와 제방으로 이어져 있어서 내륙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다음날 해양 케이블카를 통해 유달산에 올라 내려다 본 풍경은 잿빛 하늘과 수평선이 겹쳐 마치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했다. 배로 오가야 했을 작은 섬 고하도가 멋진 관광지구로 변신하고 있는 모습에서 간척과 개발이 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전형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에 육지로 이어진 고군산열도와 광활한 새만금 일대를 둘러 보면서 개발이 가져오는 지역생태의 변화와 이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문제제기를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 목포도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 행적이나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 또는 김우진, 박화성 같은 예인의 고장임을 자랑하는 것 못지 않게 도시화, 산업화, 정보화와 맞물린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어떻게 조율하고 21세기형 생활양식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미래지향적 스토리텔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GIST 부임 이래 ‘문명으로 보는 21세기’ 과목을 개설하고 여러 쟁점을 학생들과 토론해오면서 나는 과학기술 연구와 인문사회학적 문제의식이 긴밀히 연계되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생태위기와 디지털 문명에 대한 논란은 물론이고 최근 Chat GPT 4의 출현을 계기로 진행 중인 다학제적 토론과 대화도 그 좋은 예에 속한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개최되었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와 인공지능 전문가 페이페이 리 사이의 토론에 대한 논평문을 학생들에게 쓰게 했을 때 대부분이 두 사람의 문제제기가 서로 다르지만 상호보완적이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일반 종합대학에서는 전공별, 단과대학별 장벽이 높고 과학기술영역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제대로 이런 쟁점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쉽지 않은데 반해 과학기술대학이야말로 그런 논의의 최적지가 아닐까 싶다. GIST 내부의 긴장감이나 공유된 화두가 그다지 강하지 와 닿지 않는 것은 각 전공영역이나 개별 교수들의 노력을 내가 아직 잘 모른 탓이리라 생각한다.

저녁 식사 후 가진 방담 시간은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다양한 연구영역간 소통과 창의적 발상을 뒷받침하고 교수들의 개별적 역량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좀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전공교육과 기초교육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분과학간의 융복합적 연구를 지원하는 대학 차원의 혁신적 거버넌스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총장의 혁신적 리더십이나 정부의 정책지원에 더하여 학내 교수들로부터의 비전과 혁신이 동반되어야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안이긴 하다. 과학기술분야와 인문사회분야, 첨단기술개발과 기초소양교육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와 견해차가 있게 마련인 바 그 긴장을 어떻게 건강하고 창의적인 동력으로 전환시킬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현재 수학과 인문사회학이 함께 기초교육학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 모델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다른 모델을 지향할 것인지도 앞으로 고민해 볼 사안이겠다. 조만간 결정될 새 총장이 유능한 리더십으로 시대적 소명에 부응할 창의적 거버넌스를 정착시켜 GIST 대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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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사회와 사회학

2023년도 한국사회학회 학술대회가 6월 16-17일 개최되었다. 행사가 열린 전북대학교는 꼭 40년 전인 1983년 신참 교수로 부임하여 10년 넘게 봉직했던 곳이다. 내 연구실이 있었던 사회과학대학 건물을 보면서 윤근섭, 김영기, 홍성영 교수 등 오래 전 도움을 주고 받던 선배 교수들을 떠올렸고 최근 정년을 하신 김영정, 남춘호 교수, 학회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박천웅 학과장, 대학원에서 가르쳤던 김재우 교수 등도 반갑게 만났다. 학교 캠퍼스를 한바퀴 돌며 이곳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니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모저모 아쉽고 부끄러웠던 기억도 따라온다.

학술대회의 주제가 ‘파편사회와 사회적 연대’다. 설동훈 회장이 주도하여 추진하는 전북대학교 BK 연구단의 핵심 연구 테마이기도 하다. 사회학은 그 초기부터 사회통합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기실 그 바탕에는 전통적 공동체의 해체와 이질화된 개인의 아노미가 있다. 사회학은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파편화의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탐구한 학문이라 할 수 있고 서구 근대성이라 부르는 제도와 원리들이 모두 이와 직결되어 있다. 21세기에 파편사회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는 근대사회학의 처방과 설명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문제들을 인류가 대면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사실 “파편사회 극복”이라는 현수막의 화두는 더 이상 학계만의 쟁점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실존적 문제가 되었다.

전체 프레네리 세션에서는 김홍중, 신진욱, 양승훈 세 분이 파편사회의 양상을 다룬 글을 발표했다. 김홍중 교수는 지구문명 전체가 처해 있는 위기를 근원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이제는 ‘파국주의’를 이야기할 때임을 주장하면서 라뚜르를 중심으로 여러 최근 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했다. 신진욱 교수는 ‘다중균열’과 ‘유동하는 적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적 파편화를 설명하고 특히 정치의 표류 현상에 주목했다. 양승훈 교수는 오늘날 지방청년들이 부딪치고 있는 딜렘마를 통해 지방이란 공간과 청년이란 세대에 나타나는 구조와 주체의 불일치 현상을 설명했다. 세 발제는 그 시선이 각기 지구, 국가, 지역이라는 다른 공간성을 향하고 있지만 문제의식에서는 상호보완적으로 느껴졌다. 파편화라는 현상이 정말 문명적이고 근본적인 흐름이라면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이 함께 다루어져야 할텐데 근대문명과 국가사회, 그리고 생활세계 사이 사회학이 자리할 새로운 위치설정을 어떻게 할지가 어렵고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여겨졌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문명으로 보는 21세기’라는 강좌를 개설하고 학생들과 관련 쟁점들을 탐색해오고 있는 나로서는 문명적인 시각을 강조한 발제와 토론에 좀더 관심이 갔다.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왕성한 지적 탐색을 계속하시는 김경동 교수는 기조강연을 통해 동양적 지혜가 파국사회를 넘어설 문명적 자원이 될 수 있으리라는 주장을 했다. 흥미롭고 중요한 주제인데 현대 중국의 문명론적 점검을 포함한 여러 부문의 검토가 더해져야 할 듯 싶었다. 김홍중 교수가 내건 ‘파국주의’ 주장에서는 이전에 내걸었던 마음의 사회학, 사회학적 파상력, 스노비즘, 은둔주의 처럼 깊은 지적 사유와 참신한 문제의식이 느껴졌다. 하지만 서구근대성에 대한 비판을 넘어 지구생태계 전체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이로부터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해 보였다. 오늘날 기술문명의 위험 심화, 비인간적 행위자의 대두, 인간-기계-물질의 관련을 재조정하려는 포스트휴머니즘 등이 파국이란 화두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피티림 소로킨의 문명론적 접근이 그러했고 오늘날 지그문트 바우만이나 유발 하라리 등의 저작이 그러하듯, 본원적인 문명 비판이 사회학 이론 및 방법론에 의미있게 연결되기에는 빈 부분이 너무 많다. 분과학으로서의 사회학과 총체적 문명론이 첨단과학의 시대와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중요한 지적 과제다.

사회학계를 포함한 학문공동체 자체도 파편화의 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시대다. . 새로 건립된 멋진 건물 8층에 정성껏 차려진 저녁 만찬장의 자리 곳곳이 비어있고 학계의 중심을 구성해온 원로, 중견 연구자들의 참여도 전과 같지 않은 듯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만 새로운 주제들을 붙들고 씨름하는 여러 신진 학자들의 패기와 어려운 여건에서도 세번의 학술대회를 기획한 설동훈 회장, 2027년 광주에서 개최가 결정된 세계사회학대회를 준비하는 대회위원장 장원호 교수의 수고와 열정에서 새로운 힘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대학 안팎의 연구자들이 더 진지하고 더 창의적이며 더 혁신적인 지적 노력에 나서야 ‘파편사회 극복’을 위한 사회학적 전망이 얻어질 것이란 생각을 하며 후학들의 열정에 박수와 성원을 보낸다.

life · 시공간 여행

경주의 코리아 판타지

경주 엑스포 공원에 있는 솔거미술관을 방문했다. 소산 박대성이 기증한 그림을 중심으로 세워진 이 미술관은 공원의 윗자락에 자리해 있어서 거대한 공원 입구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야트막하지만 정겨운 언덕길을 올라가면 아래를 굽어보는 시원한 언덕을 만나는데 빈지의 철학을 강조한 승효상의 작품 답게 소박한 건물을 만난다. 가까이 가서도 여느 미술관처럼 요란한 디자인이나 거창한 위용이 없이 단순한 사각 건물들만으로 건립되었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이나 과시적인 건축미보다 자연과의 친화성과 겸손함을 강조한 공간구성이란 인상을 받았다.

소산 박대성은 수묵화로 일가를 이룬 분이다. 그의 작품과 생애을 접한 이후 솔거미술관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 꼭 와보고 싶었다. 다행히 지금 전시중인 코리아판타지 전에서 그의 그림과 글씨 십수점을 볼 수 있어 큰 기쁨이었다. 불국사 전경을 그린 그의 대작은 내가 그의 수묵화에 처음 이끌렸던 작품인데, 수묵의 농담을 강력하게 대비시키면서 천년고찰의 위엄과 늠름한 소나무 자태를 배치시켰다. 소나무의 짙은 부분은 좀처럼 보기 어려울 정도의 강한 농묵을 사용해서 먹의 검은 색이 주는 강렬함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수묵과 글씨에서 붓에 못지 않게 먹을 강조하는 이유를 조금 알 듯 했다.

화면에는 그의 수목화론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는 수묵화의 핵심은 진정성이라 했는데 예술이나 기예이기 이전에 인격과 품위를 강조하던 동양적 예술론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는 기본적으로 글씨와 그림이 같이 가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번 전시에도 그는 여러점의 글씨를 선보였는데 이들 작품은 한결같이 글씨의 조형성, 즉 글씨 자체가 그림임을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런 관점은 결국 붓과 먹, 그리고 운필의 중요성으로 이어지는데 겸재 정선이 강조해 마지 않던 정신과도 상통한다. 그러고보니 소산의 그림들 속에서 겸재의 느낌이 나는 듯 하다.

코리아판타지는 소산 전시회의 제목이자 대표적인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작폼은 크기나 구성이 매우 야심찬대 작가가 담고싶은 모든 이야기와 이미지를 이 한폭에 담으려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코리아 판타지’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고조선을 상징하는 인물이나 벽화로부터 신라와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꽃피우고 변해왔던 다양한 자연과 문명의 흔적들을 담았다. 금강산과 백두산을 연상케 하는 산, 태양과 소나무, 한옥, 훈민정음, 문방사우 등 다양한 상징적 대상들이 빼곡히 거대한 캔버스에 담겨 있다. 지나치게 많은 소재와 대상들을 포함하려 한 탓에 작가의 의욕이 너무 과잉된 느낌마저 든다. 이것을 예술품으로 보지 않고 오늘 한국을 있게 한 긴 문명사의 지도로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전체 구도는 천전리 고분벽화를 떠올리게 한다. 오랜 시간, 문명의 흐름 속에서 이어져온 어떤 감수성과 정신을 찾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다른 전시실에서는 파독 간호사로서 화가의 길을 걸었던 노은님 작가의 첫 유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1946년 해방 직후에 태어나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물고기, 새, 꽃 등 자연물을 소재로 강렬한 원색의 그림을 그려 ‘생명의 화가’라는 이름을 얻었던 작가인데 2022년 타계했다. 몇 달 전 튀빙겐 대학 이유재 교수가 주도하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파독한국인 생애사 연구서를 이교수로부터 받아 여러 파독 동포들의 삶을 잠시나마 훑어보았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어러운 생활, 고국을 떠난 그리움, 그러면서 무언가 생명의 본질을 찾으려는 예술혼이 이렇게 그림으로 분출했구나 싶어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수묵만을 고집한 소산과는 달리 강렬한 색감을 많이 사용한 노은님 작가 작품전은 ‘나, 종이, 붓’을 주제로 달았다. 두 작가의 그림과 감각은 매우 다르지만 붓과 종이를 주목한다는 점에서는 공감의 정서가 있지 않나 싶다. 또 강렬한 농묵의 검은 색과 원색 물감의 선명함이 다르면서도 유사한 어떤 에너지를 발산하는 듯도 했다. 전시를 둘러보면서 신리, 솔거, 경주의 이미지와 파독간호사, 한반도 역사, 격동의 근대화가 오버랩된 어떤 복합적 이미지를 느꼈다. 21세기에 우리 주위에서 해체되고 변용되며 재구성되는 새로운 코리아 판타지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상상될까 곰곰 생각해본 시간이었다.

activities · life · 오늘의 화두

보진회

6월 주말을 이용해 오랫만에 보진회 모임이 경주에서 열렸다. 외조부님의 손자녀들 중심으로 서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자 만들어진 모임이다. 언젠가는 이런 것아 필요할 것이라며 종자돈과 함께 외조부 아호를 딴 보진회를 두 분 외숙께서 주도해 만드신 때가 거의 20 년 전이다. 어머니가 외가의 맏딸이고 나는 우리 집안의 장남인 관계로 자연스레 내가 이 모임의 회장이 되었는데 제대로 회장 역할을 할 기회도 없이 세월이 흘렀다. 모두들 안팎으로 바쁘고 또 서울과 지방, 해외 등으로 흩어져 살아온 탓에 소식도 공유하기 어려웠는데 이제 이런 모임을 할 마음과 여유가 생긴 셈이다. 현직에서 은퇴하거나 곧 은퇴를 앞둔 사람들도 적지 않고 머리가 백발이 된 사람도 여럿이지만 다들 건강한 얼굴로 반갑게 회동할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수동의 외가댁은 대문과 안채, 사랑채 등이 마당을 중심으로 둘려져 있는 꽤 규모가 있는 집이었다. 외조부 송정헌 옹은 말년에 중풍으로 걸음이 다소 불편하셨지만 언제나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성품은 온화하셨지만 손자녀들에게 냉정한 훈계의 말씀도 곧잘 하셨다. 얼굴 빛이 매우 맑았고 눈매가 선명했는데 어머니는 그런 모습이 절제된 생활습관, 특히 식습관과 관련된다며 ‘식담심쾌'(食澹心快)라는 말을 종종 하셨다. ‘먹는 것이 담백하면 마음이 상쾌하다’는 이런 생각은 자연과의 조응을 강조하는 산림처사의 정신과도 연관이 있을 법하다. 실제로 외조부는 말년에 생식을 즐기셨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셨다. 상할아버지도 생존해 계셔서 4대가 함께 하는 대가족이었는데 그런 가정의 대소사를 뒷바라지 하느라 외조모님은 굽은 허리에도 한시도 몸을 쉬지 않는 부지런함이 몸에 밴 분이셨다.

개인화와 도시화가 급진전된 한국사회에서 친족의 유대는 현저히 약화되었다. 세대가 달라지고 사는 곳이 같지 않아 친척들 간에도 서로의 얼굴과 저녀들 이름 기억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나는 한국의 급속한 대가족제 해체를 강의할 때면 늘 박경리가 쓴 대하소설 [토지]를 예로 들곤 한다. 1부에서는 끈끈한 친족간 유대와 마을 단위의 공동체성이 뚜렷하지만 2부와 3부로 넘어가면 그런 정서적 연결성은 해체되고 새로운 인간관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소설에서 낮은 신분의 길상이와 결혼한 최참판댁 손녀 서희가 만주에서 돌아와 진주에 터를 잡는 2부와 3부의 내용은 농촌 중심의 시대에서 도시 중심의 시대로, 양반지주 중심의 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사회로 바뀌어가던 변화와 정확하게 대응한다. 외조부의 3남 5녀가 살아온 시대는 식민지배, 해방, 전쟁, 독재, 경제발전, 도시화 등 20세기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토지 3, 4부 이후 어디 쯤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박경리 소설을 워낙 좋아했는데 그 덕분에 [토지] 완간기념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여해 평사리의 인간관계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참판댁과 인근 주민들의 근끈한 신뢰가 너무 미화된 것은 아닌가라는 조심스런 의견을 피력했는데 한 신문에서 ‘토지의 시대인식에 오류’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해 당혹했던 기억이 난다. 후일 박경리씨가 내 논문에 좋은 평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경주에서 사촌들과의 즐거운 모임을 하면서 새삼 박경리가 떠오른 것은 수동 외가댁의 분위기가 토지 1부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 데다 어머니와의 인연이 생각난 탓이다. 박경리는 어머니와 일제시대 일신여고 동기셨는데 아쉽게도 어머니와 함께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경남의 작은 시골마을의 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자녀들이 성장하여 또 다른 사람들과 가정을 이루고 한 생애를 열심히 살았다. 그 세대가 낳은 손자녀들이 성장하여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그 슬하에 여러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고 있다. 예전에 비해 가문의 소중함이나 혈통의 무게감이 많이 약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통해 이어지는 생명의 연쇄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념 대립과 전쟁의 상처가 깊었던 서부경남에서 외가댁도 그런 수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슬픈 사연들이 숨어 있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후손의 세대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기적이다. 저녁을 먹은 후 안압지를 새롭게 복원 발굴한 ‘동궁과 월지’ 를 함께 둘러보면서 나는 야경을 감상하는 즐거움보다 그런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는 기분이 더 컸다. 경주를 떠나기 전 잠시 올랐던 토함산에서 멀리 동해를 바라보며 각자의 삶 속에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뜻깊은 1박 2일의 경주여행이었다.

life · 오늘의 화두

종강 소감

23년도 1학기 종강을 했다. 코로나로부터 벗어나 본격적인 대면강의가 시작된 첫 학기여서 모처럼 캠퍼스의 활기를 느낀 학기다. 개인적으로는 광주를 오가느라 이전 학기에 비해 몸이 좀 더 고되기는 했다. 그래도 젊은 후배 교수들과의 만남, 학생들의 활기찬 모습들을 접하는 것 자체가 생활의 큰 활력이다. 생각보다 고속도로에서의 2시간 운전이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은 것도 다행한 일이다.

지난 2년간 코로나 경험 속에서 비대면 수업을 온라인을 통해 하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졌다. face to face relation 을 보장하는 것은 물리적 모임인가 아니면 정보와 감각의 소통인가. 디지털 기기로 화면을 통해 얼굴을 맞대고 자유로이 이야기하는 것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유지하고 대화를 최소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면성’ 을 보장해주고 ‘face to face’ 감각을 주는 것 아닐까 라고. 분명히 그런 점이 있고, 앞으로 강의와 교육에서 온라인이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학생들을 눈앞에서 보고 강의할 때의 생동감이 온라인에서의 느낌과는 다른 것임을 이번 학기에 느끼고 있다.

학생들은 그러한 생각에 부분적으로 공감하는 것 같다. 교수와의 소통이나 강의를 통한 배움의 차원에서는 온라인이 크게 문제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장점도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수업은 교수의 강의가 전부가 아니다. 수업은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이고 수업을 오가며 나누는 일상의 대화 기회이다. 뿐만 아니라 캠퍼스 자체가 새로운 문화경험, 세대로서의 감수성을 공유하고 체검하는 실험장인데 그런 기능은 온라인이 대체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온라인 강의의 효과성을 높이 평가하는 내 자신이 너무 교수 중심적 사고, 강의 중심적 캠퍼스라는 선입견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팬데믹은 종료되었으나, 대학과 강의의 방식이 전적으로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될 것이다. 팬데믹 자체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주입식 교육과 관행화된 학교 시스템의 문제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혁신적 대응이나 과감한 실험보다 안전한 과거, 익숙한 제도에로 급격히 되돌아가는 듯 하다. 대안이 불분명하면 보수적이 되는 경향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여전한 쟁점이자 고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