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구품(圍棋九品) 이란게 있다. 바둑 실력을 아홉 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하는 중국의 전통 방식이다. 형세 판단, 수읽기, 국면 운영 능력 등 바둑의 기량을 종합적으로 평가, 최하위인 수졸(守拙)로부터 최고위의 입신(入神)까지 9 품계로 나눈다. 실제 바둑에서 급수차이는 상당히 정확하여 고수와 하수를 구분하는 지표로 손색이 없다. 삼성 인력개발원에서 평사원은 1-3단, 간부는 4-6단, 경영자는 7-9단은 되어야 한다고 했다는 글을 최근 읽었는데 실제로 바둑의 품계에 빗대어 사람 능력을 평가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바둑을 좋아하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저 품계 구분은 원래 프로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 한다. 자타 공인의 바둑고수인데도 프로가 아니면 구품의 바깥에 있다는 말이 다소 의아했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관리들의 서열을 판별하던 ‘관인구품법’이 일반 평민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한국 대표기업의 사원평가 9품론에 비정규 임시직이 포함되지 않을 것도 분명하니 말이다. 어쨋든 바둑의 품계는 프로와 아마를 가르고 고수와 하수를 준별하는 방식으로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조지훈은 “주도유단(酒道有段)”이란 글에서 술을 안먹는 ‘부주’로부터 반주, 애주, 탐주, 폭주, 주종까지 술먹는 사람의 18단계를 구분했다. 대체로는 술 잘먹는 사람이 높은 단계에 속한다 볼 수 있지만 객관적인 기량이나 능력보다 주관적인 인생관과 미학적 태도를 중시한 분류다. 기준도 불분명하여 술의 고수와 하수를 명확하게 가리고 실력을 평가하는 지표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주선(酒仙), 주성(酒聖)으로 불리더라도 사회적으로는 무능하거나 경쟁에 서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세속적 능력과는 다른 인간의 또다른 심미적 영역이 있음을 강조하려는 조지훈 시인의 의지만은 분명하게 와닿는다.
현대사회에서는 단연 바둑의 서열화된 평가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더 많은 연봉, 더 높은 지위, 더 강한 권력을 원하는 만큼 전문적 ‘기량’이 인간적 ‘품격’보다 훨씬 더 중시된다. 자신의 시장가치를 높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여유를 부리다가는 남의 호갱이 되거나 낙오자가 될 것임을 경고하는 주장들이 넘쳐난다. 물론 인간사는 경쟁만으로 평가되기 어렵고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시장논리에 서투르고 경쟁에 무능하지만 존경스러운 인품과 고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실력기반의 엄격한 능력주의와 인품이 훌륭한 사람의 인간적 역량을 별개로 평가하곤 한다.
학생들을 접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딜렘마를 본다. 개인적 경쟁력을 키우는 데 전념할 것인가 폭넓은 교류와 경험을 넓히는데 시간을 투자할까 고민한다. 사실 학생들은 서열화가 유난히 강한 한국사회에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능력과 기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미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타인과의 공감능력이나 문화적 감성조차 돈이 필요하고 여유없이는 쉽지 않은 사회적 자본이란 생각도 강하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무기력함도 강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호연지기를 말하다가도 어떻게 경쟁에서 이겨낼지 염려한다.
선생으로서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젊은이를 보는 마음은 안타깝다. 그래서 너무 인생을 경쟁으로 보지 말라고, 인간을 서열화된 능력순위로 평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좋은 친구를 사귀고 내면의 품성을 풍요하게 하여 외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경쟁력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면서도 이런 조언이 너무 교과서적이고 낡은 것이란 생각을 한다. 실제로 K-Pop의 상상력과 스마트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세대에게는 다른 형태의 격려나 조언이 더 필요할 듯 한데 내 언어와 감각이 그 지경에까지 가 닿질 않는다.
내 자신이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연배가 되고 정년 이후를 준비하는 때가 되어 보니 저런 조언은 우리 세대의 사람들에게 더 절실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정년을 한 후 허전함에 힘겨워하는 주변의 지인과 친구들을 보노라면 열심히 산 만큼이나 경쟁과 비교, 성과중심의 사고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려움을 절감한다. 지금까지 누렸던 대접이나 지위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때가 누구에게든 오는 것이고 그 상황을 감당할 힘을 키워야 한다. 물론 여전히 더높은 목표를 추구하고 후학들을 부끄럽게 할만큼 탁월한 성과를 내놓으시는 연부역강한 분들이 간혹 계시기도 한다. 일견 부러운 일이지만 누구나 그런 삶이 가능한 것은 아니어서 애써 추구할 바는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하던 조언을 이제 내 자신에게 종종 들려주곤 한다. 대단한 성과나 외부의 관심을 추구하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내면에서 스스로 느끼고 확인하는 자존감을 키우라고 말이다. 점점 줄어드는 사회관계를 허전해하기보다 자유로운 삶이 주는 여백을 즐길 능력을 키우고 오래 마음을 쓰지 못한 영성훈련에도 좀더 시간과 정성을 쏟을 필요가 있다. 알게모르게 내 체질처럼 몸에 밴 평가와 비교의 시선을 내려놓고 하수의 바둑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고 가벼운 커피 한 잔을 사랑하는 여유도 훈련할 일이다. 다소 쓸쓸하지만 풍성하고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 – 인생 후반부에서 찾게 되는 새로운 인생품계가 그런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