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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상 심사

2021년도 월봉상 1차 심사를 했다. 코로나 19의 거리두기 지침이 완화되기를 기다린 탓에 평년에 비해 많이 늦어졌다. 작년에 출간된 200여권의 연구서들을 살펴보면서 2차심사에 올릴 5권의 저작을 선정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해 동안 한국학계의 한 흐름을 일별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임에 틀림없다.

같은 심사위원인 이기동 교수님과 도진순 교수님은 한국사 분야의 학자 개개인의 장점과 그들의 연구성향, 학계 안팎의 동향에 매우 밝다. 나는 상대적으로 사회과학계의 사회사나 근대변동, 한국학 일반을 살펴본다. 손쉽게 합의되는 수작도 있지만 평가와 의의를 달리보는 견해차가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술상의 무게와 영예가 과거에 비해 약해진 느낌이지만 필생의 연구활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격려라는 점에서 심사의 역할은 영예로우면서도 무겁고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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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학기 수업 개강

6월 28일부터 계절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도 ‘현대사회사상의 흐름’이란 과목을 설강했고 15명의 학생이 수강신청을 해서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영어로는 Lives and Thoughts of the Great Thinkers 라 했는데 사회학이라는 분과학에 한정하지 않은 삶의 궤적과 사상적 특징을 살펴보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자연히 ‘사회학사’ 수업과는 구성도 내용도 다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같은 사람의 삶과 사상도 그것이 사회학에 미친 영향과 일반 사회에 미친 영향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학계에 남긴 이론적 영향보다도 일반인의 삶과 행동에 남긴 기여에 좀더 초점을 맞추어 수업을 재구성해볼 생각이다.

새로운 강의안을 준비하면서 새삼스레 분과학의 틀이 내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크게 규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학계에 남긴 족적은 잘 알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활동과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모르는 학자를 강의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이번 계절학기 수업은 그런 점에서 내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일반인에게 사회학, 또는 사회과학이란 어떤 의미를 가졌고 또 가질 수 있을 것인가.

life · 오늘의 화두

관심과 시력

세종으로 이사오면서 안경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안경이 없이 보낸 두 달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원래 시력이 크게 나쁘지 않은 탓이겠지만 애초 시력이 문자 해독에 맞추어져 있었던 탓도 있는 것 같다. 책 보는 것과 글 쓰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때는 시력이 조금만 나빠도 불편을 크게 느꼈지만 정원을 돌보고 산책을 하며 저녁 노을을 감상하기에는 지금의 시력으로도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 안경을 쓰지 않고 지내보려 마음을 먹었다. 책을 보거나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여전히 적지 않으니 언젠가는 안경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 만이라도 소나무의 잎이 자라는 것과 대추나무 열매가 커가는 것을 안경 없이 바라볼 생각이다. 노트북과 핸드폰이 필수품이 되는 시대에 시력의 불편이 나를 조금 더 그런 기기들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곰곰 생각하면 관심에 따라 시력이 좌우되는 것 못지 않게 명료한 시력을 중시하는 것 자체가 내 생각을 좌우하기도 한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 내 눈이 미치는 대상에 내 마음과 정신도 쏠리게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본다’는 행위는 단순히 보이는 영상을 인지하는 것 이상의 주관적 행위임을 새삼 느낀다. 안경을 잃어버린 것이 불편한 다행이 될 수 있을까?

life · 오늘의 화두

심고 거두는 것

손바닥 만한 텃밭이지만 채소를 심고 싶은 욕구가 컸다. 조치원 시장을 가서 상추와 고추, 쑥갓과 깻잎 모종을 사 오던 날, 매우 무더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작은 모종 속에 담긴 생명이 새로웠기 때문일까.

심은지 꼭 일주일이 되는 날 첫 상추잎을 따서 먹었다. 향긋한 내음이 입안을 가득 채웠고 사서 먹던 맛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입견이었을테지만 내가 심어 거두는 행동에 수반되는 어떤 감정이 입맛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심고 거두는 일 사이에는 내가 하는 일이 없다. 물을 주기도 하고 간간히 흙을 돋우어주기도 하지만 그 녀석들이 자라는데 내가 미칠 힘은 전무하다. 자라게 하시는 이는 그 분이라는 성경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대지의 생명력, 흙의 약동함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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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포럼 발제


6월 24-6일 제주포럼에 다녀왔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이영호) 에서 주관하는 “화해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역사” 세션에서 발제를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총 4명이 발제하고 2명이 토론을 하는 자리였고 동북아의 여러 쟁점들이 언급되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밀도있는 대화로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나는 민족주의 문제를 다루었다. 근대 이래 한,중,일의 역동성을 담보했던 민족주의가 탈냉전 이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기회가 있었던 점, 최근 10여년간 그 흐름으로부터 퇴행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의 대국지향적 민족주의, 일본에서 나타나는 ‘불안형’ 네셔널리즘, 그리고 한국의 분열형 민족주의의 현상 – 그 차이도 분명하지만 모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했던 레트로토피아의 특징을 수반할 수 있다는 염려를 피력했다.

해묵은 주제인데 여전히 현안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새롭고도 답답했다. 민족이란 화두, 민족주의란 동력으로부터 벗어나기엔 인간의 존재양식이 너무 근대적인 것일지 모르겠다. 남북관계의 교착으로 인해 현실과 상상력 사이의 간극이 큰 한국의 민족주의가 자기분열적인 성격을 노정하는 것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