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ties

가진포럼 2.0 단상

코로나 상황으로 오랫동안 지체되던 가진포럼 모임이 6월 16일 새롭게 재출범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상황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 저런 자리에서 종종 만나게 된 학계, 관계, 외교, 정치 영역의 전문가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지면서 시작된 비공식 모임이다. 현직에서 한발 물러나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분이 대부분이다. 이전에 비해 여유가 생긴만큼 자유로운 모임 그 자체가 주는 의미가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된다.

주로 모여 식사하던 식당의 이름을 따서 가진포럼이란 이름을 붙였었는데 촛불시위와 뒤이은 코로나 상황을 거치면서 점점 가기가 어려운 곳이 되었다. 다시 모임을 하게 되면서는 교통도 좀더 편리하고 근처에 있는 한 연구소 세미나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안국동에서 모이게 되었다. 앞뒤의 시간을 이용해서 화랑들을 둘러볼 수 있는 것도 좋은 덤이다. 앞으로 이름도 안국포럼으로 불러야 할까 모르겠다.

모두들 한국사회에서 최고수준의 전문가들이고 다양한 경험과 조직운영을 해본 분들인데 그 역량과 에너지를 공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더이상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취업의 어려움을 겪는 젋은 세대와 급속하게 변화하는 기술문화 생태계를 생각하면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퇴직해야 하는 제도가 반드시 부정적이진 않다. 실제로 조직상층이 고령화될수록 권위주의와 관행주의가 힘을 얻고 혁신과 변화에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전체로 볼 때 은퇴자가 늘어나는 것 자체를 안타까워 하기보다는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는 모습에 주목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 연령을 근거로 현역과 퇴역을 기계적으로 분할하는 지금의 방식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우선 이런 제도는 공공의 조직분야에서만 적용될 뿐 변호사, 의사, 기업가의 영역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공공조직분야에서 능력을 키운 고급엘리트층이 예비군처럼 늘어나면서 정치적 연줄로 임명되는 자리를 둘러싼 갈등이 커진다. 5년마다 열리는 대선이 점점 더 엽관제의 모습을 띠게 되고 캠프에 많은 엘리트 예비군들이 참여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텐데 그것이 미치는 영향의 명암을 손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인구학적 고령화와 더불어 늘어가는 퇴직 고급인력의 활용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향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activities

갈등조정과 사회통합

6월 14일 강원도 사회갈등조정위원회가 주관하고 한국사회학회 및 한국갈등학회 등이 공동주관하는 심포지엄에 참여했다. “갈등조정과 사회통합”을 대주제로 하고 해소되기 어려운 사회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책적, 학술적 기법과 그 운용사례를 점검하는 야심찬 행사였다. 나를 초청해준 강원대 김원동 교수가 국가 및 지방 단위의 통합적 거버넌스 모색을 위해 관련 학회들과 함께 심포지엄 전반을 기획한 듯 했다. 기조강연을 한 고려대 김문조 명예교수는 오늘날 변화하는 사회기술환경 속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증진시키기 위해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를 종합적으로 발제했다. 도 차원의 직제에 사회갈등조정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신선했고 학계 전문가와 지방행정 담당자, 시민운동가가 머리를 맞대어 지혜를 모색하려는 기획 자체가 그런 통합지향 거버넌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내가 좌장을 맡은 첫날 두번째 세션은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고리원전 5,6호기 건설문제와 사용후 핵연료 처리관련 추진된 공론화위원회의 성과와 한계를 논하는 자리였다. 첫번째 발제를 맡은 김주환 교수는 고리원전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공론화 방식을 거쳐 조건부 공사재개로 이어진 과정과 제주녹지병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 다른 결과로 이어진 사례을 비교검토한 연구였다. 두번째 정정화 교수 발제는 사용후 핵원료 처리와 관련한 갈등과 그 해소를 위한 정부위원회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 과정과 결과를 비판적으로 점검한 것이었다. 원자력과 관련한 쟁점 자체도 쉬운 것이 아니지만 공론화라는 방식 자체에도 따져볼 조건과 변수가 적지 않았다. 공론화의 전 과정에 유관주체들이 모두 참여하는지, 정부가 내정한 정책적 결론이 존재하는지, 위원회의 중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되는지 등 여러 변수에 따라 그 방식과 효과도 달리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두 발제와 토론을 통해 한가지 명확해진 사실은 공론화 방식이 갈등해소의 유용한 절차이긴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거나 이미 정해진 정책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경우 갈등해소의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실 갈등이 큰 사안은 그만큼 정책결정의 기회비용이 클 가능성이 높고 정책효과에 대한 중장기적이고 전문적인 평가가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을 경주하지 않은 채 중요한 결정을 공론화란 이름으로 시민적 판단에 위임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클 수 있다. 첫 세션에서 공론화라는 방식 이외에도 다양한 갈등해소방법 (ADR) 이 있다는 점이 발제되었는데 사안과 맥락에 따라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거버넌스와 지혜의 요체일지 모르겠다. 최종적으로는 정치적 판단과 책임윤리의 문제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한 사회의 총체적 문화수준과 이어질 터이다. 저런 노력들이 의미있는 공공의 지혜로 축적되어 통합의 역량이 커지기를 기대해 본 자리다.

life · 오늘의 화두

브랜드가 된 유네스코

장성의 필암서원을 다녀왔다. 입구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이란 간판이 우뚝하다. 서원 내 마루에는 오드레 아즐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서명이 담긴 “서원, 한국의 성리학 교육기관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한다”는 확인서가 걸려있다. 2019년 이곳을 비롯하여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함양의 남계서원 등 9곳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년 전에는 통도사, 부석사 등 한국의 전통사찰 7곳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이들 산사 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표지는 자랑스레 세워져있다. 한국 유교와 불교의 유산이 모두 유네스코로 인해 세계적 유산임을 공인 받은 셈이라 할 수 있겠다.

유네스코 표지판은 그 자체 문화 브랜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KBS 이산가족찾기 자료의 가치는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로 설명되곤 한다. 아리랑이나 판소리, 종묘제례약의 품격 역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이란 해설로 뒷받침된다. 지방정부들이 앞을 다투어 자기 지역의 유무형 문화유산의 가치를 확인받고자 유네스코 문을 두드린다. 집 가까이 있는 고등학교 교문에는 ‘유네스코 협력학교’란 간판이 걸려있다. 대학입시 부담이 강한 한국에서 유네스코가 표방하는 지속가능교육의 가치들이 실제로 학교현장에 얼마나 비중있게 반영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학교의 자긍심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유네스코가 이런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다른 어떤 국제기구도 갖지 못한 유네스코만이 지닌 문화적 영향력이다. 그런만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국가적 관심사가 되고 문화다양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든든한 기반이 된다. 하지만 일본의 군함도 유적 소개와 사도광산 등재추천에서 식민지 역사경험을 배제하려는 시도, 중화민족의 문화력을 확인하려는 자국주의 기획이 고조되는 중국의 문화공정에서 보듯 아직은 인류보편의 역사이해보다 국가주의적 역사해석에 더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문화가 상품이 되고 팩트보다 상상력이 힘을 얻는 시대가 될수록 관광자원을 위해 과거유산을 침소봉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조용한 산사나 서원 앞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표지판을 보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생각은 무엇일까? 민족적 자부심? 관광자원의 우수함? 지역적 정체성? 유네스코의 정신은 이런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화권의 자긍심과 무형예술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인류보편의 지적 도덕적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과연 21세기에 저 브랜드가 그런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 관건은 유네스코가 확보한 이 독특한 브랜드 파워를 새로운 지구적 문화실천과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혁명으로 삶의 전 영역이 크게 변하는 시대에 과거보다는 미래, 자랑보다는 책임, 지역보다 인류를 표상하는 형태로 유네스코 브랜드 파워가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필암서원 앞에서 일본의 군함도, 중국의 문화공정이 떠올라 유네스코라는 멋진 브랜드 파워와 인류평화란 미래과제에 대해 갖게된 생각의 한 조각이다.

life · 오늘의 화두

프로페셔널리즘과 아마추어리즘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가 유럽 프리미어 리그에서 23골로 득점왕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운 후 그를 키운 아버지 손웅정의 교육론이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 수년간 패스와 드리볼이 두 발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본동작만 반복훈련 했다고 한다. 기본기를 강조하는 원칙을 아들에까지 철저하게 지킨 일관성이 놀랍고 그 아버지의 지도에 성실하게 부응한 손흥민의 자세는 더욱 놀랍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굳이 청문회에서 쏟아져나오는 유명인사 가족의 변명을 듣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다.

탁월함을 강조하고 최고의 기량을 얻기까지 스스로를 절차탁마하는 프로정신은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발전의 원동력이다. 앞으로 손웅정의 교육론을 빌어서 월드클래스, 최고를 향한 끝없는 노력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더욱 힘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집념이 반도체 강국과 BTS 신화를 가져온 한 힘임은 부인할 수 없는데 저런 방식을 모든 사람, 모든 영역에 보편화해도 좋을지는 의문이다. 모두가 일류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합이 프로게임일 수 없다. 어디에선가는 기본기가 모자란 사람도 축구를 즐길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개인의 기량보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르쳐야 할 때도 있다.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은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두 바퀴다. 전문적 능력이 평가받고 뛰어난 프로들만 주목받는 세상인 듯 하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아마추어적이다. 부모 노릇이나 시민 역할을 프로처럼 하고 있다고 장담할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 사회적으로도 프로들의 세계와 아마추어 활동무대의 경계가 생각처럼 분명한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 경연을 통해 발굴된 프로 연예인들이 적지 않고 곳곳의 인플루언서 인기가 제도언론의 영향력을 잠식하고 있다. 인터넷과 정보화는 아마추어형 프로, 프로형 아마추어 같은 융합형태를 더욱 조장할 것이다.

점점 더 프로페셔널리즘과 아마추어리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 질 것이다. 프로 의식이 없으면 전문성과 경쟁력이 약해지지만 지나친 프로의식은 전문가주의나 실력주의의 덫에 빠지기 쉽다. 아마추어적 태도는 참신성과 유연성을 가져오지만 지나치면 무책임한 적당주의를 심화시킨다. 이 균형이 깨어지면 엘리트주의로 변질된 프로의식이나 팬덤정서를 부추기는 아마추어리즘의 위험이 커질 것이다. 존경받는 프로페셔널리즘과 책임있는 아마추어리즘을 어떻게 균형있게 재구축할 것인가 – 손흥민의 쾌거에 박수를 보내면서 자문해보는 질문이다.

activities

연구대상으로의 교회공동체

공동체에 대한 공부모임에서 윤진수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의 ‘교회분열의 법적 고찰’ 발표를 들었다. 이전에도 교회의 공동체적 속성과 그 변화에 대한 서구 사례를 법학의 관점에서 다룬 발표를 들은 바 있다. 같은 신앙을 공유한 신자들의 자율적 모임이라 할 교회가 법률가의 연구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일견 의아해 보이지만 유럽의 경우 정교분리의 제도화가 근대화의 핵심이었던 점, 교회 내분으로 인한 갈등을 법정에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한국의 현실, 가족간의 일에도 법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경우가 적지 않은 오늘의 상황을 고려하면 법률적 관심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교회공동체의 법인격이 분할 가능한지, 분열의 절차적 타당성은 어떻게 충족되는지, 교회재산은 신자들의 공유인지 총유인지 등이 중요한 쟁점이 된다고 한다. 판례의 변화와 최근의 다수의견이 어떠한지 등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한국의 개신교는 이미 다양한 학문영역에서 연구대상이 되어 왔다. 비서구사회에서 1세기만에 강력한 종교로 성장한 것, 세계최대의 대형교회들이 한국에 집결되어 있는 것, 유난히 많은 교단과 교파로 나뉘어진 것, 통일교를 비롯한 신흥종교들이 출현한 것, 불교 및 천주교와 더불어 종교다원주의가 자리잡은 것 등이 국내외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어온 주제다. 70, 80년대 민주화와 인권운동과 친화력을 보이던 개신교가 정치문화적 보수주의와 결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최근 새로운 연구주제가 된다. 곳곳에서 빈발하는 교회분열이라는 현상도 공동체론이나 조직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발표를 들으면서 종교사회학을 전공한 교수였다가 현장 목회자가 되어 사역한 노치준 목사의 최근 저서가 생각났다. 그는 [평신도 시대, 평신도 교회] (동연, 2021)에서 ‘평신도 아마추어리즘’과 ‘교역자 프로페셔널리즘’을 한 축으로 하고, 교회공동체의 양극화를 다른 한 축으로 하여 한국교회의 변화상을 설명하려 했다. 그에 의하면 평신도가 교회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 1980년대 이래 한국교회의 특성인데 평신도의 역량과 열정이 커지고 평신도 신학이 자리를 잡는 한편으로 교권과 전통에 의존한 교역자 권위는 점점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열정적 참여를 가능케 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아마추어리즘의 한계와 보수적이고 성직주의에 근거한 교역자 프로페셔널리즘의 위기가 만나게 되었다고 본다. 역동성과 위험성의 동시 성장이 다양한 문제들의 출현배경에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한편 조직규모의 관점에서 보면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현재 한국의 교회는 100명 이하의 소형교회가 66.5%에 달하고 자립이 불가능한 50명 이하의 교회도 거의 50%에 육박한다. 이에 반해 1만명 이상이 모이는 23개 초대형교회의 신도가 전체 신자의 20%를 넘는다. 당연히 대형교회와 중형 교회, 소형교회가 갖는 문제의 양상이 매우 다르다. 재벌과 소규모 자영업자를 상법만으로 규율하기 어렵듯이 교회공동체라는 본질론적 개념만으로 불균등한 현실 개교회를 포괄하는 것은 매우 불충분하다. 교회공동체에 대한 신학적인 답과 법률적인 답이 있겠으나 조직사회학적으로 주목할 쟁점들도 민감하게 대응하는 노력이 절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노치준 목사는 자립이 어려운 소형교회 경우 앞으로 교회폐지, 합병을 비롯한 조직형태의 재편성이 불가피하리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마을목회, 분교회 모델, 자비량 목회, 작은 교회운동 등이 고려될 수 있겠지만 충분한 대안일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반면 대형교회의 경우는 제도개혁과 함께 분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긴 하지만 그것이 대형교회의 또다른 확산모델로 변질될 우려도 없지 않다. 중간규모의 교회는 자립성과 공동체성을 공유할 수 있지만 다양한 변화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거버넌스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못해 내부의 갈등과 분열의 가능성이 상존할 수 있다. 신앙공동체의 바람직한 규모와 그것을 보장할 제도가 어떠해야 할지, 그 규범력을 사회법에 의존할지 자체적으로 정립할 수 있을지, 신자와 교역자의 역할을 어떻게 재편할지, 분립과 통합의 새로운 조직형성을 어떻게 제도화할지 등이 앞으로 불가피할 과제가 될 듯 하다.

activities

종강

2022년도 1학기 종강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3학기 연속 비대면 강의로 학기를 마쳤는데 광주과학기술원에 부임한 이래 대면수업을 해볼 기회를 지금껏 갖지 못한 셈이다. 오고 가는 수고를 덜었으니 분명 몸은 편했는데 모니터 앞에서만 1년 반을 보낸 허전함을 부인하기 어렵다. 두 과목을 열심히 준비해 가르쳤지만 일방적인 강의로 시종하게 된 것도, 학생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를 갖지 못한 것도 아쉽다.

5월 초 대면수업으로 전환해도 좋다는 조치가 있어 학생들의 의견을 물었다. 90% 이상이 비대면 수업을 찬성했다. 이미 익숙해진 강의방식이 주는 편리함에서 굳이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읽혀졌다. 강의하는 나도 관성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데 학생들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스크린 앞에서 수동적인 청중으로 앉아있어야 하는 비대면 수업이 결코 즐거운 것만은 아니겠으나 외출에 필요한 여러 부담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은 결코 무시하지 못할 듯하다.

다음 학기는 대면 수업으로 전환할 것이 예상되지만 비대면 수업의 장점을 어떻게 이어갈지는 새로운 과제다. 각자 편리한 자리에서 화면을 통해서지만 서로의 얼굴을 정면으로 대하고 눈과 눈을 마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던 비대면 수업에 비해, 마스크를 한 채 떨어져 앉아 조심스레 강의하는 대면 수업이 얼마나 더 ‘face to face’ 에 부합할지 내 스스로 확신이 서질 않는다. 디지털 환경이 가져온 상호관계와 정보전달 방식의 대전환이 교육현장에 미치고 있는 변화가 팬데믹이 끝난다고 중단될 리는 없을 터… 앞으로의 변화와 경험이 흥미로운 관찰거리가 아닐 수 없다.

life · 오늘의 화두

사사친

5월 16일 스승의 날을 맞아 사회사학회 활동으로 오래동안 학연을 이어온 몇분들이 학회의 창립과 발전에 초석을 놓으신 서울대 신용하 명예교수님을 모시고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모두들 정년을 해서 학교에선 명예교수가 되고 지하철을 무임승차할 자격을 얻어 소위 ‘지공도사’ 반열에 들어섰지만 스승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늘 학생 시절이나 초보 교수 시절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모양이다. 다들 이전 일들 회상하면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다. 신용하 교수님은 최근 출간한 또 한권의 묵직한 저서를 가져오셔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사회사연구회가 태동하던 1980년으로부터 따져보면 벌써 40년이 넘었다. 한국사회가 엄청난 변화를 겪었던 시기였던만큼 개개인의 생애도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스토리들로 가득할 터이다. 노치준 목사는 종교사회학자로서의 활동을 뛰어넘어 직접 목회의 현장에서 새로운 길을 걸었고 황경숙 교수는 학장으로 학교와 학계 이곳저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성실한 연구자의 모범이라 해도 좋을 김필동 교수는 사회사학회와 충남세종 사회학계의 중추역할을 해왔고 국내외 시민운동에 열심으로 참여해온 이정옥 교수는 여가부 장관으로 국정에 참여했다. 일본연구자인 한영혜 교수는 전통춤을 배우고 즐기는 춤꾼이 되었고 정근식 교수는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척하는 열정에 더하여 2기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지만 조성윤 교수는 제주를 중심으로 민속종교와 기층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지속하고 있고 김경일 교수는 정년기념저작만으로도 두 권의 묵직한 책을 내놓을 정도로 여전한 건필을 자랑한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학문활동을 했고 일이년을 사이에 두고 정년을 한 동세대여서인지 오랜 동학으로서의 우애를 깊이 공감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간간히 만나는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에 너나없이 찬성했다. 한영혜 교수가 발빠르게 ‘사회사 노친네’라는 이름으로 카톡방을 개설했는데, 정겨운 이름이지만 아직은 ‘ 나 젊어’를 외치고 싶은 마음을 반영하여 새 이름을 정하기로 했다. 황경숙 교수가 서로의 의견을 모으는 프로그램을 공람한 덕분에 ‘사사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사회사학회 친구들’의 줄임말이면서 편하고 사사로운 모임이란 의미도 담을 수 있는데다 부르기도 편해 참 좋다. 한국사회사학회가 내 학문여정에 큰 도움을 준 곳인데 이제는 이런 좋은 모임까지 선사하는 인연이 되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사사친 화이팅!

activities

통일평화연구원 창립 16주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6주년 기념심포지엄이 5월 17일 시흥캠퍼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오세정 총장께서 축사를 해 주셨고 2006년 당시 서울대 총장으로 연구원 설립을 주도했던 정운찬 전 총리께서 ‘동반성장과 남북관계’라는 기조발제를 해 주셨다. 뒤이어 내가 ‘통일평화의 16년 여정과 새로운 길찾기’라는 발표를 했다. 서울대학교에 통일관련 종합연구원 설립을 기획하고 전 과정을 주도할 수 있게 적극 후원해주셨던 정운찬 전 총장님과 함께 기조발제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다.

발제후 김병연 원장의 사회로 회고와 전망을 담은 대담을 했다. 정운찬 전 총장께서는 통일평화연구원 설립을 구상하게 된 배경, 총장으로서 당시 가졌던 꿈과 비전을 말씀하셨고 국정을 담당하셨던 분 답게 동반성장의 대의와 남북관계의 미래를 결합시킬 것을 주문하셨다. 나는 연구원을 설립하면서 지키려 했던 몇가지 원칙들과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 것인지 고민했던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특히 현실적인 쟁점을 다루면서도 정파적이지 않을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 진보보수 및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뢰하고 공유할 데이터와 담론을 산출할 역량을 확보하려 했음을 말했다. 개인적인 회고이고 경험이지만 나름의 역사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메시지였다고 해도 좋을 듯 싶다.

돌이켜볼 때 이처럼 중요한 연구기관을 설립에서부터 10년간 책임질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과분한 축복이었다. 내 능력을 뛰어넘은 일이라는 생각이 강했던만큼 더 절실하게 애쓰고 선학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해외의 유명 연구소를 벤치마킹하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내 50대 10년 동안을 줄곧 고민하게 만들었지만 이 기간을 통해 개인적으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 함께 큰 꿈을 나누고 지식의 지평을 넓혀가면서 사회적으로 유익한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성과 뒤에 담긴 수고를 기억해주며 그 뜻을 이어가려는 동학, 후배 교수들이 계시니 그 감사함은 말로 하기 어렵다.

한 해 전 통일평화연구원이 시흥캠퍼스로 옮겨간 것을 기념해서 써준 액자를 김병연 원장께서 로비 입구에 잘 보이게 배치해 두어 빛이 났다. 반갑게 만난 여러 연구원들과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통일평화’라는 생소한 개념을 내걸고 두 과제를 새롭게 사고하려던 문제의식을 떠올리며 며칠 고심하던 끝에 생각해낸 글귀였다. “통일은 평화로 가는 길이고 평화는 통일이 피울 꽃이다”. 남북관계가 교착된 오늘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런 길이 열리고 그런 꽃이 필 날을 고대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터인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큰 역할을 감당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life · 시공간 여행

지.덕.체와 친구들

지난 주 오랜 친구인 태영, 희용, 명곤과 귀한 모임을 가졌다. 중학교 시절 학교와 교회를 함께 다니면서 우정이 시작된 사이이니 무려 50년이 넘었다. 그동안 각기 목회, 군인, 학자의 길을 걷는라 잘 만나지 못했다. 더구나 남을 가르치는 역할을 해야 하고 일요일엔 교회 일에 바쁘다 보니 현직에 있을 때는 좀처럼 편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이제 대부분 퇴직을 해서 몸도 마음도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어 다시 만나니 반백년의 세월도 어제인 듯 반갑고 기쁘다. 잘 치지 못하는 골프를 핑게삼아 푸른 잔디를 밟으며 하루를 즐겁게 이야기하며 보냈다.

경남의 한 작은 마을에서 혼자 올라와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니던 내게 당시 수유리는 내 주말과 정서를 책임지던 곳이었다. 백운대와 4.19 탑은 답답할 때 가곤 했던 산책로였고 우이감리교회는 주말마다 들리던 집과 같았다. 하교길에 교회당을 들리면 반가운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간간히 목사님이 나를 불러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 주셨다. 태영, 명곤, 희용, 은영, 후용, 승기 등은 내 정서의 빈구석을 채워주던 고마운 동기들인데 특히 태영, 명곤은 학교도 같아서 등하교를 함께 하곤 했다. 언젠가 태영, 희용과 어느 자리에서 지, 덕, 체라는 가치를 한 사람이 모두 갖기는 어려우니 한가지씩 나눠 가지자고 했다. 당시는 재미삼아 했던 말이었을텐데 약속을 지켰다고 할까 아니면 말이 씨가 되었다고 할까 실제로 그 다짐은 실현되었다. ‘덕’을 맡기로 한 희용은 신학교를 거쳐 목회자가 되었고 ‘용’을 맡은 태영은 공군사관학교를 거쳐 유능한 조종사이자 비행 교관이 되었다. ‘지’를 맡기로 한 나는 학자의 길을 밟아 모교인 서울대 교수를 하고 다시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가 되어 있으니 돌이켜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이제 정년 이후의 삶은 다시 지, 덕, 체의 통합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똑똑한 것도, 후덕한 것도, 건강한 것도 그 어느 하나만으로는 점점 노령화 시대를 헤쳐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랜 생활에서 몸에 밴 생각과 행동 탓에 각자의 개성은 쉽게 변하지 않아 운동하는 과정에서도 각자의 기질이 드러나곤 한다. 육군의 장군으로 제대한 명곤과 공군의 고급장교였던 태영 덕에 간간히 함께 운동을 하게 된 것은 참으로 소중한데 옛날 수유리 학창 시절을 떠올릴 정도의 장난기와 농담이 스스럼없이 오가는 것을 보면 오랜 우정이 갖는 강한 힘이 놀랍다. 친구들의 만남에서는 운동을 잘 하거나 못하는 것이 자랑도 흠도 아니며 신앙의 깊이와 지식의 많고 적음도 큰 변수가 되지 않음을 실감한다. 지금은 연락이 없어 만지지 못하는 다른 친구들도 비슷할 것이다. 젊은 시절 각기 나누어 갖기로 했던 지, 덕, 체를 이제 다시 개성적인 삶 속에 녹아내야 하는 단계에 접어 들었음을 느끼면서 우정의 소중함에 감사하게 된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