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시공간 여행

지.덕.체와 친구들

지난 주 오랜 친구인 태영, 희용, 명곤과 귀한 모임을 가졌다. 중학교 시절 학교와 교회를 함께 다니면서 우정이 시작된 사이이니 무려 50년이 넘었다. 그동안 각기 목회, 군인, 학자의 길을 걷는라 잘 만나지 못했다. 더구나 남을 가르치는 역할을 해야 하고 일요일엔 교회 일에 바쁘다 보니 현직에 있을 때는 좀처럼 편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이제 대부분 퇴직을 해서 몸도 마음도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어 다시 만나니 반백년의 세월도 어제인 듯 반갑고 기쁘다. 잘 치지 못하는 골프를 핑게삼아 푸른 잔디를 밟으며 하루를 즐겁게 이야기하며 보냈다.

경남의 한 작은 마을에서 혼자 올라와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니던 내게 당시 수유리는 내 주말과 정서를 책임지던 곳이었다. 백운대와 4.19 탑은 답답할 때 가곤 했던 산책로였고 우이감리교회는 주말마다 들리던 집과 같았다. 하교길에 교회당을 들리면 반가운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간간히 목사님이 나를 불러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 주셨다. 태영, 명곤, 희용, 은영, 후용, 승기 등은 내 정서의 빈구석을 채워주던 고마운 동기들인데 특히 태영, 명곤은 학교도 같아서 등하교를 함께 하곤 했다. 언젠가 태영, 희용과 어느 자리에서 지, 덕, 체라는 가치를 한 사람이 모두 갖기는 어려우니 한가지씩 나눠 가지자고 했다. 당시는 재미삼아 했던 말이었을텐데 약속을 지켰다고 할까 아니면 말이 씨가 되었다고 할까 실제로 그 다짐은 실현되었다. ‘덕’을 맡기로 한 희용은 신학교를 거쳐 목회자가 되었고 ‘용’을 맡은 태영은 공군사관학교를 거쳐 유능한 조종사이자 비행 교관이 되었다. ‘지’를 맡기로 한 나는 학자의 길을 밟아 모교인 서울대 교수를 하고 다시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가 되어 있으니 돌이켜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이제 정년 이후의 삶은 다시 지, 덕, 체의 통합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똑똑한 것도, 후덕한 것도, 건강한 것도 그 어느 하나만으로는 점점 노령화 시대를 헤쳐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랜 생활에서 몸에 밴 생각과 행동 탓에 각자의 개성은 쉽게 변하지 않아 운동하는 과정에서도 각자의 기질이 드러나곤 한다. 육군의 장군으로 제대한 명곤과 공군의 고급장교였던 태영 덕에 간간히 함께 운동을 하게 된 것은 참으로 소중한데 옛날 수유리 학창 시절을 떠올릴 정도의 장난기와 농담이 스스럼없이 오가는 것을 보면 오랜 우정이 갖는 강한 힘이 놀랍다. 친구들의 만남에서는 운동을 잘 하거나 못하는 것이 자랑도 흠도 아니며 신앙의 깊이와 지식의 많고 적음도 큰 변수가 되지 않음을 실감한다. 지금은 연락이 없어 만지지 못하는 다른 친구들도 비슷할 것이다. 젊은 시절 각기 나누어 갖기로 했던 지, 덕, 체를 이제 다시 개성적인 삶 속에 녹아내야 하는 단계에 접어 들었음을 느끼면서 우정의 소중함에 감사하게 된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