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에 꽃이다. 봄에 이렇게 많은 꽃이 피는 줄 정말 몰랐다. 모두의 눈을 끌면서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매화, 목련, 개나리, 벗꽃, 진달래는 그들 스스로 자태를 뽐내지만 몸을 굽혀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띠지도 않을 작은 풀꽃들도 너무 많다. 명자나무 꽃이 피는가 했더니 이제 집앞 가로수의 꽃사과가 그림같이 화사하다.
매일 달라지는 꽃나무들을 보면서 루쉰의 ‘아침의 꽃을 저녁에 줍다’는 산문집을 떠올린다. 수년전 이욱연 교수가 번역한 책을 보내와 잠시 본 적이 있고 동료 권현지 교수가 이 글을 좋아해 작품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최근 유난히 이 말이 와닿는 것은 새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즐기다가 어느새 그 꽃들이 떨어지는 모습 또한 매일같이 접하기 때문인 것 같다.
왜 루쉰은 아침의 꽃을 저녁에 줍는다 했을까? 한자어의 특성상 朝花와 夕拾간의 의미연관을 해석하는 방식이 수학공식처럼 명료하긴 어렵다. 꽃이 아침에 피면 즐기고 저녁에 지면 쓰는 기다림의 철학,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자세를 노래한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고 아침에는 화사하게 피는 꽃도 저녁에는 시들어 버려지는 것을 생각하여 스스로를 경계하는 화두로 삼을 수도 있겠다. 어쨋든 아침과 저녁, 피는 것과 지는 것, 활짝핀 꽃과 떨어진 낙화의 대비가 새삼 다가오는 계절이다. 화려한 봄꽃을 보면서 떠올리는 시어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