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간 로드 아일랜드 여행을 다녀왔다. 바닷가에서 잠시라도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처의 희망을 따라 로드 아일랜드 일대에서 전망이 좋은 숙소를 찾았다. 위릭, 뉴포트, 브리스톨 등을 둘러보다가 마침내 한 집을 빌렸다. 브리스톨 해변가에 위치한 작은 주택으로 사진으로 보고 선택한 곳인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내부는 깔끔했고 거실의 전면이 통유리창으로 되어 탁트인데다 그 앞으로는 넓은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여행을 매우 뜻깊게 해 준 것은 날씨였다. 보스턴을 출발할 당시만해도 눈발이 날리고 예보 상으로는 궂은 날씨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숙소에 도착한 직후 2시경부터 날씨는 활짝 개이고 파란 하늘과 햇살이 강렬했다. 거실에서 구름이 걷히고 그 사이로 파란 하늘과 붉은 태양이 나타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잠시 휴식한 후 반대편 해안으로 건너가 일몰을 보기로 했다. 역시 해변가에 위치한 비치 레스토랑은 음식보다도 분위기와 풍경이 일품이었다.
말을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일몰을 보는 호사를 누리고 나니 밤에 선명한 별자리를 보고 싶은 욕심이 솟아났다. 실제 이 정도면 총총한 밤하늘을 기대할 만 했다. 평소보다 훨씬 선명한 오리온,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등을 만났지만 은하수를 보려던 꿈은 이루지 못했다. 도시의 불빛이 가까이 있는 지역에서 이것까지 바라다니, 지나친 기대였을 수도 있다. 그 아쉬움을 달래준 것은 아침의 일출 광경이었다. 이 일출을 여유있게 보겠다는 일념으로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던킨 도너츠와 커피를 사왔다. 도너츠의 맛을 잃게 만들 정도로 일출 모습은 장관이었다. 넓게 펼쳐진 수평선 너머로부터 붉은 기운이 펼쳐나가는 모습 앞에서 우리는 한동안 할 말을 잃고 바라만 보았다.
프로비던스를 둘러보고 한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사장님 내외분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부산에서 지내다가 미국으로 건너온지 23년이 넘었다니 아마도 IMF 직후 미국행을 결심했던 분들이 아닐까 싶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말에 반가와하면서 최근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 사태로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라고 했다. 트럼프 정부의 출범에 대해서는 미국의 백인들이 대체로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이 어려운 상황에 빠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민을 왔지만 한국상황에 대한 관심은 결코 약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날은 밤새 눈이 내려 또다른 바닷가 설경을 선사했다. 불과 2박 3일의 여행인데 일출, 일몰, 밤하늘, 설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었으니 큰 다행이었다. 보스턴으로 돌아오는 길에 샌드위치 시의 조그만 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지중해식 움식이 전문인 듯 했고 주문을 받는 젊은 여성도 그쪽 출신으로 보였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갑자기 표정과 어투가 달라졌다. ‘아 정말요? 너무나 가고 싶은 곳이에요. 내가 제일 좋아하고 보고싶은 곳입니다’ 라고 했다. 한국의 위상, 문화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하는 기회였다. 이들에게는 계엄과 탄핵이라는 정치적 격랑은 관심 바깥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믿기 어려운 이중적 상황이 계속될 경우 한국을 보는 대중적 인식에도 영향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까움을 또 한번 느끼며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