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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와 지식인

4월 22일 도헌학술원 포럼에 다녀왔다. 70여권의 책, 710여편의 컬럼에 여러권의 소설까지 내 놓은 이 시대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지식인인 송호근 원장이 학자로서의 반세기를 되돌아보면서 그 세대의 정신사적 궤적을 성찰하는 자리였다. 나는 논평자로 초청을 받아 참여했지만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친구이자 동료로서 축하와 공감의 마음으로 함께 했다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송교수는 자신을 베이비붐세대, 좀더 구체적으로는 70년대 경험에 그 정신적 뿌리를 내린 세대로 표현했다. 유신시대에 대학을 다니고 80년대의 격변과 환희를 맞보고 90년대의 고도성장과 민주화를 경험했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채 IMF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새로운 변화를 일구어낸 역동적 시대를 살아온 세대이다. 실제로 그가 쓴 많은 책과 컬럼은 이 시대가 보여준 다양한 애환과 갈등의 면면들을 다루고 있다.

당연 나도 같은 세대에 속한다. 이 세대는 문학으로부터 세상과 인간, 역사를 보는 눈을 키웠다는 송원장의 발표에 공감했다. 나 역시 사회학을 전공하면서도 소설과 시, 종교 서적에 더 끌렸던 기억이 있다. 80년대 후반 ‘사회과학의 시대’가 도래했고 한편 그 변화를 환영했지만 이청준, 최인훈, 황석영, 신경림의 정서가 마르크스와 사회구성체 논리, 민중해방과 계급의식을 강조하던 사회변혁적 사유와 같을 수는 없었다. 그 거리감은 인간적인 것의 기반이지만 이념적으로 철저하지 못한 태도를 가져오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송원장은 문학의 시대를 이은 사회과학의 시대도 저물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영향력은 동반하락 중이다. 테크놀로지와 포스트 휴머니즘의 정신이 그 뒤를 이을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우리는 지배적 정신이 부재한 상태, 지적 아노미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미래에의 꿈이 사라지고 돈으로 환산되는 즉각적 효용만능의 세태가 확대일로다.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해줄 여유를 갖기 전에 스스로 의 혼란과 어지러움을 곧추세우기도 힘겨운 시대를 맞고 있다.

문학적 상상, 사회과학적 분석, 현실문제에의 개입은 한 사람의 정신 속에 공존하기가 쉽지 않다. 작가의 세계, 사회학자의 몫이 언론인의 역할과 같지 않은 이유다. 송원장은 이 세 영역을 평생 움켜쥐고 살았다. 문학과 사회과학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컬럼을 중시하면서 작가적 상상력과 사회학적 분석력을 꼭같이 견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당한 정신 긴장을 견디고 사유의 경계를 예리하게 관리하는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원한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능력이자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발제의 처음과 끝에서 김소월의 산유화를 인용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사여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지천에 꽃이 피는 4월의 자연을 노래한 듯 하지만 학자로서의 삶을 비유하는 시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피는 꽃, 제가 좋아 산에 사는 꽃의 모습이 꼿꼿하게 자기 정신세계를 지켜온 지식인의 모습과 닮았다. 그 꽃이 얼마나 향기로울지 어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지는 본질이 아니다. 꽃은 그 자체로 꽃인 것이다.

‘내 인생은 복되었다’는 말을 발제의 앞뒤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다. 말 그대로 송원장의 인생은 남부러워 할 정도로 복되다. 내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배가 아프다’고 표현했지만 정말 배아플 정도로 그의 학문적 성취와 사회적 존재감은 동년배의 누구보다도 대단하다. 이제는 하산하는 시대를 살아야 하는 만큼 ‘글없는 송호근’과 대면할 준비를 하라 조언했다. 하지만 사실 그 주문은 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에게 꽅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림대 도헌학술원 이 내실있는 지적 플랫폼으로 자리잡아 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4년전 송원장 부탁으로 쓴 ‘도헌학술원’ 현판이 본부 6층의 공간을 빛내고 있는 듯 했다. 이사장과 총장이 함께 자리하여 격의없는 토론을 주고 받고 학내의 교수들과 지역의 유지들이 함께 문화와 역사, 인생을 논하는 장을 열어가는 것은 요즘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다. 한림대 도헌학술원이 새로운 대학의 한 모델로 자리잡고 지속적으로 발전해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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