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니가타와 강촌

오랫만에 계획한 가족의 일본여행 출발일이 오늘이었다.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의 고장이기도 한 니가타 지방을 둘러볼 작정이었다. 문헌으로 종종 접한 지역인데 한번도 가볼 기회가 없었던 곳이었기에 기대가 컸다. 그런데 연초에 발발한 일본의 강진 여파로 결국 여행을 취소했다. 지진 피해가 심한 노도반도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같은 서해안 권역에 속해 여진의 부담도 있고 인적 물적 피해로 고통받는 지역을 여행하는게 도리도 아닌 듯 싶어 위약금을 무릅쓰고 결정한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일본행 비행기에 있겠다 생각하던 차에 한반도 평화연구원의 장혜경 박사가 ‘강촌’ 여행기를 공유 카톡에 보냈다. 이어 여러분이 강촌에 얽힌 추억들을 올려놓았다. 나도 대학 시절 몇차례 들렀던 곳인데 뚜렷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딱히 떠오르지 않고 ‘강촌에 살고 싶네’라는 유행가 가사가 먼저 떠오른다. 사실 강촌은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기 이전에 ‘강가의 마을’이라는 보통명사로 더 널리 쓰였다. 전국 곳곳에 강촌은 산재해 있고 중국과 일본에도 소박한 농촌마을을 뜻하는 대명사로 종종 사용되었다. 두보의 시 ‘강촌’은 자연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생활하는 삶을 그린 작품으로 일찍부터 애송되어 왔다.

두보의 시에 정통했던 조선 시대 선비 매계(梅溪) 조위(曺偉)도 ‘강촌’이란 시를 지었다. 김천 지방에 세거한 15세기의 대표적 문인인데 점필재 김종직의 처남이었고 중종의 총애를 받았다. 일개 서생으로 중앙조정에 비판적 상소를 올리다 유배를 떠난 허암 정희량에게 시를 지어 보내며 처세의 방도를 조언한 것이 그의 ‘강촌’ 시다. 원제는 詠江村雜興呈虛庵이고 두 수로 구성되어 있다. 두보의 시가 대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삶을 그린데 비해 조위의 시는 세상사와 상호작용하면서 주의해야 할 처세론을 담고 있어 흥미로운 대조를 보여준다.

游魚鼓髥綠波深/ 林鳥和鳴助我吟/ 物自得時機自得/ 人應觀物見天心 ( 물고기는 지느러미를 치며 푸른 물결 깊은 데서 놀고/ 숲속 새는 화답하며 울어 나의 시 읊음을 돕네/ 만물이 스스로 때를 얻을 때 기회도 스스로 찾아오나니/ 사람도 응당 사물을 살펴 하늘 마음을 보아야 하리) — 만물이 때가 와야 이루는 법이니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조언과 ‘천심’을 읽는 눈이 필요하다고 조언한 시다. 하지만 조위 자신도 말년에 무오사화에 연루되는 화를 피하지 못하고 그 원통함을 담은 한글가사 ‘만분가’를 짓기도 했으니 때를 아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를 얻는 것, 천심을 읽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소중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物自得時機自得/ 人應觀物見天心’ – 무산된 니가타 여행의 아쉬움을 조위의 시 강촌 첫 연을 쓰면서 달래본다.

One Comment

  1. 교수님. 스쳐 지나가며 산책한 강촌 덕에 조위의 시 강촌을 알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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