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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공동체

6월 1일 “격동의 시대 – 통일과 평화를 어떻게 재결합할 것인가”를 주제로 내건 학술 심포지엄이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이 주최했다. 트럼프 2기 출범으로 심화된 세계적 변동과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 이후 우리가 처하게 된 새로운 상황을 직시하는 것이 첫 세션의 과제였다. 둘째 세션은 최근 남북한 2국가론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 평화공존을 새 목표로 내걸자는 일각의 주장 속에서 통일론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지를 다루었다. 세번째 세션은 기존의 민족공동체 방안을 대신할 어떤 비전이 가능할지를 탐색하는 대안모색이 주 관심이었다. 이영선 통일과나눔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통일과 평화의 두 화두를 묶어내기 위한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고 150여 청중들이 시종 경청하여 몰입도가 높은 뜻깊은 행사가 되었다.

윤영관 아산재단 이사장은 현재의 상황을 ‘지정학 시대의 귀환’으로 규정하고 향후 가능한 세 시나리오를 소개한 후 그것이 세계질서와 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에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를 설명했다. 이전 질서로의 회귀, 신냉전, 세력권 정치 중 어떤 미래가 전개되든 한국에겐 큰 도전이 되리라 예상하면서 특히 한반도문제가 국제정치화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국민들의 통일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형중 박사는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을 핵능력 증진으로 북한의 위상과 강제력이 더욱 강화된 조건 속에서 ‘북한 우위 적대병존관계 수립’ 전략으로 해석했다. 적대성은 향후 북한체제존속의 한 필수조건이 되는 것이고, 그 맥락에서 평화공존은 실현불가능한 전망이라고 했다. 평화적 2국가론은 허상이며 억제와 위기관리역량을 재설계해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마상윤 교수, 민태은 박사가 참여한 토론에서는 향후 세계질서 변동을 해석하는 제 시나리오의 적절성 여부, 특히 세력권정치의 전개가능성, 지정학의 회귀라는 표현의 정확한 내용, 한국문제의 국제화라는 것이 얼마나 새로운 것인가, 거래주의적 동맹관이 동맹약화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등이 논의되었다. 박형중 박사에 대해선 과연 북한의 대남적대성이 고정불변일 것이라 단정할 수 있는지, 평화공존 불가능론은 너무 구조적 변수만을 강조하는 편향이 아닌지, 이런 상황에서도 신뢰의 접점을 찾고 통일을 추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두 번째 세션에서 김병연 교수는 경제통합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통일론을 제시했다. 경제협력에서 경제통합을 거쳐 통일로 가는 모델이 북한에게도 실익이 크고 한국의 부담도 크지 않다고 했다. 북한의 현 경제상황은 매우 구조적으로 취약하기에 체제안정을 위해서라도 경제협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가능성을 주목한다. 다만 경제협력은 위임형 제도화를 수반해야 하고 공동의 규칙을 발전시킴으로써 북한이 시장화를 넘어 시장경제화로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우택교수는 현 북한이 지도자의 강국욕망과 잘살려는 인민의 욕망이 부딪치는 상태로 파악했다. 시장, 사상, 문화 전반에 걸친 가혹혼 통제가 심화되는 현실은 그 자체가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고 고통과 불안정을 키울 것으로 판단했다. 통일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즉 평화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러려면 새로운 우리의 대응력, 입체적이고 모순을 포용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토론에서 양문수 교수는 경제통합의 실제 유형도 역사적으로 다양했음을 설명하면서 한반도에서의 통합개념을 좀더 세분화, 정교화할 필요를 지적했다. 또 동구권에서 확인된 경제통합이론이 한반도에도 충분히 적용가능한지, 북한이 과연 통합이라는 개념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시됨을 지적했다. 김성경 교수는 1국가 1체제를 상정하는 통일개념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두 국가론에 대해 좀더 전향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21세기 첨단기술이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도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첨언했다.

세 번째 세션에서 나 (박명규 교수)는 현 시기를 ‘기본합의서 체제의 파탄’ 국면이라 설명했다. 미중대립과 북러밀착, 북한 핵보유 자신감 등을 배경으로 북한은 1991년 이후 남북관계를 지탱해온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원칙을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한국에서도 대북정책이나 남남갈등을 조율하는 전략적 대원칙으로서의 위상과 기능이 많이 약화되었다. 같은 민족이란 정체성이 약화되고 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간주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동시에 북한에 대한 거부감과 안보불안은 증대하고 있어 기존방안을 유지하기도 2국가론을 수용하기도 어려운 딜렘마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착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선 민족공동체에 기반한 기존 시각을 ‘코리아 공동체’ 로 바꿀 필요가 있음을 제안했다. South Korea와 North Korea라는 두 현존하는 국가성을 인정하는 새 통합구상으로 바꾸자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남북간 특수관계도 역사문화적 공동성보다 분단국가관계로 재조정되고 그에 기반하여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모색하는 형태로 재구성되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코리아 공동체는 단일민족국가형 통일체를 지향하기보다 경제, 문화, 재난, 보건, 안보 등 여러 영역별로 다차원의 통합이 병행발전는 복합공동체가 되어야 함도 언급했다. 박영호 박사, 조동호 교수, 김병로 교수, 류경아 박사 등 패널토론자들은 대체로 큰 방향에 공감하면서도 실질적인 대안이 되기 위해선 어려 측면에서 좀더 다듬어져야 할 쟁점들이 있음을 지적했다.

전반적으로 심포지엄의 짜임새는 좋았고 발제와 토론도 밀도가 있어서 휴식도 없이 계속된 4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졌다. 발표와 토론을 들으면서 세가지 쟁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지정학의 도래라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국제정치적 전략과 남북관계적 논리가 어떻게 종합적 대응력으로 재구축될 수 있을지가 그 하나다. 동맹-자주, 평화-통일을 나누어 양자택일하려는 편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더욱 중요해졌다. 둘째는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을 공세적으로 볼 것인가 방어적으로 볼 것인가의 쟁점이다. 양면이 다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양자를 전제한 위에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셋째는 경제통합 구상이나 코리아공동체 비전에서 보듯 급진적 통일보다 삶과 연동되는 ‘통합’을 더욱 주목할 필요성이다. 이런 통합형 구상을 어떻게 전략과 정책 차원으로 체계화할 것인가가 미래의 주요한 과제가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관계상 이런 쟁점들이 좀더 예리하게 토론되고 예각화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은 아쉬웠다. 향후 동북아 지정학의 향방, 북한과의 평화공존 가능성, 남북 경제통합의 전망, 코리아 공동체의 적실성 등에 대한 밀도있는 논의는 후속 과제로 남겨진 셈이다. 향후 더많은 논쟁과 검토를 거쳐 이런 쟁점들이 다듬어지기 기대하면서 그러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파적 대립, 단순이분법을 넘어서기 위한 지성적 성찰이 더욱 절실하리란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코리아 공동체’라는 화두가 꽉막한 남북관계를 열어가는 대안으로 발전해갔으면 하는 희망을 더욱 갖게 되었다. 2차대전을 거치면서 심화된 프랑스와 독일의 대립을 넘어서 평화와 번영을 향한 유럽공동체 꿈을 꾸었던 장 모네의 구상이 실현되는데는 거의 반세기가 걸렸음을 생각하며, 긴 호흡과 폭넓은 토론, 유토피스틱스적 전망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절감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