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보내준 매화 사진을 보자 나도 모르게 아! 소리가 났다. 시절의 하수상함에 휘둘려 봄이 온 것도 몰랐구나 싶었다. 지금부터라도 나무의 새잎 나는 소리, 잔디 색 변하는 모습, 풀꽃 피는 자리들을 유심히 살펴보리라 다짐한다. 매화 필 때 ‘以文會友’ 하자 약속한 ‘매암동인’ 제자들에게도 안부를 전해야겠다.
몇년 전부터 이맘때면 매화를 그렸다. 옛 문인화를 모사하기도 하고 직접 본 매화를 그리기도 했다. 작년에는 섬진강변의 화려한 매화 동네의 감흥을 표현해 보느라 적지 않은 화선지를 파지로 만들었다. 매화 그리기가 새 봄을 맞이하는 내 나름의 연례 의식이었던 셈인데 올해는 그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으니 세상사의 회오리가 내 정서의 영역까지 꽤나 영향을 미쳤던 모양이다.
문득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중국 작가 우웨스의 작품이 생각났다. 전통적인 문인화와는 다른 짙은 농묵의 묵매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래, 올해는 이런 매화도를 그려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심기일전하여 먹을 갈고 굽은 등걸과 뻗은 가지를 짙은 먹으로 강하게 그렸다. 꽃이 무성해야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은 꽃잎도 그려 넣었다.
이백의 시 한 구절을 화제로 썼다. 寒雪梅中盡 春風柳上歸 (찬눈은 매화향기에 사라지고 봄바람이 버드나무 위로 돌아온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노래한 시인데 세상사의 이치를 담은 글로 읽을 수도 있다. 한겨울 눈보라가 요란헤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듯이, 어지러운 나라 안팎의 상황도 결국은 사필귀정의 새 날로 이어지리라는 소망으로 읽어도 좋겠다. 매화향기 은은한 봄기운 속에서 힘든 시기를 견뎌낼 힘과 지혜를 얻을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