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바이스바써 -7

한독통일자문회의의 공식 회의가 시작되기 앞서 독일측에서 준비한 현장 답사가 있었다. 폴란드 국경가까이에 있는 작센 주의 바이스바써라는 작은 마을을 방문하여 그 지역이 겪고 있는 여러 변화와 도전들을 경청할 기회를 가졌다. 통일후 많은 동독지역 농촌이 경험한 것과 유사한 변화를 겪었고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한 독일의 그린에너지 정책의 여파로 이 지역경제가 재조정을 강요받고 있는 곳이라 한다. 답사를 안내한 베를린 자유대학의 김박사는 이곳이 복합적 위기상황을 독특한 내적 발상으로 대응하고 있는 사례여서 답사의 대상지로 선정했다고 했다.

약 2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스로 달려 도착한 곳은 자그만 하지만 깔끔해 보이는 지방도시였다. 시청에 도착해보니 회의장에 식사가 케이터링 된 상태로 준비되어 있고 시장이 브리핑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소탈해 보이는 페취 시장은 휴일이어서인지 혼자 모든 방문객 응접과 시청 건물의 열고닫음을 감당했다. 상세하게 준비된 브리핑에서는 그의 열정과 수고가 전해졌다. 시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도시는 38천명의 주민이 살던 곳이지만 지금은 15천명 수준으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동독의 빈곤한 농촌 10 분위 중 9분위에 속할 정도로 어려운 지역으로 평가되고 탄광산업의 사양화와 맞물려 더욱 미래가 밝지 않은 지역이다.

하지만 시장은 주민참여형 문화재생을 통해 이 도시에 새로운 활력과 비전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도시중심부의 활력 구축, 네트워크 강화, 공동협력과 참여, 그리고 디지털 인프라 구축의 네 가지 중점과제를 내걸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행정체계를 일원화하고 직업교육과 각종 훈련기회를 조성하며 주거지역을 새롭게 단장함으로써 300여 가구가 귀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했다. 과거 유리공장이었던 공장건물에 소규모 스타트업과 벤쳐기업을 유치하고 외부의 중소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장을 가 보기도 했다. 동독 시절의 거대한 집단건물들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조성한 녹지공간을 지나며 주택과 환경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고 했다.

이 도시의 노력은 전형적인 도시재생사업이라 할만하다. 미국 뉴욕에서도 슬럼지역을 새롭게 탈바꿈하려는 노력이 추진되었고 서울에서도 성수동을 비롯한 여러 곳에 유사한 변화가 시도되었다. 군산이나 전주 등지는 특색있는 공간의 역사성을 새로운 문화관광지로 변화시킴으로써 도시의 활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상당한 성과를 거둔 곳도 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비용만 증대시키고 토지소유주의 이익추구 사업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도 따라 다닌다. 이 도시가 고령화, 인구이동, 탈화석연료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을지는 단지 동독지역만이 아닌 21세기 인류공동체 공통의 관심사라 해도 좋을 듯 싶다. 자전거를 싣고 여러 곳을 다니며 열심히 설명하는 시장의 모습은 오늘날 지방소멸을 우려하는 한국 지방 소도시에서 벤치마킹할 만 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극우의 부상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들었다. 도시의 한 빈 건물을 이들이 무단 점거한 적이 있는데 시는 그 건물을 매입해서 해체시켰다고 한다. 과감한 대응이 다행히 좋은 결과를 거두었고 극우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적극적 사례로 내세울만 했다. 다만 모든 도시가 같은 대응과 결과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어서 누군가는 이 지역이 예외적인 곳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현재 독일에서 극우정치를 대표하는 Alternative for Germany (AfD) 정당은 2013년에 설립된 이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극우적, 국가주의적 가치와 이념을 중심으로 이민정책과 유럽 통합에 대한 비판을 주된 공격논리로 내세운다. 자유 시장 경제를 강조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와 적대성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불만과 불안정을 정치자산화 하려 한다. 이런 변화가 통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 도시의 사례가 보여주듯 현상적으로는 중층적으로 겹쳐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결국 사람이 사는 현장, 지방과 도시, 시민사회 곳곳에서 건강한 삶을 구축하기 위한 열정, 협력, 비전, 리더십이 삶의 현장을 풍요롭게 하고 극우도 잠재우는 처방이 될 것이다. 중앙집중성이 너무 강한 한국사회에 여러모로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은 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