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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와 지식인

4월 22-23일 도헌학술원 포럼 참석차 춘천에 다녀왔다. 70여권의 책, 710여편의 컬럼에 여러권의 소설까지 내 놓은 이 시대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지식인인 송호근 원장이 학자로서의 반세기를 되돌아보면서 그 세대의 정신사적 궤적을 성찰하는 자리였다. 나는 논평자로 초청을 받아 참여했지만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친구이자 동료로서 축하와 공감의 마음으로 함께 했다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송교수는 자신을 베이비붐세대, 좀더 구체적으로는 70년대 경험에 그 정신적 뿌리를 내린 세대로 표현했다. 유신시대에 대학을 다니고 80년대의 격변과 환희를 맞보고 90년대의 고도성장과 민주화를 경험했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채 IMF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새로운 변화를 일구어낸 역동적 시대를 살아온 세대이다. 실제로 그가 쓴 많은 책과 컬럼은 이 시대가 보여준 다양한 애환과 갈등의 면면들을 다루고 있다.

당연 나도 같은 세대에 속한다. 이 세대는 문학으로부터 세상과 인간, 역사를 보는 눈을 키웠다는 송원장의 발표에 공감했다. 나 역시 사회학을 전공하면서도 소설과 시, 종교 서적에 더 끌렸던 기억이 있다. 80년대 후반 ‘사회과학의 시대’가 도래했고 한편 그 변화를 환영했지만 이청준, 최인훈, 황석영, 신경림의 정서가 마르크스와 사회구성체 논리, 민중해방과 계급의식을 강조하던 사회변혁적 사유와 같을 수는 없었다. 그 거리감은 인간적인 것의 기반이지만 이념적으로 철저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송원장은 사회과학의 시대도 저물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영향력은 동반하락 중이다. 테크놀로지와 포스트 휴머니즘의 정신이 그 뒤를 이을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우리는 지배적 정신이 부재한 상태, 지적 아노미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미래에의 꿈이 사라지고 돈으로 환산되는 즉각적 효용만능의 세태가 확대일로다.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해줄 여유를 갖기 전에 스스로 의 혼란과 어지러움을 곧추세우기도 힘겨운 시대를 맞고 있다.

문학적 상상, 사회과학적 분석, 현실문제에의 개입은 한 사람의 정신 속에 공존하기가 쉽지 않다. 작가의 세계, 사회학자의 몫이 언론인의 역할과 같지 않은 이유다. 송원장은 이 세 영역을 평생 움켜쥐고 살았다. 현실적인 쟁점들을 다루는 컬럼니스트의 역할을 중시하면서 작가적 상상력과 사회학적 분석력을 꼭같이 견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당한 정신 긴장을 견디고 사유의 경계를 예리하게 관리하는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원한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능력이자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발제의 처음과 끝에서 김소월의 산유화를 인용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사여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지천에 꽃이 피는 4월의 자연을 노래한 듯 하지만 학자로서의 삶을 비유하는 시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피는 꽃, 제가 좋아 산에 사는 꽃의 모습이 꼿꼿하게 자기 정신세계를 지켜온 지식인의 모습과 닮았다. 그 꽃이 얼마나 향기로울지 어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지는 본질이 아니다. 꽃은 그 자체로 꽃인 것이다.

‘내 인생은 복되었다’는 말을 발제의 앞뒤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다. 말 그대로 그의 인생은 남부러워 할 정도로 복되다. 내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배가 아프다’고 표현했지만 정말 배아플 정도로 그의 학문적 성취와 사회적 존재감은 동년배의 누구보다도 대단하다. 이제는 하산하는 시대를 살아야 하는 만큼 ‘글없는 송호근’과 대면할 준비를 하라 조언했다. 하지만 사실 그 주문은 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에게 꼭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한림대 도헌학술원 이 내실있는 지적 플랫폼으로 자리잡아 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4년전 송원장 부탁으로 쓴 ‘도헌학술원’ 현판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학내외 일로 분주할 이사장과 총장이 포럼에 함께 자리하여 격의없는 토론을 주고 받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학내의 교수들과 지역의 유지들이 함께 문화와 역사, 인생을 논하는 장이 한림대 바깥으로도 확대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한림대 도헌학술원이 새로운 대학의 한 모델로 자리잡고 지속적으로 발전해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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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통평원 20주년

그제 4월 16일 저녁,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창립 20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설립을 주도한 정운찬 전 총장을 비롯하여 오랜만에 뵙는 학교 안팎의 여러분들을 반갑게 만났다. 2006년 4월 초대 소장으로 임명된 후 다섯번의 임기를 연임하면서 내 50대의 전부를 쏟아부은 곳이기에 그 20년의 족적을 되돌아보는 자리에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남북관계는 모순적이다. 가까우면서 멀고 신뢰를 원하면서 불신한다. 정파와 이념, 이해관계에 따른 남남갈등도 심하다. 균형잡힌 시야와 종합적 판단이 절실한 분야인데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열린 토론과 객관적 분석이 쉽지 않고 신뢰가능한 데이터도 부족하다. 나는 서울대학교가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미력이나마 그 사명을 감당하고자 안깐 힘을 썼다.

2007년부터 시작된 통일의식조사, 2008년부터 발표된 남북통합지수, 2009년부터 추진한 평화인문학, 2012년부터 조사한 북한 사회변동 등은 그런 노력의 사례들이다. 그 분석자료와 문제의식이 지금도 중요하게 언급되고 공유되고 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 한동안 낯설어하던 ‘통일평화’란 말이 익숙해진 것도 통일과 평화가 병행연계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확산에 기여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10년의 기간, 힘들었지만 보람된 시절이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꿈같은 일들을 추진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눈덮인 금강산에서 워크샵을 열기도 했고 평양의 병원과 영유아 시설, 학교도서관을 돕는 일로 여러 기관과 협력체계를 모색하기도 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서울대-김일성대-연변대의 공동학술회의가 성사되고 그 정례화를 상의할 때의 감격은 지금도 또렷이 남아있다.

안타깝게도 이 모두 과거사가 되었다. 오늘 남북관계는 냉전시대를 방불할 정도로 철저히 단절되었다.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은 민족관계나 통일목표 자체를 부정하기에 언제 새로운 기회가 열릴지도 막막하다. 전세계가 전쟁의 비극 앞에 첨단무기를 자랑하고 핵무력을 선망하는 상황에서 평화의 깃발도 외면당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연구원을 이끌어가는 김범수 원장을 비롯한 후배교수들에게 격려와 성원을 보낸다.

사방이 막혀 있을 때 하늘을 보라 했다. 나는 요즘 1930년대를 종종 떠올린다. 일본제국이 만주와 동남아를 아우르는 대동아공영권의 맹주로 승승장구할 때, 독립의 가능성이 희미해지던 그 때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선각자들이야말로 푸른 하늘을 쳐다본 자들이 아니었을까. 냉정한 분석, 치밀한 계산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희망하는 미래, 포기할 수 없는 꿈의 진정성을 재확인해야 할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