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의 대미담화를 발표했다. 전날 대남담화를 발표한 것에 연이은, 일종의 연속 담화다. 두 담화 모두 2025년 오늘의 세계를 바라보는 북한 나름의 시대인식을 잘 보여주지만 대남 메시지와 대미 메시지의 결은 확연히 다르다.
두 담화는 2018년 이후의 변화로 인해 Again 2018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원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미국에 대해서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되었던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의 프로세스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북한의 입장표명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해서 그 전날 표명했던 이유가 남북관계의 질적 전환에서 찾았던 것에 비해 미국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핵능력 강화와 지정학적 변화를 주요 이유로 들고 있음이 눈에 띤다.
“지난 몇년 간 ….《민주》를 표방하든,《보수》의 탈을 썼든 한국은 절대로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될수 없다는 대단히 중대한 력사적결론에 도달할수 있었으며 동족이라는 수사적표현에 구속되여 매우 피곤하고 불편했던 력사와 결별하고 현실모순적인 기성개념까지 말끔히 털어버릴수 있었다.”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은 지난 몇 년을 ‘동족이란 수사적 표현에 구속되어 매우 피곤하고 불편했던’ 때라고 했다. 피곤함과 불편함이란 단어 속에는 남북교류의 확대를 대놓고 반대할수 없으나 내심 원치 않았던 곤혹스러움이 담겨있다. 이제 그 현실모순적인 상황과 “결별”하고 “개념까지 말끔히 털어버렸다”는 말에 당위론의 부담을 벗어던진 후련함마저 읽혀진다.
대미 담화에서는 바이든 정부 시절의 격한 비방성 담화에 비해 향후 관계개선의 기대를 포함한 계산된 표현들이 담겨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개인적 관계가 좋다는 것, 새로운 접촉방안을 모색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숨기지 않는다. 다만 북한의 비핵화실현, 핵보유국지위 부정을 목표로 하는 그 어떤 시도도 철저히 배격될 것이라 단언한다. 싱가포르 합의와는 다르게 핵을 가진 국가대 국가로서의 대화를 압박하기 위해 2018년과의 차이를 극구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계엄과 탄핵의 대혼란을 격던 상반기에 잠잠하다가 이 시점에서 ‘공식립장’의 담화를 발표한 것은 새 정부 출범 이후의 전략적 기조가 정해졌음을 시사한다. 그 기조는 신형 통미봉남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취한 “성의있는 조치”들도 평가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일축하고 한국과의 대화나 교류에는 전혀 관심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대신 미국과는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하는 조건 하에서의 대화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2018년과는 달라야 한다는 같은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한국과 미국을 분리하고 서로 다른 방향의 전략을 구사하는 기본방향을 예상할 수 있다.
2025년의 시간은 확실히 이전과 다르다.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의 서방진영의 혼선과 갈등, 유엔중심 다자주의 규범의 약화로 흔히 규범기반 자유주의 국제질서라 불리던 세계질서가 근본적으로 동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과 전지구적 군비강화 추세, 북러의 정치군사적 밀착은 안보와 평화, 신뢰와 협력의 기본틀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 강화와 한미동맹의 동요가능성은 전례없는 충격파가 될 수 있다. 지정학적 환경변화와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이 맞물려 비핵화가 빠진 북미간 협상도 배제하기 어렵다. 21세기 한반도 현대사는 2025년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수도 있을 정도다.
우리는 오늘의 이 변화를 얼마나 진지하게 파악하고 있을까? 계엄과 탄핵이 몰고온 국내정치적 파장 탓에 시대적 흐름에 쏟아야 할 지적, 정치적 관심이 약화된 감이 없지 않다. 새로운 시대는 내부의 헌정수호나 ‘내란척결’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복합적 위기와 갈등에 대처할 혁신적인 역량구축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남북관계도 2018년과의 연속성에만 집착하거나 고정된 민족론, 주체론, 감정론에 경도되지 않은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유연하고도 열려있는 패러다임으로 과거회귀형 사고, 정파적 포퓰리즘, 무익한 이념논쟁을 극복해야 한다. 북한의 담화는 ‘지피지기’의 역량과 시대감각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7월 28일 북한 노동당 김여정 부부장이 “조한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주요한 정책의 하나로 내세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첫 공식반응인 셈이다. 거친 언사나 비방보다는 비교적 정제된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내용은 매우 단호하고 냉정하다. 진보정부 출현이 남북관계에 미칠 단기적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예감을 갖게 한다.
담화는 최근 한국에서 논의되는 여러 “성의있는 노력”을 평가할만한 일이 못된다고 일축했다. 마땅히 취해야 할 당연한 조치일 뿐 북한이 호응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한국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세우든 관심이 없고 대화할 필요도 없다고 단언했다. 김여정은 “《민주》를 표방하든《보수》의 탈을 썼든 한국은 절대로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될수 없다는 대단히 중대한 력사적결론”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2018년 평양회동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런 판단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담화는 제목에서부터 전과 달라진 입장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익숙하던 ‘북남관계’ 대신 조선-한국의 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더 이상 민족관계가 아닌 국가관계임을 강조하려는 시도다. “동족이라는 수사적표현에 구속되여 매우 피곤하고 불편했던 력사”를 겪었다는 표현 속에는 남북한이 같은 동족이고 한국가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가 북한 당국에게 준 딜렘마와 곤혹스러움을 반영한다. 실제로 이를 “현실모순적인 개념”이라고 지칭하고 민족이나 통일 같은 담론에 부수된 당위성을 걷어냄으로써 남북관계를 적대적 2국가로 규정한 자신들의 틀에 정당성을 보여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동족의 시간대’를 벗어났다는 표현에 담긴 북한 나름의 시대규정이 주목된다. 이 주장은 남북한이 공동의 목표를 갖고 통일을 지향해온 지난 역사를 ‘과거지사’로 돌리면서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미 2023년 말 북한은 남북관계를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한 바 있고 이것을 “강령적인 결론이자 중대한 정책적 결단이며 근본적인 방향전환”이라 했다. 이번 담화도 이 점을 재확인한 것인데 “동족이란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주장에 남북한이 합의하거나 논의한 바도 없으니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결국 북한 스스로의 전략적 ‘방향전환’인 셈이다.
동족이나 민족이란 범주가 영구불변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탈냉전 세계화의 시대 이후 ‘민족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주장이 그다지 새롭지도 않다. 남북한이 별개의 주권체로 80년을 지나오면서 공유하는 정체성의 강도나 내용에 큰 변화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21세기 오늘의 세계에서 다민족 국가는 꽤 많고 1민족 2국가 상태도 없는게 아니며 한국 내부에서도 그와 유사한 주장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한 관계에서 ‘동족의 시간’이 끝났다는 선언이나 주장은 어느 일방이 정치적으로 선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그것이 ‘적대성’을 다시 강화하는 방향으로 주장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현실적으로 동족관계의 부정은 남북관계를 규율했던 그동안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임을 시사한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규정했고 그 이후 남북교류의 기초가 된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는 더이상 통용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 함의 속에 담겼던 전쟁방지와 신뢰조성, 점진적 교류와 단계적 통일이란 원칙에 대한 전면 부정인 셈이다. “조선반도에 국가 대 국가간관계가 영구고착된 현실”과 “한국에 대한 우리 국가의 대적인식에서는 변화가 있을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지난 30여년 남북관계가 추구했던 교류협력과 신뢰조성에 대한 부인이고 더이상 민족이나 통일같은 명분의 부담을 지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탈냉전 이후 지속적으로 고난의 시기를 보내온 북한으로서는 지금 가장 좋은 지정학적 환경을 맞이했다. 러시아와 정치군사적 협력관계가 일층 강화되고 중국과의 경제적 단절도 개선되고 있다. 트럼프 미 정부의 일방적 미국우선주의가 한미동맹을 비롯한 기존의 안보지형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유엔 대북제재의 효력도 얼마나 강력하게 지속될지 불확실하다. 북한의 핵무력은 점점 기정사실화되고 북미간 핵담판의 가능성조차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조한관계”라는 새로운 용어로 남북관계를 대체한 것은 나름대로 21세기 포스트 탈냉전기의 시대성격을 반영한 것인데 ‘이미 완전히 되돌릴 수 없게’라는 표현 그대로 불가역의 역사진행이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로선 통일이 헌법적 가치이고 남북한이 동족이라는 사실도 변함없지만 남북한의 실질적 2주권 상태가 지속된지 수십년이 지났다. 교류협력의 시간도 지나왔지만 북한 핵위기와 상호 불신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한반도 외부의 지정학적 상황도 전례없이 달라지는 중이고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 천명 그 자체가 엄청난 변화다. 그동안 우리가 믿어온 여러 변수들, 민족적 감정이나 통일의 당위성, 남북교류의 아름다운 추억, 한미동맹의 견고함 등으로만 이 격랑을 해쳐가기는 어렵다. 우리로서 변함없이 견지해가야 할 기본원칙을 재확인하면서 새로운 미래전략을 재구축해야 한다. 달라지는 지정학적 환경에 어떻게 대응할지, 한반도의 평화와 신뢰를 어떻게 확보할지, 그 과정에서 끝내 견지해야 할 우리 나름의 전략적 가치의 우선순위는 무엇일지 혁신적 역량결집이 절실한 시점이다.
흑백의 향연 – 바둑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이야기다. ”새 나라 새 미술“이란 타이틀로 조선의 건국을 예술사적으로 조명하려는 대형전시인데 평소 접하기 어려운 조선 전기의 자기, 서화, 서적, 조상 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보 5점, 보물 12점을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니!!
조선은 새로이 성장한 신흥 사대부들이 기획한 국가다. 그 설계자라 할 정도전은 유학에 뿌리를 둔 문화국가를 지향했고 이를 위해 인문정신을 중시했다. ”일월성신은 天文이고 산천초목은 地文이며 시서예약은 人文“이라 말한데서 알 수 있듯 지식인의 고아한 품격에 어울리는 이상국가를 세우려 한 것이다. 하늘, 땅, 사람을 두루 아우르는 우주적 감각에 바탕을 두면서, 사람들이 만드는 흔적 (人之文)을 시, 서, 예, 악에서 찾는 발상은 독특하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다.
전시는 흰색에서 시작하여 세가지 색을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백白의 흰색인데 ”조선의 꿈을 빚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2부는 묵墨의 검은색으로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라는 부제를 붙였다. 3부는 금金의 색인데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백, 묵, 금의 세 빛깔이 조선초기의 모습임을 보여준다는 의미인데 특히 백자로 대표되는 흰색을 시대적 전환의 상징으로 부각시켰다. 그런데 고려에 더 어울리는 금색이 포함된 것이 다소 의아했다. 이전의 예술이 단절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졌음을 보여주는데는 효과적임이 분명한데 내게는 백과 묵의 검박함으로 금의 화려함을 멀리하려던 사대부 노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처럼 느껴졌다.
백자의 흰빛 — 가까이서 살펴보니 그 빛의 아름다움이 정말 놀랍다. 흰색이라는 표현만으로는 포용하기 어려운 미묘한 색감을 제각기 지니고 있다. 백자는 주자와 매병, 합, 사발을 막론하고 대칭형의 담백한 곡선미를 지닌다. 복잡한 장식이나 화려한 문양이 없기에 더욱 색과 형태에 시선이 집중된다. 길이 14m, 높이 3m의 거대한 벽면에 도자기의 색의 변화에 따라 300여 점을 배치했는데 가장 왼쪽에 분청사기로부터 오른쪽 끝의 순백자에 이르기까지의 긴 세월이 한 벽에 담겼다. 마치 흰색을 향한 순례자들의 여정을 보는 듯 했다.
백자의 공간을 지나면 먹의 공간이다. ’묵-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란 부제처럼 먹은 조선의 정신, 인문적 사유를 반영하는 또하나의 문화다. 수묵으로 표현된 작품들은 물론이고 시서화를 중요한 인격공부로 여긴 선비의 삶 전반에서 먹은 핵심적 역할을 했다. 먹과 붓, 종이와 벼루를 가까운 친구로 삼던 인문정신이 글씨나 그림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저런 담백함으로 화려함과 세속적 욕망을 불식시키려는 꿈을 꾸다니 대단한 인문주의가 아닐 수 없다.
채색이 없는 수묵산수화는 단순소박하다. 안견풍으로 불리는 이 시기 그림에는 인물도 잘 드러나지 않고 자연의 모습도 진경이 아니다. 고려불화의 화려함이나 현대미술의 자유로움에 비해보면 그 정형성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먹은 5색을 담고 있다고 할 정도로 그 빛이 다양하다. 먹의 재료, 물의 농담, 붓놀림의 속도, 선의 굵기와 여백에 따른 구성은 생각보다 섬세하다. 서두르지 않고 현실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으면서도 수신에는 누구보다 까다로운 선비다움이 저런 수묵의 정신과 상통한다는 생각을 했다.
도자기의 흰색과 시서화의 묵색은 제각기 어떤 정신을 지향한다. 간간히 이 두 색이 한데 모여있는 작품도 있다. 나는 힘찬 대나무가 그려진 백자 항아리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백과 묵의 놀라운 협연, 향연을 듣는 듯 했고 과거의 고결한 선비를 만난 듯 했다. 담백한 흰색, 단순한 곡선, 소탈한 표면, 날렵한 대나무 줄기와 잎 –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조선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편리함과 화려함을 좋아하는 현대인으로서 백, 묵의 인문정신은 멀리하고 싶을 수도 있으나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고 필요한 품격이 아닐까 싶다. 조선을 건국한 사람들은 문명사적으로 너무 앞서 나간 자들이었을지 모르겠다.
폭우로 인한 전국적 재난상황 속에서 77주년 제헌절을 보냈다. 국경일이 평범한 휴일로 변한지 오래인데 휴일도 아닌 제헌절을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듯 하다. 그련데 공휴일 지정이 그 날짜의 무게감과 비례하는 것이라면 제헌절이야말로 휴일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최근에도 계엄 선포와 탄핵공방, 선거와 새 정부 출범의 격랑을 거치면서 헌법이라는 공통의 기준, 합의된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감한 우리가 아닌가.
프랑스 혁명기 선포된 인간의 권리에 대한 선언은 모든 주권이 ’나시옹‘에 있다고 규정했다. 그것은 개인의 권리 선언임과 동시에 근대국가의 성격을 규정한 역사적 명제이기도 했다. ’나시옹‘이란 범주로 인해 인종, 신분, 종교를 뛰어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과 이민자 까지도 포괄하는 새로운 공동체가 상정될 수 있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가 곧 나시옹이다. 에르네스트 르낭은 ’나시옹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이를 매일 매일의 국민투표라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나시옹은 곧 헌법정신이다. 헌법이 담고 있는 정신을 공유하는 범주가 나시옹이고 이것이 근대국가의 주권담지자인 것이다. 헌법은 당대의 정치질서를 기초하고 권력투쟁의 규준을 제공하는 현실규범임과 동시에 고도의 공유가치를 내포하는 당위적 규범이기도 하다. 그 당위성은 개별 국가의 경계에 한정되지 않으며 전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닌다. 적어도 근대국가의 헌법은 그런 문명적 보편성을 기저에 깔고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헌법이 제정된 것은 이런 공동의 가치확인, 그 공유가치를 매개로 결속한 민족이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한국역사에서 근대민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여전한 과제인데, 혈통과 문화에 기초하는 에쓰니적 범주가 헌법과 정신의 공유집단으로서 변모한 전환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을 쓰면서 이런 정신을 구현하느라 애쓴 제헌의원 및 지식인과 정치인들에게 경의를 느끼게 된다.
소록도 답사기를 공유했더니 도진순, 한경구 두 분이 각각 한센병과 관련된 일본 영화를 소개했다. 도 교수가 추천한 ’앙, 단팥인생 이야기‘는 일본식 단팥빵인 ‘도라야키’를 만들어 파는 중년남자 센타로를 주인공으로 한 단정한 스토리다. 어느 날 기형 손가락을 가진 도쿠에 할머니가 나타나 자신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써달라고 말한다. 처음엔 거절했다가 마지못해 받아들였는데 할마니가 정성스레 씻고 달여서 만든 앙의 맛이 소문이 나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정작 단것을 싫어하던 센타로도 비로소 도라야키의 참맛을 알게 되고 일상이 상당한 활력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도쿠에 할머니가 한센병 환자임이 알려지면서 가게는 손님이 뚝 끊긴다. 그 사실은 안 도쿠에는 가게를 그만두고 격리시설로 돌아갔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대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벚꽃이 참 아름답지 않나”라는 말을 하며 주변 사람들이 한 번 더 하늘을 올려다보도록 만들고, “팥에는 진심을 담아야 해”라며 열성을 다해 팥을 젓는다. 벗을 삼으라고 가져다 준 새장의 새를 숲속으로 날려보냄으로써 자유에의 갈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영화의 시나리오와 연출은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맡았고 이 영화는 제68회 칸 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개막작이었다. 나가세 마사토시가 센타로를, 영화 <도쿄 타워> 등에 출연했던 배우 기키 기린이 도쿠에 역을 맡았다. 일본다운 잔잔한 영화로 한센병 환자의 차별과 격기에 대한 문제제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한경구 교수는 ‘모래그릇’이란 일본 영화를 강추했다. 일본의 유명한 추리작가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모태로 한 것인데 노무라 요시타로 감독이 1974년에 발표한 영화다. 이 ‘모래그릇’은 이 작품 외에도 2004년, 2011년 TV 드라마로 거듭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끈 작품이었다 한다.
도쿄 열차역에서 한 노인이 살해된 채로 발견되어 수사가 진행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신원조차 밝혀지지 않았던 그 희생자는 한 시골 마을에서 순경으로 재직하며 많은 덕망을 얻었던 선량하고 성실한 인물이었다. 아내와 사별하고 퇴직을 한 뒤 고향에 와서 잡화점을 운영하다가 어느 날 그렇게 시체로 발견된 것인데 대체 그는 누구고 왜 죽었으며 누가 살해한 것인가를 추적하는 형사의 집념을 그린 내용이다.
작은 단서를 바탕으로 수사를 집요하게 전개해가는 중견형사 이마니시(탄바 테츠로)와 젊은 형사 요시무라(모리타 켄사쿠)가 스토리를 구성하는 주역이다. 이 두 형사는 ‘카메다’ 라는 단어의 추적에서 시작하여 흥미로운 발상의 고리를 통해 좀더 분명한 단서를 찾게 된다. 마침내 정치계의 거물의 딸과 연애하는 젊고 유망한 음악가 와가 에이료(가토 고)라는 인물에 주목하게 된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고아라고 알려진 에이료는 스스로 자수성가한 음악가로 큰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고, 전직 장관의 딸 사치코 라는 아름다운 연인과 연인 관계이지만 뭔가 외골수적 모습으로 음악에 몰두하는 인간이다.
많은 대사와 복잡한 수사극으로 전개되던 작품이 어느 순간 대사도 거의 없이 거지처럼 유랑하는 소년과 병든 아버지의 가슴 아픈 여정으로 돌변함으로써 영화는 전혀다른 결말로 이어진다. 나병에 걸려서 정처없는 떠도는 아버지와 함께 거지 부자 생활을 하던 어린 소년, 이 소년을 양자로 받은 이가 곧 죽은 형사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자신을 철저히 숨겨서 비로소 사회적으로 성공 직전에 다달은 에이료가 자신의 신원을 눈치 챈 은인을 죽이게 될 정도로 한센병에 대한 극도의 혐오와 배제가 심했던 사회의 비극적인 결말이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수사 드마라 장르지만 잔혹하고 비정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가슴 아픈 인간적 내용을 담은 전개. 사건의 진실을 발표하는 이마니시 형사가 감정에 북받쳐하는 장면도 인상적이고, 한센병 이라고 불리우는 나병환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지적하는 엔딩 부분도 인상적이다. 현재 이 한센병은 적절한 치료가 되면 전염되지 않고 치료와 완치가 가능한 병으로 분류되지만 예전에는 문둥이라고 불치병처럼 인식되었다. ‘벤허’ ‘빠삐용’처럼 이 영화도 모든 비극의 시작이 나병이 원인이 된 것이고 복잡한 인간사, 가족사를 거치면서 30여년전의 비극이 결국 예기치 못한 살인사건으로 옮겨간 종말이었다.
두 작품 모두 한센인과 한센병을 직접 조명하거나 거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이것을 매개로 작동하는 일본 사회내의 강한 편견, 거부감, 그로 인한 아픔과 비극을 그리고 있다. 아름다운 인간애, 한센인도 꼭같은 인간이라는 자각, 잘못된 사회적 관습과 규범에 대한 비판이 잔잔하게 깔려져 있는 수작들이다. 소리높여 외치는 개혁이나 정의의 주장이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서 확인하는 고귀함과 어리석음이 새삼스럽다. 일본에 비해 우리는 너무 요란한 구호들이 난무하면서 저런 조용한 내면적 성찰은 오히려 부족한 면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1박 2일간 소록도 박물관 측의 안내로 평소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섬 이곳 저곳을 두루 둘러보고 설명을 들었다. 김재형 교수가 이곳을 연구하며 쌓은 깊은 신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록도 한센병 박물관에서 시작하여 자혜의원, 하나미 원장 창덕비, 만령당, 검시실, 감금실, 중앙공원, 구라탑, 애한의 추모비, 이춘상 의거비 등을 보았고 동생리, 남생리, 녹생리, 신생리 등 여러 마을로 이어지는 섬주변 도로를 일주했다. 각 마을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세워져있는 교회당 건물,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바다, 푸른 하늘이 유난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탁트인 전망과 발밑의 해수욕장을 독점한, 최고의 휴앙지라 해도 좋을 원장공관도 보았다. 원성이 컸던 오마도 간척사업의 현장에 세워져 있는 추모공원도 들렀다.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담긴 격리공간이라는 사실과 너무나 아름다운 다도해 섬의 풍광 사이의 불일치가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각종 건물과 기념비에는 많은 애환과 긴장들이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 내용과 내 소회를 제대로 담으려면 논문이나 책 분량이 될 수 있을 테지만 그 작업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답사 도중 계속 떠올린 생각의 일단은 기록해 두려 한다. 구체적이지 못하지만 세 가지 소회를 정리해 본다.
(1) 누구의 시선으로 어떻게 개입하는가 – 한센인에게 관심을 갖고 개입한 주체는 크게 국가권력, 기독교, 의료집단의 세 부류다. 소록도의 행정동, 교회당, 병원은 각각 이 세 주체들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상징공간이다. 대한제국, 조선총독부, 대한민국 을 막론하고 국가권력은 법과 정책, 경찰력을 동원하여 강력하게 개입한 주역이었다. 소록도 앞에 붙은 ’국립‘이란 표현이나 이 섬이 보건복지부 소유라는 점은 이를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그런가하면 초기 선교사의 역할이나 교회당 건물에서 확인하듯 기독교의 개입과 실천이 매우 두드러진다. 여수의 애양원 등 한센인과 관련한 다른 시설에서도 기독교 선교사 및 종교인의 영향력이 독보적이다. 한센인 치료에 헌신한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들의 역할도 매우 큰데 이들은 대체로 국가나 종교와 연합하여 활동했다.
국가의 개입은 국민보호 또는 사회보장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기독교는 약자에 대한 사랑, 헌신적 휴머니즘, 인간애의 실현을 강조한다. 의료인은 의술을 통한 환자의 회복, 몸의 치유에 주목할 것이다. 소록도는 이 세 주체의 협력으로 관리되어온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소록도는 국가개입의 성격이 강했다. 총독부 이래로 국가의 행정력은 막강했고 교회의 영향력이나 의료인의 활동은 대체로 종속적이었다. 지금도 그 경향은 여전해서 정부의 입김, 정책과 국가예산의 힘이 가장 강하다. 역대 대통령 영부인들이 관심을 보인 곳이고 최근 갓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이 소록도를 방문했다는 것이 보여주는 함의도 같은 맥락이하 하겠다.
거주하는 한센인은 숫자도 크게 줄었고 고령화하는데다 새로운 환자 발생도 극히 적다. 최근 외국인의 발병사례가 늘어나고 있다지만 그 비중은 작아서 사회적 관심은 지속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당연히 소록도의 미래에 대한 여러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이 공간을 관광자원, 지역브랜드화 하려는 움직임이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하겠는데 지방정치와 투어리즘의 연결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소록도의 박물관과 여러 시설이 견학과 답사의 장소, 다크 투어리즘의 공간으로 변모할 가능성은 크다. 오마도 간척에 담긴 한센인의 아픔을 위무한다는 추모공원의 조각상은 그런 이중성을 잘 담고 있는 듯 했다. 이곳과 대만 및 일본의 관련 시설들을 연계하여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노력도 추진 중이다.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 공통의 ‘유산’으로 재조명하는 것은 의의가 있는데 유난히 강한 민족주의, 국가주의 담론을 어떻게 넘어설지 두고 볼 일이다.
(2) 어떤 공동체를 향한 어떤 거버넌스? – 답사를 하는 내내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16세기 유럽 지성인들이 쓴 [유토피아] 소설들을 생각했다. 토마스 모어, 캄파넬라, 베이컨 등 지상낙원을 꿈꾸던 지식인들이 한결같이 유토피아의 공간으로 ’섬‘을 상정했던 사실이 소록도라는 섬과 묘하게 오버랩되었다. 왜 그들은 외부와 격리된 섬을 유토피아의 전제처럼 간주했을까? 사유재산이 없고 모두가 평등하게 노동하고 생활하며 같은 규범과 도덕으로 통합되는 공동체가 가능하려면 외부와의 단절이 필수적이라 생각했던 때문일텐데, 그렇다면 애초 보편적 유토피아는 불가능한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이청준은 왜 소록도 한센인들의 삶을 그린 소설에서 ’당신들의 천국‘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단순하게 이해하면 일제 강점기 소록도 원장으로 대표되는 관리인들의 허구적 명분이나 위선적 시혜를 시니컬하게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입시 논술문제의 모범답안도 아마 이런 유형일 것이다. 실제로 소록도의 옛 원장관사를 들렀을 때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발밑의 모래사장을 독점한 그 천혜의 위치에 탄성이 절로 났다. 이 고립되고 격리된 공간에서 가히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을 원장에게 이곳은 실제로 천국일수도 있었겠구나 생각했다. 감시와 격리의 아픔을 겪고 있던 한센인들과 너무도 대립적인 이미지로서의 천국이란 단어는 그런 점에서 ‘당신들’이란 말 속에 담긴 적개심과 자연스레 결합된다.
하지만 소록도 내부에서, 한센인 스스로 상상하던 천국, 유토피아는 없었을까? 이곳은 개별 경제활동이 없고 모든 것이 국가로부터 지급되고 보호된다. 적어도 내부에선 교육이나 위세의 차별이 없고 환자공동체로서의 결속력도 강하다. 질병이라는 문제, 가족들과 떠나 있어야 하는 안타까움을 제쳐두면 이곳은 중세의 수도원과도 유사하고 김용기 장로가 세웠던 가나안 농군학교의 모습과도 겹친다. 병원과 의료시설은 베이컨이 말한 과학적 관리를 담당한다. 비록 그 수준은 높지 않았으나 초중등 교육기관도 있다. 신체의 결함을 지닌 이들에게 육체 너머의 천국을 상상하게 하는 종교적 공간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실제 한센인 들 가운데는 이곳에 들어오기를 희망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한다. 사진 속에는 환하게 웃는 한센인들의 모습이 적지 않은데 ‘격리’와 ‘차별’의 맥락을 넘어서는 또 다른 차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록도 입구에 ‘애한의 추모비’라는 큰 비석이 서있다. 해방 직후 소록도 자치를 요구하던 주민 84인이 내부 갈등으로 희생된 사건을 기린 것이다. 내부의 똑똑하고 생각이 깊은 인물들이 희생되었다는 설명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애한(哀恨)이란 표현 속에는 드러내기 어려운 내부의 긴장과 대립이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해방 공간에서 이 섬을 어떤 공동체로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이 소록도 내부의 비극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외부의 힘을 빈 효율과 관리를 중시할 것인가 내부의 자치와 자율을 중시할 것인가 상이한 지향이 부닺쳤을 수도 있다. 권위적이었던 일본인 원장을 살해한 이춘상 사건을 이해하면서도 이를 ‘의거’로 추앙하려는 움직임이 주민 모두의 마음을 쉬 얻지 못했다는 설명도 내부의 복잡한 정서를 반영한다. 지배와 저항, 통제와 인권의 단순대립을 넘어, 이들이 추구하던 공동체, 바라던 가치의 맥락에서 표현되지 못한 목소리들에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3) 희망의 자리는 어디에? – 소록도는 외부와 격리된 곳이지만 전혀 이질적인 공간은 아니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고 사람의 문제가 가득한 작은 사회공동체였다. 제각기 자신만의 행복과 희망을 붙잡고 견뎌낸 삶이 곳곳에 서려있는 공간이다. 한센병은 손과 발, 얼굴 등 몸의 훼손이 심한 질병이다. 신체적으로 타인과 구별되고 그로 인해 일찍부터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성경에서도 나병환자는 ’몸‘이 나음을 얻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늘날 의학과 의료인이 이들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이유도 신체의 치유라는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 한센병이 치유가능하다는 의학적 근거가 확립되면서 더더욱 몸의 회복을 희망과 행복의 핵심으로 간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중앙공원에 세워진 ‘구라탑’의 하단에 새겨진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구호는 이들의 ‘희망’이 무엇이었는지를 또렷히 보여준다.
그런데 몸 중심의 사고, 치유 중심의 희망서사는 어떤 역설, 아이러니를 동반한다. 분명 몸의 치유는 가장 근원적인 바램이었을테지만, 모든 사람이 완전 치유의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짓무른 손발을 안고 살아야 하는 한센인들이 있고 그들에게 몸 중심의 세계관은 더 큰 좌절로 이어진다. 이들에게는 ‘구라'(求癩)를 넘는 꿈, 다시 말해 몸의 치유를 넘어서는 희망, 육체 이후의 미래에 대한 꿈이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다. 소록도 마을마다 건립되어 있는 예배당이 그런 마음을 보듬는 공간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내세의 구원이란 희망을 제공해온 종교의 기능은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의학과 의료가 발전하면서 몸의 치료가 우선시되고 병원과 행정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20세기 시대정신과도 연동된 이 합리화의 과정은 앞으로도 강화될 것이 분명한데 과연 의학적 치료나 관리지원이 이들에게 충분한 희망과 내일을 약속해 줄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1박을 한 숙소는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에서 설립한 나눔연수원이었다. 이곳은 소록도 환자들과 일생을 함께 한 두 수녀의 헌신을 기려 설립된 곳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두 간호사는 20대인 1960년대부터 40여년간 한센환자들을 돌보며 짓물린 환자들의 손과 몸 구석구석을 직접 소독하고 치료하는 일에 전념했다. 유럽의 카톨릭 재단들의 도움을 받아 더 높은 의료혜택을 받게 하면서도 두 사람은 일생 3평 남짓한 방에서 성자처럼 살았다 한다. 한 분은 돌아가셨는데 이들을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추천하는 범국민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아침 일찍 기념관 내부를 걸으며 오래전 손양원 목사의 자서전을 접했던 기억, 애양원과 순교자 묘역 등에서 받았던 그 고결한 감동을 회상했다. 학자나 지식인이 되는 것,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르면서도 고결한 삶을 가능케 하는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한데 저 동력은 무엇이며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할지 자문해 본다.
소록도를 답사하면서 막스 베버를 떠올렸다. 그는 탈주술화를 환영하면서도 가치와 의미의 약화가 초래할 인간소외를 우려했다. 베버가 오늘 이곳을 답사한다면 관리와 치료 중심의 이 시대변화를 ’탈주술화‘로 환영했을까 아니면 ’가치의 소멸‘로 우려했을까? 앞으로도 국가의 관심 하에 병원과 행정동은 여전히 튼튼할 것이다. 다크 투어리즘의 확대와 함께 박물관을 비롯하여 소록도 곳곳이 문화상징공간으로 변모할 가능성도 있다. 연구자들과 학자들이 이곳을 대상으로 뛰어난 논문과 저서를 쓰고 예술가가 그림과 시로 형상화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이다. 소록도에 대한 외부의 새로운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 한센인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며 그들이 꿈꾸는 희망서사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궁금하다. 합리화되고 과학화하며 세속화하는 이 시대에 희망의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소록도는 그 물음에 대해서도 진지한 성찰과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사회사학회 하계답사로 7월 1일부터 1박 2일간 전남 고흥의 소록도를 다녀왔다. 한센병 환자의 집단수용시설과 국립소록도병원이 위치해 있고 외지인의 접근이 자유롭지 않은 곳이다. 근대의학이 발전한 20세기 초까지만해도 “한센병은 격리 외에는 근절책이 없는 전염병‘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치료제가 개발되어 완치 가능한 병으로 인정되었음에도 집단적인 편견이 뿌리깊게 남아 사회적 차별의 대명사처럼 된 대상이기도 하다.
한센병과 한센인들에 대한 내 경험은 어린 시절 ’문촌‘과 그 마을 출신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시작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닌 서부 경남에는 60년대 초반 음성나환자들이 거주하던 마을이 더러 있었고 그곳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속해 있었다. 아이들끼리는 격의없이 잘 놀았던 것 같지만 ’문둥병‘과 관련된 무서운 속설이 내겐 늘 두려움을 불러왔고 문촌을 거쳐야 할때는 반드시 먼 곳으로 돌아갔다. 거부감이 수반된 감정의 시작이었다.
중학교 시절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을 읽었다. 나환자를 가족처럼 사랑해서 일생을 그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순교한 손양원 목사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후 그의 삶이 서린 여수 애양원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한센인을 도운 여러 선교사와 기관들도 알게 되었다. 한센병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도 차별과 기피의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은 분명해졌다.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 포용과 긍휼의 이웃으로 변했다.
80년대 초 문학작품들이 한센인을 또 한번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무진기행의 김승옥, 삼포가는 길의 황석영, 황토의 김지하, 농무의 신경림 등 당시 내가 접한 작품들은 대체로 남도 지방 서민들의 애환을 깊이 다루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도 그런 하나였는데 특히 한센인을 수용한 소록도 내부에서 일어나는 지배와 저항의 동학에 눈을 뜨게 했다.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당위적 명제에 공감하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한센인의 저항과 분노를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자립적이고 근면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소설 속 조원장의 생각에 공감하면서도 이 배후에 작용하는 시혜적, 일방적 개발독재의 논리에 비판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사회학자로서 내 연구의 시야가 넓혀지면서 푸코의 독특한 근대성 비판을 접했다. 병원, 수용소, 학교, 감옥 등 근대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지식권력, 통치 메카니즘과 함께 몸과 신체, 의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흥미로왔다. 한센인을 통해 근대의 규율권력과 인권의제를 깊이 탐구하려는 정근식, 주윤정, 김재형 등의 연구를 간접적으로나마 지켜보는 것도 큰 공부였다. 거버넌스, 헤게모니 같은 새로운 개념의 도움을 받아 일제의 식민권력과 기독교의 선교정책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한센인 관리방식을 통해 비교연구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해보기도 했다.
돌아보면 지난 50여년간 한센인에 대한 내 인식과 정서는 많이 변했다. 어릴적의 막연한 두려움은 중고등학교 시절 기독교적 동정과 포용의 대상으로 변했고 대학시절엔 권위적 개발독재 비판의 소재가 되었다. 이후 소수자 인권과 몸의 사회학에까지 관심이 확장되었는데 한국사회 전반의 지적 문화적 변화와 깊이 연동된 결과다. 나는 이런 변화를 오랫동안 내 의식의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이론적 시야가 넓어지고 비판적 관점도 강화되었으며 아는 것이 많아진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도 점점 또렷해진다. 이 반세기 동안 내가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사회과학자가 되기위해 치룬 지적 기회비용이 무엇인지 되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소록도 곳곳을 다니며 한센인보다도 오히려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니 답사는 성찰의 여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