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결국은 기본

2024년 서울대 화묵회 전시를 위해 작품을 준비했다. 여름의 시상을 표현하는 것이 주제여서 두보의 한시 한편과 안도현의 시 한편을 각기 반절 크기의 한자와 한글로 썼다. 두보의 ‘夏夜歎’은 더운 여름날의 무더위와 씨름하면서 시인의 생각을 피력한 시인데 전반은 자연 속에서의 감흥을 후반은 변방의 병졸들을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안도현의 시는 봄에서 여름을 지나면서 온 세상 만물의 움직임 속에 담긴 생명의 연동과 역동을 ‘공양’으로 포착한 아름다운 안목이 와 닿는 작품이다.

두보의 한시는 행초서로 써보고 싶었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괴로운데, 어디서 만리의 바람을 얻어 내 옷을 흔들게 할까’ – 내용도 그렇거니와 자유로운 감성을 표현하기엔 운필이 자유로운 행초서가 나을 것은 분명했다. 마침 얼마전부터 왕희지의 ‘초결가’를 임서하면서 초서필법을 익혀보던 중이어서 도전하는 마음도 얼마간 있었다. 과연 자유로이 획을 이어가니 필의도 살아나고 글씨 쓰는 재미도 더하는 듯 했다. 여러 장을 써 보면서 점점 대담해지기도 하고 멋을 부려보기도 했다.

문제는 쓸 때의 호기에 비해 쓰여진 작품은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파지가 늘어나는만큼 글씨는 더욱 흐트러지고 잘못된 붓놀림은 더 늘어났다. 결구가 괜찮으면 장법이 마음에 들지 않고 구도가 괜찮다 싶으면 낙관 글씨가 분위기를 망쳤다. 어떤 부분을 바꾸면 좋겠다 마음을 먹고 새로운 화선지를 펴보지만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전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글씨가 되곤 하는 반복을 계속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푸념을 늘어놓다가 급기야 종이 탓을 하기까지 했다.

자고 일어나 이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보면 이전 것이 더 나은 듯 싶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멋을 부린 글씨는 운필이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고 꼼꼼하게 쓴 글씨는 어딘지 부자유스럽고 초보자 냄새가 난다.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데 왕희지 작품을 꿈꾸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구나 싶은데 즐겁게 글씨를 쓰는 아마추어의 그런 마음을 탓하기는 어렵다. 내 눈이 높아지는 것만으로도 성장이려니 생각하기도 한다.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왕희지의 ‘초결가’를 다시 임서해 본다. 그 자획을 통해 운필의 강약과 꺾임을 확인할수록 내가 쓴 글에서 ‘속기’라 불리는 잘못된 붓놀림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결국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핵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법이 몸에 밸 때 비로소 운필도 자유로와지는 법일 터… 욕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평범하고도 당연한 원리를 깨닫게 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교훈이라 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