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교권

갓 부임한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것도 학교 교실에서… 이 충격적인 뉴스 앞에 온 국민이 놀라고 당혹해 하고 있다. 아직 그 정확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회적 관심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죽은 교사에 대한 애도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교사들의 공감과 분노가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교사를 좌절하게 만드는 학교 현장의 문제가 새삼 주목되고 그 해결책과 예방책이 봇물을 이룬다. 교육문제는 늘 휘발성이 강한 사안인데다 그동안 주목받지 않던 교사의 애환이 터져나온 것이라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같다.

교육자치단체장과 교원노조, 교사단체 들은 물론이고 정치권과 언론계도 제각각의 대책들을 쏟아낸다. 현재 학교에서 교사가 경험하는 좌절감이 매우 크다는 것, 그것을 예방하여 교사의 자부심과 교권을 회복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는 것에는 대체적으로 공감대가 이루어지는 듯 하다. 그동안 학생의 권리와 자율성이 강화되면서 책임과 의무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졌고 교사의 적극적 지도 역할 역시 축소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극성스런 학부모의 반복된 간섭과 좀처럼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아들의 부정적 영향도 우려할 수준이라 한다. 공교육을 우습게 여길 정도의 사교육 발달,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학생 행태의 변화도 어려움을 더해 교사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조사결과도 접한다.

교권추락을 가속화시킨 요인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지적되고 있다. 교육부 장관이 그런 시각을 표명했고 대통령까지 힘을 실었다. 학생이 원하지 않으면 어떤 조치도 자칫 ‘아동학대’나 ‘학생인권침해’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교육적 행위는 별로 없으면서도 온갖 부담과 요구는 떠안아야 한다는 평교사의 인터뷰가 가슴을 무겁게 한다. 한 초임 교사의 비극에 그토록 많은 교사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이런 좌절감과 무력감을 너나없이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명감이 강한 교사일수록, 무언가를 가르치고 변화시키려는 열정이 있는 교사일수록 교실현장에서 더 깊은 딜렘마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에서 지나친 편향이 있었고 그 시행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니 당연히 이런 부분은 개선되고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해결의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인권조례를 폐지해도 적지 않은 문제는 남고 어떤 부분은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 학교체벌을 강화하는 것이 정당한 교육효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불확실하다. 부모의 권위, 상사의 권위, 노인의 권위도 교사의 권위못지 않게 약화되었다. 같은 아파트에서도 남의 자녀에게 조언이나 훈계를 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도 이전 같은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조언을 간섭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세대간 감각이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과거의 권위주의적 방식이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두세살 부터 인터넷을 접하고 온갖 정보가 범람하는 초연결의 시대, 세대, 젠더, 국적, 종교 그 어떤 속성으로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헌법적 권리의식이 자리잡은 시대에 정당한 권위를 확립하는 일은 모두가 힘을 합쳐 추구할 새로운 미래 기획이 되어야 한다.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주장은 경계할 일이다. 그런 대응은 불가피하게 교육문제를 정치문제나 감정문제로 변질시킬 우려가 크다. 우리 공교육 문제는 어느 누구도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집단적이고 장기적으로 누적되어온 것임을 자인해야 한다. 인성교육이 사라진 입시교육, 공교육을 헛돌게 만드는 사교육, 교육현장의 관료주의, 통제가 어려운 문제학생 등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지능계발을 위한 수월성 교육과 인간성 함양의 인성교육이 아노미적으로 괴리되어 있는 상황에서 교사와 학교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학교는 칼로 물베듯 나누어 지는 것이 아니다. 교사와 학부모, 학교와 가정이 상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학부모의 관심이 이기적인 욕망이 아닌, 공공의 신뢰 자산이 될 수 있도록 할 혁신방안이 절실하다.

안타까운 젊은 교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사회적 논란이, 진정으로 정당한 권위를 수립하는 뜻깊은 변화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필요한 조치는 과감하게 추진하고 잘못된 관행은 빨리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감정적 해소나 정치적 효과를 노린 대증조치로 흐르지 않도록 높은 전문성과 균형감을 견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 교육을 이 상태로 만든 것은 성공과 출세, 돈과 지위를 위해 올인해온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의 공동책임이라는 자성과 성찰이 그 바탕에 자리잡아야 한다. 학생인권을 존중하고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려한 그간의 성과도 인정하면서, 교사의 정당한 꾸중과 훈육이 불가능해진 부작용을 막는 조처가 지혜롭게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진지하면서도 지속적인 대응, 격의없는 소통과 상호이해가 긴요할 터인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기대해 보지만 그만큼이나 우려도 커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