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갓생, 소확행, N포

학생들 리포트를 읽다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는 어휘가 달라지고 있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몇 년 전 N포세대라는 말이 많이 쓰였는데 언젠가부터 소확행이나 욜로라는 말이 강조되었고 올해엔 유난히 갓생이란 말이 곳곳에 등장한다. 취업, 연애, 결혼, 주택 등을 포기해야 한다는 N포론은 미래에의 희망이 사라진 세대의 좌절감을 표상한다. 소확행이란 말은 대단한 목표의 추구 대신 소소한 즐거움, 일상의 작은 만족을 추구하려는 지향을 가리킨다. N포에서 소확행으로의 변화가 유의미한 새로운 움직임인지 아니면 현실도피적 자기위안에 그치는 것일지 불분명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23년에 처음 접한 갓생이란 말은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지닌다. 신이라는 뜻의 ‘갓(God)’과 인생의 ‘생(生)’을 합친 갓생은 신과 같은 삶, 모범이 되는 부지런한 생활을 뜻하는 말이라 한다. ‘갓생 살기’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매일 30분씩 걷기, 하루에 영어 단어 10개 외우기 등과 같은 소소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열심히 이루어 가는 삶을 가리킨다. 거창한 목표를 향한 경쟁은 아니지만 자기성장과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적극적 계획, 예컨대 다이어트, 영어회화, 음악활동, 춤배우기 같은 것이 갓생의 내용을 채운다. “갓생 가자!”, “겨울방학 때 정말 갓생 살 거예요.” 같은 표현에서 이런 경쾌한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다. 양극화 현상에 분노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힘들어하던 이전의 N포론이나 현실도피적 소확행론에 비해 건강한 적극성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갓생이 젊은 세대의 정서가 새로운 형태로 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일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갓생이란 말을 쓰고 ‘갓생 가자’고 외치는 그 태도 속에 이전의 모습, 익숙한 태도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대론에 더이상 갇히고 싶지 않은 건강한 자신감이 갓생이란 말 속에 담겨있지만, N포세대의 불안과 좌절을 어쩔 수 없는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체념의 그림자도 없지 않다. 비트코인 광풍처럼 일확천금을 노리는 로또 심리가 스며있다는 평가도 있다. 한마디로 갓생은 적극적인 주체성을 반영하는 말이면서도 체념적 현실수용의 또다른 표현일 수 있다.

어쨋든 N포와 소확행과 다른 새로운 말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N포라는 말에 부수되는 세대적 우울감을 부정하고, 소확행이라는 수입어에 담긴 수동적 자기위안도 벗어나 개성적인 주체성과 적극적 생활태도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부분적이나마 확인되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 교수가 소확행 대신 대불행 (크고 불확실한 행복)을 추구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지만 젊은층에게 불확실함을 직면하라는 권유가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개인별로 적절한 새 화두를 찾아가는 저 흐름 속에 담겨있는 절박함, 상상력, 수용과 혁신의 발상을 포괄적으로 파악하고 격려하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갓생이 2024년에는 어떤 의미를 지니며 젊은세대의 공감을 불러올지 지켜볼 일이다.

activities · life · 오늘의 화두

옌칭과 탕탕평평

하바드 옌칭 한국학회 모임이 12월 13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있었다. 내가 회장을 끝낸 후인데다 정근식 회장과 한승미 교수가 열심히 준비해 주어서 편한 마음으로 참석했다. 이번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되는 영정조대의 시문과 회화전인 ‘탕탕평평’을 관람하고 ‘정조와 궁중회화’에 대한 강연을 듣기로 되어 있었다. 참석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최종고, 임지현, 김준환 교수 등 오랫만에 뵙는 분들이 여럿 계셔서 반가왔다.

발제자인 유재빈 교수는 영정조대 궁중화원제도의 변화 배후엔 시화를 통해 정치변화를 꾀하려 한 국왕의 의지가 있었다고 보았다. 도화서의 개혁, 특히 차비대령화원의 설치가 그런 의도의 산물인데 사적도, 궁중 계병, 화성원행도병 등의 제작과 유포를 통해 왕조 권력을 강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시문과 회화를 통해 국정운영의 변화를 꾀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는 설명이 흥미로왔다. 유교수로부터 저서인 [정조와 궁중회화]를 받았는데 부제로 달린 ‘문예군주 정조, 그림으로 나라를 다스리다’라는 말이 그런 시각을 잘 요약해주는 듯 했다. 문예군주라는 말, 그림으로 다스린다는 말에서 신선하면서도 과연?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느낌도 든다.

‘탕탕평평전’은 그런 시각을 반영한 기획인 듯 했다. 2024년이 영조 즉위 300년이 되는 해여서 영조와 정조가 글과 그림을 어떻게 국정운영에 활용하려 했는지를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붕당정치의 폐해가 심했던 이 때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은 인재를 고루 기용한다는 기조로 이해되어왔다. 그런데 탕탕평평이란 말은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이라는 [상서]의 황극조에서 나온 표현으로, 국왕의 위상을 북극성에 비유하여 임금의 중심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탕평이란 말은 인재를 고루 등용하거나 정파를 두루 포용한다는 뜻을 직접 담거나 신료들의 역할을 중시하는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임금의 역할, 국왕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전시실 입구에서 영조가 쓴 글씨를 만났다. “周而不比 乃君子之公心 比而不周是小人之私意” 라는 글인데 1742년 사도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할 때 영조가 세운 비석의 탁본이다. “군자는 친밀하지만 편파적이지 않고 소인은 파당을 지으면서 친밀하지 않다”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라는 논어의 글을 토대로 군자의 공심과 소인의 사의를 대비시킨 것이다. 단정한 글씨체가 아름다왔고 영조의 각오나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를 느낄 듯 했다. 그런데 그 아들을 죽이고 만 영조의 심경 변화와 궁중 내 정치 동학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1762년 영조가 죽은 세자에게 ‘사도’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었다는 ‘사도세자묘지’나 정조의 사도세자 추존과 어보를 둘러보면서 어지러움마저 느끼는 듯 했다.

영조와 정조는 화원들로 하여금 공신들의 초상을 제작하고 그 옆에 시를 지어 병기하곤 했다. 영조는 박문수의 초상을 제작하게 했고 대동법을 주도한 김육의 그림에 시를 지어 붙이기도 했다. 정조는 강세황의 초상을 그리게 했고 그가 죽은 후 역시 ‘인재를 얻기 어렵다’는 글을 보냈다. 정조가 심환지와 주고 받은 편지인 ‘어찰첩’도 전시되었는데 은밀한 편지 속에 마음속의 불안을 위무받고 싶은 국왕의 심정이 담겨 있다. 글씨는 활달하고 명필이라 할 만한데 내용은 쓸쓸하고 안타깝다. ‘화성원행도’를 비롯한 그림에서 국왕 주도의 국정운영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찾아볼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18세기 세계사는 얼마나 격동의 시기였는지를 잠시 생각했다. 시와 그림, 화원을 통한 국정개혁이나 탕평정치의 시도는 고상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그런 접근이 현실정치의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웠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文治를 강조한 유교국가의 독특함이기도 하고 강제력에 의존하지 않는 세상을 지향하는 것이 문명사적 발전일 수는 있겠는데 그것이 ‘文弱’의 폐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무슨 조건이 더해져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무기의 힘과 돈의 위세가 나날이 커져가는 21세기여서 더욱 그러하다.

activities

사회학회와 사회사학회

2023년도 한국사회학회 정기대회가 12월 14-15일 동국대학교에서 열렸다. 예년과 유사하게 많은 분과세션들이 열렸고 궂은 날씨에도 꽤 많은 회원들이 참석했다. 개회식 전체세션에서는 하와이대 구해근 교수께서 ‘나의 사회학 50년’이란 제목으로 계층과 계급연구에 천착하게 된 학문적 배경, 또 노동자 연구로부터 중산층 연구로 최근 관심이 옮겨가게된 계기 등을 이야기했다. 학자로서의 오랜 고민과 사회학에의 애정이 느껴지는 진지한 발제와 이를 경청하는 후학들의 모습을 오랫만에 보는 훈훈한 장면이었다.

60 학번은 말할 것도 없고 70 학번 초반 세대의 회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아 한상진 교수를 제외하면 내가 거의 최고참이 아니었나 싶다. 학계에도 세대의 교체가 빠른 현실의 반영일텐데 연속성이 너무 단절되는게 아닌지 아쉬움도 느껴진다. 저녁의 총회에서는 1년간 수고한 설동훈 회장의 뒤를 이어 장덕진 교수가 내년도 회장으로 취임했고 차차기 회장으로는 계명대학의 임운택 교수가 선출되었다. 몇년만의 경선이었고 또 지방대학의 교수가 회장을 맡게 된 것도 오랫만이어서 축하할 일이라 생각된다. 2027년 광주에게 개최될 세계사회학대회의 조직위원회 규정이 채택되고 그 유치를 주도했던 장원호 전 회장이 향후 조직위원회를 이끌어갈 것이라 한다.

사회사학회의 정기총회와 분과 세션도 첫날 오후에 개최되었다. 1부에서는 “분단과 전쟁으로 한쪽 날개 꺾인 한국여성운동”(김귀옥), “5.16 군사쿠데타 이후 비전향장기수 전향정책분석” (정찬대), “5.18 제도화와 기억의 전시”(유경남) 등 세 편의 발표가 있었다. 세 편의 논문이 각기 우리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젠더의식, 이념정치, 기억투쟁의 양상을 1950년대, 1960-70년대, 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통해 다루어 한국현대사를 조망하는 느낌이었다. 토론이 흥미로왔는데 성의식이 50년대를 거치면서 퇴행되고 ‘지연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지적한 황정미 교수의 문제제기, 기억의 정치에 수반되는 왜곡과 이해, 권력의 쟁점들을 거론한 김민환 교수의 토론은 적절하고 또 중요한데 앞으로의 큰 과제라 여겨졌다.

사회사 분과 2부에서는 최재석 학술상을 수상한 정수복 교수의 “한국근현대 학문의 지성사를 향하여”라는 기념강연이 있었다. 정교수는 서양학문의 수용사라는 관점에서 1세기를 조망하면서 보편적인 한국적 학문, 독자적인 지성풍토를 형성하지 못한 한계를 지적하였다. 후학들의 학위논문은 물론이고 인근 학문 분야의 주요 연구도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학술장의 형성과 전개, 분단과 미국의 영향, 학진체제의 문제 등을 언급하고 미래를 향한 제언을 제시한 성실함에 경의를 표했다. 나는 토론자로서 많은 부분을 공감하면서도 2000년대 이후 크게 변하고 있는 학술장의 동요, 특히 대학 위상의 변화에 대해 좀더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주체성’이라는 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화두가 필요하리라는 것, 그리고 학사와 사상사와 지성사의 상이한 문제의식을 좀더 분명히 했해 달라는 것을 부탁했다.

이후 한국사회사학회 총회가 이어져 지난 2년간 회장으로 수고한 김백영 교수의 뒤를 이어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서호철 교수가 차기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대학원 시절부터 폭넓은 식견과 역량을 보여준 서교수가 다음 학회일을 맡게 되어 기쁘다. 전국에 흩어져 있지만 함께 부담을 나누고 진지하게 토론과 연구에 힘을 합하는 여러 후배 교수들이 있어 고맙고 뿌듯했다. 점점 더 개별화되고 해외의존성이 커지는 오늘날의 학술풍토에서 한국사회사학회 연구자들의 이런 응집력과 문제의식은 그 자체로서 소중한 지적 자산이자 지켜갈 유산이다. 이런 귀한 학회의 초석이 되신 신용하 교수님의 헌신성과 리더십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면서 2세대로서 중간역할을 수행했던 사사친의 여러 동학들에 대한 고마움도 뒤를 잇는다. 3세대의 수고를 통해 더 많은 인적, 지적 결실이 거두어지기를 기대한다.

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모든 이를 위하여

약 1년 만에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을 다시 들렀다. 비가 오는 겨울 오전이어서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공원 입구 기념탑에 새겨진 성인과 순교자들의 명단과 ‘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라는 중앙 석판이 눈에 띠어 잠시 묵념을 했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벤치에 누워있는 청동 나그네 상을 보았다. 웅크린 채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살아 있으나 죽은 것 같은’한 이웃, 또는 ‘죽었으나 살아있는’ 어떤 이를 떠올리는 듯 하여 마음이 뭉클하다.

이곳을 다시 찾은 이유는 도진순 교수로부터 ‘모든 이를 위하여’ (Love and Peace for All) 라는 제목의 특별전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과 교황청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한 기획전은 규모가 크진 않으나 짜임새 있고 새로운 내용을 볼 수 있어 좋았다. 19세기 초 조선신자들이 교황 비오 7세에게 보낸 편지의 실물을 보니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1831년 교황청이 조선신자의 열망에 따라 조선을 중국 북경교구에서 완전히 독립된 대목구로 설정한 사실, 그 이후 숱한 순교와 박해의 시기를 넘어야 한 아픔, 기해 병오 박해에서 수난당한 79명이 1925년 복자로 추대된 역사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와 사진이 전시되고 있었다. 조선말기와 일제시대 카톨릭의 사회정치적 역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분석과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로마로부터 성직자의 파견을 간절히 원하고 목숨을 아까와하지 않으면서 믿음을 지키려던 이 땅의 신자들의 진정성에 의문을 표할 이유는 없다. 이들의 열망과 행동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오늘 우리는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곰곰 생각하게 된다.

‘모든 이를 위하여’는 이번 특별 기획전을 넘어 성지 역사박물관의 기본 컨셉이라 해도 좋을 듯 싶다. 다시 둘러본 지하층 상설전시에는 천주교의 전래와 실학 및 동학의 움직임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역사 속에서 이유없이 고통받고 이름없이 죽어간 많은 사람들을 함께 기억하고 위무하는 정신이 자료의 선정과 조각 및 건물 곳곳에서 읽혀진다. 이곳이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처형된 장소라는 사실에 제대로 부합하는 방식이라 하겠다. 콘솔레이션 홀은 그런 의미에서 신자들만이 아닌 모든 박해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위무하고 포용하는 공간인 셈이다. 값싼 천국의 약속을 독점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카톨릭의 잔잔한 재현방식이 내겐 신선하게 다가왔다.

해방직후 정부수립 과정에 카톨릭이 관여한 부분은 이번 특별전에서 새롭게 확인한 내용이다. 1947년 미국 메리놀외방선교회 소속 페트릭 빈 신부가 사도좌 순지자로 한국에 파견되었던 것, 1948년 정부수립 후 대한민국 승인을 둘러싼 유엔에서의 각축전에서 교황청의 역할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되었다. 1948년 8월 15일 11시에 서울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정부수립축하식 순서지를 나는 처음 보았다. 오세창 개회사, 이승만 연설에 이어 미군정의 맥아더와 하지, 유엔한국위원단의 루나, 류유완에 이어 교황청의 빈 신부가 축사자 명단에 들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교황청의 역할이 실질적이건 상징적이건 중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국제적 승인을 위해 유엔에 파견된 장면의 제1호 대한민국 외교관 여권과 유엔총회에서의 바티칸의 관심을 보여주는 문서도 흥미로왔다. 카톨릭 신자였던 장면을 외교장관 장택상의 반대를 무릅쓰고 특사로 파견한 이승만의 외교적 감각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이전에 무심히 지나쳤던 지하 전시실의 나전칠화도 이번에는 뜻깊게 다가와 오랜 시간 그 앞에서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과 한국순교자 124위의 시복을 기념하기 위해 김경자 작가가 제작한 ‘일어나 비추어라’라는 제목의 거대한 작품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세 부분으로 좁게는 카톨릭 이백년사를 넓게는 한국 근현대사를 그리고 있는데 동양의 예술적 상징과 기독교적 성서관이 아름답게 혼융되어 있다. 십장생도의 미학과 불화의 분위기, 무릉도원에의 꿈도 있고 몽둥이와 칼을 든 사람들,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 예수를 품에 안은 피에타상도 있고 각국의 국기들도 있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이 모든 상징물들이 희생과 수난을 거쳐 모든이의 평화를 이루는 미래에의 도정을 드러내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카톨릭의 섬세한 스토리텔링과 고급한 전시역량에 또 한번 고마움을 느낀 하루다.

life · 오늘의 화두

셀럽의 추락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김구림 작품을 둘러보다가 문득 같은 공간에서 몇 달전 임옥상의 ‘지금 흔들리는 땅’ 전을 관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적인 작가였지만 그 틀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와 주제로 혁신적인 작품활동을 열정적으로 해 온 분이다. 특히 흙과 쇠를 주요 소재로 활용한 대형 작품들은 캔버스와 전시관을 넘어서 넓은 도시와 현장, 광장과 건물 들에 설치되어 왔고 그 혁신적인 방식과 선명한 주제를 좋아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전시에서도 흙으로 만든 캔버스에 그린 홍매, 백매 등의 매화 연작과 대한민국헌법 전문을 쇠판 위에 큰 산 형상으로 써내린 대작은 관람객의 눈길을 끌기 족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촛불시위 현장을 형상화한 그의 작품이 청와대에 걸리기도 해서 언론의 관심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자신의 주장과 논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다양한 계층의 전문가들과 교유관계를 넓히려 노력한 탓에 유명 셀럽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인 태도와 SNS를 통한 적극적인 소통노력이 더해져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누렸다. 그의 전시가 있는 화랑에서는 언제나 작가와 사진을 함께 찍으려는 수많은 관람객들, 사인을 받으려 줄을 선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국내외의 많은 관객들로부터 환호를 받은 지난 전시회를 옆에서 보면서 ‘셀럽’이란 존재가 저런 것이구나를 실감하기도 했다. 학자나 작가들 가운데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려하고 자기 작업공간에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임 화백은 누구보다도 소통과 만남을 강조하고 또 즐기는 분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달만에 너무도 상황이 달라졌다. 과거 그가 데리고 있던 연구원에게 잘못된 행동을 했고 결국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충격파가 문자 그대로 일파만파다. 작가 개인의 이미지와 평판이 추락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설치되어 있던 곳곳의 작품들이 철거되었고 여러 활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줄을 잇는다. 성추행이라는 사안 자체가 개인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쉽지 않다. 작가로서 너무 많은 대중적 사랑과 인기를 누려온데다 어느새 정치적 도덕적 영향력까지 지니게 된 그간의 셀렵화가 이런 위험을 배태한 주요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고보니 작년 수많은 관람객들의 환호와 존경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모습을 보면서 저 과도한 인기가 가져올 위험은 없을까 일말의 불안감이 잠시 스쳤던 것 같기도 하다.

셀럽의 추락은 낯설거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고 21세기에 더욱 보편화되는 일이기도 하다. 셀럽이 실체가 불확실한 평판에 의존하는 까닭에 인기가 높아질수록 잠재적 위험도 따라 커지게 마련이다. 오늘날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대 공유되는 정보때문에 인기가 요동치는 속도와 폭도 상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뉴파워]라는 책을 쓴 하이먼즈는 오늘날 새로운 권력이 대두하는 증거로 오랜 기간 권위를 행사해온 인물들이 인터넷의 해시테그 비판과 대중의 인기 철회로 하루 아침에 몰락하는 사례들을 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성추행과 관련한 사안의 휘발성이 특히 커서 권위의 추락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한국에서도 하루 아침에 평생 쌓아온 권위와 영향력을 일순간 잃고 개인과 가족 모두의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셀럽의 몰락은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은 충격임이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이자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사건일 터이다. 하지만 셀럽으로서의 인기에서 비롯된 거품을 제거하고 단독자로서 다시 치열한 자신을 대면하는 실존적 전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불행과 불운으로 좌절하면서도 그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는 갱생과 회생의 역량을 보여준 사례도 적지 않다. 창조적인 작업에 종사하는 예술인의 경우는 고통과 단절, 비난과 자학, 성찰과 재생을 통해 예술혼이 새롭게 강화되는 전환도 가능할터이다. 셀럽의 부상과 몰락을 바라보며 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인기에의 충동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본다.

life · 오늘의 화두

김구림과 백투더 퓨처

광화문 주변에서 예정된 회의 시간이 남아 국립현대미술관을 들렀다. 큰 기대 없이 갔는데 마침 김구림 전과 백투더퓨쳐 전시가 있어 좋은 시간을 가졌다. 백투더퓨쳐 전은 1990년대의 몇 작가와 작품을 통해 이 시기의 역동성과 이질성을 탐구한다는 의도로 기획된 전시다. 동명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전시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현재와 미래의 혼재, 긴장, 불일치를 드러내려는 전시여서 최근 ‘문명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로선 더욱 관심을 갖고 둘러보았다.

작품들의 형식과 이미지가 다양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회화 형태와는 크게 달랐다. 사회적으로도 그러했지만 미술계에서도 디지털 이미지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시도와 긴장이 커진 것이 1990년대였다고 한다. 현대미술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작품 하나 하나에 대해 어떤 감동을 얻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불일치의 활성화, 이질성과 비평적 시공간, 미래간섭 혹은 미래개입 등의 설명을 읽으면서 이 격동의 시대를 되돌아볼 수는 있었다. 이질화와 혼성화의 충격, 불일치의 활성화, 미래개입 같은 개념은 마치 문명사를 서술한 책의 챕터와 유사해서 사회학적 문제의식과도 잘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이번 학기 수업에서 간간히 언급했던 엘빈 토플러의 [미래충격]을 떠올리면서 이 전시를 둘러보았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기획전과 달리 김구림전은 한 작가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개인전이었다. 김구림은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활동해온 전위예술가의 한 명이다. 나도 그 이름은 들어본 바 있으나 실제 그의 작품을 이처럼 본격적으로 관람한 적은 없다. 그의 작품은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하여 통상적인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고 일종의 설치미술적 성격도 있어 낯선 느낌도 적지 않다. 빗자루, 걸레, 의자 등 일상에서 발견되는 소품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배치하고 조명과 컬러를 더한 작품으로 문명적인 메시지를 전하려는 전위적인 분위기도 강하다. 그 독특한 분위기는 분명 강렬하게 다가오는데 내게 익숙한 예술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음-양’ 시리즈라는 제목이 내겐 어떤 힌트처럼 다가왔다. 음-양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어두움과 밝음 등 만물과 역사의 총체적 인식에 불가결한 사유의 틀이다. 오브제와 이미지를 혼합한 작품들을 제작하는 김구림 작가에겐 적절한 연작 컨셉이었을 법하다. 관람자로서도 다양한 메시지 해석이 가능한 제목이어서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내 마음대로 상상해 볼 여지를 주어 좋았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부분은 주로 바이올린 악기 몸통을 활용하여 여성의 몸과 임신, 출산과 생명의 연속성을 드러내고자 한 일련의 작품들이었다. 여성의 몸을 통해 남녀가 사랑하고 인간의 생명이 잉태되고 세대가 이어지면서 인류가 존속해올 수 있었던 것, 이를 통해 음과 양, 육체와 정신, 지배와 헌신 등 복합적인 변증법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다소 선정적일 수도 있어 보이는 방식으로 바이올린의 몸통을 변형하고 다양한 소재들과 결합시킨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이번 학기 다루었던 ‘포스트휴먼’의 쟁점, 기계와 생명, 인간과 자연, 탄생과 소멸 같은 우주론적 의미를 연결해 보기도 했다. 21세기 미래에서는 텍스트와 이미지, 예술과 학문,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경계가 계속 크로서오버되고 융복합되면서 재구성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장욱진과 사사친

덕수궁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전시를 관람했다. 사사친 번개로 모이는 기회에 함께 고궁을 산책하고 좋은 그림 감상기회도 가지게 된 것이다. 노치준, 김필동, 황경숙, 정근식, 김경일, 박명규 등 여섯이 모여 고궁을 둘러보고 미술관을 관람하고 식사와 커피타임을 가졌는데 학창시절 소풍날의 즐거움을 잠시 느꼈다. 각자 올해 공직을 마감하기도 하고 새로이 손자를 얻기도 했으며 이사를 했거나 자녀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는 등 분주하게 2023년을 보냈지만 이전에는 누리기 어려운 망중한의 여유를 무료관람권으로 누리게 되었으니 복많은 백수세대의 일원이 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장욱진 화백은 1917년 생으로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등과 함께 2세대 서양화가이자 1세대 모더니스트로 꼽힌다. 대부분 크지 않은 아담한 사이즈의 유화 730여점, 먹그림 300여점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전시는 총 4개 관으로 나뉘어져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의 작품 상당수가 전시되어 그의 그림 인생을 조감하기에 족했다. 그의 그림에는 까치와 나무와 길, 사람과 집과 태양 같은 단순하면서도 친숙한 일상의 대상이 거의 예외없이 등장한다. 작은 캔버스에 동화적인 분위기로 비슷한 대상과 소재를 자유롭게 담아내는 방식이 거의 전 기간을 관통하고 있다. 수십년 활동해온 화가 중에는 시기별로 화풍이 크게 달라지거나 실험적인 작업에 심취하는 시기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상대적으로 장욱진 화백은 일생 유사한 화풍을 견지하여 ‘일관성’이 특징으로 이야기 될 정도다. 일견 신선함과 다양성이 아쉬운 느낌도 없지 않지만 초기의 동화적인 분위기와 친근한 대상에 대한 애정을 평생동안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새 것 컴플렉스가 유난히 강할 창작예술계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일까 그림 못지 않게 곳곳에 배치된 장욱진 화백의 말과 글에 눈이 갔다. “그림처럼 정확한 나의 분신은 없다. 난 나의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녹여서 넣는다. “/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저항 속에 사는 것 같다. …나는 이 저항이야말로 자기의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된다.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임을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된다.”/ “그림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톡톡 튀어나온다. 마음으로부터….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맑은 거울이나 맑은 바다처럼 순수하게 비어 있어야 한다. 어린이의 마음처럼 조그만… 이런 텅 비워진 마음에는 모든 사물이 순수하게 비친다. 그런 마음이 되어야 붓을 든다.”

세번째 홀에는 상대적으로 실험적이고 불교적인 모티브가 강한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아름다움, 진眞진眞묘妙”라 이름붙여진 이 곳에는 그의 불교적 세계관과 정신세계가 드러나는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유화의 형태가 아닌 동양화 풍의 먹그림도 이 시기에 등장한다. 먹을 사용하지만 전통적인 동양화와는 다른 유화식 붓터치가 내게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진진묘는 장욱진 화백의 부인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인데 실제로 장화백은 아내를 보살로 지칭할 정도로 존중하고 귀하게 여겼다 한다. 또한 인간과 동물, 자연과 산천이 함께 가족처럼 등장하는 그림을 통해 만물이 가족처럼 연계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정동교회, 정동극장 앞을 지나 이화여고로 이어지는 길은 유서깊은 문화지구로 젊은이들이 데이트 장소로 곧잘 오가던 곳이다. 하지만 미술관이나 주변 까페에는 젊은 세대보다 중년 및 노년의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띠었다. 평일의 업무 시간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는 세대의 나들이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할 테다. 고령화의 실상을 커피숍과 산책로에서 실감하게 되고 우리 또한 그런 상황을 뒷받침하는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다소 어색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중장년층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이런 형태의 그림에 어느 정도 정서적 공감을 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까치와 나무 대신 로봇과 자동차가 주된 이미지가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activities · life · 오늘의 화두

신복룡 번역성경

신복룡 교수가 신구약 성경을 번역하고 그간 학연을 이어왔거나 관심을 보인 사람들에게 그 파일을 직접 보내주셨다. 구약과 신약, 천주교 판과 개신교 판의 네 개 파일로 이루어진 오랜 작업의 결과물을 보면서 감탄과 함께 깊은 감동을 느낀다. 성경을 통독하거나 필사하는 신자는 더러 있지만 번역을 한다는 것은 실천은 물론이고 생각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배후에는 라틴어 성경의 번역작업을 수행한 에라스무스와 루터가 있었고 이후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위클리프, 메튜 등의 역할이 컸다. 한국의 경우에도 로스와 이수정, 언더우드, 서경조 등이 성경 번역에 큰 역할을 담당했고 독자적인 성경번역을 수행한 개인이나 집단이 없지 않다. 성경이 정경 (canon) 으로서의 번역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적 권위를 지닌 위원회나 공회가 번역의 주체가 되는 것을 당연시해 왔지만 구체적인 번역작업을 수행한 분들의 헌신과 역량을 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공식출판에까지 이르지 못했고 본인 스스로 번역이 아니라 ‘교감’이라고 표현했지만 성경의 개인번역이 시도된 것 자체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신교수는 신학적 논란에 개입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작업을 원칙으로 내세웠지만 이런 번역을 시도하게 된 내면의 문제의식, 기존 번역에 대한 미흡함이 없을 수 없고 군데 군데 고민의 흔적을 각주의 형태로 담고 있다. 가끔 과감한 독자적인 번역을 시도한 부분도 발견된다. 예컨대 요한복음의 첫 부분에 나오는 Logos를 삼위일체의 두 번째 자리인 “성자”(聖子)로 번역한 것을 들 수 있겠다. 영문판 Bible은 이를 “Word”라고 번역했고, 중국어 판본은 “도”(道)라고 번역했으며, 일본어 판본은 言(ことば)로 되어 있는 부분이다. ‘말씀’이라는 번역어는 매우 잘 된 선택일 수도 있고 종종 그렇게 해석되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성자라는 뜻으로 이해되는 것이 옳다는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하고 있다.

사실 성경의 번역은 늘 세계문명사의 중요한 계기적 사건이었다. 기원전 3세기 히브리어 구약이 희랍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여 70인역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기독교의 유럽전파의 주요한 기초가 되었다. 르네상스는 라틴어 정경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됨으로써 말씀을 누구나 자기 언어로 접할 수 있게 된 종교혁명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일어난 대전환이었다. 성경이 독일어로, 불어로, 영어의 King James 판으로, 다시 미국의 NIV나 현대인을 위한 성경으로 번역되는 과정은 좁게는 번역의 역사이지만 크게는 세계종교의 보편사, 인류문명의 일대 전환을 수반한 사건이었다. 그런 흐름은 동아시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중기인 1790년대에 4복음서의 30% 정도가 번역된 [성경직해]가 간행되었으니 한국에서도 성경번역의 역사는 꽤 오래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성경번역 300년] 책에서는 중국 경교의 소개, 고려시대의 동방기독교 , 임진왜란에서의 천주교 수용 등을 ‘성경수용의 여명기’라고 서술하면서 성서번역의 역사를 최소한 300년 이전으로 소급할 것을 주장한다. 한글성경이 오늘과 같은 체제로 나타난 것은 19세기 말인데 번역자에 따라 용어선택이 달라 ‘하나님’과 ‘상제님’과 ‘천주’가 같이 쓰이고 ‘도’와 ‘말씀’이 같은 역어로 혼용되기도 했다. 성서해석학의 진전에 따라 용어의 통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지만 지금도 신구교 사이에, 또 각 교단별로 사용되는 번역어가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보수적인 일부교단에서는 ‘성서무오설’을 번역본에도 적용하려 하지만 상이한 언어로의 번역에서 의미 변형과 왜곡의 문제를 피할 수 없어서 시대에 따라 늘 새로운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 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신복룡 교수가 개인적으로 신구약 성경을 새롭게 교감하고 독자적인 번역작업을 수행한 것은 놀랍고 특기할 만한 사건이다. 신복룡 교수는 이미 [플루타르크 영웅전]과 [삼국지]를 다양한 원어와 판본들을 비교하면서 한국어 번역본을 출간한 바 있다. 그 이전에는 구한말 선교사들이 남긴 한국관련 기록들을 정확하게 번역소개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런 작업들은 다양한 동서양 언어에 통달해야 함은 물론이고 상이한 시대의 문화, 언어관습, 문화의 전승과 교류에 대한 폭넓은 인문학적 이해가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번의 성경 번역에서도 신구교가 공동 번역한 [성서](서울 : 대한성서공회, 2001)와 한국 천주교의 [성경]. The New English Bible(NEB : Oxford/ Cambridge Version, 1970 )을 저본으로 삼고,The Holy Bible(New International Version : NIV, 2002), The Holy Bible(New Revised Standard Version : NRSV, 1991), [우리말 성경](두란노서원, 2004), 일본어 판본인 [聖書](東京 : 日本聖書協會, 2002), 중국어 판본인 [聖經](臺灣 : 聖經資源中心, 2017 : 和合本)을 참고하여 작업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오랜 시간과 신심이 담겨있을 이 작업이 더욱 새로운 의미와 영성의 진작에 기여할 것을 기대하며 신교수님의 수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activities

UN과 북한인권

북한인권문제를 논의하는 샤이오포럼이 13주년을 맞이해 12월 8일 발제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유엔인권선언이 채택된 프랑스의 샤이오궁 이름을 따서 2011년에 시작된 이 포럼은 북한인권을 주제로 국제적인 연구자들의 소통과 쟁점분석, 그리고 자료구축을 목표로 한 것으로 통일연구원이 주관해 왔다. 김천식 통일연구원장과 제임스 히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서울사무소장이 축사를 했고 김영호 통일부장관의 축사가 대독되었다. 이 전문가 포럼에서 나는 첫 세션의 좌장역할을 맡았고 라운드 토론의 두번째 세션은 이신화 북한인권대사가 주관했다.

인권은 보편적이고 지구적이며 인류적 사안인데 북한인권은 늘 특수한 지역적 쟁점으로 간주되어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일반적인 인권단체는 북한인권을 그다지 주목하지 않고 북한인권단체는 보편적 인권의제에 무관심하다. 정치적으로도 인권 일반에 관심이 높은 진보진영이 북한인권에는 가급적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하는데 비해 보수진영은 유난히 북한인권 의제에 관심을 쏟는다. 그래서 정권의 부침에 따라, 남북관계의 기복에 따라 북한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도 널띠듯 오르 내린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했다고 평가받는 이 쟁점을 윤석열 정부에서 중요하게 부각시키는 것도 그런 흐름의 한 측면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그런 상황과는 별도로 북한인권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주요하게 논의되어온 쟁점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유엔 인권 메커니즘을 통해 제기된 이 사안은 2003년 이후엔 유엔인권위원회 (현 유엔인권이사회)와 총회 차원에서 매년 결의안이 채택되고 있다.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임명되고 2013년에는 유엔인권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COI 보고서가 채택되어 북한 정권의 책임을 추궁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었다. 또한 매4년 마다 UPR (보편적 정례보고) 방식을 통해 개별 국가의 인권관련 사항 진전 정도를 보고하고 평가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북한인권을 우리 스스로 특수화시키거나 로칼 의제로 축소시키는 것은 타당하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을 것은 분명하다.

첫 발제자인 북한인권네트워크의 권은경 대표는 최근 북한 내부의 변화상을 전하는 여러 정보와 자료들을 동원하여 북한에서도 제한적이지만 유의미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인권’ 문제가 야기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과 일부 법적 조치, 그리고 정책적인 변화도 확인되며 유엔이 강조하는 SDGs 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통해서도 유사한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COI 보고서를 전후한 변화가 확인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에 대한 위협이나 남한의 정보유입에 대한 강한 거부나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현상도 주목됨을 지적했다. 두번째 발제를 한 이금순 박사는 3차례 이루어진 UPR 보고와 리뷰의 분석을 통해 북한의 보고, 국제사회가 북한에게 요구한 사항,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항목별로 세밀하게 검토했다. 세부 항목별로는 북한이 수용한 내용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 확인되고, 심지어 북한이 한국의 UPR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리뷰를 한 사실도 나로선 새로 확인한 부분이다. 두 발표 모두 북한이 일괴암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세부적으로 상이한 반응을 보이는, 꽤 섬세한 대응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토론과정에서는 역시 북한의 진정성과 신뢰문제가 부각되었다.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법조항을 제정하는 부분적 개선노력과 반동사상배격법 같이 외부 정보나 문화에 대한 처벌의 강화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어느 편이 북한체제의 실제 모습인지가 논란이었다. 또 최근 탈북자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내부의 변화와 그 실질적인 향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확인할 것인가도 과제로 부상했다. 2부 토론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북한인권관련 사안을 주도해온 탈북자 단체의 리더십이 고령화하고 분절화한 현실에서 정확한 실상 파악과 데이터 구축의 부족함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탈북자들의 관심이 그들의 정착과정과 국내에서의 인권문제로 확대되어가는 상황도 진지하게 고려할 일이다. 인권이란 의제가 포괄하는 영역이 다양한만큼 불균등하게 이루어지는 변화에 대해 주목하면서 섬세하고도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유엔에서의 결의안이나 인권 여론화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는 문제제기나, 인권이 정치화되고 도구화되었다는 비난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도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인권논의에 반발해왔다. 당분간 북핵 문제와 더불어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중국, 러시아, 북한의 공동보조가 이어질 것이 예상된다. 그런데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이를 주도해온 미국과 유럽연합의 영향력과 진정성이 동요하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미국의 전 트럼프 정부 하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듯 자국이익이 최우선시됨으로써 인권이나 환경 같은 지구적 문제가 도구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에서도 극우가 힘을 얻고 혐오문화가 확산된다는 뉴스를 무겁게 접한다. 한반도 안팎의 변화를 직시하고 인권의 다면성을 주의하면서 원칙과 현실, 강함과 부드러움, 속도조절의 지혜가 동반되어야 북한인권의 실질적인 진전에 도움이 되고 남북관계의 개선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 아닐까 싶다. 2024년에는 그런 변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activities · life · 오늘의 화두

관악사 문자동행전

서울대 화묵회가 주관하는 2023년 문자동행전이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렸다. 매년 연례행사로 이루어지는 서예전인데 올해는 최치원의 시문을 중심으로 기획된 전시회다. 나는 지방에 있어 평일의 수업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는데 예년에 비해 작품들이 더 풍성해지고 글씨도 단단해 진 느낌이다. 수업때문에 19일 하루 지킴이로 전시장을 지켰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冠嶽士 文字同行展’ 이라는 전시회 표제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선비사 (士) 를 사용한 것이 새삼스러웠고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생각하게 된다. 글씨를 쓰는 사람이 모두 선비일리 없고, 또 현대사회에서 선비란 개념의 적합성을 둘러싼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글씨를 쓰는 순간, 문장을 대하는 마음은 이전 선비의 그것과 같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야 ‘문자동행’이라는 말도 살아난다. 문자와 더불어, 문자의 뜻과 함께 간다는 이 말도 곰곰 생각하니 예사로운 표현이 아니다.

나는 최치원의 ‘등윤주자화사상방’ 시와 굴원의 ‘어부사’ 두 점을 출품했다. 최치원의 시는 행서로 굴원의 글은 행초서로 써 보았다. 충분히 다듬어지지 못한 글씨이고 스스로 모자란 부분이 많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나름 애쓴 흔적이 담긴 작품이긴 하다. 세상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시인으로서의 정신을 새롭게 하려는 최치원의 마음과 어부의 초탈한 인생관을 통해 삶의 여유를 강조한 굴원의 정신을 느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치 가까이 가면 갈수록 꼭 그만큼 더 멀어지는 대상처럼 이들의 정신세계는 내가 미치지 어려운 곳에 가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문자동행’이라는 말이 ‘이들의 마음을 함께 느끼는가?’라고 묻는 물음인 듯하다.

수하 김길중 교수께서 오셔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바드 엔칭연구소의 베이커 부소장을 통해 일전에 이야기를 들었고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여겼는데 정작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김교수님 글씨는 힘이 있고 필획이 유연하고 깔끔해서 아름다왔고 자작시를 출품하는 역량도 놀라왔다. 작년에 한글 작품을 전시했던 고희종 교수의 글씨도 필세가 좋고 ‘신독’이란 작품에서는 선비같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장인성 교수의 ‘출몰자유진외경’이라는 작품에서는, 이전에도 그랬지만 자유롭고 도학적인 분위기의 멋스러움을 접한다. 회장인 양일모 교수의 글, 한참 선배인 권숙일 교수의 작품 역시 선비의 분위기와 학자로서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고 김혜년, 권향숙, 김현미 님 등 오랜 연마로 다듬어진 작품을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았다. 운재 이승우 선생의 ‘천산 사야’는 글씨와 그림이 하나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서법을 지키면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저런 경지에 이르려면 그만큼 많은 노력이 더해져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전시장엔 오랫만에 일부러 와주신 분들이 적지 않았다. 사회학과 원로교수인 한상진 교수가 이태리에서 잠시 방문한 연구자와 함께 들러주셨다. 최근 그림에 열심이신 심영희 교수께 전달하겠다 해서 녹음으로 작품 해설을 들려드리기도 했다. 김백영 교수는 화환을 들고 찾아와 축하해 주었고 아시아연구소의 민원정 교수는 커피 선물을 해 주었다. 곧 정년을 앞둔 김명환 교수도 방문해서 즐거운 이야기 나누었고 제자인 윤병훈은 세밀한 감상으로, 손명아는 맛있는 쿠키로 함께 해 주어 여러 관람자들과 나누는 기쁨을 가졌다. 김명환 교수는 도서관장 시절에 내 전시회 영상제작을 지원해주셨고 중앙도서관에 걸어 둔 ‘須讀五車書’ 작품을 내게 부탁하기도 하신 분이다. 여러모로 감사한 마음으로 선비로서 문자동행하는 생활을 계속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좋은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