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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藝無疆

서울대 문화관에서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열린 한중합동의 [가없는 서예술: 書藝無疆] 서예전에 참가했다. 한국측은 소동파를 비롯한 중국의 시문을, 중국측은 이규보와 퇴계 등 한국의 문장을 쓰는 방식으로 기획된 일종의 문화교류 행사다. 서울대 교직원 서예모임인 화묵회가 홍콩 학자들의 서예단체 集古學社와 함께 개최한 이 전시에 나는 전적벽부 전문을 쓴 작품을 출품했다.

적벽부는 첫 문장을 비롯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구절이 더러 있다. 하지만 올 여름 文徵明 서첩을 구해 그의 행서를 임서해보면서 비로소 내용 전체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배 위에서 동파와 객이 주고받는 대화는 지금 읽어도 우아한 품격이 느껴지는 고품질의 토크다. 한 때 일세영웅이었던 조조를 생각하다가 그도 세월이 흐르니 흔적조차 없어졌음을 깨달은 객은 “장강의 끝없음을 부러워하고 인생의 유한함을 슬퍼” 하는 마음을 담아 애절한 통소를 불었다.

그 소리에 화답하여 소동파는 “만물을 그 변하는 것에서 보면 어느 것 하나 순간이 아닌 것 없지만, 변하지 않는 면에서 보면 모든 것이 끝없이 존속하는 것” 임을 강조한다. 인생도 산하도 변화하는 것과 지속되는 것이 동전의 양면이니 어느 한 면에 매달려 자만하거나 애석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조물자’가 우리에게 준 무진장의 선물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造物者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종교적 깨달음이라 할까, 인간과 자연을 함께 생각하는 달관이라 할까 독특한 여유와 정조가 마음에 와 닿는다.

중국측 출품작 가운데서는 홍콩 중문대학 심천학장 徐揚生이 퇴계 이황이 기대승에게 보낸 글을 쓴 작품이 글씨도 멋스럽고 내용과 구도도 마음에 들었다. “선비가 태어나 혹 출세하기도 하고 혹 은거하기도 하며 혹 뜻을 이루기도 하고 혹 불우하기도 하지만 오로지 자기 몸을 정결하게 하고 옳음을 행할 뿐 禍福을 논할 것은 아니다.” 조선 유자의 반듯함이 드러나는 글인데 소동파의 도학적인 분위기와 이퇴계의 유학적인 정신이 같은 듯 다른 듯, 화이부동의 싫지않은 긴장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현실을 돌아보면 삽시간에 저련 정신의 여유가 사라지고 만다. 도무지 품격이란 찾아볼 수 없고 개인과 자파의 ‘화복’만 따지는 국내의 정치현실, 자국의 이익 앞에 인류의 공존이 위협받는 국제정세, 핵무장론이 등장할만큼 어려워진 남북관계 등 답답한 상황을 앞에 두고 소동파와 이퇴계는 무어라 조언할까? 또 통소를 불던 저 객은 어떤 노래를 부를까? 한중 민간의 문화교류가 정치갈등의 파고를 넘어 서로를 존중하며 순항할 것인가? 전시회를 지키면서 자문해본 물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