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추석이 한참 지나 고향을 다녀왔다. 오랫만에 나들이를 한 누이들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네 앞 가을 들녂은 추수를 앞둔 황금빛 볏자락으로 넘실댔다. 아들 종인이가 군대를 가기 직전에 부모님 산소 주변에 심었던 감나무가 꽤 자라 큰 감이 여럿 열렸다.
오는 길에 화림동 계곡을 들러 맑은 물가에서 잠시 정담을 나누었다. 이 계곡 이곳 저곳에 세워져있는 농월정, 동호정, 거연정의 모습은 개발광풍의 바람으로부터 그다지 침해를 받지 않아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출사보다는 은일을 중시하던 산림 선비들의 삶을 보는 듯 했다.
조부는 이 화림동을 좋아해서 아호를 화사라 했다. 조부가 세웠던 애산당 기동에 의친왕의 글씨로 ‘화림사보 은사정취(花林史暜 隱士情趣)’라 쓰인 현판이 있었다. 숨은 선비의 정취를 예찬하는 글이겠는데 식민지 시대를 벗어난지 반세기도 더 넘은 21세기 세계화의 시대에 은사의 정취란 낡은 유물에 불과할 것인가. 오는 길에 머리를 스쳐간 화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