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올림픽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인간의 강인한 육체의 힘을 최대로 발휘하려는 이 제전은 오늘날 전지구적으로 더욱 풍성하게 발전하고 있다. 얼마전 끝난 올림픽은 물론이고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월드컵, NBA, 각종 스포츠 경기의 배후에도 그리스의 유산이 어른거린다. 물론 돈과 명예, 경쟁과 좌절이 너무 크게 결합된 프로 스포츠의 경우 그리스에서의 정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테네에서 나는 사라진 고대문명의 정신적 자취를 찾아보려 애썼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르스토텔레스의 철학자들과 아고라에서 공화정을 이끌던 자유 시민들의 숨결을 만나보고 싶었다. 파르테논과 로만 아고라 광장을 둘러보면서 그런 모습을 느껴본 듯 하지만 엄밀하게는 내 상상의 소산일 뿐이다. 실제 아테네의 현장에는 말없는 고고학적 유물들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고고학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나는 그리스인들이 강조했던 또다른 모습에 주목했다. 육체의 강인함을 통해 용맹과 용기의 미덕을 보여주고 있음을 새삼 느꼈던 것이다. 특히 올림픽의 배경이 되었을 남성적인 힘, 불굴의 투지를 상징하는 근육질의 육체성을 작품 속에서 만났다. 오늘날 ‘남성성’은 종종 페미니즘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지만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여성성과 꼭같이 남성성도 하나님이 주신 품성으로서 그것은 아름답게 구현되고 다듬어가야 할 자질이다. 그 모습의 한 부분을 스케치로 옮겨둔다.
그리스 아테네를 둘러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먼 옛날 그들이 보여준 조형미의 아름다움은 대단했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위용을 접했을 때 느낀 감동은 말로 하기 어렵다. 사진으로 본 바와 다를 바 없고 원형도 많이 훼손된 상태인데도 가히 건축미학의 최고경지라 일컬을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중국의 만리장성이 놀랍고 경이로우며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장대하지만 이런 미학을 표현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고고학 박물관에서 만난 조각품에서 그리스인들의 미학을 좀더 가까이 느꼈던 것 같다. 조각품의 섬세한 기법은 물론이고 인체의 아름다움을 놀랍도록 표현한 예술적 감각이 가히 압권이다. 인간이 추한 면모도 적지 않지만 만물 중 인간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리스 조각의 최고품들은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의 박물관에 가 있다고 한다. 온전하지 못하거나 수준이 다소 떨어지는 작품일지라도 아테네 현장에서 직접 만나는 유물이 풍기는 아우라는 남다르다.
르네상스는 이런 그리스 미학을 부흥시키려는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카톨릭 하의 중세 유럽은 영혼을 중시하고 육체를 경시하는 엄숙주의가 강했다. 그리스 예술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인간의 욕망을 승인함으로써 중세 암흑기를 해체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제국 박물관에서 그리스 조각작품을 최고의 소장품으로 전시하는 것도 이런 르네상스 미학에 대한 공감과 무관치 않으리라. 약소국 유물의 약탈이라는 제국주의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리지만 서구문명의 계승자로 자처하고픈 그들 욕망의 소산인 셈이다.
그리스 조각은 인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 많다. 남성의 경우는 용맹함과 근육질의 신체, 역동적인 움직임 등이 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다. 통상 다산과 풍요의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하던 여타 문화권과는 다르게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을 극단적으로 추구했다. 특히 여성은 우아한 얼굴과 균형잡힌 몸매, 신비로운 곡선미가 유난히 돋보인다. 개인적 느낌으로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느끼는 바지만 하나님이 여성을 남성보다 더 정교하게 빚으신 것 아닐까 생각할 정도다.
어릴 적 도덕론이 우세한 환경에서 성장한 탓에 외모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은 내겐 낯설었다. 유교적 가풍과 기독교적 가르침이 독특하게 혼합되어 의복, 치장, 춤, 음식 등에 대한 무관심이 몸에 배었다. 하지만 성장해 가면서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도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영육 이원론을 넘어서 아름다움, 감성, 충동, 축제, 욕망 등의 가치를 새롭게 느끼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경험한 일종의 내 의식의 르네상스였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리스 고고학 박물관에서 만난 많은 작품들이 주는 감흥이 남달랐다. 그 중에서도 고개를 들고 무릎을 꿇은 상반신 여인상은 정말 인상 깊었다. 아름다움과 우수가 함께 뭍어나는 그 작품을 앞뒤로 오가며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중앙 홀에 서있는 아프로디테의 상은 놀라운 균형미와 곡선미로 내 눈을 끌었다. 이들 작품은 오늘 현대의 작가들도 쉽게 따라가기 어려운 명실상부 최고의 수준이다. 누군지 모르는 그 시대 조각가들의 손과 마음을 떠올리며 나도 도화지에 선을 그리며 음영을 넣었다. 미학은 이렇게 시대를 넘어 교감할 수 있는 것인 모양이다.
짧은 아테네 여행이었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그리스의 면모들을 접할 수 있었다. 예상했거나 기대한 것이 아니었는데 아크로폴리스, 역사박물관, 고고학박물관, 그리고 아테네 시내를 방문하면서 적어도 세가지 서로 다른 모습의 그리스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깊이 있는 이해는 아니지만 내 지식의 편협함을 확인하고 교정할 수 있었던 귀한 여정이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텥레스로 대표되는 철학과 지성, 아테네 민주주의로 표상되는 폴리스 공화국이 내게 가장 친숙하고 깊이 자리잡은 이미지다. 이곳에 오고 싶었던 오랜 꿈도 이런 심상 이미지에 기반한다. 이런 모습은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광장, 파르테논 신전과 디오니소스 공연장에서 감동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나는 아테네 시내를 오가면서 2천년 전 이곳에서 꽃피웠던 철학과 미학과 건축과 예술을 떠올렸고 뛰어난 사상가들이 곳곳에서 대화하고 토론했을 모습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잔해만 남은 현장에서 고대 그리스의 융성한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적지 않은 사전 지식과 상상력이 요구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그런 선행지식이나 오랜 기대감이 없었다면 흩어져 있는 유적지에서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마지막날 방문했던 고고학 박물관에서 이 고대 그리스의 모습을 좀더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아프로디테와 포세이돈의 조각상, 검은 빛과 정교한 그림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그리스 도자기, 그리고 이곳에서 살았던 사상가들의 얼굴상을 모아놓은 전시실 앞에서 고대그리스에서 꽃피웠던 문명적 지혜와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었다.
둘째날 오후 탐방했던 국립역사박물관은 내게 전혀 다른 그리스 이미지를 선사했다. 이곳은 그리스의 근현대 역사를 보여주는 곳으로 그리스 옛 의회 건물에 자리 잡고 있는데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벌인 전쟁, 외교, 갈등 등이 나열되어 있어서 독립운동사박물관이라 할 만했다. 전시실을 둘러보면서 나는 줄곧 당혹스러웠는데 그리스 근현대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별무했기 때문이다. 전시를 보면서 오랜 세월 그리스는 로마제국, 라틴제국, 오스만 제국에 속해 있었고 그리스인들은 그 제국의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았음을 깨달았다. 1830년대 일련의 혁명과 전쟁을 통해 독립국가건설의 노력이 전개되었고 거의 1세기에 걸친 격변을 거쳐 오늘의 그리스가 출범한 것이다. 전시물은 대부분 오스만제국과 싸울 때 사용된 군대의 깃발, 항쟁을 주도했던 군인들의 초상화, 그리스 정교의 수장들 및 상징물이었다. 어디에도 파르테논 신전이나 아테네 민주주의, 소크라테스의 철학 같은 것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터키와의 악연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고대와는 거의 단절된 근현대 그리스의 모습은 솔직히 낯설었고 컨텐츠 역시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그리스 국가형성과정이 힘들었음을 반증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세번째 모습은 내가 아테네 길거리에서 받은 인상에 기초한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띤 것은 건물 외벽에 무질서하게 그려져있는 수많은 그래피티였다. 뉴욕같은 도시라면 어울릴지 모르겠으나 페인트 낙서들이 아테네의 거리 곳곳에 널려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이었다. 중심부의 많은 건물 철제셔터와 외벽에 그려진 그래피티는 아테네 도시의 열정적이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드러낸다기보다 어딘지 불안하고 쇠락해가는 이미지로 다가왔다. 실제로 거리 곳곳에 노숙자의 모습도 보이고 문이 닫힌 상점들도 자주 보였다. 2015년 그리스 경제위기가 미친 충격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아닌가 싶었다. 2000년대 초반 호황을 누리던 그리스는 외환위기 이후 5년 사이에 경제 규모가 4분의 1이나 쪼그라들었고 실업자는 약 2.5배로 폭증했다. 이른바 트로이카(유럽연합·국제통화기금·유럽중앙은행)가 짜준 경제 프로그램을 가동했는데도 형편은 거의 경제공황에 가까와 그리스는 심각한 사회불안을 겪어야 했다. 정부는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유럽연합에서는 ‘유로존에서 쫓아낼 수도 있다’고 위협하면서 불편한 갈등이 지속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찬란한 문명이나 튀르케에와의 독립전쟁에서 보인 강인한 국가의식에 비해 실제 생활상의 그리스, 먹고사는 현장의 모습은 또다른 얼굴로 비쳐졌다.
세가지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며 국립역사박물관에서 본 Refugee (난민) 라는 주제의 특별기획전을 생각한다. 이 전시의 부제는 “From Greater Greece to Contemporary Greece”라 되어 있다. 19세기 독립과정에서 옛 비잔틴 제국시절 그리스인들이 거주하던 넓은 지역을 영토로 귀속시키려는 발상이 ‘greater Greece’ 구상을 강화시켰다고 한다. 1821년 그리스 혁명의 시작부터 1923년 로잔 협약으로 현재의 그리스가 출범한 100년간의 역사는 유럽사의 격변, 정치적 대응, 거대한 인구이동으로 특징지워지는 시기인데 그 핵심에 난민이 자리한다는 것을 이 전시는 강조하고 있었다. 독립의 과정에서 터키를 비롯한 곳곳에 거주해온 그리스인들이 다수 이주해왔지만 이들의 정착은 쉽지 않았고 많은 고통과 가난, 불안의 삶을 겪어야 했다. 정치적 독립은 이루어졌지만 사회적 통합이나 경제적 안정은 요원했던 수난의 난민사를 보면서 고대 그리스와는 너무 다른 현대 그리스의 실상을 미미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듯했다. 사실 20세기 지구상에서 독립운동을 추구한 약소국가들에게서 이런 모습은 공통적이라 할 수도 있다. 난민문제가 다시 지구적 현안이 되고 있는 지금, 인간의 이동과 정착이란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읽는 작업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드디어 그리스 아테네에 왔다. 내가 파르테논 신전과 올림푸스, 제우스와 신탁의 이야기에 접한 것이 초등학교 시절이었고 그때부터 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무려 50년이 훌쩍 넘어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아테네에서의 첫 날 저녁 아크로폴리스가 올려다 보이는 아고라 광장 주변 거리 까페에서 식사를 했다. 주위엔 신나는 음악과 춤이,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줄을 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의 유쾌한 목소리와 붉은 색 조명들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광장 위편으로 아크로폴리스의 모습이 조명 속에 드러났다. 때마침 보름달에 가까워 온 밝은 달이 휘영청 떠올라 광장과 신전, 둥근 달이 한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졌다. 이 주변에 도서관과 학당, 공연장 등이 두루 배치되어 있었으니 고대 아테네 폴리스의 진면목이 이 공간에 남아 있는 셈이다. 2천년전 이곳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치고 대화하며 때론 격론을 벌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에 뭉클한 무엇이 느껴진다.
첫날 밤 야경으로만 만족했던 아크로폴리스 방문길을 다음날 아침부터 준비했다. 시간대 별로 입장권 가격도 달라 인터넷으로 10시 예약을 했다. 비교적 이른 9시에 호텔을 나섰지만 내리쬐는 태양열은 무서울 정도였고 아무런 그늘도 없는 언덕 위에서 느끼는 열기는 참기 어려웠다. 그래도 어릴적 해외여행을 꿈꾸게 만들었던 곳에 왔다는 생각이 더위도 잊을만치 나를 들뜨게 했다. 마침내 들어가 만난 파르테논 신전은 아직 복원이 채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어릴 적 사전으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오랫동안 원형이 유지되었다는데 17세기 이 지역을 공격한 베네치아와의 전투시 튀르크군의 화약이 폭발하여 건물의 원형이 상당부분 훼손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웅장함이나 균형미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명불허전이라 할까.
아크로폴리스 정상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에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된 신전으로 건립되었다. 대리석으로 된 높은 도리아식 기둥들로 둘러싸인 전체 건축 양식은 특히 아름다와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 제1호로 등재되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복원공사에도 유럽연합의 재정지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멀리 아테네 도시를 바라보는 중간언덕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보인다. 파르테논 신전과 유사한 모습인데 파르테논 신전을 제일로 치는 연유 때문인지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파르테논 신전의 옆으로는 규모가 제법되는 원형극장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네 명의 여신상이 벽면을 채운 또 하나의 작은 신전이 있다. 산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한 모서리에는 그리스 국기가 높이 걸린 전망대가 있다. 산정의 바닥은 약한 핑크빛 색깔을 띤 바위들로 덮여있는데 반들거리는 모양으로 미루어 대리석이 아닌가 싶다.
내려오는 길에 로만 아고라와 하드리안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원래 아테네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공연하며 향연을 베풀기도 했던 곳은 ‘고대 아고라’였는데 그곳이 로마의 지배하에서 훼파된 이후 다시 형성된 것이 ‘로만 아고라’라 한다. 아고라라는 이름이 붙은 걸로 짐작하면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상대를 설득하며 때로 권력을 비판하던 민주적 공론장의 역할이 계속되었던 모양이다. 도서관이 설립되어 있었고 많은 서적을 보관하고 있었다고 하니 고대 그리스 시민문화의 수준이 놀랍다. 주위 회랑의 기둥들이 여럿 남아 있는 이곳에서 많은 시민 들이 토론하고 대화하며 공론을 만들어 갔을 것이다. 더위도 식힐 겸 이 로만 아고라 문 앞에서 한참을 앉아 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보는 즐거움을 가졌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교회를 만났다. 주변 건물들에 비해 너무 작아 초라해 보이지만 독특한 건물양식과 길 모퉁이 위치가 남달라 조심스레 들어가보았다. 내부는 생각보다 화려하고 정교한 디자인과 성화들로 눈부실 정도였다. 천장의 벽화는 오랜 세월 보수되지 않아 어둡게 변색되고 부분적으로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금칠을 한 부분들, 정면의 제대 주변과 벽면의 성화는 무척 아름다왔다. 변색된 어두운 천정과 화려한 성화의 대조가 마치 기독교 문명의 찬란했던 과거와 약화된 오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는 여러모로 결이 다른 기독교 문화가 이곳에 자리잡고 동로마 건립 이후에는 콘스탄티토플과 함께 그리스 정교 발상의 주요한 거점이 되었는데 15세기 이후엔 오스만 제국 하에서 이슬람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니 역동적인 역사라 할지 기구한 운명이라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작은 교회를 나서며 나는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던 바울을 떠올렸다. 그는 이곳 아데테에서 만난 스토아 철학자들과 논쟁하면서 자신이 믿는 구원의 신앙을 열정적으로 설파했다. 바울은 아데네 사람들이 종교성이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진정으로 신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유일신앙을 설파했었다. 그가 열정적으로 논쟁했던 아레오바고 언덕도 이 주위 어딘가에 있으리라. 바울의 확신과 열정으로 이루어진 작은 만남이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씨앗이 되고 이곳 그리스 정교회의 형성으로 이어졌으니 참으로 경이로운 역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그리스는 정교회를 국교로 믿는 나라인데 다른 유럽 도시에 비해 눈에 띠는 교회나 성당 건물이 없고 관광안내서에도 정교회 관련 유적은 별로 나오지 않는 것이 다소 의아스러웠다.
오늘날 파르테논은 건축미학이 뛰어난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간주된다. 인류적 차원의 문화유산보존을 주도하는 유네스코가 엠블렘으로 사용할 만하다. 하지만 종교성이 없는 파르테논은 무언가 핵심이 빠진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파르테논은 종교성을 핵심으로 하는 공간이었다. 원래 아테나 여신을 위한 신전이었고 비진틴 제국이 성립된 이후에는 정교회 성당으로 활용되었다. 15세기 오스만 튀르크가 이 지역을 점령한 후에는 이슬람 모스크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 내부에 있던 신상, 제대, 벽화, 성상은 훼파되고 교체되었다. 1832년 그리스가 독립한 이후에는 종교와 무관한 문화재가 되었고 이제는 탈종교화된 세계적 관광지가 되었다. 신전에서 교회로 그리고 모스크를 거쳐 문화재로 변모해오는 과정에 남은 것은 무엇이고 사라진 것은 무엇일까? 대리석 건물의 미학과 아름다움 속에 간직되어 있던 오랜 종교성과 그 교대 과정에서의 공존과 갈등은 더이상 기념할 대상이 아니어도 좋은 것일까 생각해본다.
유태인 출신으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저서를 쓰고 현대 정치사상에 한 획을 그은 한나 아렌트는 자유를 공적이고 시민적인 것으로 위치지으면서 아테네 폴리스를 소환했다. 과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 아고라의 민주정치가 이 시대에 필요한 시민들의 참여정신과 집단 숙의의 유산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중세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예술을 되살리면서 새로운 문예부흥을 주도했는데 21세기 르네상스를 다시 꽃피울 전통은 어디서 찾아질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려면 파르테논 신전과 아고라 광장을 고고학적 유적으로만 바라보는 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 공간의 안팎에서 살아 숨쉬었을 풍부한 종교성, 예술적 감성, 인류적 지혜의 유산들을 상상할 수 있는 안목이 필수적이다. 그게 쉬울 리 없는 내 안목의 협소함이 안타깝지만 아테네 방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기뻐하며 잠시나마 인류적 차원에서의 미학과 숭고함을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제25차 세계코리아포럼 (WKF)이 8월 14, 15 양일간 이스탄불 공과대학에서 개최되었다. “글로벌 대전환과 한반도의 대응”을 주제로 총 7개 세션에서 40여편의 발제와 패널, 토론이 이어졌고 마지막 행사로 국악 공연도 있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 일본 등 전세계에서 온 50여명의 전문가들이 최근 세계정세의 변화와 한반도 문제를 중심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4반세기의 기간동안 주요국 전문가들이 매년 만나 한반도 문제를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해온 이 포럼은 보기 드문 민간주도 지식인포럼의 한 사례라 할 만하다.
제1회 모임이 2000년 뉴욕에서 “남북정상회담과 동북아 신질서”를 주제로 개최되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포럼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난 남북정상회담이 자리한다. 그 이후 전개된 남북한 협력과 교류, 한반도 평화정착을 향한 전세계의 공조가 이 포럼의 성장과 발전의 조건으로 작용한 셈이다. 물론 이창주 의장의 헌신적 수고와 주위의 협력이 일차적인 동력이었지만 탈냉전기 한반도 주변상황이 이런 만남을 가능케 해준 긍정적인 배후환경의 도움도 부인할 수 없다. 참석자들의 국적과 전공, 배경이 서로 달라도 전문가들의 의사소통과 국제협력의 가능성을 공유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남북간의 협력과 화해, 평화와 통일이라는 큰 지향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포럼이 지속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지난 수년간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국제정세가 달라지며 국내의 정치지형과 국민정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북핵위기가 고조화되는 가운데 남북간 협력과 화해의 기조가 현저히 약화되었고 북한정권 및 남북협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훨씬 차가와졌다. 북한은 ‘적대적 2국가론’을 주창하고 러시아와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수립하면서 선대 이래의 남북 교류와 상호협력을 단절했다. 미중간 패권대립과 상호긴장이 커지고 한미일 공조가 기술경제 차원을 넘어 군사분야에까지 확대되면서 신냉전이란 시각도 커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전쟁의 여파가 다시금 안보불안, 이념적 대결, 민주주의 위기의식을 불러온다. 요동치는 국제정세의 충돌지점으로 한반도나 양안이 심심찮게 언급될 정도로 실질적인 전쟁 우려조차 나타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사정을 반영하듯 이번 모임에서는 학자들 사이의 견해 차이가 두드러졌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측 발제자들은 자국의 입장을 반영하여 한국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쏟아냈다. 어쩌면 신냉전은 담론의 장에서 더 먼저 형성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측 6자회담 대북특사를 지낸 조셉 디트라니는 미리 보낸 원고에서 북한의 더욱 대담해진 위협을 언급하면서 북한은 단지 한국에의 위협에 그치지 않고 동북아 지정학적 불안의 핵심임을 지적했다. 이제는 중국이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그린 포드 전 유럽의회 10선의원이자 아시아 투트랙포럼 대표는 달라지는 지정학적 상황에서 북한이 어떤 임장에 놓여있는지를 검토하면서 약자로서의 블러핑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가장 큰 견해차는 신냉전의 도래와 같은 대립상황을 야기하는 근본 원인을 보는 관점의 차이임이 확연이 드러났다. 중국과 러시아측 발제자들은 일관되게 한미일 연대가 위기의 본질이고 이에 적극 동참하는 한국의 책임을 지적했다. 이에 반해 유럽 및 한국, 인도의 학자들은 고조되는 북핵위협, 북중 및 북러 결속을 선행하는 위협으로 간주한다. 지구적 현안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진핑-푸틴 정상회담, 북한의 대러시아 무기제공과 김정은-푸틴 회담과 조약갱신 및 핵무력 강화시도 등을 보는 시선에서도 양자의 입장차는 현저하게 컸다. 숩슬라 스텐젤 전EU 의회 한반도위원장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에서 나토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은 러시아의 길에 동참하기를 꺼려하고 미국은 일본과 한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으며 유럽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을 반영하듯 신냉전 상황을 야기한 근본원인을 미국에서 찾으려는 러시아 학자들에 대해 EU의 전문가들은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중국 인민대 스인홍 교수는 현재의 한중관계가 자칫 ‘블랙홀’로 이어질 수도 있을만치 악화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야기하는 주요인이 한미일 동맹강화와 이를 최우선시하는 한국의 가치외교 탓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길림대학 장예지 교수도 한미일 협력강화가 신냉전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중국측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북중관계는 언제나 전략적이고 그런 속성은 지속적일 것이라고 보았다. 중국은 신냉전 상황을 원하지 않으며 여전히 지역내 안정과 평화를 바라고 유엔합의를 존중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중국의 국가이익을 견고히 지킬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알렉산더 제빈 박사도 현재의 위기 상황이 한미일 동맹강화에서 초래된 것이라 지적하고 러시아로서는 한러관계를 존중하지만 한국의 행동여하에 따라 보복성 조치도 나올 수 있다는 발언까지 덧붙였다.
전 북한주재 영국대사를 역임한 외교관 존 에버레드는 중국과 러시아의 현실인식의 기본구조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즉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원인은 기본적으로 북한, 러시아, 중국에 있는 것이고 한미일 협력강화는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것임을 잊어선 안된다고 했다. 연세대 장동진 명예교수 역시 같은 견해를 피력하였고 인도 델리대학의 선닐 교수도 동북아 및 동남아, 서남아 등지에서 중국이 지역의 불안과 우려를 심화시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영국 캠브리지대 라이트 교수는 북한의 위협이 심화되고 북중러 협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미일 삼자협력구조가 어떻게 형성되고 추진되어 왔는지, 그 중요성과 함께 과정상의 여러 어려움을 정리한 발제를 했다. 임반석 교수는 중국몽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통해 중국의 전략적 지향이 제국주의 경쟁시대 열강이 보여준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지적했다. 중국은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과 공존을 통해 지역평화와 발전의 공공재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모해야 함을 주장했다.
오프닝 세션에서 문정인 교수는 현재 상황을 보는 여러 시각들을 조망하는 발제를 했다. 미중 패권대립으로 큰 변화가 진행중이지만 신냉전이란 개념보다 차가운 평화의 시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평가하면서 지금이라도 평화와 안보를 향한 새로운 처방으로 유엔협약에 기초한 다자주의를 강화해야 함을 주장했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 동북아 안보협의체, 동복아 안보정상회의, 동북아 비핵지대화 등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장동진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러한 시각이 과연 현실성이 있겠느냐고 비판적 코멘트를 했고 청중석에서 동북아비핵지대화를 중국이 받아들이겠느냐는 질문도 제기되었다. 오랫동안 한국의 대외정책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현실정치에 깊이 관여해온 학자의 발제로서는 너무 막연하고 이상적인 내용이란 느낌을 피하기 어려웠다.
25년을 이어온 이 포럼이 더이상 지속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한 현실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뒤이은 서울-평양의 교류확대, 북핵해결을 위한 국제공조가 이루어지던 시기의 동력이 현저이 약화되면서 그 계기로 출범한 포럼의 역동성 역시 약화될 것은 예상되는 바였다. 하지만 어려워진 재정여건과 세대 교체 등으로 이 포럼의 지속여부가 불투명해진 모양이다. 민간 분야에서 이만큼 광범위한 국제적 네트워크가 지속되어온 다자적 학술장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상황이 아쉽지 않을 수 없다. 변화한 시대상황에 걸맞는 또다른 형태의 플랫폼이 새롭게 출현하리라 믿으면서도 당분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대화와 이해보다 비난과 논쟁이 심화될 것을 예감하는 듯해서 염려가 앞선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국악공연에서의 퉁소 소리가 더욱 애잔하게 내 마음을 울렸다.
올해로 25주년을 맞는 국제코리아포럼 참석차 오게된 이스탄불에서 제79회 광복절을 맞이했다. 이스탄불 거리와 건물 곳곳에 걸려있는 붉은색 국기를 보면서 튀르키에 역시 국가상징을 유난히 강조하는구나 생각을 했다. 군부가 주도하여 서구적 문명국가로의 길을 연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 그와 유사한 모델로 권위주의적 산업화를 추진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동시에 떠올랐다. 이슬람 정체성과 세속적 근대성의 공존방식을 두고 긴장이 커지고 있지만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형성되어온 민족적 자부심과 국가의식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역사박물관에서만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재확인되는 느낌이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세션에서 영국 캠브리지대학 존 닐슨 라이트 교수의 발제를 들으면서 한국에서 진행중인 역사논쟁을 떠올렸다. 라이트 교수는 ‘동아시아 신냉전 형성과정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이 지속적으로 일본 및 한국과의 연대 강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한일간의 여러 문제로 인해 번번히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의 기시다 내각 출범과 한국의 윤석렬 정부 출범은 삼자협력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절호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고 2023년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삼자회동이 상징하듯 한미일 협력의 강도와 수준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었다. 라이트 교수는 북중러의 위협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한미일 삼자협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보면서도 여전히 한일간의 역사쟁점이 큰 장애물로 남아 있다고 보았다. 한일이 모두 직면하고 있는 포퓰리즘도 중대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
광복절 당일 행사 중간 중간 한국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예상대로 야권 및 광복회의 불참 속에 반쪽의 광복절 기념식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윤석렬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도 부분적으로 알게 되었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강조하면서 과거를 벗어나자 했고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통일방안도 내놓았다 한다. 하지만 적절치 않은 연이은 인사들로 해묵은 역사논쟁을 불러 일으킨 것이나 진지한 토론과 전략적 평가가 수반되지 않은 새로운 통일방안의 제시가 얼마나 의미있는 결실을 맺을지 의심스러웠다. 평화와 우호의 한일관계를 열어가야 한다는 큰 방향은 공감되고 새로운 남북관계의 구상이 필요하다는 데도 동의하지만 정교한 로드맵이나 국민적 공감대나 상호신뢰구축의 준비 없는 선언적 논의가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움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때마침 카톡으로 이철우 교수가 동아일보에서 대담한 기사를 보내주어 읽었다. 착잡한 심정이 더해졌다. 대통령 주위에 아마도 한미일 연대를 위해 역사논란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조언을 하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외교안보의 중요성을 내세워 역사논란을 장애물로 여겼을 수도 있겠다. 어떠하든 그런 인물들을 중용한 대통령 책임이 아닐 수 없다. 광복절 행사논란을 보면서 해방 직후 3.1절 기념식을 둘러싸고 좌우진영이 대립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돌이켜보면 그때도 한반도 상황은 미소의 전략적 입장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국제환경의 조건을 강조하고 그 흐름과 함께 가는 체제수립을 추구한 세력이 남북한에서 권력을 잡았다. 민족자주론은 내부적으로는 대중의 심정적 공감을 불러올 수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허약할 수밖에 없는 자기중심적 대응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로부터 80년이 흐른 지금, 다시 세계는 분열되고 강대국간 대립은 심화되면서 신냉전의 도래가 운위되는 형국이다. 유럽에서는 전쟁이 진행중이고 동아시아가 다음 격전지가 될지 모른다는 염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북한의 위협은 커지고 북중러 연대도 강화되는 상황에 미국은 고립주의의 유혹을 받고 있다. 큰 전략적 사고와 외교적 지혜가 절실한 시기에 여전히 우리 논의가 친일논쟁, 과거사 논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 대중의 지적 자폐증, 포퓰리즘의 문제도 있지만 이런 잠재적 우려들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우리 정치권의 문제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상황이 초래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중지를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역사논쟁의 자중지란을 벌이게 만든 윤석렬 정부 거버넌스의 편협함과 무감각이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무더위가 계속이다. 에어컨을 켜고 산과 강을 찾아도 열대야의 고통을 참기가 어렵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교훈을 따라 여름을 노래한 두 편의 시를 화선지에 담았다. 서울대 화묵회 전시회 출품작으로 준비한 것이지만 무더위와 싸우는 내 나름의 방편이기도 했다.
두보의 夏夜歎은 ‘여름밤의 탄식’이란 제목 그대로 참기 어려운 무더위 속에서 나온 시다. 시인은 푹푹 찌는 열기 속에서 ‘만리청풍’을 기대하면서도 달, 빛, 바람, 벌레 등 만물이 크고 작음의 구별없이 제 스스로 편안코자 하는 것이 본성임을 확인한다. (物情無巨細 自適固基常) 이런 깨달음은 후반부에서 변방의 병사들의 고통스런 모습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져 세상사에 대한 탄식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나는 자적의 소중함을 노래한 전반부를 행초로 썼다.
안도현의 시는 여름으로 오는 길목에 만나는 싸리꽃, 산벌, 칡꽃 향기, 백도라지 미동, 소나기 소리, 매미울음 등을 ‘공양’이라는 화두 속에 담았다. 뭇 생명의 소리와 향기와 미동이 제각기 무언가를 향한 정성스런 기원이라고 본 시인의 시선이 놀랍고 그 무게감을 근, 평, 치, 발, 되 같은 척도로 표현한 신선한 발상이 아름답다. 이런 시인의 서정에 공감하면서 나도 대상마다 서로 다른 서체로 작품을 구성했다.
나라 안팎의 인간사를 보면 ‘탄식’을 금하기 어려운 요즈음이다. 무더위가 더하는 짜증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만물이 제각각의 아름다움, 지극함, 기원과 정성들을 지니고 있다는 섭리를 확인하는 것은 이런 답답함을 이기게 하는 소중한 깨달음이다. 힘든 더위와 성가신 벌레 조차도 우주와 나를 이어주는 생명 연쇄의 고리임을 확인한다면 두보와는 달리 ‘탄식’에서 시작해서 ‘감탄’으로 끝나는 발상의 전환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분들의 건강한 여름나기를 기원한다.
서울대 교직원 서예전시회가 8월 5일 서울대 미술대학 우석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올해의 전시 컨셉은 여름을 보내는 서정… 무더운 날의 시상을 화선지 묵향에 담아보려는 의도였으리라. 두달전 전시계획을 통보받고 나는 바로 두 작품을 마음에 떠올렸다. 무더운 여름날 변방의 병사들의 수고를 보며 멋진 시를 남긴 두보의 ‘하야탄’과 여름의 길목에서 자연의 역동적 흐름을 ‘공양’이라는 화두로 담은 안도현의 시다.
사실 봄이나 가을에 비해 여름을 주제로 한 시는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과거에도 지금도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두보는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만물이 각기 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임을 일깨우고 인간사의 부자유함과 억지스러움을 변방의 병사들을 통해 노래한다. 안도현은 풀, 비, 바람, 새 등 만물이 제나름의 공을 들여 여름의 무성함을 만들어왔음을 신선한 감각으로 표현했다.
두보의 한시의 전반부를 행초로 썼다. 자유롭게 운필하려 했는데 그럴수록 기본기가 바탕임을 절감했다. 작품을 써보다가 황희지의 초천문을 다시 연습하곤 했다. 한글도 좀더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어 여러 서체를 섞어 써보았다. 한자와 한글의 아름다움이 서로 다르면서도 붓의 감각에서는 상통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