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유해가 묻혀있는 무덤을 찾는 성묘문화는 오랜 전통에 뿌리박고 있어서 21세기 첨단문명의 시대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기독교 가정에서 제사의 관행과 멀리 떨어져 자란 나조차도 성묘를 가지 않는 부담을 느낀다. 추석인사에 으례 성묘 다녀왔느냐는 말이 건네지고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니 앞으로도 그 생명력이 길 듯 싶다.
조부의 묘역에 비석을 세우고 단장하는데 정성을 쏟던 부친에게 모친은 늘상 타박을 하곤 했다. 돌아가신 조상보다 살아있는 자식이 더 중하고 썩어질 육체보다 죽지 않는 영혼이 더 소중하다는 소신이 뚜렷했다. 두 분 사이에는 유교문화의 세계관과 기독교적 세계관이 사사건건 충돌했다. 찾는 이 없이 세월과 더불어 퇴락해가는 조부모의 산소를 둘러보면서 그 때의 여러 모습들이 떠올려졌다.
곰곰 생각해보면 이 긴장은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아니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 내 머리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과장법을 동원한다면 동양과 서양의 충돌이고 근대와 전통의 긴장일 수도 있다. 늦게나마 성묘길에 오르는 내 행동의 바탕에는 도교와 유교가 뒤섞인 정서와 합리적이고 기독교적인 가치가 부딪치는 긴장을 해소하고픈 욕구가 자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