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해보기 시작한 물로 쓰는 글씨연습이 퍽 재미있다. 화선지에 물만 적신 붓으로 안진경의 ‘쟁좌위고’ 행서를 임서해 보는데 의외로 먹을 사용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획의 강약과 섬세함이 잘 드러난다. 글을 쓴지 십여분 만에 글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지만 어차피 남기려는 뜻이 없는 연습일 바에야 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깨끗한 화선지를 다시 사용할 수 있고 연습이 끝난 후 붓을 빨아둘 필요도 없으니 금상첨화다. 짧은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기도 좋아 붓을 잡는 시간이 오히려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
화선지에 공들여 쓴 글자가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삶의 한 단면을 보는 느낌이다. 정확한 필획의 모습을 구현하려고 최선을 다해 써 보지만 그 디테일은 서서히 사라지고 마침내 흰 화선지만 남는다. 어제의 행적과 성과가 어떠하든 늘 새로운 내일이 주어지는 인생의 이치와 같다고 할까. 어쩌면 우리 삶이 먹으로 쓰여지지 않고 물로 쓰여지기에 희망이 있는지도 모른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어제도 잊혀질 수 있고 늘 새롭게 시작할 내일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잘못도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의 구원사상이 과거에 억메인 인생에게 큰 해방의 복음이 될 수 있음을 몇 번이고 재생되는 화선지 속에서 떠올리게도 된다.
하지만 우리 삶이 전부 물로만 쓰여지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끝끝내 없이지지 않고 인생 전반에 긴 영향을 남기는 과거도 적지 않은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로 쓴다고 생각했는데 사라지지 않는 과거도 있고 먹으로 썼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들도 적지 않다. 사라질 기억과 남길 과거를 내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먹과 물을 선택할 자유가 애초부터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붓으로 쓸 뿐이고 그것이 물로 쓰여질지 먹으로 쓰여질지를 결정하는 것은 절대자의 권한일른지 모른다.
그래서 쓰는 순간에는 먹인지 물인지 의식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을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물로 쓸 때는 마음가짐부터 먹으로 쓸 때와 같지 않아 마음은 편한데 집중도가 떨어진다. 인생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내일이란 새로운 기회가 한없이 주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오늘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이 약해지기 쉽다. 그렇다고 매일을 공든 작품 쓰듯 모든 힘을 쏟아붇는 것은 감당하기도 어렵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물로 쓰는 여유와 먹으로 쓰는 집중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의 균형감이 중요할텐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