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경성제국대학

정준영 교수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연구]라는 책을 출간하고 보내준 것을 두 달이나 지나서 훑어보았다. 경성제국대학은 국립서울대학사를 포함하여 한국학술장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주제이지만 제도사나 정책사 차원이 아닌 지식사의 대상이 된 경우는 드물다. 學知의 탐구와 연결, 그 사회역사적 영향이란 묵직한 시선으로 이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시도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은 6명의 학자를 다룬다. 경성제국대학 초대총장이자 저명한 동양학 연구자였던 핫도리 우노키치, 도쿄대 사학과 출신으로 초창기 조선사학 연구를 주도한 오다 쇼고와 이마니시 류, 도쿄대 지나철학과 출신으로 중국의 학술문화가 조선과 일본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추적한 후지쓰카 지카시와 아베 요시오, 미국 유학자이자 독실한 기독교도로 강압적 식민정책을 비판했던 이즈미 아키라 등이다. 이들 연구자들의 학술활동을 통해 식민주의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이 어떻게 지식의 형태로 공존할 수 있었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식민통치와의 연결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단순한 사실왜곡이나 정책효과만으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문제의식이 야심차다.

식민사학의 극복을 부르짖은지 수십년이고 한국학의 전 세계적 확산을 지향하는 지금, 식민지 시대 일본인 학자의 조선연구를 추적하게 만든 동력은 무엇일까? 이태진 교수가 주도한 총서기획이 ‘식민사학의 극복’을 표방한데서 그 답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문제의식에 더하여 정치사나 제도사의 시각과 다른 지성사의 독자적 공간을 탐색하려 한다. 다루어진 6명의 인물들은 개인적으로 성실하고 유능한 학자들이면서 동시에 식민지 문화통치의 주요한 기능수행자였다. 연구자의 시대적 환경과 학문적 가치지향 간에는 암묵적 협력과 잠재적 긴장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이들에게 이 문제는 2차방정식이 3차 방정식으로 바뀌듯 더 복잡했을까 아니면 오히려 1차 방정식처럼 단순화되어 있었을까? 결국 연구자의 존재구속성과 자율성이란 쟁점으로 이어지는 지성사 고유의 문제와 맞닿는다.

일본에 중점을 두면서도 중국, 일본, 조선을 가로지르는 문명 교류사의 맥락에서 조선을 연구했던 이들의 유산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도 남겨진 과제다. 저자는 이 책에 “지양으로서의 조선, 지향으로서의 동양”이란 부제를 달았는데 지양과 지향의 종합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실제로 후지쓰카가 청조문명의 조선전파가 독특하고도 독보적임을 확인하고 홍대용, 박제가, 김정희의 높은 성취를 평가한 것, 아베 요시오가 송명학의 일본 전래길에 우뚝 선 퇴계 이황을 주목한 것은 지금도 의미있는 지적 유산이 되어 있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후지쓰카 교수의 컬렉션 일부를 하바드 옌칭 도서관에서 찾아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 식민지 하에서 한중일을 잇는 네트워크는 더욱 확대된 것이 사실이다.

식민지 하 동양연구는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뒷받침하는 작업이 되고 말았고 결국 해방후 그 맥이 단절되었다. 하지만 냉전기를 겪으면서 기피되고 잊혀진 것일 뿐 그것을 지적으로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면으로 부딪쳐 그 유산과 싸울 기회를 갖지 못한 채 1990년대 이후 한중일을 함께 사고하는 논의는 급격히 증대했다. 일본 학계의 논의가 적극 소개되고 중국과의 교류가 급진전하면서 한중일 학술회의가 붐을 이루기도 했다. 그 맥락에서 동아시아 범주가 주목을 받았고 동북아 지역연구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다시 동북아는 정치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숨고르기를 하는 형국이다. 미중의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중관계도 소원해지고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중국은 중화주의로의 노골적인 경사를 뚜렷이 하고 있고 일본도 자국주의로의 걸음을 가속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 동북아시아는 어떻게 상상되어야 할까? 오늘의 동아시아나 동북아는 동양학의 지향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가치와 문명의 차원에서 서구의 존재는 배제해도 좋은가? 질문은 계속되고 공부할 과제는 끝이 없다. 정교수를 비롯한 유능한 후학들의 건투를 비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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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과 사회의 탄생

포스텍 융합문명연구원장 박상준 교수의 신작 [현대 한국인과 사회의 탄생]을 중심으로 한 세미나에 줌으로 참여했다. 흥미로운 주제인데다 박교수로부터 그 책을 증정받은 고마움도 있어 즐겁게 동참했다. 융합문명연구원을 설립한 초대원장 송호근 교수, 토론자로 온 권보드레 교수, 작가이자 사회학자인 정수복 박사도 볼 수 있어서 더욱 반가왔다.

한국에서의 사회 형성은 나도 관심을 가져온 주제다. 개념사와 사회사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전환기 역사를 해석하는데 미력이지만 애를 썼다. 유교적이고 자족적이었던 전통체제로부터 벗어나 낯선 시대에 직면한 한국인들에게 ‘사회’란 ‘문학’이나 ‘개인’ 못지 않게 새로운 현상이었고 그것은 현실보다 개념의 형태로 ‘다가올 미래’를 표상했다. 애국계몽운동기, 글쓰기를 담당한 식자층들이 이런 미래를 상상하고 새로이 등장한 매체가 그것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인직이 사회 개념을 ‘만세보’에 소개하고 이광수가 문학을 강조하며 청년들이 사회운동에 관심을 보인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문제는 식민지라는 조건, 국가를 잃게 된 상황에서의 ‘새로운 미래’ 상상이 겪어야 하는 제약이었다. 사회, 문화, 개인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전제함으로써 그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근대의 특징이다. 1910년 국가의 소멸은 식민지 하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개인과 사회, 문화를 어떻게 사고해야할지 새로운 곤경을 야기했다. 이 시기 등장한 민족범주는 혈연적이고 문화역사적인 공동체로서 국가를 대체하는 효율적인 주체로 부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과 사회의 공간을 열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현대한국인의 탄생을 국가나 민족이 아닌 사회의 탄생과 연결시키고 그것을 문학의 장에서 확인하려는 발제자의 시각은 참신하다. 권보드레 교수도 민주주의의 문제를 소환한 것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20세기 한국의 지성사를 꿰는 화두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주목할 때 사회의 영역과 개인의 존재가 좀더 잘 부각될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다. 어쩌면 민족주의, 사회주의, 국가주의의 과도한 영향을 벗어날 때 문학이 미친 심대한 영향을 더욱 또렷이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

종교의 문제가 결락된 것 아닌가는 질문이 청중에게서 제기되었다. 내 개인의 체험으로도 개인과 사회라는 말에 이끌린 바탕에는 기독교적 사유가 작용했음을 또렷하게 느낀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던 동학과 천도교의 영향도 20세기 초반에는 매우 강력했다. 실제로 개인의 존재, 그들의 자발적인 연대로 형성되는 사회를 강력히 옹호한 것은 정부도 민족도 아니었고 종교단체를 비롯한 민중의 결사체들이었다. 개인의 각성이 정치적 권리나 경제적 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과 맞서는 종교적 윤리체계에서 비롯되었다는 막스 베버의 명제를 떠올렸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종교는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좋은 세미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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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의 세계화?

보스턴에서 만난 적 있던 Peggy Levitt 교수가 자신이 쓴 논문을 보내왔다. 하바드 한국학연구소에서 개최한 문화관련 심포지엄에서 만났다가 심보선 교수와의 인연을 알게 되었고, 마침 한국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직후라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이후 다시 전반적인 한국상황을 알고싶다고 해서 약 한시간 반 정도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다.

글이 던지는 질문이 신선하다. 저자들의 관심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에 담겨있다. ” How does art from what have been culturally peripheral countries that were not former colonies of Western powers scale shift or find its way to the global center? What can the Korean case tell us about the circulation of contemporary literature in a “small language?” 한마디로 서구 식민지도 아니었던 주변부 국가의 예술이 지구적 중심부로 진출할 길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한국의 사례는 그런 ‘소수 언어’가 세계문화에 대해 미치는 영향력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가?

BTS의 인기와 K-Culture 의 영향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아직 적절한 설명틀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정부의 정책효과로 설명하고 누구는 한국인의 독특한 기질을 강조한다. 필자들은 문학의 “하부구조”라는 말로 포괄될 수 있는, 쓰기, 읽기, 출판, 마케팅의 플랫폼, 통로, 켄테이너, 대문들에 주목한다. 한국문화의 세계화가 주변부-중심부 패러다임의 단순성을 극복하고 비서구 사회의 문화가 지구적 중심성을 획득할 수 있는 설명도식으로 보완, 활용될 수 있을지 기대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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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판의 댓가, 무능의 비용

외우 조태열 전 유엔대사가 27일 매일경제에 실린 컬럼에서 2018년 전격적으로 추진된 북미정상회담이 중국을 alert 시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게 만들었고 북중을 밀착시켜 결국 북한비핵화를 위한 국제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돌이켜보면 2017년 당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유엔 차원의 국제공조는 꽤 잘 작동했고 여러 제재가 합의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목을 끌었던 남북미 탑다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난 후 오히려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공조는 더욱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남북간의 불신과 갈등이 해소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북한의 대남비방과 핵위협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이 역설적 상황을 직시하고 북한비핵화 전략구상 전반을 재검토하고 플랜B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대사는 주문한다.

29일 아침엔 최근 혹서와 전력난의 전례없는 어려움을 겪는 유럽 현지의 위기가 결국 러시아 위험에 대한 전략적 판단미스에 기인한 것이란 컬럼을 읽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급격한 가스공급 축소는 유럽이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 사회적 불안과 안보위기를 동시에 겪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50% 이상인 독일은 특히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치고 있는데 장차 환경오염이 심한 갈탄 화력까지 사용할 각오지만 장기적 전망은 불투명하다. [더컬럼니스트]의 컬럼은 이런 상황을 초래한 이유가 독일의 “과도한 친러시아 정책의 안일함”에 있다고 지적한다. 탈냉전 이래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리스크, 전략적 위험성을 경시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정부가 북한에 대해 가졌던 기대와 탈냉전 후 독일이 러시아에 보인 대응을 같은 차원에서 취급할 순 없다. 하지만 그 기대가 좌절당한 현실 앞에서 그간의 전략구상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아야 할 상황 자체는 확실히 유사하다. 또 한국의 진보정부가 북한 정권과의 협력가능성을 강조할 때 늘 독일의 ‘접촉을 통한 변화’는 좋은 참조이자 선례이기도 했다. 독일은 탈냉전과정에서의 성공적인 통일과 유럽통합의 경험 위에서 신뢰와 통합의 힘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새롭게 변화시키리라 믿었을 듯 하다. 하지만 2022년 현재 한반도도 독일도 그간 견지해온 정책적 전망의 타당성이 흔들리고 그 바탕을 이룬 이론적 공감력도 크게 동요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누구도 원치않던 오늘의 현실은 정책적 오판의 아픈 댓가라 해야 할까? 타당한 정책이었는데 상대방의 배신이 빚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일까? 대국주의와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는 국제질서의 퇴행 탓일까? 탓할 대상 찾기가 능사는 아니지만 역설적 결과를 가져온 정책에 대한 냉정한 검토 없이는 오류를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우리의 현실판단과 정책형성 프로세스 전반을 전면적으로 성찰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하지만 새정부의 어슬픈 언행과 정치권의 구태를 보노라면 오판의 댓가 못지 않게 무능의 비용도 크게 치루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과학기술 영역에서 논의되는 “혁신”이 정작 절실히 필요한 곳은 오히려 정치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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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을 넘어서”

백광열 박사가 공들여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호주 캔버라 대학의 황경문 교수의 Beyond Birth 를 옮긴 것인데 다소 도발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문제의식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보편적 발전도식에 맞추려는 시각을 거부하고 전통시대의 한국적 특성이 누적적으로 작용한 장기효과에 주목한다. 사회혁명이 부재한 사회로 파악하면서 근대로의 이행과정에서 주요한 지위상승을 이룬 엘리트의 성장과 그 과정의 성격을 설명하려 한다.

이 책은 중인, 향리, 서얼, 군인, 서북인 등 양반층에 비해 신분적 지위가 훨씬 낮았던 ‘제2신분집단’을 주목한다. 저자는 고려시대 이래 가문과 교육과 관료제의 복합적 연계 속에서 일종의 비귀족 엘리트층이 형성되었고 이들의 독특한 심성과 아비투스가 20세기 이래 특권적 엘리트층을 구성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전통사회의 특질을 세밀하게 밝히는 역사학적 실증을 넘어 한국사회에서 확인되는 서열의식, 신분의식, 평등의식, 공정의식의 기원을 탐구하려는 장기사회사적 시선이 신선하다.

영미권의 한국학 저술은 한국 학계의 문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서구중심적 서술이 이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동서양을 아우르는 비교사적 시각과 개념화 능력에서 주목할 만한 장점도 적지 않다. 이 책 역시 신분원리와 국가관료제의 공고한 결합, 그 틈새에서 생존해온 ‘제2신분층’의 기민함, 전통적 심성의 장기지속성 등의 주장은, 추가 분석이 필요하지만 흥미롭다. 조선시대 신분제도, 특히 양반지배층의 네트워크 특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하고 있는 백광열 교수가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 이런 저작을 번역 소개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뜻깊고 성원할 일이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다시 출생과 가족, 신분을 주목하게 만든다. 교육을 통한 상승이동의 가능성이 막히면서 금수저 흙수저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평등주의가 너무 강한 사회라 하고 다른 한편에선 새로운 신분사회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지속적 발전을 위해 경쟁주의와 실력주의를 강화하자는 주장과 과다경쟁이 야기하는 사회공동체 해체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이 책의 제목인 Beyond Birth 가 특권층의 형성원리를 넘어 평등사회 실현으로 이어지려면 또 얼마나 많은 애씀과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인가? 책장을 넘기면서 떠올리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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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5 의연함과 떨림

독도를 오가는 뱃길은 편치 않았다. 흐린 날씨에 파도도 높아 배는 꽤나 흔들렸다. 바다는 한 곳도 고요하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듯 마주친 독도는 의연했다. 끝없는 파도의 요동과 바람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독도의 모습에서 의연함이란 이런 것이라는 메시지를 듣는 듯 했다. 청마 유치환의 “저 먼 아라비아의 사막”이 이와 같았을까 모르겠다. 하늘과 바다가 함께 연출하는 거대한 정적 속에서 독도는 ‘존재 그 자체의 힘’ 을 강렬하게 대변했다. 우주에 비하면 티끌같은 크기이지만 그 우주적 스케일에 당당히 맞서는 인간이 저런 모습 아닐까.

돌아오는 뱃길은 더욱 파도가 거셌다. 순식간에 생겨나 몰려왔다가 부서지는 물결을 보면서 고등과학원 이필진 교수의 강의 “거시세계의 양자물리”를 떠올렸다. 최근 즐겨듣는 동영상 강좌 중 하나인데 미시세계든 거시세계든 존재의 본질은 일종의 파동 즉 움직임이며 모든 물질과 존재는 그 떨림으로부터 생성된다는 것이다. 입자와 반입자의 생성과 소멸이 끝없이 진행되는 양자요동의 이미지가 파도치는 바다에서 연상된 것은 엉뚱하면서도 신기했다. 자칫 색즉시공의 동양철학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경계할 일이지만 최신 물리학의 설명이 내 근대적 사유의 틀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좋은 자극제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의연함과 떨림, 그것은 모든 존재가 지닌 두 속성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삶 속에서 요동않는 무게감과 한없이 가벼운 떨림 사이를 수시로 오간다. 때론 손해를 알면서도 내 주장과 의지를 고수해 보지만 자신만만했던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또한 얼마나 많은가. 나침반이 언제나 북쪽을 가르칠 수 있으려면 미세한 움직임에도 흔들리는 가벼움이 필수적이라 했다. 그런 점에서 의연함과 떨림은 양자택일의 대상이라기 보다 동전의 양면이다. 문제는 균형이다.

국악 페스티벌 풍류대장 1회 우승팀 서도밴드가 ‘바다’란 노래를 불렀었다. 굿을 하듯 토해내는 그 노래는 끝없는 파도의 요동침을 moving 과 무너짐으로 표현했다. “이미 너는 알지 이 moving / 다시 무너진다는 걸.” 무너져 버리지만 끝없이 쉬임없이 움직이고 요동치는 것 – 이 속에 바다의 의연함과 떨림이 함께 하는 것이리라. 그 노래를 들으며 인생을 떠올리기도 했었다. 물리학자와 천문학자, 시인과 가수가 함께하는 섬여행, 별여행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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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4, 마음 속 그림

가없는 바다 한 가운데 동도와 서도가 마주하고 그 사이에 작은 바위가 점처럼 이어진 독도전경은 그 자체로 한폭의 수묵화다. 잿빛 하늘과 검푸른 파도를 배경으로 암갈색의 독도를 향해 배 위에서 마구 누른 카메라 샷 어느 것 하나 명장면이 아닌 것이 없다. 독도는 그 자체가 그림이지만 그리기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유명한 화가들이 독도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전국의 학교, 단체들이 독도그림 그리기, 독도그림 전시회를 주도한다.

일찌기 독도 그림그리기를 주도한 서울대 이종상 화백은 그것을 민족문화를 지키는 운동이라 했다. 초등학생들의 독도그리기는 그림 자체보다 영토주권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종의 교육이다. 그래서 독도 그림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다. 올해 초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 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설 선물을 수취거부하고 반송했는데 선물상자에 독도로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라 했다. 독도가 빠진 한반도 그림을 사용한 단체나 책자가 대중의 비난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추상화된 독도 그림이 격렬한 감정정치의 진원이 되는 미묘한 현실이다.

그래서 독도 그림은 백두산, 금강산과 함께 남북간에 공통의 정서를 확인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남북이 함께 모이는 곳에는 으례 금강산과 백두산 그림이 걸리는데 독도도 비슷한 기능을 지닌다. 남북관계 개선의 기대가 있던 2019년에는 북한의 대표적 화가 정창모와 선우영의 독도 그림 전시회가 경북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정창모의 이름은 십수년전 평양을 방문했을 때 들었고 만수대 창작소에서 담묵과 농묵만으로 그린 백두산 설경 그림에 경탄한 적이 있다.

독도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종상의 “독도의 기 II” 작품은 수묵의 농담으로 상하 대칭의 삼각형 형상을 배치한 것인데 이 그림에서 굳이 정치역사적 의미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먹의 농담만으로 바다위 독도를 그린 정창모의 수묵화 마찬가지다. 사실 독도 앞에 서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바다와 하늘, 섬이 빚어내는 모습에 감탄한다. 흰 화선지 위에 검은 먹으로 잿빛 하늘과 바다 가운데 짙은 색의 독도를 그려보고 싶지만 당분간 머리 속에만 담아두기로 한다. 남북이, 한일이 손잡고 독도를 다시 갈 때면 얼마나 감격스럽게 마음 속 그림이 바깥으로 표출될 것인가! 그 날이 언제나 올까 궁금함과 함께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의구심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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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2, 컨텐츠의 시간성

울릉도에는 여러 기념관과 전시관이 있다. 방문자들로 하여금 독도가 한국령임을 확신하게 만드는 교육공간의 성격이 강하다. 울릉도와 독도의 한반도 귀속을 보여주는 과거의 문서와 지도들이 전시되어 있는가 하면 이곳을 생활터전으로 삼고 살았던 사람들의 행적이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수토사와 같이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관리의 문서와 활동도 있고 홍순칠 등 독도의용수비대와 같이 민간인의 활동이 중심이 된 전시도 있다. 시마네현 고시를 시작으로 일본이 독도를 침탈한 과정도 소개되어 있는가 하면 해방후 미군정이 독도의 한국령임을 명확히 확인해준 SCAPIN 자료 등도 전시되고 있다.

뜻밖에 방문하게 된 박정희 기념관은 또다른 공간이었다. 1962년 울릉도를 방문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회의 의장이 묵었던 일본식 관사를 개조하여 제3공화국 시기 개발정책과 성과들을 종합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는 소위 국적있는 교육을 내세워 국가주의 역사관을 강조했는데 그 맥락에서 안용복 기념비를 세우고 독도의용수비대를 청와대로 초청하는 등 독도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다. 이 기념관은 박정희 정부 시기에 진행된 개발과 동원, 상징정치의 여러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전시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1960년대와 70년대의 기억을 재생하고 있다.

21세기 울릉도의 변화는 심대하다. 관광객은 늘어나지만 2만명에 달하던 주민 숫자는 8,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어업이 주를 이루던 경제활동 양상도 관광서비스업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다. 고즈넉하던 항구와 마을은 관광버스와 렌트카로 혼잡하다. 이미 생태환경의 파괴가 적지 않이 진행되었는데 장차 공항이 들어서면 더 가속화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조인된 신한일어업협정이 울릉도와 오키도를 기점으로 중간공동수역을 결정한 것 때문에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는데 그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이곳의 어업활동이나 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최근의 생활상, 진행되는 문화사를 보여주는 전시관도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독도영유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전시가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동시에 나날이 바뀌는 현실과 궁금해하는 내용의 다양성을 반영할 컨텐츠 보완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세대감각이 다르고 우리 사회의 문제가 복합적인 만큼 과거와 현재, 육지와 바다, 정치와 경제, 문화와 생태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내용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일은 단순한 전시방식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일대 혁신이 필요한 어려운 과제이긴 하다. 任重道遠, 임무는 중한데 갈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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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1, 유치환과 김민기

청마 유치환의 ‘울릉도’ 시비가 독도박물관 입구에 서 있다. 울릉도를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묏부리 방울 튀어” 이루어진 “애닯은 국토의 막내”라고 노래한 시인의 상상이 기발하다. 울릉도와 한반도의 밀접한 연결성을 이 표현 이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시인의 상상력은 문화와 역사, 정치로까지 이어져 “멀리 조국의 사직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올 적마다/ 미칠 수 없음이 이렇게도 간절”한 “어린 마음”을 울릉도에서 읽어낸다. 식민지와 분단, 전쟁의 험난한 역사를 살아와야 했던 시인 자신의 정서가 먼 바다 외딴 섬의 모습 속에 투영되었을 법하다.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 앞에도 또다른 시비 하나가 서 있다. 70년대 문화운동의 주역이었던 김민기의 “내 나라 내 겨레” 라는 시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위에 이글거리나”로 시작되는 이 글은 송창식이 곡을 붙인 노래로도 널리 알려졌다. “피어린 항쟁의 세월 속에 고귀한 순결함을 얻은 우리” 라거나 “눈부신 선조의 얼 속에 고요히 기다려온 우리 민족”이라는 표현 속에서 전쟁과 가난과 독재를 뚫고 의연히 성장해온 한반도 백성에 대한 강한 신뢰를 읽을 수 있다. 이 시비 건립을 위해 2000년에 김민기가 새로 글씨를 썼다는데 민주화된 21세기를 맞이하는 감격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이 글에 덧입혀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유치환의 시와 김민기의 시는 정서와 분위기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청마의 시에서는 애절함과 고독함이 강하게 느껴지고 김민기의 노래에선 자신감과 공동체성이 읽혀진다. 청마는 바다, 파도, 바위, 사막 등을 통해 꺾이지 않는 생명의 강인함을 확인하려 한데 반해 김민기는 항쟁의 역사와 선조의 얼, 순결함과 기다림의 공동체를 노래한다. 유치환이 울릉도를 통해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을 읽어내는 것과는 달리 김민기는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라며 선언하듯 과감하게 자신감을 피력한다. 이 두 시비 건립의 사이에는 수십년 한국 현대사가 자리하고 두 시인의 감성 사이에는 그동안 변해온 시대정서의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2022년 지금 또 다른 시인이 이곳에서 노래한다면 어떤 정서를 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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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3, 石 돌 獨

독도가 석도임을 논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얻은 중요한 성과다. 1900년에 제정된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의해 울릉도가 울도군으로 지정되면서 그 관할지역으로 울릉전도와 죽도, 그리고 석도가 적시되었다. 죽도가 어디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석도란 지명이 논란이다. 한국은 석도가 곧 독도이며 역사적으로 지녀온 영유권을 1900년 대한제국 칙령으로 재확인한 것으로 설명한다. 반면 일본은 이 석도가 현재의 관음도라고 주장하면서 독도의 한국영유권을 부인하는 근거로 삼으려 한다.

제한된 문서자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현장의 공간감과 생태적 특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영호 이사장의 주장에 모두 공감하면서 관음도, 죽도를 방문하고 이름과의 연관성을 비교했다. 죽도에는 산죽이 곳곳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죽도 또는 댓섬이란 이름이 그 생태적 특성에서 온 것임이 분명했다. 반면 관음도는 나무가 울창하고 경관도 수려해서 석도라는 이름과는 그 생태적 특성이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현지인들이 부른다는 섬목이라는 지명 역시 석도나 돌섬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반해 독도를 본 첫 이미지는 분명한 돌섬이었고 그것은 석도라는 이름값과 정확히 부합한다. 독도와 죽도, 관음도를 둘러본 후 나는 돌섬과 석도, 그리고 독도가 같은 지명이라는 설명이 타당하리라는 확신이 보다 강해졌다.

기록상 독도가 처음 나타나는 것은 1905년 일본 해군성 소속 군함 신고호의 항해일지인데 여기에는 ‘리앙쿠르토 암을 한인들은 독도라고 쓰고 본방인들은 줄여 량코도라고 부른다’라고 되어 있다. 1906년 울도 군수 심흥택이 오키도 관리들의 방문을 받고 그 결과를 보고한 기록이 ‘본군 소속 독도가…’라고 시작함으로써 한국 문헌 속에 독도가 처음 등장했다. 기술 내용으로 미루어 이전부터 독도라는 이름이 울릉도 주민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그것이 현지의 돌섬, 석도와 같다는 추정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한글학회의 지명조사나 신용하 교수 연구서에는 돌섬을 독섬 또는 석도로 표기하는 다른 사례들이 여럿 언급되어 있다. 울릉도에서 나고 자란 홍성근 박사의 상세한 지명 고찰 역시 그것을 뒷받침한다.

1900년대 초반은 일제의 조선병탄이 본격화되던 때이면서 동시에 갑오개혁 이후 표기법의 심대한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다. 많은 고유어들이 한자어로 바뀌고 그 과정에서 동음이의어가 혼용된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돌섬이 석도로, 다시 독도로 달리 불리고 쓰이게 된 것도 현지의 우리말, 그것의 한자표기, 음차와 훈독의 뒤섞임이 초래한 결과다. 전라도에서 이주해온 주민들이 돌을 독이라 부르는 방언을 사용하여 멀리 있는 돌섬을 독섬이라 불렀고 그것을 관리가 표기할 때 어떤 경우는 석도로 또 다른 곳에서는 한자를 음차하여 독도로 기록했던 것이다.

인터넷에는 독도를 ‘외로운 섬’으로 부른 홀로 아리랑 노래 가사를 수정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獨島’의 獨은 음차에 불과한 것이어서 그냥 독이나 돌로 읽어야 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독도와 석도와 돌섬을 연결하는 논지와 부합하는 타당한 주장이다. 그렇지만 망망한 바다 한 가운데서 독도를 보면 외롭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니 실효적 지배가 확실한 오늘 외로운 섬이라 부르는 문학적 표현을 막을 수도 없어 보인다. 어쨋든 돌섬, 석도가 독도임을 확증해주는 분명한 문서자료가 부재한다는 점은 아쉬운 현실인데 일본의 부당한 주장을 완전히 잠재줄 수 있을 명료한 문서가 발굴될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