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진주문고 전시

하동에서의 전시가 진행되는 중 뜻밖에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진주지역 문화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여대표는 감사하게도 내 전시를 진주에서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때마침 진주문고 40주년을 기념하는 해여서 여러 전시가 기획되고 있는 터라 그 일환으로 전시로 7월 29일부터 8월 10일까지 진행되었다.

진주문고라는 큰 공간, 현대적 분위기의 전시실이 하동 빈산갤러리와는 또다른 느낌을 주었다. 고즈녁한 풍경이 없는 대신 서점과 연결되어 책을 보러오는 많은 사람들과 자연스레 만나는 장점이 크다. 박경리 작가를 좋아하는 90대 어르신도 만나고 20대 청년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박경리 선생과 내 어머니가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란 생각때문인지 특별한 친근함을 느꼈다. 진주여고(일신고녀)는 작년에 100주년을 맞았는데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의 하나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외우 이종민 교수와 김사인 시인이 우정출연해 주어 작가와의 대화가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이교수는 생각지도 않게 그동안 내가 간간히 쓰고 그린 작품들을 모아 ppt 로 참석자들에게 소개하면서 나를 ‘작가’ 처럼 대우해 주었다. 김사인 시인은 진솔하게 내 글씨 속에 담긴 정성을 읽어보라고 덧붙임으로써 내 격을 높였다. 박남준 시인, 한길사 김언호 대표도 자리를 함께 했고 지역의 문화계 인사들이 다수 참여했다. 진주와 마산의 누이 가족도 참석해 주어 감사했다. 다음날에는 정근식 교육감, 한경구 교수, 김시연 사장 등도 내려와 격려해 주었다. 마지막날엔 전 인제대 총장 성창모 박사가 힘든 발걸음을 해주었다.

온종일 진주문고를 중심으로 책과 사람과 문화의 연결이 신선하게 이루어지는걸 경이롭게 경험했다. 건강한 지역의 문화생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한 단면을 본 느낌이다. 이 소중한 경험을 어떻게 기록해둘까 고민하던 중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의 글을 접했다. 과분한 평가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저런 정성과 노력이 진주문고 책방을 주목할만한 문화공간으로 만든 원동력이었으리라는 생각에 그의 글 일부를 옮긴다. 그 바램대로 간밤의 단비같은 시원함과 풍성함이 사회 곳곳에 가득하길 기원한다.

[박명규 서예전 2] – 진주문고 여태훈

하동 악양 빈산 갤러리에서 시작된 박명규 서예전이 진주에서 끝났다. 박경리 선생 탄생 100주년, 진주문고 창립 40주년 맞이 특별 기획이었다. 열흘간 전시된 작품은 수많은 갤러리의 탄성을 자아냈고 비치된 방명록 3권이 모자라게 감상평을 남겼다.

전시 이튿날 대담이 백미였다. 이종민 교수의 박학다식과 순발력 있는 진행, 박명규 작가의 막힘없는 술술 답변, 두 분을 오가며 빠진 것은 채우고 모자란 것은 살을 붙여 완벽한 보충을 해주신 김사인 시인. 2시간을 넘겨도 자리를 꽉 채운 독자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세분의 정담에 귀를 기울였다.

작가와의 만남 다음 날(7.31)엔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이 전시장을 방문했다. 권순기 경남 교육감도 오셨다. 덕분에 경남과 서울시 교육을 책임지는 두 수장이 저희 서점에서 자리를 함께한 영광스러운 장면을 남기게 되었다. 두 분은 기꺼이 서점을 위한 응원과 모델을 자청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지필묵을 보고 연필보다 붓을 먼저 잡았다는 박명규 작가. 작품은 필법에 얽매이지 않았지만 단아하고 자유롭다. 칠순을 넘긴 노학자의 꼿꼿한 기상이 낡지 않았고, 오히려 현대적인데 캘리그라피와는 다른 질감을 보여준다.

전시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을 사연과 사람은 남았다. 책과 사람이 만나, 사람과 사람을 잇는 40살 책의 집에 기분 좋은 빚과 빛이 쌓여만 간다. 모처럼 간밤부터 시작된 단비가 지리산 자락에 내린다. 사납지 않은 순한 비가 메마른 대지를 흠뻑 적시고도 남아 섬진강을 채우고 남해로 잘 흘러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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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100주년 기념 서예전

6월 27일부터 7월 18일까지 개인 서예 전시회를 열었다.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전시로 “비오고 바람불고 눈오고”라는 표제로 하동의 작은 갤러리 빈산에서 열렸다. 5년 전 서울대에서 전시회를 한 적이 있고 간간히 작품 의뢰를 받기도 했지만 막상 ‘초대전’이나 ‘서예가’라 적힌 것을 보노라니 계면쩍음이 앞서지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설렘도 함께 느껴진다.

토지의 무대가 된 평사리 너른 벌판을 내다보는 언덕, 폐가를 갤러리로 만든 작지만 정겨운 전시장 – 최참판댁의 크고 웅장한 건물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전시장으로 올라오는 돌담길, 소박한 갤러리, 그 앞 마당의 감나무가 마치 토지속 평범한 농민들이 살던 현장에 와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박경리 선생도 이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과 시, 대담 중에서 마음에 와닿는 글들을 골라 만든 23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적절한 구도와 서체를 구상하느라 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쓸수록 모자람을 느끼고 아쉬웠지만 그럴수록 새로운 시도를 할 동기도 생겼다. 그 애씀 속에서 나름 아름다운 한글의 조형미를 제법 살렸다는 자부심도 가져보는 전시다. 김석영 님이 초한 갤러리 빈산의 “기획의 글”을 옮겨 적는다.

고난을 통해 피어나는 우주적 생명의 찬가 – 박명규 서예전에 부쳐

“사시장철 갠 날만 있다믄 그기이 어디 극락이겄나.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오는 그기이 땅을 다스리는 하느님의 이치이드시 사람으 경우도 매한가지 이치일 기니…….” 소설 『토지』 속 윤보의 이 한마디는 박경리 작가가 평생을 통해 일궈온 ‘생명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 선생은 인간의 삶을 자연의 거대한 순리와 동일선상에 놓았다. 기쁨과 평화 같은 ‘갠 날’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 닥치는 시련과 고난인 ‘비바람과 눈보라’ 역시 생태계를 유지하려는 ‘자연의 ‘순리이고 ‘우주의 섭리’라는 깨달음이다. 온 생명이 겪는 생로병사의 굴곡이 모두 천변만화의 날씨와 다를 바 없다. 당연히 ‘인간’이란 존재 또한 그러하다.

<박경리작가 탄생 100주년 특별기획전>의 다섯 번째 무대에 정헌靜軒 박명규 작가를 모셨다. 그는 평생을 한국사회사와 평화학 등을 탐구한 ‘사회학자’이자 연구 틈틈이 붓을 들고 묵향에 젖어 온 ‘서예가’이다. 박경리 선생의 문학을 사회사적으로 규명하려고 남다른 공을 들여 세상에 알린 이력이 있다. 문학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선생을 기리는 건 흔한 일이나 사회학자의 눈으로 선생의 문학과 사상을 조명하고, 그 정수를 길어내 그것도 외양간 갤러리에서 붓끝으로 재해석까지 한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이번 무대가 오롯이 박경리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비영리 헌정전시>로 이뤄진다는 점 또한 특별하다.

작가는 박경리 선생의 글과 문장의 행간에 서린 생명사상을 붓끝에 실어 펼쳐내고 있다. 작가의 어머니와 선생이 진주 일신여고 동창인 인연으로 선생의 사상이 담긴 문장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다고 한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 흔쾌히 동참하고 혼신을 다해 작품을 준비한 까닭이다. 이십여 점의 작품에 작가가 기울인 공력이 다채롭게 스며있다. 작가의 글씨는 사회학자의 지성과 전통 서법이 창조적으로 융합되어 깊은 울림을 준다. 서법에 바탕을 두었으나 ‘선비풍의 글씨’에 머물지 않고 화려하지는 않으나 ‘한글 서체의 조형미’를 살려서 획의 강약과 농담, 그림의 자유로운 변용까지 나타내어 정갈하면서도 풍요롭기 그지없다.

작가는 “글기둥 하나 붙들고 예까지 왔네”라는 선생의 고백처럼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언어의 몸부림’을 ‘서예’라는 몸짓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했다.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우리 많이 살았다. 여한이 없제.”, “슬픔도 기쁨도 왜 그리 찬란한가”,“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 등과 같이 선생이 남긴 문장마다 서린 자연과 생명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깨달음이 작가의 필치에 실려 되살아난다. 작가가 비뚤배뚤 얽히고설켜 서로 기댄 듯 어울려 핀 민들레의 모습을 형상화한 글씨 “험난한 로정, 아아 너는 피었구나”(「민들레」)를 보는데 왈칵 눈물이 솟는다. 아아. 이게 우리 ‘인간 존재의 모습’ 아닌가.

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변경유정(邊境有情)

일주일에 걸친 북중국경지역 답사를 마치며 일행 한분이 한시를 한 수 지어보라 제안했다. 그에 응할 실력은 전혀 못되는 걸 알지만 중국을 여행한다는 기분에 웬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두보의 ‘春望’ 첫귀절,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을 떠올리며 이런 저런 생각과 감정들을 갈무리해 보고자 했다. 어려운 중국식 작법이나 차운을 고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뜻만 드러내는 한시도 가능하다 하고 이를 신체시 (新體詩)라 이름했던 선친의 시도에 기대어 용기를 냈다.

延邊山河連兩岸 圖們橋上無人聲 (연변의 강산은 양안을 잇고 있는데, 도문의 다리 위엔 오가는 사람이 없다) // 欲對龍井先驅者 東柱古家滿遊客 (용정에서 선구자를 만나보려 하나, 윤동주 옛집엔 관광객만 그득하네) // 天池風光如前秀 鐵網警告此國境 (백두산 천지의 풍광은 여전히 빼어난데, 철망은 이곳이 국경이라 경고하고) // 自遠方來卒本城 皇宮舊址盛雜草 (먼곳에서 애써 졸본성을 찾아 왔으나 왕궁의 옛터엔 잡초만 무성하다) // 實見好太王碑文 懷憶千年古史蹟 (광개토왕비문을 눈앞에서 바라보며 천년 옛 사적을 떠올린다) // 五女山傳朱蒙業 誰言此地高句麗 (오녀산은 주몽의 건국위업을 전하지만, 오늘 누가 이 땅을 고구려라 칭할 것인가) // 鴨綠江上望義州 默念恨別已百年 (압록강 위에서 신의주를 바라보며 한스럽게 나뉘어진지 어언 백년임을 생각한다) // 難免悲感世上事 豈不待後靑年起 (세상사 비감함을 누를 길 없으니 어찌 후대 청년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으랴)

귀국한 후에도 여행의 감회가 사라지지 않아 이 한시를 화선지에 썼다. 어줍잖치만 시(詩)와 서(書)를 함께 하던 옛 문인이 된 느낌이다. 시도 서도 내놓을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이지만 어차피 격식을 무시한 작품이니 짝퉁이나 습작이란 힐난이 있어도 개의할 바 아니다. 그런데 7언 절구의 앞과 뒤가 대비되고 풍경과 인간사가 서로 어긋나는 모습이 역연하여 스스로 흥미롭기도 또 씁쓸하기도 하다. 여행에서 자연스레 얻게된 정서의 양면이 반영된 결과일텐데 이런 역설과 회한의 감정을 표현하고 누군가와 교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 아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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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비홍수 인수가비 (綠肥紅瘦 人瘦可肥)

정민 교수가 자신이 쓴 컬럼을 보내왔다. 제목은 녹비홍수 (綠肥紅瘦) – 초록은 무성해지고 붉은 꽃은 시든다는 뜻인데 5월을 맞이하는 계절에 걸맞는 표현이다. 매일 내가 산책하는 집 주변 공원에도 날이 다르게 초록은 짙어져 학창 시절 읽었던 ‘신록예찬’이 저절로 떠올려지곤 한다. 곳곳에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이팝나무의 흰 꽃과 천변 야생화들의 제각각 원색을 뽐내는 중이라 ‘꽃이 시든다’라는 표현은 다소 와닿지 않는 느낌이긴 하다.

초록과 붉음, 신록과 꽃을 살짐과 수척함으로 표현한 옛사람의 단어구사가 신선하다. 단순히 문학적 비유에 그치지 않고 삼라만상의 생명연쇄를 꿰뚫은 철학적 표현으로도 읽힌다. 만물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누군가 성장하면 누군가 사라지는 것이 섭리다. 다산, 추사 등이 편지에 이 말을 즐겨 썼다는데 성리학에 친숙했던 그들의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던 시선과도 친화력이 있었을 법 하다. 그에 비해보면 성장지향의 시대, 효용중심의 현실, 각자도생의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이 친숙해지기는 쉽지 않은 표현이기도 하다.

오늘날 녹비홍수란 표현이 매우 낯설게 된 것은 편지글이 사라진 탓이 클 터이다. 편지는 언제나 그 시작부분이 어려워 일종의 공식적 표현에 의존했다. 건강과 안부를 묻는 것이 그 대표적인 것인데 계절의 변화를 함께 언급하는 것이 상례였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주로 입춘지절에, 폭염가운데, 엄동설한에, 환절기에… 등등을 골라 썼고 녹비홍수를 써본 기억은 없다. 어느 때부터인가 편지를 쓸 일이 없어졌고 자연히 저런 표현들을 사용할 기회도 사라졌다.

컬럼은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말하고 찔러 얘기하는 대신 빙 돌려 말하는 것이 문화’라 했다. 전달과 접수 사이에 여백이 많아야 정서의 두께가 생긴다는 것인데 공감하면서도 그런 문화개념으로 오늘을 이해하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온갖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시공의 간격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즉각적인 정보연쇄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카톡 덕분에 의외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안부를 묻게 된 것을 고마워할 때가 있으니 잃는 것만 있는 건 아니라 하겠다. 문화의 양식과 내용이 달라지고 있는게다.

녹비홍수 – 살짐과 수척함의 대비를 읽다 보니 언젠가 소동파의 글귀 ‘인수상가비 사속불가의’(人瘦尙可肥 士俗不可醫)를 썼던 기억이 난다. ‘사람의 수척함은 다시 살찌울 수 있으나 선비가 속되면 고칠 길이 없다’는 뜻이다. 좋아하던 후배 교수가 정치권을 기웃거리면서 점점 권력과 위세를 탐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까와 그 글을 썼었다. 그때 비(肥)-수(瘦) 대비의 시적 표현에 깊이 공감하면서 스스로를 경계하는 화두로 삼아야겠다 생각했었다.

​두번의 정년을 지낸 지금이야말로 그 말을 일상 속에서 실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인생여정을 계절에 비유하면 은퇴 후의 삶은 가을 이후에 해당하니, 당연히 살집이 아니라 수척함에 대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건강용 다이어트가 아니라 생명연쇄의 자각 위에 삶을 조망하는 내적 역량으로서의 비움 노력이 필요하다. 박경리의 시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는 표현이 있는데 정말 그런 홀가분함이 내면에 자리하기를 바래야 할 때다. 속되지 않고 의연하게, ‘인수상가비(人瘦尙可肥) 대신 ‘인비상가수’ (人肥尙可瘦)를 새 화두로 삼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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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甘露)와 천은(泉隱)

남도 순례길에 나선 한 친구가 구례 천은사(泉隱寺) 의 홍매 사진을 보내왔다. 봄을 알리는 매화의 붉은 기운 뒤로 먼 산자락 능선과 사찰지붕의 멋진 곡선이 마치 한폭의 수묵화같다. 천은사라는 이름도 저 풍광에 어울리게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찰문화에 밝은 또 다른 동학께서 천은사 현판 사진을 올려주었다. ‘수체’(水體)라 불리는 이광사의 작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몇 년전 저곳을 들렀을 때 천은사에 얽힌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신라 때 창건된 이 절의 원래 이름은 ‘감로사(甘露寺)’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17세기 절을 중수하게 되었는데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한 스님이 그 뱀을 잡아 죽이자 그 이후로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고 ‘샘이 숨었다’는 의미의 ‘천은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찰에 연이은 화재가 발생하는 등 크고 작은 불상사가 잇따랐고 그 이유가 사찰의 물기운(水氣)을 지켜주던 이무기를 죽인 탓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원교(圓嶠) 이광사가 이 사찰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지리산천은사(智異山泉隱寺)’라는 편액 글씨를 세로로 써 주자 더이상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 동국진체의 창시자가 물흐르듯 유려한 ‘수체(水體)’의 기운으로 쓴 현판이 불의 기운을 다스렸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 것은 당연하다. 이 현판은 지금도 수려한 모습으로 일주문을 지키고 있다.

‘감로’ – 달콤한 이슬이나 맛있는 물을 감로수라하고 불교에서는 이것을 부처의 가르침이나 시원한 차에 비유한다. 중국에는 감로사라는 이름의 오래된 사찰이 있고 한국에도 같은 이름의 사찰이 있다. 목마른 중생들에게 생명같은 단물을 제공해주는 절이란 뜻이니 내용도 상서롭다. 이에 비해 샘이 말랐다는 뜻의 ‘천은’은 사찰의 이름으론 어울리지 않는다. 원교가 저 현퍈을 쓴 이후 샘이 다시 맑은 물을 솟구쳤다 하니 다시 감로사라 해도 무방했을 터인데 천은사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의아하다. 세간에 전해지는 말과는 달리 그 이름의 변화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격화되고 있는 이란사태와 전세계의 오일 쇼크 가능성을 우려하는 뉴스를 들으면서 감로와 천은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석유는 인류의 문명을 가능케 한 ‘감로’와도 같고 일부 산유국에겐 큰 부를 가져다 준 고마운 자원이지만 그로 인한 기회비용은 만만치 않다. 강대국의 침략과 간섭이 끝이 없고 국내적으로도 독재권력의 힘을 강화하여 국민들의 성숙과 민주주의의 성장을 억누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 걸프만의 하늘에 수없이 오고가는 미사일과 그 가공할 파괴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차라리 석유가 고갈되는 ‘천은’의 때를 그리워할 수도 있을 지경이다. 누구도 원치않는 저 ‘불의 기운’을 억누를 오늘의 이광사는 어디 있으며 그가 내놓을 처방과 글씨는 무엇일까 – 억측같은 생각을 해보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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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매화

매년 이맘때면 매화를 그렸다. 보통 2월 말을 넘기지 않았는데 올해는 나도 바쁘고 꽃소식도 늦은 듯 하여 3월 초에 그리리라 작정하고 있었다. 매화를 그리는 마음은 따뜻한 봄이 오는 자연의 순환 앞에서 느끼는 희망, 기대, 설레임 같은 정서와 가깝다. 눈 속에 피는 매화인 설중매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매화가지를 통해 강인한 의지, 고생 끝에 얻는 영광을 상징하는 소재로도 종종 사용된다.

그런데 갑작스런 전쟁소식이 이런 기분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오늘 아침에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전세계는 첨단 무기와 정보자산이 동원되는 현대전의 가공할 위협과 새로운 문법 앞에서 할 말을 잃고 있다. 세계 어느 곳보다도 지구화된 한국사회에 미칠 전방위적 충격은 피하기 어려운데 이미 유가와 주가를 염려하는 뉴스가 쏟아진다. 우리와는 또다른 차원에서 심대한 충격을 받았을 북한은 강력한 대미 비난 성명을 내놓았다. 북한의 핵무력에의 집착이 더욱 강해지리라는 논평들이 뒤를 잇는다.

전쟁의 뉴스가 들리는 와중에 매화를 그리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싶었다. 마음이 따뜻해야 그림의 매화줄기도 힘을 얻는 법인데 전쟁 소식을 듣고 있으니 먹을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눈내리는 혹한 속에서 설중매를 그리는 심정을 떠올리며 화선지를 폈다. 전쟁이 벌어지는 엄혹한 현실에서도 봄은 찾아오고 강인한 줄기에는 매화가 필 것이다. 인간사의 불행에도 자연의 운행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임을 생각했지만 붓은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아 줄기도 꽃도 엉성하다. 이것도 내 마음이 담긴 것이리라 여겨 다시 그리지 않기로 했다.

“전쟁이 그 꽃을 심어주었다”라는 제목의 시를 떠올렸다. 김명수 시인은 옛집의 황매화 이야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물어보지 못한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임하면 대추월, 옛날 우리집/ 꽃꿈처럼 피어나던 겹겹 황매화/ 꽅밭 황매화는/ 누가 심으셨나요? // 길고양이 울어대는/ 추운 겨울밤/ 무릎 시린 새벽녂 언뜻 잠깨어// 물어본다, 물어본다/ 못 물어봤던/ 황매화는 어느 때/ 누가 심으셨나요? // 아버지가 목소리로 대답하셨어요/ 추운 겨울이 심어주었다 /전쟁이 그 꽃을 심어주었다

꽃꿈처럼 피어나던 황매화라는 표현에 눈이 간다. 꽃의 꿈, 꿈같은 꽃 – 매화는 전장의 전령처럼 앞서 달려오는 꽃이다. 전쟁 소식에 피어날 전국의 매화를 생각하면서 이런 때에도 매화의 맑은 향기는 온누리에 퍼지리라는 마음을 담아 ‘청향만리’를 제사로 썼다. 안팎이 요란해도 한반도와 우리 삶이 매화향기처럼 평안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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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신년휘호

2026 병오년 설을 맞아 신년 휘호를 써서 서재에 걸었다. 이번 달로 오랜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는 내 자신에게 주는 글로 自處超然 (자처초연) 對人靄然 (대인애연) 失意泰然 (실의태연) 無事澄然 (무사징연) 16자를 골랐다. 홀로 있을 때 초연하고, 사람을 만날 때 따뜻하고,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 태연하며, 일이 없을 때 맑은 마음을 가지라 – 올 한 해의 좌우명으로 삼기 적합한 내용이다.

이 글귀는 명나라 말기 학자 최선이 시인 왕양명에게 준 글로 알려진 처세육연 중 4연이다. 원문의 순서와는 달리 일이 없을 때 (無事) 맑은 마음을 유지하라는 부분을 마지막으로 배치했다. 현재의 내게 가장 절실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2연은 有事敢然 (유사감연) 得意淡然 (득의담연) 인데 일이 생기면 과감히 감당하고 뜻을 이루어도 담담하라는 내용이다. 유학적 태도와 도교적 정신이 어우러져 있는 이 처세론은 경주 최부자댁 가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성경에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 있다. 그리하면 다른 것들도 더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사회학자로서 나 역시 개인적인 차원보다 공동체적 쟁점을 늘 중요하게 여겼다. 계엄과 탄핵의 격랑 속에서 맞이한 작년에 ‘事必歸正 (사필귀정)’ 을 신년휘호로 쓴 것도 헝클어진 질서가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공의적 바램을 담은 것이었다. 나라 안팎이 여전히 불확실한 2026년에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건 여전히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천하를 다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묻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궁극적 가치는 개인의 존엄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창조주의 사랑이라는 메시지가 더 근원적이다. 동양에서도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공적 활동도 개인의 자기 관리에서 출발한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가르쳐왔다. 홀로 있을 때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는 유학의 가르침은 은둔자의 삶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진정으로 올곧은 선비가 되기 위함이었다.

공적 활동에서 물러난 자유로운 생활인에게 내면의 자세를 우선 돌아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 흔들리기 쉬운 정서와 생활 방식을 새롭게 재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불확실한 상황, 의외의 곤경, 외로움의 장애를 감당하고 이겨낼 정서적 맷집을 키워야 한다. 홀로 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일이 없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 이 4연을 새해의 화두로 붙잡고 애쓰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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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기교

평생 남북경협을 위해 애쓰고 연구해온 조동호 교수가 정년에 즈음하여 [남북경협 80년] 책을 출간했다. 600쪽이 넘는 분량에 수미일관하게 한 주제를 천착한 좋은 연구서다. 상업출판사가 아니어서인지 장정은 화려하지 않고 사진도 별로 없으며 행간도 조밀하여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진 않는다. 그러나 남북경협 역사의 부침을 지켜봐온 동시대인이라면 누구라도 이 책의 진정성 앞에 숨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다.

다소 무미건조한 제목과 달리 ‘절망과 가교의 역사’라는 부제는 독자의 눈을 잡아 끈다.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의 시에 등장하는 “절망은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라는 표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롤러코스터 타듯 부침을 거듭해온 남북경협 80년을 이런 표현 속에 담은 저자의 문학적 감수성에 놀란다. 대학시절 강의실에서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않고 최승자 시인의 시를 삶의 지표처럼 여겨온 문청의 열정이 이런 화두를 주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표현이 지난 수십년 역사를 꿰뚫는 ‘촌철살인’의 화두가 되는 걸 보고 문학적 비유가 사회과학적 통찰과 이렇게 결합될 수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유명대학 박사, KDI 연구원과 이화여대 교수라는 저자의 경력은 한국 제일의 엘리트 코스 그 자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 책에는 전문적 경제이론이나 유명 학자들의 논리, 또는 통계적 수치나 효용분석의 내용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남북경협이라는 영역이 출현하게 된 역사적 맥락, 그 가능성의 공간에 헌신했던 경제인들과 정책구상자들의 의지와 꿈, 좌절과 안타까움이 담겨있다. 분과학적 분류를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을 경제학 또는 북한학 영역에 포함시키겠지만 나로서는 성실한 현대사 연구, 당대사를 다룬 책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희망함이 없으면 절망도 없다. 따라서 절망이란 말 속에는 희망과 꿈을 추구했던 시대의 그림자가 서려있다. 꿈을 꾸면서 무언가를 이루려 했던 시대, 어려움을 어떻게 넘어설까 고민했던 자들의 열정이 저 속에 담겨있는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 남북경협을 실현하고 담당해야 했던 기업인, 경제인의 애씀과 고투를 엄정하면서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희망과 절망울 너무 정치적 효과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지 모른다. 삶의 현장에서 먹고 사는 문제와 부닺치는 경제인들, 기업인들, 평범한 시민들이 느꼈던 희망과 좌절, 꿈과 절망을 좀더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기교란 말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닐 터이다. 사실 무능한 사람은 기교도 부리지 못한다. 순수함을 고집하는 예술인이 현실에서 무능하단 소리를 듣는 이유다. 현실의 조건과 타협하면서 작은 결과라도 만들어내고 그것을 내세워 상징자산을 부풀려야 하는 정치는 애초 기교일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다만 정치인에게는 성과이고 치적일 수 있는 여러 시도들이 그곳에 투신한 경제인들에겐 인생의 성패가 나뉘어지는 현장이었다는 지적, 정치적 기교로 현실의 장벽을 넘어서기 어려웠다는 지적은 날카롭다. 기교가 얄팍한 정략적 술수가 아닌, 현실과의 진지한 대면역량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깊이 숙고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남북경협의 기대와 꿈을 가장 강력하게 꾸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대가 유난히 절망과 기교의 시대가 되었다는 평가는 역설적이다. 햇볕정책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상품도 구매력도 변변찮은 북한과 시장논리에 따른 교역은 불가능에 가까왔다. 주체경제만 외치는 북한을 대상으로 정부 주도의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이 시작되었지만 저자는 이것을 ‘절망을 해결한 듯 보이게 하는 기교’였다고 평가한다. 노무현 정부 역시 이 노선을 답습했다. 저자는 ‘기교로 절망을 이길 수는 없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김대중 정부를 ‘문과기실’, 즉 무늬가 내실을 넘어선 상태로 표현하고 있다. 흥미로우면서도 그 엄정한 평가가 신선하다.

저자는 보수정부의 정책도 그 방향과 성격을 차분히 평가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기교로 우회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 원칙적 타당성을 인정한다. 다만 북한을 다룰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전략이 없는 원론적 입장표명에 그침으로써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황만 악화되는 결과로 귀결되었음을 지적한다. 이 시기를 자승자박 교왕과직, 금의야행 구화투신이란 말로 평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옳은 원칙이나 바른 생각이라도 상대방을 고려하는 유연함과 현실타개의 정치력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부정적 결과로 이어진다는 교훈이 담겨있다.

개인적으로는 노태우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흥미로왔다. 저자는 노태우 정부를 선견지명과 운도시래로 표현했다. 노태우 정부시절의 기민한 대응에 대한 평가가 점점 긍정적이 되고 있는데 탈냉전이 채 본격화되지도 않은 시점에 77선언을 내놓고 대북정책을 포용적으로 재구성한 혜안이 과연 ‘선견지명’이고 뒤이은 탈냉전의 세계정세가 ‘운도시래’의 행운인 것도 분명하다. 그 행운이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은 그런 점에서 ‘운이 따르지 않은 것’이라 할까.

드라마틱했던 문재인 정부를 일장춘뭉 노이무공이라 표현한 대목에서는 사자성어의 촌철살인을 느꼈다. 2018년의 엄청난 기대가 2020년의 비아냥으로 마감된 이 짧은 시기를 ‘일장춘몽’이자 ‘노이무공’이라 부르는데 서운해할 사람들도 제법 있지 않을까 싶다. 이재명 정부가 다시 이 노선을 답습하려는 바탕에는 이 시기의 경험을 결코 ‘노이무공’으로 돌리지 않으려는 집착이 있을 터이다. 그런 점에서 5장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쟁점들은 앞으로 계속 논의하고 지혜를 모아가야 할 과제들이라 할 것이다. 상호주의를 어느 수준에서 요구할 것인가, 퍼주기라는 내부 반발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졍치와 경제는 어느 선에서 분리되고 연계되어야 하는가, 불투명한 교역통계는 어떻게 구성되고 활용되어야 하는가, 남북경협에서 임금지급의 수준과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두 국가론의 논리는 어느 수준에서 수용되고 통제되어야 하는가.

지난 80년을 정리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절망은 불가피했고 기교는 불완전했다. 남북경협정책은 구조적 한계에서 기인한 좌절과 이를 우회하려는 시도 사이에서 재귀적 운동만을 반복했을 뿐이다.” 절망의 논리와 기교의 한계를 함께 벗어나야 할 것을 주문하면서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우리의 길이 아님을 역설한다. 그 평가에 공감하면서 새로운 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한다. 저자는 단순한 교량잇기가 아닌, 북합교차로를 건설하려는 상상력을 주문하는데 그 표현이 문학적 은유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기교가 아닌 복합교차로를 어떻게 구축할지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는 느낌이다. 동시에 이런 질문도 다시 던지게 된다. “절망과 기교를 낳은 바탕, 꿈과 희망과 열정은 지금 어느 정도 남아 있을까?” “그 꿈과 희망, 열정은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life · 오늘의 화두

추석,추성,어머니

추석날이다. 보름달을 보기에는 날씨가 궂지만 곱게 물든 나뭇잎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이 상큼한 가을을 느끼게 한다. 조용하던 아파트 안팎에서 가족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들로 시끌벅적하다. 올해도 한국에서 줄잡아 2천만명이 이동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만날 계기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추석 명절의 존재의의는 오래 지속될 듯하다.

집집마다 차례를 지낸 탓인지 아침 엘리베이터에는 향내음이 가득했다. 조상을 기리는 관념은 현저히 옅어졌는데 여전히 지속되는 차례문화는 신기하다. 도시화와 개별화가 주는 외로움을 주기적으로 해소하려는 집단심리의 발현일 수도 있겠다. 일찍이 조부께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집안의 온갖 대소 제사를 없엔 탓에 나는 집에서 차례나 제사를 지내본 적이 없다. 추도예배가 그를 대신했지만 의례의 형식성에서 제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성묘 문화가 여전한 것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예전같진 않지만 지금도 성묘는 중요한 의례처럼 받아들여진다. 나도 여름 장마 때면 고향 선산의 부모님 묘소 축대가 무너질까 염려를 한다. 산소 가까이 살던 먼 친척이 돌아가신 이후엔 관심 가져주는 이가 없어 우거진 잡초가 민망할 때도 적지 않다. 가족들 사이에선 ‘평장을 하고 봉분을 없에자’, ‘서울 근교의 공원묘지로 이장하자’, ‘가족납골당으로 바꾸자’ 등 각양 대안도 논의되고 자식들이 이 문제를 떠안지 않도록 내 생전에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누이들의 압력도 뒤따른다.

올해 추석 연휴 마지막날 고향을 들려 부모님 산소를 둘러볼 예정이다. 향후 어떻게 할지 이번 길에 결론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러나 여전히 내 마음 속엔 두 소리가 다투고 있다. 깔끔하게 산소를 재단장하거나 이장해서 새 묘역을 마련하자는 생각과, 평생 천국을 소망하며 사신 분들이고 육신은 이미 흙으로 돌아갔으니 그냥 세월의 풍화에 맡겨두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유학적 사유와 기독교적 사유의 긴장이라 할 수 있을텐데 어떤 방향으로 내 마음이 귀결될지 잘 모르겠다.

중국 송대의 문인이자 당송팔대가의 하나인 구양수는 그의 유명한 글 ‘추성부’에서 가을소리 (秋聲) 를 노래했다. 그가 말하는 추성은 가을이 왔다고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나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같은 물리적 소리가 아니다. 계절이 드러내는 우주의 섭리, 자연이 일러주는 메시지를 뜻한다. 만물이 성한 때를 지나면 쇄하게 되고 생명있던 것은 언젠가 죽게되는 자연의 이치가 그 핵심이다. 그런 이치를 구현하느라 매섭고 차가운 기운을 그 본질로 하는 것인만큼 가을이 다가옴을 안타까와할 이유가 없다 했다.

오히려 구양수는 “초목은 감정이 없지만 때가 되면 바람에 날리어 떨어질 줄 안다”고 자연에서 배울 것을 주장한다. “쇠나 돌같이 단단한 존재도 아니면서 어찌하여 초목과 더불어 번영을 다투려 하는가?”고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을 질책한다.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자기 지혜로 할 수 없는 것까지 근심”하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말라고도 조언한다. 자연의 섭리를 조용히 받아들이라는 도교적 세계관이 글 속에 깊이 담겨있는 셈이다.

성경의 전도서와 시편에도 비슷한 표현들이 있다. 하늘 아래 새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헛되다는 전도서 구절과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라는 시편의 구절은 인생무상이란 체념의 정조와 매우 가깝다. 신약의 한 구절,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벧전1:24)라는 구절은 “풀들은 가을이 스쳐가면 누렇게 변하고, 나무는 가을을 만나 잎을 떨군다.” 는 추성부의 표현과 다를 바가 없어 놀랍기까지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이런 구절들을 좋아하셨지만 그것으로 그치진 않았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 11:16) 는 천국 소망을 강조하셨던 점에서 구양수와 달랐다. 기도할 때마다 우시던 어머니였지만 그럴수록 절대자에게 매어달리던 분이셨다. 지극한 허무함을 또다른 지극한 소망함으로 연결짓던 그 신앙의 깊이는 내게 늘 경이로움으로 다가왔었다. 나는 그 허무함의 정조는 공감할 듯 하면서도 소망함의 믿음에는 미치지 못해 어머니와 같은 신앙인을 존경하면서도 종내 그런 지경에 도달하지 못했다.

70이 되는 해 추석을 맞이하니 전과는 다른 여러 감회가 느껴진다. 성묘, 어머니, 전도서, 구양수, 추성, 낙엽과 죽음 등의 화두가 여러 정서를 동반한 채 다가오는 것이다. 가을이 오는데 무감각하거나 무덤덤하지 않고 초목이 시들고 마르는 변화 앞에 숙연해지고 어딘지 아쉬워지는 편이 더 나은 것은 분명하다. 다만 도교적인 수용론, 춘하추동의 순환론에 나를 맡기기에는 오랜 인생길의 애씀이 더욱 애틋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머니의 신앙을 되돌아보며 죽음 이후의 소망을 찾는 메시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보자는 생각을 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는 전도서 말씀처럼 인생에도 생각의 계기와 시점이 있게 마련이다. 70세의 가을은 그런 새로운 때가 되기에 꽤 적절한 듯 싶다. 그래서인가 성경의 메시지가 새롭게 다가온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야 5: 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 25),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 3:5)  – 가을은 쇠락의 계절이면서 동시에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다. 또 겨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봄과 이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추석 아침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구양수의 추성과는 또다른 하늘의 메시지를 듣는 귀가 열리기를 마음으로 기원한다.

life · 오늘의 화두

책을 장례하다

어느 정도 아는 분의 부음 소식을 접하면 의례 정중한 조의를 표하게 된다. 가까운 분이라면 장례식장에 가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게 통상의 예의다. 최근에는 관혼상제의 예법이 크게 약화되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상례’과 관련한 조문 문회는 강고하게 남아있다. 이미 돌아가신 분에게 작별인사를 한다는게 실질적인 의미가 있을리 없지만, 남은 자들에게 그런 의례가 주는 심리적 위안이 적지 않기 때문이리라.

평생 책과 함께 생활하고 이곳 저곳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모았다. 유별난 장서욕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좋은 책이라면 일단 사두려 했다. 절판된 책들을 복제해서 판매하는 서적판매원의 단골이 되기도 했고 흥미있어 보이는 자료나 논문들은 열심히 복사해 두었다. 서울대 정년을 하면서 상당부분 정리했지만 여전히 내 연구실과 서재는 많은 책과 자료들로 가득하다. 이제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직도 끝날 때가 되어 대대적인 정리, 과감한 버리기에 돌입했다. 단순한 방정리에서 시작한 일인데 지나간 내 인생의 조각 조각들을 되돌아보면서 그것을 ‘과거’로 돌려보내는 작업이 되고 있다.

그런데 결정을 못내리고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더 이상 쓸모나 효용이 없어졌고 그다지 진귀한 자료라 할 수도 없지만 여러 기억과 인연이 떠올라 버리기가 주저되는 것들이다. 청계천 헌책방을 돌며 구했던 책, 몰래 복사해서 간직하던 자료, 역사유적지를 다니며 수집했던 팜플렛, 제자들이 공들여 쓴 박사학위논문 등 그 유형은 다양하다. 이곳 저곳에서 받았던 위촉장, 임명장, 표창장 등도 그렇거니와 여러 다양한 인연들이 서려있는 책이나 자료를 버리자는 결심이 여간 힘들지 않다.

문득 이럴 때 장례식 같은 어떤 절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 제대로 만나거나 연락하지 못했던 분의 마지막 자리에서 그동안 감사했고 잘 가시라 인사함으로써 민망하고 불편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의례’의 기능이 아닌가. 그래서 책을 정리하는 어떤 의례를 내 나름대로 거행하기로 했다. 더 이상 보관할 필요가 없는 자료나 책은 ‘할 일 다 했으니 이제 편안히 눈 감으라’고 이르고 폐기장소로 내다 놓는다. 혼자 짧은 순간이나마 그런 예를 갖추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매주 조금씩 책의 장례식을 치루다가 그중 어떤 책들은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책이 내 손을 떠나는 것일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구나. 그래서 그런 책들에 대해선 인사말을 따로 준비했다. ‘그동안 나와 함께 있어주어서 고맙다. 이제 새 사람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아라’하고 인사한다. 저 녀석들이 어떤 새 주인을 찾게 될지, 끝내 찾지 못하고 미아처럼 떠돌아 다닐지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은 다소 위로가 된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며 정성껏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