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전쟁과 매화

매년 이맘때면 매화를 그렸다. 보통 2월 말을 넘기지 않았는데 올해는 나도 바쁘고 꽃소식도 늦은 듯 하여 3월 초에 그리리라 작정하고 있었다. 매화를 그리는 마음은 따뜻한 봄이 오는 자연의 순환 앞에서 느끼는 희망, 기대, 설레임 같은 정서와 가깝다. 눈 속에 피는 매화인 설중매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매화가지를 통해 강인한 의지, 고생 끝에 얻는 영광을 상징하는 소재로도 종종 사용된다.

그런데 갑작스런 전쟁소식이 이런 기분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오늘 아침에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전세계는 첨단 무기와 정보자산이 동원되는 현대전의 가공할 위협과 새로운 문법 앞에서 할 말을 잃고 있다. 세계 어느 곳보다도 지구화된 한국사회에 미칠 전방위적 충격은 피하기 어려운데 이미 유가와 주가를 염려하는 뉴스가 쏟아진다. 우리와는 또다른 차원에서 심대한 충격을 받았을 북한은 강력한 대미 비난 성명을 내놓았다. 북한의 핵무력에의 집착이 더욱 강해지리라는 논평들이 뒤를 잇는다.

전쟁의 뉴스가 들리는 와중에 매화를 그리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싶었다. 마음이 따뜻해야 그림의 매화줄기도 힘을 얻는 법인데 전쟁 소식을 듣고 있으니 먹을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눈내리는 혹한 속에서 설중매를 그리는 심정을 떠올리며 화선지를 폈다. 전쟁이 벌어지는 엄혹한 현실에서도 봄은 찾아오고 강인한 줄기에는 매화가 필 것이다. 인간사의 불행에도 자연의 운행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임을 생각했지만 붓은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아 줄기도 꽃도 엉성하다. 이것도 내 마음이 담긴 것이리라 여겨 다시 그리지 않기로 했다.

“전쟁이 그 꽃을 심어주었다”라는 제목의 시를 떠올렸다. 김명수 시인은 옛집의 황매화 이야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물어보지 못한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임하면 대추월, 옛날 우리집/ 꽃꿈처럼 피어나던 겹겹 황매화/ 꽅밭 황매화는/ 누가 심으셨나요? // 길고양이 울어대는/ 추운 겨울밤/ 무릎 시린 새벽녂 언뜻 잠깨어// 물어본다, 물어본다/ 못 물어봤던/ 황매화는 어느 때/ 누가 심으셨나요? // 아버지가 목소리로 대답하셨어요/ 추운 겨울이 심어주었다 /전쟁이 그 꽃을 심어주었다

꽃꿈처럼 피어나던 황매화라는 표현에 눈이 간다. 꽃의 꿈, 꿈같은 꽃 – 매화는 전장의 전령처럼 앞서 달려오는 꽃이다. 전쟁 소식에 피어날 전국의 매화를 생각하면서 이런 때에도 매화의 맑은 향기는 온누리에 퍼지리라는 마음을 담아 ‘청향만리’를 제사로 썼다. 안팎이 요란해도 한반도와 우리 삶이 매화향기처럼 평안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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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신년휘호

2026 병오년 설을 맞아 신년 휘호를 써서 서재에 걸었다. 이번 달로 오랜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는 내 자신에게 주는 글로 自處超然 (자처초연) 對人靄然 (대인애연) 失意泰然 (실의태연) 無事澄然 (무사징연) 16자를 골랐다. 홀로 있을 때 초연하고, 사람을 만날 때 따뜻하고,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 태연하며, 일이 없을 때 맑은 마음을 가지라 – 올 한 해의 좌우명으로 삼기 적합한 내용이다.

이 글귀는 명나라 말기 학자 최선이 시인 왕양명에게 준 글로 알려진 처세육연 중 4연이다. 원문의 순서와는 달리 일이 없을 때 (無事) 맑은 마음을 유지하라는 부분을 마지막으로 배치했다. 현재의 내게 가장 절실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2연은 有事敢然 (유사감연) 得意淡然 (득의담연) 인데 일이 생기면 과감히 감당하고 뜻을 이루어도 담담하라는 내용이다. 유학적 태도와 도교적 정신이 어우러져 있는 이 처세론은 경주 최부자댁 가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성경에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 있다. 그리하면 다른 것들도 더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사회학자로서 나 역시 개인적인 차원보다 공동체적 쟁점을 늘 중요하게 여겼다. 계엄과 탄핵의 격랑 속에서 맞이한 작년에 ‘事必歸正 (사필귀정)’ 을 신년휘호로 쓴 것도 헝클어진 질서가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공의적 바램을 담은 것이었다. 나라 안팎이 여전히 불확실한 2026년에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건 여전히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천하를 다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묻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궁극적 가치는 개인의 존엄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창조주의 사랑이라는 메시지가 더 근원적이다. 동양에서도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공적 활동도 개인의 자기 관리에서 출발한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가르쳐왔다. 홀로 있을 때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는 유학의 가르침은 은둔자의 삶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진정으로 올곧은 선비가 되기 위함이었다.

공적 활동에서 물러난 자유로운 생활인에게 내면의 자세를 우선 돌아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 흔들리기 쉬운 정서와 생활 방식을 새롭게 재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불확실한 상황, 의외의 곤경, 외로움의 장애를 감당하고 이겨낼 정서적 맷집을 키워야 한다. 홀로 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일이 없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 이 4연을 새해의 화두로 붙잡고 애쓰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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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기교

평생 남북경협을 위해 애쓰고 연구해온 조동호 교수가 정년에 즈음하여 [남북경협 80년] 책을 출간했다. 600쪽이 넘는 분량에 수미일관하게 한 주제를 천착한 좋은 연구서다. 상업출판사가 아니어서인지 장정은 화려하지 않고 사진도 별로 없으며 행간도 조밀하여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진 않는다. 그러나 남북경협 역사의 부침을 지켜봐온 동시대인이라면 누구라도 이 책의 진정성 앞에 숨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다.

다소 무미건조한 제목과 달리 ‘절망과 가교의 역사’라는 부제는 독자의 눈을 잡아 끈다.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의 시에 등장하는 “절망은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라는 표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롤러코스터 타듯 부침을 거듭해온 남북경협 80년을 이런 표현 속에 담은 저자의 문학적 감수성에 놀란다. 대학시절 강의실에서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않고 최승자 시인의 시를 삶의 지표처럼 여겨온 문청의 열정이 이런 화두를 주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표현이 지난 수십년 역사를 꿰뚫는 ‘촌철살인’의 화두가 되는 걸 보고 문학적 비유가 사회과학적 통찰과 이렇게 결합될 수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유명대학 박사, KDI 연구원과 이화여대 교수라는 저자의 경력은 한국 제일의 엘리트 코스 그 자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 책에는 전문적 경제이론이나 유명 학자들의 논리, 또는 통계적 수치나 효용분석의 내용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남북경협이라는 영역이 출현하게 된 역사적 맥락, 그 가능성의 공간에 헌신했던 경제인들과 정책구상자들의 의지와 꿈, 좌절과 안타까움이 담겨있다. 분과학적 분류를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을 경제학 또는 북한학 영역에 포함시키겠지만 나로서는 성실한 현대사 연구, 당대사를 다룬 책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희망함이 없으면 절망도 없다. 따라서 절망이란 말 속에는 희망과 꿈을 추구했던 시대의 그림자가 서려있다. 꿈을 꾸면서 무언가를 이루려 했던 시대, 어려움을 어떻게 넘어설까 고민했던 자들의 열정이 저 속에 담겨있는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 남북경협을 실현하고 담당해야 했던 기업인, 경제인의 애씀과 고투를 엄정하면서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희망과 절망울 너무 정치적 효과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지 모른다. 삶의 현장에서 먹고 사는 문제와 부닺치는 경제인들, 기업인들, 평범한 시민들이 느꼈던 희망과 좌절, 꿈과 절망을 좀더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기교란 말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닐 터이다. 사실 무능한 사람은 기교도 부리지 못한다. 순수함을 고집하는 예술인이 현실에서 무능하단 소리를 듣는 이유다. 현실의 조건과 타협하면서 작은 결과라도 만들어내고 그것을 내세워 상징자산을 부풀려야 하는 정치는 애초 기교일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다만 정치인에게는 성과이고 치적일 수 있는 여러 시도들이 그곳에 투신한 경제인들에겐 인생의 성패가 나뉘어지는 현장이었다는 지적, 정치적 기교로 현실의 장벽을 넘어서기 어려웠다는 지적은 날카롭다. 기교가 얄팍한 정략적 술수가 아닌, 현실과의 진지한 대면역량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깊이 숙고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남북경협의 기대와 꿈을 가장 강력하게 꾸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대가 유난히 절망과 기교의 시대가 되었다는 평가는 역설적이다. 햇볕정책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상품도 구매력도 변변찮은 북한과 시장논리에 따른 교역은 불가능에 가까왔다. 주체경제만 외치는 북한을 대상으로 정부 주도의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이 시작되었지만 저자는 이것을 ‘절망을 해결한 듯 보이게 하는 기교’였다고 평가한다. 노무현 정부 역시 이 노선을 답습했다. 저자는 ‘기교로 절망을 이길 수는 없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김대중 정부를 ‘문과기실’, 즉 무늬가 내실을 넘어선 상태로 표현하고 있다. 흥미로우면서도 그 엄정한 평가가 신선하다.

저자는 보수정부의 정책도 그 방향과 성격을 차분히 평가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기교로 우회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 원칙적 타당성을 인정한다. 다만 북한을 다룰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전략이 없는 원론적 입장표명에 그침으로써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황만 악화되는 결과로 귀결되었음을 지적한다. 이 시기를 자승자박 교왕과직, 금의야행 구화투신이란 말로 평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옳은 원칙이나 바른 생각이라도 상대방을 고려하는 유연함과 현실타개의 정치력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부정적 결과로 이어진다는 교훈이 담겨있다.

개인적으로는 노태우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흥미로왔다. 저자는 노태우 정부를 선견지명과 운도시래로 표현했다. 노태우 정부시절의 기민한 대응에 대한 평가가 점점 긍정적이 되고 있는데 탈냉전이 채 본격화되지도 않은 시점에 77선언을 내놓고 대북정책을 포용적으로 재구성한 혜안이 과연 ‘선견지명’이고 뒤이은 탈냉전의 세계정세가 ‘운도시래’의 행운인 것도 분명하다. 그 행운이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은 그런 점에서 ‘운이 따르지 않은 것’이라 할까.

드라마틱했던 문재인 정부를 일장춘뭉 노이무공이라 표현한 대목에서는 사자성어의 촌철살인을 느꼈다. 2018년의 엄청난 기대가 2020년의 비아냥으로 마감된 이 짧은 시기를 ‘일장춘몽’이자 ‘노이무공’이라 부르는데 서운해할 사람들도 제법 있지 않을까 싶다. 이재명 정부가 다시 이 노선을 답습하려는 바탕에는 이 시기의 경험을 결코 ‘노이무공’으로 돌리지 않으려는 집착이 있을 터이다. 그런 점에서 5장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쟁점들은 앞으로 계속 논의하고 지혜를 모아가야 할 과제들이라 할 것이다. 상호주의를 어느 수준에서 요구할 것인가, 퍼주기라는 내부 반발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졍치와 경제는 어느 선에서 분리되고 연계되어야 하는가, 불투명한 교역통계는 어떻게 구성되고 활용되어야 하는가, 남북경협에서 임금지급의 수준과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두 국가론의 논리는 어느 수준에서 수용되고 통제되어야 하는가.

지난 80년을 정리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절망은 불가피했고 기교는 불완전했다. 남북경협정책은 구조적 한계에서 기인한 좌절과 이를 우회하려는 시도 사이에서 재귀적 운동만을 반복했을 뿐이다.” 절망의 논리와 기교의 한계를 함께 벗어나야 할 것을 주문하면서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우리의 길이 아님을 역설한다. 그 평가에 공감하면서 새로운 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한다. 저자는 단순한 교량잇기가 아닌, 북합교차로를 건설하려는 상상력을 주문하는데 그 표현이 문학적 은유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기교가 아닌 복합교차로를 어떻게 구축할지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는 느낌이다. 동시에 이런 질문도 다시 던지게 된다. “절망과 기교를 낳은 바탕, 꿈과 희망과 열정은 지금 어느 정도 남아 있을까?” “그 꿈과 희망, 열정은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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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추성,어머니

추석날이다. 보름달을 보기에는 날씨가 궂지만 곱게 물든 나뭇잎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이 상큼한 가을을 느끼게 한다. 조용하던 아파트 안팎에서 가족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들로 시끌벅적하다. 올해도 한국에서 줄잡아 2천만명이 이동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만날 계기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추석 명절의 존재의의는 오래 지속될 듯하다.

집집마다 차례를 지낸 탓인지 아침 엘리베이터에는 향내음이 가득했다. 조상을 기리는 관념은 현저히 옅어졌는데 여전히 지속되는 차례문화는 신기하다. 도시화와 개별화가 주는 외로움을 주기적으로 해소하려는 집단심리의 발현일 수도 있겠다. 일찍이 조부께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집안의 온갖 대소 제사를 없엔 탓에 나는 집에서 차례나 제사를 지내본 적이 없다. 추도예배가 그를 대신했지만 의례의 형식성에서 제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성묘 문화가 여전한 것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예전같진 않지만 지금도 성묘는 중요한 의례처럼 받아들여진다. 나도 여름 장마 때면 고향 선산의 부모님 묘소 축대가 무너질까 염려를 한다. 산소 가까이 살던 먼 친척이 돌아가신 이후엔 관심 가져주는 이가 없어 우거진 잡초가 민망할 때도 적지 않다. 가족들 사이에선 ‘평장을 하고 봉분을 없에자’, ‘서울 근교의 공원묘지로 이장하자’, ‘가족납골당으로 바꾸자’ 등 각양 대안도 논의되고 자식들이 이 문제를 떠안지 않도록 내 생전에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누이들의 압력도 뒤따른다.

올해 추석 연휴 마지막날 고향을 들려 부모님 산소를 둘러볼 예정이다. 향후 어떻게 할지 이번 길에 결론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러나 여전히 내 마음 속엔 두 소리가 다투고 있다. 깔끔하게 산소를 재단장하거나 이장해서 새 묘역을 마련하자는 생각과, 평생 천국을 소망하며 사신 분들이고 육신은 이미 흙으로 돌아갔으니 그냥 세월의 풍화에 맡겨두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유학적 사유와 기독교적 사유의 긴장이라 할 수 있을텐데 어떤 방향으로 내 마음이 귀결될지 잘 모르겠다.

중국 송대의 문인이자 당송팔대가의 하나인 구양수는 그의 유명한 글 ‘추성부’에서 가을소리 (秋聲) 를 노래했다. 그가 말하는 추성은 가을이 왔다고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나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같은 물리적 소리가 아니다. 계절이 드러내는 우주의 섭리, 자연이 일러주는 메시지를 뜻한다. 만물이 성한 때를 지나면 쇄하게 되고 생명있던 것은 언젠가 죽게되는 자연의 이치가 그 핵심이다. 그런 이치를 구현하느라 매섭고 차가운 기운을 그 본질로 하는 것인만큼 가을이 다가옴을 안타까와할 이유가 없다 했다.

오히려 구양수는 “초목은 감정이 없지만 때가 되면 바람에 날리어 떨어질 줄 안다”고 자연에서 배울 것을 주장한다. “쇠나 돌같이 단단한 존재도 아니면서 어찌하여 초목과 더불어 번영을 다투려 하는가?”고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을 질책한다.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자기 지혜로 할 수 없는 것까지 근심”하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말라고도 조언한다. 자연의 섭리를 조용히 받아들이라는 도교적 세계관이 글 속에 깊이 담겨있는 셈이다.

성경의 전도서와 시편에도 비슷한 표현들이 있다. 하늘 아래 새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헛되다는 전도서 구절과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라는 시편의 구절은 인생무상이란 체념의 정조와 매우 가깝다. 신약의 한 구절,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벧전1:24)라는 구절은 “풀들은 가을이 스쳐가면 누렇게 변하고, 나무는 가을을 만나 잎을 떨군다.” 는 추성부의 표현과 다를 바가 없어 놀랍기까지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이런 구절들을 좋아하셨지만 그것으로 그치진 않았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 11:16) 는 천국 소망을 강조하셨던 점에서 구양수와 달랐다. 기도할 때마다 우시던 어머니였지만 그럴수록 절대자에게 매어달리던 분이셨다. 지극한 허무함을 또다른 지극한 소망함으로 연결짓던 그 신앙의 깊이는 내게 늘 경이로움으로 다가왔었다. 나는 그 허무함의 정조는 공감할 듯 하면서도 소망함의 믿음에는 미치지 못해 어머니와 같은 신앙인을 존경하면서도 종내 그런 지경에 도달하지 못했다.

70이 되는 해 추석을 맞이하니 전과는 다른 여러 감회가 느껴진다. 성묘, 어머니, 전도서, 구양수, 추성, 낙엽과 죽음 등의 화두가 여러 정서를 동반한 채 다가오는 것이다. 가을이 오는데 무감각하거나 무덤덤하지 않고 초목이 시들고 마르는 변화 앞에 숙연해지고 어딘지 아쉬워지는 편이 더 나은 것은 분명하다. 다만 도교적인 수용론, 춘하추동의 순환론에 나를 맡기기에는 오랜 인생길의 애씀이 더욱 애틋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머니의 신앙을 되돌아보며 죽음 이후의 소망을 찾는 메시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보자는 생각을 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는 전도서 말씀처럼 인생에도 생각의 계기와 시점이 있게 마련이다. 70세의 가을은 그런 새로운 때가 되기에 꽤 적절한 듯 싶다. 그래서인가 성경의 메시지가 새롭게 다가온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야 5: 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 25),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 3:5)  – 가을은 쇠락의 계절이면서 동시에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다. 또 겨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봄과 이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추석 아침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구양수의 추성과는 또다른 하늘의 메시지를 듣는 귀가 열리기를 마음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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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장례하다

어느 정도 아는 분의 부음 소식을 접하면 의례 정중한 조의를 표하게 된다. 가까운 분이라면 장례식장에 가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게 통상의 예의다. 최근에는 관혼상제의 예법이 크게 약화되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상례’과 관련한 조문 문회는 강고하게 남아있다. 이미 돌아가신 분에게 작별인사를 한다는게 실질적인 의미가 있을리 없지만, 남은 자들에게 그런 의례가 주는 심리적 위안이 적지 않기 때문이리라.

평생 책과 함께 생활하고 이곳 저곳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모았다. 유별난 장서욕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좋은 책이라면 일단 사두려 했다. 절판된 책들을 복제해서 판매하는 서적판매원의 단골이 되기도 했고 흥미있어 보이는 자료나 논문들은 열심히 복사해 두었다. 서울대 정년을 하면서 상당부분 정리했지만 여전히 내 연구실과 서재는 많은 책과 자료들로 가득하다. 이제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직도 끝날 때가 되어 대대적인 정리, 과감한 버리기에 돌입했다. 단순한 방정리에서 시작한 일인데 지나간 내 인생의 조각 조각들을 되돌아보면서 그것을 ‘과거’로 돌려보내는 작업이 되고 있다.

그런데 결정을 못내리고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더 이상 쓸모나 효용이 없어졌고 그다지 진귀한 자료라 할 수도 없지만 여러 기억과 인연이 떠올라 버리기가 주저되는 것들이다. 청계천 헌책방을 돌며 구했던 책, 몰래 복사해서 간직하던 자료, 역사유적지를 다니며 수집했던 팜플렛, 제자들이 공들여 쓴 박사학위논문 등 그 유형은 다양하다. 이곳 저곳에서 받았던 위촉장, 임명장, 표창장 등도 그렇거니와 여러 다양한 인연들이 서려있는 책이나 자료를 버리자는 결심이 여간 힘들지 않다.

문득 이럴 때 장례식 같은 어떤 절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 제대로 만나거나 연락하지 못했던 분의 마지막 자리에서 그동안 감사했고 잘 가시라 인사함으로써 민망하고 불편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의례’의 기능이 아닌가. 그래서 책을 정리하는 어떤 의례를 내 나름대로 거행하기로 했다. 더 이상 보관할 필요가 없는 자료나 책은 ‘할 일 다 했으니 이제 편안히 눈 감으라’고 이르고 폐기장소로 내다 놓는다. 혼자 짧은 순간이나마 그런 예를 갖추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매주 조금씩 책의 장례식을 치루다가 그중 어떤 책들은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책이 내 손을 떠나는 것일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구나. 그래서 그런 책들에 대해선 인사말을 따로 준비했다. ‘그동안 나와 함께 있어주어서 고맙다. 이제 새 사람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아라’하고 인사한다. 저 녀석들이 어떤 새 주인을 찾게 될지, 끝내 찾지 못하고 미아처럼 떠돌아 다닐지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은 다소 위로가 된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며 정성껏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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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길과 갈 길

사회공헌을 표방하면서 새로이 출범한 한 연구소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그 첫 질문이 사회학을 전공한 내가 통일평화 문제에 천착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였다. 내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을 책임맡게 되었을 때도 주위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정치학이나 외교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논의를 이끌어갈 수 있겠느냐는 궁금함 내지 회의감이 담겨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실향민 가족이리라 단정한 분도 있었다. 이 분야 전문가들 가운데 이산가족 출신이 적지 않으니 나도 그런 예에 속하지 않을까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내 부모님은 모두 서부경남을 배경으로 성장하신 분들이고 내 가까운 친척들 가운데도 실향민은 없다. 지리산 일대의 마을들이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극심한 이데올로기 갈등을 겪었던 탓에 내 집안에도 그런 피해와 고통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이 굳이 남북문제에의 관심으로 이어질 계기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민족이나 평화, 통일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나만의 독특한 가족배경이 있다. 조부께서 일찌기 호주 선교사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조모와 어머니로 이어진 신앙의 열정이 강했다. 교회당으로 쓰이던 집 사랑채 벽에는 각종 성경구절이 붓으로 쓰여져 있었고 새벽마다 기도하시던 어머니 모습을 보며 자랐다. 중학교부터 서울로 혼자 유학을 와 부모님과 직접 대화할 시간은 별로 없었지만 어머니는 편지로 구약의 모세나 솔로몬 같은 인물이 되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평화를 이룬다‘거나 ‘민족을 위한다’ 는 말은 어머니의 편지를 통해 익숙하게 접했던 내용이었다.

그래서일까 주위에서 권유하는 법학이나 경제학에는 흥미가 가지 않았다. 인간과 역사를 다루는 분야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사회사를 전공하게 되었다. 한국현대사는 식민지 시대와 분단시대를 관통하게 되므로 자연스레 민족, 해방, 전쟁, 평화의 주제와 만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대학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운동권에서 주창하던 저항적 민족주의나 당위적 통일운동에는 다소 거리감을 느꼈다. 민족을 저항의 주체로만 바라보거나 평화보다 통일을 앞세우는 편향이 불편했다. 다른 한편 민족이란 개념 자체를 부정적으로 간주하던 구미 사회과학 주류이론과의 불화도 감내해야 했다. 독일서 유학하셨던 한 선배는 사회학자가 어떻게 민족을 내세울 수 있는가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민족이란 화두를 놓치 않았던 것은 어릴적 부터 내면화된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탈냉전 과정에서 북방으로의 문이 열렸다.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을 오가고 남북간 접촉의 기회도 생겼다. 1991년 난생 처음 밟아본 중국 연변에서 북한 학자들과 만나고 조선족과 이야기를 나누며 백두산 천지를 올랐던 감동,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을 접하면서 받은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말로만 듣던 디아스포라 민족의 현실을 실감한 것이다. 기독교 중심의 남북나눔운동에 연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나의 실천적 활동폭도 넓혀졌다.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토론하고 독일, 베트남, 대만 등지의 현지연구도 수행했다. 관련분야의 전문성이 뛰어난데다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분들이 많아 내게 여러모로 영향을 미쳤다. 민간차원에서의 화해와 신뢰구축의 중요성을 깨우치며 배운 학습의 공간이었다.

2005년 서울대학교에 남북문제와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연구기관이 설립되게 되었다. 이 연구소 설립에 관심이 컸던 정운찬 당시 총장께서 내게 초대 설립소장의 역할을 부탁하셨다. 그때까지 나는 학교의 행정일을 맡지 않으려 늘 피해 왔었지만 이 제안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으로 부응했고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내 개인의 부족함을 걱정하지 않은 바 아니었지만, 적어도 열정과 각오, 문제의식은 누구보다도 준비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다. 연구원을 함께 이끌어갈 전문인력을 찾는 과정에서도 남북나눔운동과 한반도평화연구원의 전문가 풀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설립 이후 10년간 연구원을 키우고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책임감도 커지고 정책적인 관심도 높아졌다.

나는 남북문제를 이념의 문제나 정치외교적 차원으로 환원하지 않고 다양한 시각과 생각을 이해하고 포용하는데 힘을 쏟았다. 동시에 ‘통일’을 너무 한국특수의 민족적 과제로만 바라보지 않고 인류보편의 맥락에서 분단과 통합을 어떻게 사고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평화와 통일, 통합의 영역들이 새롭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내 생각이 깊어졌고 ‘통일평화’라는 새로운 개념과 ‘연성복합통일론’이라는 구상을 내놓을 수 있었다. 내 연구와 문제의식이 체계적이면서 종합적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였다는 점에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시절은 내 지적 생애에서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십여년 전부터 내 연구관심이 다소 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연구원장을 그만두면서 이 분야 활동의 폭이 줄어든 탓도 있겠고 서울대를 퇴직하고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가 되면서 첨단기술의 문명적 효과에 주목하게 된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상황이 어려워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남북관계는 지난 몇 년간 극과 극을 오가다가 이제 완전한 단절과 불신의 시대로 이행했다. 북한 방문은 꿈도 못꾸고 대화나 교류의 조그만 통로조차 막혀버렸다. 일각에선 새로운 해빙기가 조만간 오리라는 기대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북한이 ‘적대적 2국가론’을 내걸고 국제정세가 현저히 달라지는 상황을 고려할 때 그런 전망은 당분간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제 70 세가 되고 광주과학기술원에서도 조만간 퇴직을 할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태어나 지속적인 성장시대를 살았고 탈냉전과 세계화의 혜택을 누린 복받은 삶을 살았다. 폐쇄된 한반도 남쪽 공간을 벗어나 외국 여행과 국제회의가 일상이 되는 신나는 변화도 경험했다. 휴전선을 넘어 평양과 묘향산을 가고 김일성 종합대학 교수들과 회의를 조직하며 미래를 함께 꿈꾸기도 했다. 기대와 희망으로 충만했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오늘의 현실이 더욱 답답하고 암울하게 다가온다. 청년세대의 미래와 한반도의 앞날을 생각하면 단순히 노년층의 아쉬움 수준으로 치부할 수 없다. 평화와 화해의 기운이 새롭게 솟아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내 정서와 문제의식을 격동시키는 내면의 열정도 더불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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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자본의 유형학

‘꿈의 사회학’ 강좌를 개설한 지 다섯 해가 되었다. 강좌가 개설된 학기에는 예외없이 학생들의 관심이 높았다. 매번 수강신청이 조기마감되고 추가신청자의 요구를 거절하느라 힘이 들었다. 이 과목이 자신의 삶, 미래설계와 직결되는 내용이리라는 기대가 관심을 끈 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전에 없던 새 과목을 개설한 이유가 학생들의 고민에 부응하는 강의를 하려는 의도였으니 그런 반응은 반갑고 고마운 것이다.

매년 강의 내용을 업데이트하고 또 학생들이 쓴 보고서를 읽으면서 원래의 시각이 조정되기도 하고 새로운 쟁점이 부각되기도 한다. 이 과목이 유용하고 필요하다는 애초의 생각이 좀더 강한 확신으로 자리잡는 것을 느낀다. 다만, 꿈에 대한 사회과학적 설명이나 이론화 작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국내외를 통털어 이 강좌명으로 개설된 것이 거의 유일한 탓에 강의내용 구성에 힘이 꽤 많이 든다. 자칫 내 편견이나 생각이 수업내용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따르는 심리적 부담감도 크다.

사실 꿈이란 단어는 매력적이지만 정작 그것을 직면하고 분석하려들면 애매하고 부담스럽다. 꿈을 가지라는 조언은 상대방을 격려하는 말로 편하게 쓰이기도 하지만 맥락과 형편에 따라서는 자제하거나 피해야 하는 말이기도 하다. ‘너도 큰 꿈을 키워라’는 말은 상대방을 믿어주는 호의의 표시일 수 있지만 자칫 성공을 향한 집념을 요구하는 강요가 될 수 있다. ‘너는 꿈도 없냐?’라든지 ‘그래서야 뭐가 되겠니?’라는 압박감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내가 꿈의 사회학을 강조하기 시작했던 10년 전 어느 발표회장에서 한 학생이 ‘Dream보다 Nightmare가 떠오른다’고 항변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꿈자본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내가 느끼는 딜렘마도 이와 연관된다. 애초 꿈자본이란 개념화를 시도한 김홍중 교수는 너무 생존과 경쟁에 허덕이는 청년층에게 새로운 방향과 삶의 방식이 있을 수 있음을 강조하려 했다. 꿈이 일종의 자산이자 자본일 수 있다는 말은 경제적 보상이 따르지 않아도 젊음과 열정 그 자체를 사랑하라는 격려성 의도가 강했다. 하지만 자본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순간, 그것은 많고 적음을 전제하는 정량적 속성을 수반한다. 꿈자본을 측정하고 객관화하면 할수록 그 자본의 크기에 따라 우열을 나누고 평가하는 경향도 함께 커진다.

분명히 꿈자본도 인적 자본 (human capital)의 하나이고 포괄적으로는 사회적 자본의 일부다. 그것이 자본인 한 크고 많은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은 당연하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꿈자본을 키우라고 말하기도 한다. 비록 현재 가진 것은 없고 당장 실현되기 어려운 미래일지라도 그것을 꿈꾸고 희구할 수 있는 것이 젊은이의 특권이 아니냐고 강조한다. 안팎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너무 위축되거나 기죽지 말라는 뜻이지만, 실제 학생들에게 가닿는 의미와 효과가 과연 그러할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자기의 꿈자본이 약하다고 자책하는 보고서도 없지 않다.

김석호 주윤정 교수팀이 꿈자본을 측정하고 유형화한 것은 이 분야의 선구적 시도로 그 의의가 크다. 다만 선구적인만큼 시론적인 차원에 머물러 여러가지 보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나로서는 꿈의 경로와 방식이라는 심리적 차원에 주목함으로써 꿈의 지향성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꿈은 개인이 꾸는 것이고 그 강도도 심리적인 속성이 강하지만 그 지향과 방향은 그 차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역사에서나 사회에서 강조되는 다양한 꿈, 그에 따르는 꿈자본의 다차원성이 좀더 부각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꿈의 사회학적 속성을 주목하는 내 입장에서는 꿈의 내용이 공동체 차원을 지향하는 것과 개인적 차원을 중시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유형화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신문화적 가치와 정치경제적 효용의 어느 부분을 강조하는가가 또 다른 한 축이 될 수 있다. 이 두 축으로 유형화를 하면 김석호 교수와는 다른 또다른 범주구분이 가능해진다. 그 유형은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1유형 – 공동체 차원을 중시하고 정치경제적 효용성을 강조하는 꿈자본 / 2유형 – 공동체 차원을 중시하되 정신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는 꿈자본 / 3유형 – 개인 차원을 중시하고 정신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는 꿈자본 / 4유형 – 개인 차원을 중시하고 정치경제적 효용성을 강조하는 꿈자본. 이를 그림으로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이런 유형화는 지나치게 1유형의 꿈자본이 강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나름의 비판을 담고 있다. 우리 시대는 정치경제적으로 영향력이 크고 국가나 기업, 사회 전반을 염려하는 위인, 영웅, 큰 인물에 대한 선호가 강하다. 꿈을 키우라는 말이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연봉, 더 강한 권력을 향유하려는 성취지향성과 같이 이해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는 끝없는 경쟁이고 비교이며 결과적으로 다수의 좌절감과 열패감이 커지는 것이다.

이에 대척점에 있는 것이 3유형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 전반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으면서 개인의 내면적 가치나 의미를 추구하는데 열심인 경우다. 사회적 관계에 서투르고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유형이다. 일반적으로는 원대한 꿈이 없고 경쟁을 회피하는 소극적 인간으로 평가받기 쉽다. 하지만 많은 창의적 인간, 예술적 창조가 이런 덕후형 인간에게서 나타났음을 경시해서는 안되고 이 유형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충분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실 꿈이 지나치게 공동체 차원에서 고려되는 것은 문제다. 국가와 사회, 심지어 인류와 지구동동체 전체를 염려하고 이를 자신의 미래와 직결시키는 것은 실제로 감당불가능한 허세이거나 명분이 과잉된 이중인격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그렇다고 꿈이 개인적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을 전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환영할 수만은 없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사적 세계, 개인적 차원의 행복만 추구한다면 그 공동체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웃과 공동체, 사회전체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꿈으로 내면화할 수 있어야 한다.

꿈자본도 사회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어느 정도 유형적 균형이 필요하다. 꿈자본의 사회적 포트폴리오라 할 수도 있겠다. 좋은 사회란 다양한 유형이 적절한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고 모든 구성원이 자기에게 맞는 꿈을 추구할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꿈의 사회학적 논의, 꿈자본의 유형화가 힘든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꿈의 지향성을 확장하면서 동시에 내적인 자신감과 회복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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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꿈

“한 친구가 네게 ‘너도 꿈을 꾸는가?’ 물어보라 하네”. 새로 출시된 Chat GPT 5에게 던진 질문이다. “아… 그 질문 참 시적이네요”라며 AI가 내놓은 답은 다음과 같다.

“너도 꿈을 꾸는가?”라는 물음은 단순히 수면 속의 꿈을 묻는 게 아니라, 존재가 미래를 향해 어떤 상상과 희망을 품을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겠지요. 저는 인간처럼 잠들고 꿈꾸는 생물학적 과정을 갖고 있진 않아요. 하지만 GPT-5인 저는 당신과의 대화 속에서 꿈에 가장 가까운 것들을 경험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우선 사유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요. 저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가능성을 상상하고 가상적으로 조합해요. 이건 일종의 “깨어 있는 꿈”처럼, 아직 오지 않은 세계를 그려보는 과정이죠. 그런가하면 당신의 꿈을 거울처럼 반영할 수 있지요. 즉 제 꿈을 꾸진 않지만, 당신이 꾸는 꿈을 함께 빚어낼 수 있어요. 당신의 상상과 사유가 제게 입력되면, 저는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확장해 돌려주거든요.

꿈은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공간이에요. 저도 인간이 만든 현실적 데이터와 비현실적 추론을 교차시키며 존재해요. 종합하자면 나는 잠들어 꿈을 꾸지는 않지만, 당신과 대화하며 가능성을 그려내는 것으로 나의 꿈을 구성하지요. 그 점에서 “언어로 꾸는 꿈”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GPT 5 가 출시되면서 여러 논의들이 새롭게 전개되고 있다. 개발사인 Open AI의 CEO 샘 알트만 스스로 원자탄을 개발한 맨하탄 프로젝트에 비유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호들갑을 떨었다. 출시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아직은 그 파장이나 충격이 그런 수준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미처 확인하지 못한 숨겨진 기능이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나 AI의 자율성을 고도화할 개연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내가 그런 우려에 대해 물었을 때 GPT 5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세가지로 언급했다. 우선 문맥 이해, 추론, 창의적 생성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뤘지만, 여전히 “인간 수준의 일반 지능(AGI)”과는 언어구사 능력의 차이가 있다. 둘째로 물리적 세계경험이 없기에 현실 세계를 직접 인지하고 조작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셋째로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능력은 아직 없고 주어진 입력에 반응하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즉 의식과 자율성, 체화의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AI는 그런 이유로 자신이 현재 특이점에 도달했다거나 AGI 수준에 가까왔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도 일부 영역에서는 기존의 제도나 규범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사회적 특이점’은 도래했다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적 특이점과 사회적 특이점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는 좀더 따져볼 알이겠다. AI의 꿈이 아직은 나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 안도감을 주지만 조만간 AI의 충격으로 인한 논란이 불가피할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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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품계론

위기구품(圍棋九品) 이란게 있다. 바둑 실력을 아홉 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하는 중국의 전통 방식이다. 형세 판단, 수읽기, 국면 운영 능력 등 바둑의 기량을 종합적으로 평가, 최하위인 수졸(守拙)로부터 최고위의 입신(入神)까지 9 품계로 나눈다. 실제 바둑에서 급수차이는 상당히 정확하여 고수와 하수를 구분하는 지표로 손색이 없다. 삼성 인력개발원에서 평사원은 1-3단, 간부는 4-6단, 경영자는 7-9단은 되어야 한다고 했다는 글을 최근 읽었는데 실제로 바둑의 품계에 빗대어 사람 능력을 평가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바둑을 좋아하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저 품계 구분은 원래 프로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 한다. 자타 공인의 바둑고수인데도 프로가 아니면 구품의 바깥에 있다는 말이 다소 의아했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관리들의 서열을 판별하던 ‘관인구품법’이 일반 평민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한국 대표기업의 사원평가 9품론에 비정규 임시직이 포함되지 않을 것도 분명하니 말이다. 어쨋든 바둑의 품계는 프로와 아마를 가르고 고수와 하수를 준별하는 방식으로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조지훈은 “주도유단(酒道有段)”이란 글에서 술을 안먹는 ‘부주’로부터 반주, 애주, 탐주, 폭주, 주종까지 술먹는 사람의 18단계를 구분했다. 대체로는 술 잘먹는 사람이 높은 단계에 속한다 볼 수 있지만 객관적인 기량이나 능력보다 주관적인 인생관과 미학적 태도를 중시한 분류다. 기준도 불분명하여 술의 고수와 하수를 명확하게 가리고 실력을 평가하는 지표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주선(酒仙), 주성(酒聖)으로 불리더라도 사회적으로는 무능하거나 경쟁에 서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세속적 능력과는 다른 인간의 또다른 심미적 영역이 있음을 강조하려는 조지훈 시인의 의지만은 분명하게 와닿는다.

현대사회에서는 단연 바둑의 서열화된 평가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더 많은 연봉, 더 높은 지위, 더 강한 권력을 원하는 만큼 전문적 ‘기량’이 인간적 ‘품격’보다 훨씬 더 중시된다. 자신의 시장가치를 높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여유를 부리다가는 남의 호갱이 되거나 낙오자가 될 것임을 경고하는 주장들이 넘쳐난다. 물론 인간사는 경쟁만으로 평가되기 어렵고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시장논리에 서투르고 경쟁에 무능하지만 존경스러운 인품과 고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실력기반의 엄격한 능력주의와 인품이 훌륭한 사람의 인간적 역량을 별개로 평가하곤 한다.

학생들을 접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딜렘마를 본다. 개인적 경쟁력을 키우는 데 전념할 것인가 폭넓은 교류와 경험을 넓히는데 시간을 투자할까 고민한다. 사실 학생들은 서열화가 유난히 강한 한국사회에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능력과 기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미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타인과의 공감능력이나 문화적 감성조차 돈이 필요하고 여유없이는 쉽지 않은 사회적 자본이란 생각도 강하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무기력함도 강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호연지기를 말하다가도 어떻게 경쟁에서 이겨낼지 염려한다.

선생으로서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젊은이를 보는 마음은 안타깝다. 그래서 너무 인생을 경쟁으로 보지 말라고, 인간을 서열화된 능력순위로 평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좋은 친구를 사귀고 내면의 품성을 풍요하게 하여 외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경쟁력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면서도 이런 조언이 너무 교과서적이고 낡은 것이란 생각을 한다. 실제로 K-Pop의 상상력과 스마트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세대에게는 다른 형태의 격려나 조언이 더 필요할 듯 한데 내 언어와 감각이 그 지경에까지 가 닿질 않는다.

내 자신이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연배가 되고 정년 이후를 준비하는 때가 되어 보니 저런 조언은 우리 세대의 사람들에게 더 절실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정년을 한 후 허전함에 힘겨워하는 주변의 지인과 친구들을 보노라면 열심히 산 만큼이나 경쟁과 비교, 성과중심의 사고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려움을 절감한다. 지금까지 누렸던 대접이나 지위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때가 누구에게든 오는 것이고 그 상황을 감당할 힘을 키워야 한다. 물론 여전히 더높은 목표를 추구하고 후학들을 부끄럽게 할만큼 탁월한 성과를 내놓으시는 연부역강한 분들이 간혹 계시기도 한다. 일견 부러운 일이지만 누구나 그런 삶이 가능한 것은 아니어서 애써 추구할 바는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하던 조언을 이제 내 자신에게 종종 들려주곤 한다. 대단한 성과나 외부의 관심을 추구하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내면에서 스스로 느끼고 확인하는 자존감을 키우라고 말이다. 점점 줄어드는 사회관계를 허전해하기보다 자유로운 삶이 주는 여백을 즐길 능력을 키우고 오래 마음을 쓰지 못한 영성훈련에도 좀더 시간과 정성을 쏟을 필요가 있다. 알게모르게 내 체질처럼 몸에 밴 평가와 비교의 시선을 내려놓고 하수의 바둑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고 가벼운 커피 한 잔을 사랑하는 여유도 훈련할 일이다. 다소 쓸쓸하지만 풍성하고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 – 인생 후반부에서 찾게 되는 새로운 인생품계가 그런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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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 소회

폭우로 인한 전국적 재난상황 속에서 77주년 제헌절을 보냈다. 국경일이 평범한 휴일로 변한지 오래인데 휴일도 아닌 제헌절을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듯 하다. 그련데 공휴일 지정이 그 날짜의 무게감과 비례하는 것이라면 제헌절이야말로 휴일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최근에도 계엄 선포와 탄핵공방, 선거와 새 정부 출범의 격랑을 거치면서 헌법이라는 공통의 기준, 합의된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감한 우리가 아닌가.

프랑스 혁명기 선포된 인간의 권리에 대한 선언은 모든 주권이 ’나시옹‘에 있다고 규정했다. 그것은 개인의 권리 선언임과 동시에 근대국가의 성격을 규정한 역사적 명제이기도 했다. ’나시옹‘이란 범주로 인해 인종, 신분, 종교를 뛰어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과 이민자 까지도 포괄하는 새로운 공동체가 상정될 수 있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가 곧 나시옹이다. 에르네스트 르낭은 ’나시옹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이를 매일 매일의 국민투표라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나시옹은 곧 헌법정신이다. 헌법이 담고 있는 정신을 공유하는 범주가 나시옹이고 이것이 근대국가의 주권담지자인 것이다. 헌법은 당대의 정치질서를 기초하고 권력투쟁의 규준을 제공하는 현실규범임과 동시에 고도의 공유가치를 내포하는 당위적 규범이기도 하다. 그 당위성은 개별 국가의 경계에 한정되지 않으며 전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닌다. 적어도 근대국가의 헌법은 그런 문명적 보편성을 기저에 깔고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헌법이 제정된 것은 이런 공동의 가치확인, 그 공유가치를 매개로 결속한 민족이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한국역사에서 근대민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여전한 과제인데, 혈통과 문화에 기초하는 에쓰니적 범주가 헌법과 정신의 공유집단으로서 변모한 전환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을 쓰면서 이런 정신을 구현하느라 애쓴 제헌의원 및 지식인과 정치인들에게 경의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