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old and new

조형근 박사가 장인이 만든 수제품 만년필을 보내왔다. 정성이 깃들였을 그 만년필을 대하니 초보 강사 시절 ‘old and new’란 쪽지와 함께 받았던 선물이 떠올랐다. 그 속에는 붓과 만년필이 들어있었는데 보낸 분의 탁월한 감각에 감탄했었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학자에게 문방사우나 필기구에 대한 욕심은 없을 수 없다. 실제로 붓과 펜은 동양의 선비와 서양의 지식인들의 가장 중시하던 아이템이었다.

동서양 문명이 붓과 펜 위에 성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편리한 연필과 불펜이 등장하면서 점차 일상에서 멀어졌고 컴퓨터 시대가 되어서는 아예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뛰어난 글을 쓰는 작가나 학자들도 정작 글씨는 초등학생 같은 경우도 적지 않다. 붓으로 쓴 글씨에 놀라는 중국 학자도 적지 않다. 기술이 동서문명을 통합시키고 있다고 환영해야 할 지 오랜 문명의 품격을 폐기한다고 아쉬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짐을 정리하면서 붓과 만년필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어떤 것은 자주 써서 손때가 묻었고 어떤 것은 아예 새 것으로 남아 있지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는 시대의 ‘new’는 디지털 첨단기기의 몫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붓과 만년필에 담겨온 정성과 품격은 결코 사라지거나 무의미해지지 않을 것이다. ‘流水居然’이란 글씨까지 새겨진 정갈한 만년필을 접하니 法古創新을 표방한 새로운 도전을 해볼 마음이 생기는 듯 하다. 무모한 과욕일까 참신한 발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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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활동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어 어제 (5.20) 8차 총회에 참석했다. 1945년 유앤 창설과 더불어 출범한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유네스코는 교육 문화 분야의 국제협력을 주요 활동으로 삼고 있다. 유엔의 역할이 매우 컸던 한국에서 유네스코의 활동은 초창기부터 괄목할만 했다. 한국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문화의 교류와 소통에 큰 몫을 담당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서만 이해되는 오늘의 관심이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2021년 국가간, 종족간, 인종간, 계층간, 종교간 갈등이 더욱 거세지는 추세다. 문화와 양식의 충돌도 적지 않고 코로나 19가 보여주듯 환경위험도 긴장을 더한다. 그럼에도 유네스코와 위상이 전만 못한 것은 다양한 국제기구들, NGO 들의 활동이 유네스코의 독자적 지위를 상대화시킨 탓도 있겠지만 평화라는 상위 목표, 본질적 가치에 대한 민감성이 약해진 탓도 없지 않을 듯하다.

이번에 살펴본 유네스코 헌장 전문에는 유엔 창설의 목적이었던 평화가 가장 앞에 언급되어 있다. 교육도 문화도 평화라는 가치의 실현으로 수렴되어야 할 20세기 숙제를 천명한 것이리라. 온라인으로 열린 어제 총회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국제협력과 다양성 교육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이런 일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다. 한경구 사무총장의 식견과 리더십이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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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남 외, 절멸과 갱생 사이

박해남, 김재형, 곽귀병, 김일환, 이상직, 최종숙, 추지현 등이 함께 연구하고 펴낸 책 <절멸과 갱생 사이: 형제복지원의 사회학>이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간행되었다. 40여년 전 신용하 교수님 주도로 사회사학회를 만들어 역사적 사건과 자료들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한 이래 역사사회학, 사회사적 연구가 그 폭과 너비를 확장해왔다. 이 책이 그로부터 시작된 지적 역량의 꾸준한 발전상을 보여준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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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축의 시간

어제 오늘 달라지는 잔디와 나무잎의 초록빛을 감상하다가 아 어제가 5월 18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자 고요하던 마음에 파문이 인다. 40년 전 그 날 아침 신문을 보면서 느꼈던 당혹스러움과 그 이후의 역사적 부침, 오늘의 정치적 소란에 대한 소회까지 파장의 폭은 넓다. 평온하던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이 싫어 애써 생각의 깊이를 축소시키려 하는 나를 발견한다.

개인이 실존적으로 경험하는 시간과 공동체의 역사가 구성되는 시간은 그 결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라의 흥망성쇄가 개인의 생노병사와 별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 없으니 양자가 모두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인류 공동체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실존적 시간은 부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헤겔은 ‘역사의 간지’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종교가 가르치는 우주적 시간, 신의 개입, 카이로스의 순간은 국가공동체가 전유하는 시간감각의 한계를 더 문명론적이면서 실존적인 차원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코로나의 위험, 기술문명의 충격 앞에서, 여전히 삶의 무게와 질병의 두려움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5월 18일을 맞이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간감각을 국가화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실존적 삶과 문명사적 시간성까지 포괄하는 해석의 폭과 다양성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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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탈출

아파트를 벗어났다. 결혼 후 40년 가까이 몸에 밴 아파트의 편리함 대신 흙과 정원을 손 보는 즐거움으로 바꾸고 싶은 바램의 결과다. 휘어진 살구나무 가지에 줄을 매 주면서 맛보는 새로운 기쁨이 앞으로의 기대감을 높인다. 하지만 분주한 일상과 각종 모임에 익숙해진 탓인지 오랜 삶의 방식과 연결망에서 소외될 수도 있으리라는 일말의 불안도 없지 않다. 일과 여유, 대화와 사색, 함께와 홀로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은 내게 주어진 새로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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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과 전략-前派포럼

국가전략연구원이 주최한 ‘전파포럼’에 참석했다.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을 고려하면서 국가전략의 향방을 탐색하자는 전문가 좌담회였다. 미중의 갈등이 격화하고 한일관계는 바닥이며 남북관계는 교착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떤 ‘균형’이 얼마나 절실한지가 논점이었다. 참석자들은 균형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잘못된 이분법이 전제되거나 기회주의적 절충을 포장하는 말로 쓰이지 않아야 함을 지적했다. 가치와 이익, 주권과 동맹은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추구해야 할 복합적인 목표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세션 좌장 역할을 요청받았을 때 구한말의 ‘조선책략’ 이 떠올랐다. 19세기 말 조선이 처한 상황과 오늘의 한국을 같이 볼 수는 없지만 격동하는 안팎의 변화, 특히 힘들어지는 국제관계를 직시하면서 큰 전략의 틀을 구축하는 일은 여전히 절실하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미래를 염려한다 의미로 ‘前派’라 명명했다는 설명처럼 참석자들은 다양한 시각을 피력했고 토론은 흥미로웠다. 답답함이 쉽게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진지하고도 꾸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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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연휴와 5.4 운동


[중국현대사를 만든 세가지 사건]이란 제목으로 중국 100년사를 살핀 백영서 교수는 1919년의 5.4운동,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989년의 톈안문 사건을 상징적인 모멘텀으로 설명하였다. 실제로 한 세기 전 오늘 발발했던 5.4운동은 비단 중국현대사에서만 중요한 사건이 아니다. 두 달 앞서 분출한 조선의 3.1운동과 일본의 자유민권운동이 연동된 동아시아적 변혁의 한 국면이었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변화와도 맞물린 ‘새 시대’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民, 자각한 주체의식이 부상했고 청년, 학생, 노동자, 지식인의 존재가 부각되었다.

2021년 5월 4일을 보내며 한 세기 변화를 또다른 차원에서 실감한다. 정작 중국부터 노동절 연휴의 대이동 소식에 뭍혀 5.4운동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듯하다. 점점 더 일본중심적이 되어가는 일본이나, 3.1운동조차 데면데면하게 보낸 한국이 5.4운동에 주목할 리는 더더욱 없다. 격동의 20세기 초, 동경과 상해와 서울을 오가며 서구의 선진문물을 적극 수용하던 당대 지식인의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모습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에 비해 시장을 통해 서로의 연결성을 절감하는 기업인, 가치사슬과 인터넷으로 얽힌 정보와 사물의 조밀한 연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실제로 정치인과 지식인, 공적 담론을 주도하는 지도층들과는 달리 일상의 삶에 충실한 경제인과 열린 가슴으로 문화를 소비하는 평범한 대중들에게서는 보다 열린 소통과 연대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지식인 중심의 과거사 해석에서 벗어나는 것을 환영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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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연휴 속 5.4운동

[중국현대사를 만든 세가지 사건]이란 제목으로 중국 100년사를 살핀 백영서 교수는 1919년의 5.4운동,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989년의 톈안문 사건을 상징적인 모멘텀으로 설명하였다. 실제로 한 세기 전 오늘 발발했던 5.4운동은 비단 중국현대사에서만 중요한 사건이 아니다. 두 달 앞서 분출한 조선의 3.1운동과 일본의 자유민권운동이 연동된 동아시아적 변혁의 한 국면이었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변화와도 맞물린 ‘새 시대’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民, 자각한 주체의식이 부상했고 청년, 학생, 노동자, 지식인의 존재가 부각되었다.

2021년 5월 4일을 보내며 한 세기 변화를 또다른 차원에서 실감한다. 정작 중국부터 노동절 연휴의 대이동 소식에 뭍혀 5.4운동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듯하다. 점점 더 일본중심적이 되어가는 일본이나, 3.1운동조차 데면데면하게 보낸 한국이 5.4운동에 주목할 리는 더더욱 없다. 격동의 20세기 초, 동경과 상해와 서울을 오가며 서구의 선진문물을 적극 수용하던 당대 지식인의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모습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에 비해 시장을 통해 서로의 연결성을 절감하는 기업인, 가치사슬과 인터넷으로 얽힌 정보와 사물의 조밀한 연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실제로 정치인과 지식인, 공적 담론을 주도하는 지도층들과는 달리 일상의 삶에 충실한 경제인과 열린 가슴으로 문화를 소비하는 평범한 대중들에게서는 보다 열린 소통과 연대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지식인 중심의 과거사 해석에서 벗어나는 것을 환영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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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일어난 사건

자주 지나치던 집 주변의 한 아카시아 나무가 활짝 꽃을 피웠다. 얼마전까지도 기미가 없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같은 나무들도 이제야 조금씩 꽃망울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녀석은 아예 만개했다. 나무들도 그들 간에 경쟁을 할까? 아니면 유난히 성급한 녀석일까? 경쟁이라 하기에는 다른 나무의 속도에 관심이 없고 성급함이라기엔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이 또렷하니 굳이 말한다면 개성이라고 할 밖에 없다. 세상사의 흐름이나 주변의 평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우주의 섭리와 자신의 생명력에 순응하면서 분출하는 이 놀라운 아름다움은 매년 이맘때 주어지는 계시적 사건이다. 섭리와 개성과 자연스러움이 함께 연동하는 우주적 신비를 드러내는 징표로서의 사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