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성서의 가르침은 흔히 황금율로 불리면서 서구 윤리도덕의 근간으로 언급된다. 그런가 하면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이란 공자의 말은 예를 중시한 동양 윤리의 기초로 간주된다. 적극적 실천을 강조한 전자를 금율(golden rule), 소극적인 無爲를 강조한 후자를 은율(silver rule)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동서양을 서열화하는 듯한 표현이라 최근에는 두개의 황금율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요즈음 이 두 목소리가 내 마음 속에서 종종 부딪친다. 내가 바라는 바를 위해 새로운 일과 활동의 기회를 확장하고픈 마음이 한켠에 뚜렷한 반면 새 일을 벌이기보다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또다른 목소리도 또렷하다. 되돌아보면 정년기념 서예전을 준비하면서 제자들에게 써준 글도 이 두 유형으로 나뉘어지는데 도연명의 ‘귀거래사’나 노자의 글들은 후자에 기울어져 있었다면 최승자나 심보선의 시는 전자에 가까운 글들이었다. 애써서 노력하고 바라는 바에 힘을 쏟는 것과 세상사의 흐름을 섭리로 수용하고 순응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 – 어느 것도 현재의 나로서는 포기하기 어려운 덕목이자 내면의 지향이다.
지혜포럼을 이끌어가시는 몇 분들과 앞으로 어떤 새로운 일을 기획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면서 내 마음 속 두 지향의 불편한 공존을 또 한번 절감했다.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들, 대선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세대간 젠더간 갈등, 맘몬주의라 부를만큼 강한 돈의 위세 앞에서 가치의 아노미를 겪고 있는 현실을 단지 언급하고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한가라는 물음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덕이라는 생각이 혼란스럽게 부딪친다. 공신력이 하락하고 많은 안팎의 어려움에 부딪친 기독교계를 위한 어떤 노력이 절실한 시대임은 분명하고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분들의 헌신이 존경스러운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변화된 사람이 미칠 거대한 힘을 믿는 것이 교육과 신앙의 중요한 가치임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욕과 당위에 비해 내가 가진 경험과 식견, 신앙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조심스러운 마음이 커지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진솔한 성찰일지 비겁한 머뭇거림일지 확신이 서질 않지만 이 두 마음은 당분간 내 속에 함께 있을 것 같다. 어떤 새로운 계기가 오기까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