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수성동계곡과 인왕산 성곽길을 다녀왔다. 한반도평화연구원 활동으로 인연을 맺은 분들과 모처럼의 저녁 모임을 갖게 된 곳이 이 주변이어서 미리 마음을 정해둔 여정이었다. 마침 날씨도 좋고 벗꽃도 만개한데다 곳곳에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 생각지 않은 즐거움도 컸다. 호젓하게 자유로이 윤동주 기념관과 한양도성 성곽길을 둘러본 것은 덤으로 누린 기쁨이었다.
수성동계곡은 겸재 정선의 그림 [장동팔경첩] 수성동의 현장이고 서울의 난개발 과정에서 사라져버렸던 돌다리와 계곡이 아파트 철거로 다시 드러나 옛모습을 찾게 된 곳이다. 겸재가 이곳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이곳 둘레길에는 진경산수탐방이라는 팻말이 붙여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 이전부터 풍류를 즐기던 문사들이 즐겨 찾던 장소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이곳에 비해당이란 정자를 짓고 당대 최고의 선비들과 시를 짓고 담소를 나누었는데 이들이 이곳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48詠詩’ 일부가 전해져 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수 년 전 서울대 화묵회 전시에 대나무 수묵화를 출품했다. 그림에 어떤 글을 적을까 생각하다가 성삼문이 안평대군과 더불어 주고받은 ’48영시’의 한 부분을 썼다. “度竹風聲碧 含風竹影淸” (대 숲 지나는 바람소리 푸르고/ 바람 머금은 대 그림자 맑다). 심경호 교수의 저서 덕분에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을 비롯한 조선조 선비들과 안평대군 간에 주고받은 시들을 접해본 덕택이다. 수성동계곡을 오르면서 나는 안평, 안견, 성삼문, 박팽년, 겸재 등 만나본 적 없는 이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돌다리가 있는 수성동 입구는 버스 종점 바로 앞이었다. 조용하고 멋진 계곡의 풍광을 상상했던 나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계곡의 규모가 작아 물이 제대로 흘러도 작은 개울 수준을 넘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인왕산 정상을 향한 길을 오르면서 아름다움은 반드시 장대함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이내 깨달았다. 다양한 모양의 바위와 작은 골짜기, 크고 작은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진경산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복궁 옆부터 인가 없는 길을 지나 이곳으로 오르던 이들에게 수성동은 말 그대로 조선산수의 정형과도 같은 풍경으로 와 닿았을 법하다.
인왕산 정상에서 내다보는 서울의 풍경은 장쾌하고 시원했다. 남산을 바라보면 시내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백운대 방면으로 눈길을 돌리면 아스라히 북한산 줄기가 다가온다. 그 사이로 청와대를 품은 북악산의 아름다운 자태도 또렷하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성곽둘레길이 이어져 있어 또다른 멋스러움을 더한다. 이곳의 성곽은 그 높이가 낮고 주변과 너무 잘 어우러져 외침을 막기 위한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한 미학적인 이유로 세운 것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모처럼의 멋진 기억을 오래 간직하려 겸재의 문하생이 된 기분으로 화선지를 펴고 수묵으로 인왕산과 기린교, 계곡을 그려보았다.

교수님 글과 수묵화 정말 멋지세요. 역시 보는 분의 시선과 마음이 표현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끼게 되어요. 제가 본 것 아는 것 느낀 것에 풍성함을 더해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