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 1학기 개강을 했다. 서울대 정년 후 광주과학기술원에 부임한지 7번째 학기를 맞는 것이다. 봄같은 날씨 탓인지 학생들이 교내 곳곳에서 밝은 얼굴로 대화하고 오가는 모습이 유난히 정겹고 신선하다. 작년만해도 부분적으로 남아있던 코로나의 위축으로부터 확실히 벗어난 실감이 든다.
교정을 걷다가 매화가 핀 것을 발견하고 3년전의 일을 떠올렸다. ‘이문회우’ 서예전을 개최한 후 제자들과 온라인으로 기념 모임을 했는데 이를 ‘매암동인’이라 불렀다. 매화가 피는 계절인 점도 고려했지만 그보다는 퇴계가 매화나무 아래 바위에서 그 후학들과 학문을 논의하던 정경을 기린 것이었다. 조선시대와 한학에 조예가 깊은 백광렬 박사의 제안을 따른 것인데 지금 들어도 멋스럽다. 퇴계는 매화를 좋아해서 ‘매형’이라 부르기도 했고 매화를 소재로 한 시가 백여수에 이르며 [매화시첩]이란 시집도 간행했다. 두향이라는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가 매화를 매개로 전해지기도 하며, 임종때 ‘매화에 물을 주라’는 말을 남겼다고도 전한다. 그의 시에는 자연과 더불어 담담히 생활하는 선비의 자세가 여실하다.
獨倚山窓夜色寒 홀로 산속 집 창가에 기대서니 밤기운이 차가운데 / 梅梢月上正團團 매화 가지 끝에 둥그런 달이 두둥실 떠 있네 / 不須更喚微風至 새삼 살랑살랑 부는 미풍을 부를 새도 없이 / 自有淸香滿院間 온 집 안에 맑은 향기가 저절로 가득 넘쳐난다 /
步屧中庭月趁人 뜨락 거니노라니 달이 날 따라와서/ 梅邊行繞幾回巡 매화꽃 언저리 돌고 또 돌았다네/ 夜深坐久渾忘起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설 줄 몰랐더니/香滿衣布影滿身 향기는 옷에 가득하고 꽃 그림자는 몸에 가득하네 (陶山月夜詠梅)
퇴계의 매화사랑은 단지 음풍농월의 관조에 그친 것은 아니다. 퇴계는 매화가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의지를 특별히 강조 했다. 도연명이 난, 국, 죽만 노래한 것을 아쉬워하며 매화를 포함시켜 ‘절개있는 친구들’이라 불렀다. 松菊陶園與竹三 (도원엔 솔과 국화 대나무 더불어 셋이러니)/ 梅兄胡奈不同參 (매화는 어찌하여 함께 참여치 못했을까) / 我今倂作風霜契 (나 이제 모두 함께 풍상계를 만드니) 苦節淸芬儘飽諳 / (굳은 절개와 맑은 향기를 족히 알기 때문) — 그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사군자를 심은 화단을 조성하고 이를 節友社라 이름했는데 일종의 시적 의인화라 하겠지만 실제로 매화를 닮은 제자들에 대한 마음도 담겨 있었을 것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매화가 피니 [매암동인] 제자들이 생각난다. 다들 잘 지내며 새 봄을 맞아 그 향기가 옷과 정원에 그득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남쪽은 벌써 꽃소식이군요. 해마다 꽃이 피는지 지는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만, 올해는 선생님 덕분에 매화, 꼭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서교수 아버님 여의고 마음이 허전하겠지만, 집안의 오랜 신심과 하늘의 소망으로 새 힘 내길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