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바이스바써 -7

한독통일자문회의의 공식 회의가 시작되기 앞서 독일측에서 준비한 현장 답사가 있었다. 폴란드 국경가까이에 있는 작센 주의 바이스바써라는 작은 마을을 방문하여 그 지역이 겪고 있는 여러 변화와 도전들을 경청할 기회를 가졌다. 통일후 많은 동독지역 농촌이 경험한 것과 유사한 변화를 겪었고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한 독일의 그린에너지 정책의 여파로 이 지역경제가 재조정을 강요받고 있는 곳이라 한다. 답사를 안내한 베를린 자유대학의 김박사는 이곳이 복합적 위기상황을 독특한 내적 발상으로 대응하고 있는 사례여서 답사의 대상지로 선정했다고 했다.

약 2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스로 달려 도착한 곳은 자그만 하지만 깔끔해 보이는 지방도시였다. 시청에 도착해보니 회의장에 식사가 케이터링 된 상태로 준비되어 있고 시장이 브리핑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소탈해 보이는 페취 시장은 휴일이어서인지 혼자 모든 방문객 응접과 시청 건물의 열고닫음을 감당했다. 상세하게 준비된 브리핑에서는 그의 열정과 수고가 전해졌다. 시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도시는 38천명의 주민이 살던 곳이지만 지금은 15천명 수준으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동독의 빈곤한 농촌 10 분위 중 9분위에 속할 정도로 어려운 지역으로 평가되고 탄광산업의 사양화와 맞물려 더욱 미래가 밝지 않은 지역이다.

하지만 시장은 주민참여형 문화재생을 통해 이 도시에 새로운 활력과 비전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도시중심부의 활력 구축, 네트워크 강화, 공동협력과 참여, 그리고 디지털 인프라 구축의 네 가지 중점과제를 내걸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행정체계를 일원화하고 직업교육과 각종 훈련기회를 조성하며 주거지역을 새롭게 단장함으로써 300여 가구가 귀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했다. 과거 유리공장이었던 공장건물에 소규모 스타트업과 벤쳐기업을 유치하고 외부의 중소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장을 가 보기도 했다. 동독 시절의 거대한 집단건물들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조성한 녹지공간을 지나며 주택과 환경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고 했다.

이 도시의 노력은 전형적인 도시재생사업이라 할만하다. 미국 뉴욕에서도 슬럼지역을 새롭게 탈바꿈하려는 노력이 추진되었고 서울에서도 성수동을 비롯한 여러 곳에 유사한 변화가 시도되었다. 군산이나 전주 등지는 특색있는 공간의 역사성을 새로운 문화관광지로 변화시킴으로써 도시의 활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상당한 성과를 거둔 곳도 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비용만 증대시키고 토지소유주의 이익추구 사업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도 따라 다닌다. 이 도시가 고령화, 인구이동, 탈화석연료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을지는 단지 동독지역만이 아닌 21세기 인류공동체 공통의 관심사라 해도 좋을 듯 싶다. 자전거를 싣고 여러 곳을 다니며 열심히 설명하는 시장의 모습은 오늘날 지방소멸을 우려하는 한국 지방 소도시에서 벤치마킹할 만 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극우의 부상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들었다. 도시의 한 빈 건물을 이들이 무단 점거한 적이 있는데 시는 그 건물을 매입해서 해체시켰다고 한다. 과감한 대응이 다행히 좋은 결과를 거두었고 극우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적극적 사례로 내세울만 했다. 다만 모든 도시가 같은 대응과 결과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어서 누군가는 이 지역이 예외적인 곳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현재 독일에서 극우정치를 대표하는 Alternative for Germany (AfD) 정당은 2013년에 설립된 이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극우적, 국가주의적 가치와 이념을 중심으로 이민정책과 유럽 통합에 대한 비판을 주된 공격논리로 내세운다. 자유 시장 경제를 강조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와 적대성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불만과 불안정을 정치자산화 하려 한다. 이런 변화가 통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 도시의 사례가 보여주듯 현상적으로는 중층적으로 겹쳐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결국 사람이 사는 현장, 지방과 도시, 시민사회 곳곳에서 건강한 삶을 구축하기 위한 열정, 협력, 비전, 리더십이 삶의 현장을 풍요롭게 하고 극우도 잠재우는 처방이 될 것이다. 중앙집중성이 너무 강한 한국사회에 여러모로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은 답사였다.

activities

교류와 통합- 6

분단된 국가에서 교류는 통합과 신뢰를 증진시키는 핵심적 통로다. 서독이 60년대 말 동방정책을 통해 동독과 다양한 접촉과 교류를 추진한 것이 90년대 동서독 통일의 마중물이 된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 동방정책을 입안했던 에곤 바가 강조했던 ‘접촉을 통한 변화’는 접촉과 교류가 가져올 긍정적 해빙효과를 잘 표현한다. 한국의 김대중 정부에서 유사한 접근을 ‘햇볕정책’이라고 이름붙였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 가능하다. 유행가도 만나면 정이들고 좋아진다고 노래하지 않는가.

교류가 신뢰와 통합을 증진시키리라는 이 구상은 일종의 기능론적 전략을 상정한다. 쉽고 덜 민감한 영역에서의 접촉과 교류가 일단 진행되면 점차 어려운 영역에까지 신뢰가 구축될 수 있으리라는 단계론, 점진론의 근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의 대북정책이 오랫동안 ‘선이후난’을 강조했고 통일방안 역시 3단계의 점진적 단계론을 표방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초가 교류협력이다. 역대 정부가 이런 입장에서 대북정책을 추구해왔고 민간의 대북접촉 및 교류사업이 이루어져 왔다. 손선홍 교수는 역대 정부 정책이 어떤 구상 하에서 이루어져 왔는지를 정리했는데 독일의 경험과 비교하면서 이런 단계론적 접근을 잘 보여주었다. 이광빈 기자는 민간 영역에서 이루어진 여러 교류사례들을 발제했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적인 사례들도 소개되었다. 한편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은 독특한 형태의 접촉이자 교류에 해당되는데 이봉기 전 독일문화원장은 이들이 정착하고 활동하는 다양한 모습을 통계적으로 보여주었다. 2023년 현재는 대부분의 교류협력이 중단된 상태이고 탈북자의 숫자도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어서 교류협력을 강조하면서도 현실화되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피하긴 어려웠다.

토론과정에서 몇 독일 참석자들은 한국의 분단이 얼마나 철저한 것인가를 새삼 느낀 듯 했다. 탈북자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사실, 남북한간에 언론이나 문화의 교류도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도 읽혔다. 아마도 60년대 동독시절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독일측 참석자 중 한두명이 분단 시기에 서독의 텔레비전을 보면서 외부의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새로운 욕망과 행동을 가능케 했다는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동독인들이 서독에 대하여 가졌던 기대감은 막연한 민족감정이 아니라 매체를 통해 인지하게 된 서독의 발전상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세션을 종합하면서 사회자는 접촉교류를 사람이나 물자 중심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보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는 코멘트를 했다. 실제 한국의 경우 교류와 접촉이 주로 인적, 물적 차원으로 이해되고 북한이 극구 반대하는 문화나 정보의 소통은 금기시되는게 현실이다. 특히 대북 전단살포를 두고 많은 대립이 있고 지난 정부에서 이를 불법화한 것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보의 접촉이란 쟁점은 논쟁을 불러오기 쉬운 주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보화하고 디지털화하며 소통과 신뢰 역시 그런 정보에 기반행 하는 21세기 상황에서 남북간의 교류협력에 정보를 적극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은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적대적인 상대방과의 교류와 접촉은 통상 제도화된 차원만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비공식적이고 비공개적이며 때로는 비밀스러운 접촉도 필요하다. 정부정책이나 공식접촉만이 아니라 다양한 민간영역의 자발적이고 다차원적인 접촉과 교류가 함께 해야 한다. 이런 비공식적 교류와 접촉은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종종 비법적, 탈법적 수단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한편의 선의가 다른 편의 불법이 되는 것이 남북한 관계의 실상이다. 이점에서 교류협력에 대한 거버넌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큰 숙제다. 모든 교류협력을 합법과 공식의 영역에 한정하면 상호신뢰와 통합의 증진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형태의 교류를 장려할 수도 없고 법적으로 관할하는 것도 효율적이지 않다. 디지털 인프라와 각종 정보가 중시되는 21세기 현실에서 교류접촉의 방식과 내용도 새롭게 혁신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북한의 거부감이 심하지만 남북한 간에도 다양한 차원의 접촉, 특히 정보의 유입과 소통을 보장할 미디어 환경의 구축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다양한 차원의 남북접촉을 가능케 하면서도 자율적이고 혁신적인 활동을 유연하게 관리할 새로운 거버넌스 체제의 구축이 앞으로의 큰 숙제라 하겠다 .

activities

지정학의 부상 – 5

[지리의 힘]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다. 탈냉전과 세계화의 조류에서 뒷켠으로 밀려난 듯 했던 지정학이 다시 각광을 받고 그에 따른 국제정치의 시각전환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독일과 한국이 이런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음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다. 20세기 분단의 역사가 국제정치와 지정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결과이고 21세기 현재 겪고 있는 각종 도전들도 지정학적 변수와 깊이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독통일자문회의에서 지정학적 관심이 주요한 테마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해 보인다.

유럽국가인 독일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난 등과 관련하여 러시아 변수에 좀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까도 생각했는데 역시 지정학적 관심의 핵심은 중국의 부상과 미중대립이었다. 에릭 발바흐 박사에 따르면 독일은 부상하는 중국과 그에 연동된 인도 태평양 국가들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전략지로 파악한다. 현재의 국제질서는 과도기적 징후를 보이는데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여전히 강고하지만 더 이상 충분히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로 제도, 규범 등에서 빈틈과 허점들이 나타나고 이 틈새를 중국이 기회로 삼고자 하는 국면이라 설명했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이 국제규범을 따르기보다 국제질서를 중국중심으로 변경시키려 한다고 우려하면서도 독일은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중국의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안이 없이 정치적 담론에 휩싸이지 말아야 하며 ‘독자적이고 강력한 유럽식 서술구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국 주도의 시각과는 차별화되는 대중국 전략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인도 태평양 지역의 안보질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허브와 스포크 시스템이라고 본 발제자는 이 시스템을 중국이 흔들고 있고 미국의 동맹체제가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는 틈새를 파고 들고 있는 상황으로 판단한다.

한국측에서는 이정철 교수와 김재신 대사가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현황을 발제했다. 독일에 비해 북한 변수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한국적 특수성이라 할 것이다. 이교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지구적 변동국면과 관련지어 한국이 처한 딜렘마를 정리했다. 기디온 로즈가 분류한 시기별 변화와 연동하여 미국외교의 중심이 변화하는 네번째 국면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도발은 심해지고 가치동맹의 방어력은 상대적으로 불충분한데 한국정부가 내건 경제안보 역시 미중 기술패권 경쟁 과정에서 한국의 리스크가 적지 않다고 보았다. 북한의 도발이 대담해짐으로써 오히려 불안정성이 강화되는 모순적 상황도 커진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떤 방향을 취할지 아직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역할론도 북한을 비롯한 지정학적 위기에 대한 평화관리의 과제해결에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김재신 대사 역시 미중 대립을 가장 핵심적인 상황변수로 간주하면서 양자택일식 논리를 지양하고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추구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즉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가능한 중국으로부터 반발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지정학의 대두는 곧 국제질서의 틀이 변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 핵심에 중국이 있고 미중대립이 있으며 한반도는 그 최전선에 해당한다. 한국으로서는 다중적인 변수를 함께 고려하는 복합적 대응이 불가피한데 외교정책은 늘 친미, 반미, 친중, 반중, 친북, 반북 등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고 가치동맹이 강조되면서 다시 이념적인 대립이 격화되는 추세인데 격변의 지정학 자체에 더해 오리 내부의 사고분열이 더욱 문제를 키우지 않을까 걱정이다. 신냉전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의 지정학적 변화 앞에서 더 높은 수준의 지혜를 창안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고의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보인다.

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동독의 발명? – 4

동독이란 범주, 동독인이란 정체성은 통일 이후에 발명된 것이다 – 이번 한독통일자문회의 토론 과정에서 나온 말인데 최근 이런 시각이 독일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분단 시대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동독인’이란 범주가 오히려 통일 30년이 지나면서 ‘서독인’에 대비되는 실체로 뚜렷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동독(인)이라는 범주의 재창조는 사회경제적 차별과 ‘뒤처점’의 감정을 근거로 하여 구성된다. 독일측의 발제에서 확인되는 동독지역의 경제적 낙후, 엘리트의 부재, 기회구조의 약화, 분노의 정서 등은 암묵적으로나마 서독(인)과의 대비를 전제한다.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의 대립상태는 종식되었는데 통일독일 내부에서 동독이란 범주가 재창조되고 있다는 말은 역설적이다. 그런데 내 개인적 인상으로도 이전에 비해 이번 회의에서 동독(인)이란 표현이 더 뚜렷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은 동독지역이 겪는 여러 현실적 어려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 동독지역은 서독지역에 비해 총소득수준이 15% 정도 낮고 엘리트층 배출비율도 현저히 낮으며 심리적 자존감도 낮다는 것인데 이런 현실을 통일의 귀결로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크게 나누어졌다. 텔칙은 당시 동독이 적극적으로 서독의 시스템 수용을 원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슈뢰더는 더욱 분명하게 소규모 동독인들의 불만이나 움직임을 동독인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당시 적극적으로 서독의 방식을 수용하려 한 동독혁명의 시대정신을 충분히 고려해서 통일을 이해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식민지화라는 표현은 신중하게 사용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라이케 전 차관은 최근 ‘동독인’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열심히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 화가 난다고 했다. 도대체 2023년에 누가 동독인이란 말인가라는 그녀의 질문은 왜 이 시점에서 동서독인이라는 범주가 계속 사용되고 소비되는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나는 이 토론을 들으면서 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북한’이란 말을 사용하지 못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북한이라는 용어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남한의 시각이라고 화를 냈고 그래서 늘 북측, 또는 귀측이란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 기실 명맥하게 이질적인 국가성을 고집하면서도 두 국가상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나타난 임시변통인 셈이다. 어쩌면 통일이 되고 나면 저런 억지 방패도 어려워지고 북한(인)과 남한(인)이라는 범주가 더욱 분명한 실체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반도에서 북한과 남한이라는 말이 남북한간에 상호소통을 돕는 어휘로 자리잡지 못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철저한 분단과 단절의 결과일 터이다. 영남사람, 호남사람, 서울사람이라는 범주가 커다란 차별의식 없이 통용될 수 있는 것이 국가적 통합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동서독 범주가 새로이 부상하는 것은 통일독일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현상의 하나라 볼 수도 있다.

몇년 만에 다시 가본 포츠담 플라츠 장벽들의 그림은 빛이 바랬고 베르나우의 장벽박물관 역시 퇴락한 느낌이 물씬 들었다. 독일 통일은 이미 과거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만 통일을 전후하여 개개인이 겪은 변화, 이동과 좌절과 성공의 이야기들은 시민들의 일상과 인생 경험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동독(인)의 담론이 최근 부상하고 있다는 것은 이런 현실의 반영이고 국가통일이라는 거시적 변화가 삶의 미시적 문제로 전환되었음을 말해준다. 동서독 정치통합의 숙제가 사회적 통합과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일테다. 이 새로운 숙제가 유럽통합과 이주자 난민의 포용까지 포함하는 다차원적 통합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동독에서 부상하는 극우 포퓰리즘의 정서는 ‘보편적 통합’에 앞서서 ‘우리부터’ 통합하라는 목소리이고 그것은 결국 종족주의적인 지향, 인종차별주의의 정서를 띠기 쉽다.

개인적으로 재개장된 독일역사박물관이 이런 쟁점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하려 하는지 보고 싶었다. 십여년 전 이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제국 독일의 역사서술에 비해 통일과정이 너무 소략하게 설명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다시 문을 닫고 재개장을 준비 중인데 2025년에야 문을 연다고 한다. 베를린에서 통일을 상징하는 거대한 기념물이나 떠들석한 전시관을 찾기 어려운 이유를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 통일과정을 해석하는 다양한 경험들을 역사적 기억으로 상징화하는 것은 종종 해석의 단순화, 국가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특히 통일 이후의 삶을 분노와 좌절로 경험한 사람들에게 통일의 기념물보다는 그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비전이 더욱 긴요할 것이다. 3만여명 탈북자의 수용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드러내고 외국인 정주자들과의 사회통합이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놓여있는 한국으로서 통일지향성이 여전히 민족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사고되는 현실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감정과 계몽 – 3

”독일통일의 오늘“을 발표한 토마스 크뢰거 연방정치교육원 원장의 내용은 무겁고 진지했다. 어떤 의례적 서두도 없이 그는 독일통일로 인해 ‘뒤쳐진’ 사람들의 분노와 굴욕감을 이야기하는데서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1989/1990년을 전후하여 깊은 단절과 무력감을 겪은 세대의 감정이 결코 약화되지 않고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깊고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동독의 많은 낙오자들의 분노가 오늘날 극우정치를 부상시키는 원천이 되었고 독일 통일이 유럽통합의 징검다리가 되리라던 믿음과 달리 종족주의의 배타성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분노감정의 바탕에는 속았다는 느낌, 식민지화 되었다는 굴욕감이 자리한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이다’라고 외쳤던 통일 당시의 외침이 이제 ”우리부터 통합하라“는 포퓰리즘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통합을 위해 진력해온 정치교육이 이 문제를 다루는데 실패한 것인가? 발제자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특히 접근법에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듯 했다. 정치교육은 세뇌와 선동이 아닌 성찰과 각성을 통해 자신의 잘못과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게 돕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통합은 자발성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이 맥락에서 트라우마를 가져온 과거를 어떻게 대면하고 기억하는가가 중요하다고 크뢰거는 진단한다. 문화연구자 아스만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문화적 의미를 형성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기억을 기능적 기억(functional memory)이라 했는데 동독의 경험과 통일의 충격을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관건일 테다. 정치교육은 민주적 역량과 소통을 통해 건강한 기능적 기억, 집합적 해석 형성을 돕는 것이어야 한다. 그럴 때 연대감을 형성하고, 문화적 지속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며 과거의 경험과 상호작용하여 현재와 미래를 조직하고 지시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발제자는 통일 이후의 두 과제가 청산과 정치교육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두 작업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청산은 과거의 잘못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피해자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반면 정치교육은 다중관점적인 시각에서 모든이의 참여를 장려하고 회색지대를 허용하며 과거보다 현재에 더 많은 관심을 둘 것을 요구한다. 상이한 관점과 모호함을 용인하고 ‘많은’ 과거들이 있었음을 용납함으로써 기억의 단순화, 기억의 독점화를 방지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러려면 순응과 반항 사이의 회색지대, 심지어 ‘독재에의 유혹’까지도 조망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나찌와 사통당 독재는 공포와 억압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 독재를 찬양하도록 만든 유혹의 기제도 꼭같이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독지역에서 발견되는 오스탈기 역시 이런 유혹심리의 연장인 셈인데 이 미묘한 독재의 구속력을 드러냄으로써 내면의 회복을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계몽과 정치교육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토론에서 나는 기억의 정치가 과거와의 화해가 아닌 새로운 갈등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없지 않음을 지적하고 어떤 조건이 더해져야 할 것인지 물었다. 발제자는 쉬운 처방은 없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결국 민주주의의 역량강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동시에 기억이 분노나 좌절로 이어지지 않고 건강한 성찰로 이어지려면 유럽차원의 이주경험을 기억의 영역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유럽통합의 과정에서 각 개인들이 겪은 다양한 경험들은 과거를 독일민족이나 백인중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편향을 벗어나게 도와준다. 이런 다중적 경험, 혼성적 기억을 통해 ‘독일중심 역사서술’과 싸우는 것이 가능해 진다. 사회는 점점 더 혼종적으로 되어가고 그 과정에서 독일은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는 바, 이런 다양한 기억을 수용함으로써 기억의 정치가 승자중심으로 단순화하거나 집단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럴 때에야 기억의 정치가 ‘미래를 마주’할 민주적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이 발제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분석적이면서도 문제의식이 분명하고 비판적이면서도 균형잡혀있다. 통일을 주요한 성취로 수용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좌절하고 실패한 사람들의 스토리에도 사회적 기억의 정당한 자리를 부여하려 한다. 혐오와 분노의 감정이 어떤 뿌리에서 연유했는지를 냉정히 분석하면서, 그러나 역시 계몽과 성찰이라는 오랜 교육철학의 신념을 부정하지 않는 입장을 견지한다. 회색지대와 애매함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민주주의와 성숙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애씀이 필요함을 역설한 것인데 이런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오늘 독일의 깊은 갈등들이 여실히 보여준다. 과연 계몽이라는 칸트적 교육론이 감정과 정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속시원한 대답을 듣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찰과 계몽을 향한 진지한 고민을 산출할 수 있는 독일은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남북한의 대립과 논란, 통일을 향한 민족감성의 이중성, 국내 정치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는 단순화 논리, 여전히 민족주의 정서를 벗어나지 못하는 통일론의 한계 등..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사실 이 부분이 아닐까.

activities

가지 않은 길 – 2

‘독일역사박물관’ 에서 전시 중인 “가지 않은 길” (Roads not Taken) 기획전을 관람했다. 유명한 프루스트의 시 제목과 동일한 주제를 통해 “실현되지 않은 역사적 가능성”을 생각하자는 의도라 했다. 통상 역사박물관의 전시는 연대기 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전시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1989년 독일통일에서 시작하여 1848년의 혁명기 까지 주요 사건들을 계기적으로 전시하고 있는데 각각의 사건들은 이후 역사전개의 분기점으로 해석된다. 그 사건들 속에는 동방정책, 베를린 장벽 설치, 냉전과 나찌즘, 1차 세계대전이 있고 전시 속에서 한국전쟁도 바이마르 공화국도 만나게 된다. 유럽과 세계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지 못하면 맥락을 찾아내기조차 쉽지 않은 전시형태여서 일견 당혹스러우면서도 신선하고 흥미로왔다.

전시를 알리는 소개문에는 라파엘 그로스 관장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다. “모든 역사학자는 왜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이미 이루어진 방향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묻고 통상 그 지점에서 멈춘다. 일반인도 그 지점 이상을 나가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전시는 감히 다른 방향으로의 역사도 가능했음을 보여주려 한다.” “순간적인 열림” (momentary opening)이 드러난 역사적 국면과 계기들을 되돌아보면서 실현되지 않았지만 가능성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길이 무엇이었는지를 상상해 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1989년의 시점에서 공산당 정부의 개혁을 요구했던 동독인민의 열정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마침내 동서독을 통합시키는 평화통일로 이어졌는데 과연 이 흐름은 필연적으로 정해진 경로였을까? 다른 길로 이어질 계기나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없었을까를 묻는 것이다.

다른 가능성을 상상한다는 것이 우리 마음대로 역사경로를 선택할 수 있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 전시 브로셔에는 역사학자 Dan Diner의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있다. “이 전시는 다른 경로나 허구적 역사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목적은 여러 가능성을 살펴봄으로써 실제로 진행된 역사과정에 대한 더욱 명증한 시각을 얻으려는 것이다.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살펴봄으로써 실현된 역사를 보다 잘 이해힐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미래에도 여러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모든 것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선택과 그에 따른 기회비용, 공동의 부담을 치루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막연한 기대나 무책임한 허구의 역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로 이어지게 된 진정한 요인과 기회비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 닿는다.

미래의 경로도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방향이 선택 가능한 것도 아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여건을 준비하는 노력 속에서 싹트는 것이 가능성이다. 단순한 기대나 무책임한 허구와 구별되는 가능성의 포착, 막연한 목표를 실현가능한 영역으로 이끌어낼 역량이 국가의 가장 고급한 능력일테다. ‘역사적 가능성’ 그 자체가 다양한 변수의 결합으로 구성되는 것이고 준비하고 기획하며 책임지는 행동의 결과값임을 깨우칠 필요가 있겠다. 역사를 본다는 것은 곧 미래를 보는 일이고 그것은 다시 현재의 책임이기도 하다. “가지 않은 길”은 “선택하지 않은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그만큼 기회비용에 대한 선택의 무거움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activities

문화와 민족 – 1

한국은 민족국가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통일을 정당화한다. 나찌즘의 비극을 기억하는 독일사회는 민족의 정치화에 거부감이 있다. 89년 말에서 90년 3월에 걸쳐 ‘우리는 인민이다’라는 구호가 ‘우리는 민족이다’라는 구호로 대체되면서 통일열기가 부상할 때 독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민족감정을 놓고 격렬한 대립을 겪었다. 십여년전 당시의 논쟁을 정리하면서 나는 독일통일에 민족정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검토해본 바 있다. 작가 귄터 그라스 등의 강력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통일이 진행된 이 대전환에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크게 작용한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단시대 독일은 언제나 문화국가로의 통일을 강조했다. 전 연방내무부 차관보였던 크노블로흐는 수십년에 걸친 동서독 대립과 두 국가론에도 불구하고 단일국가로의 지향을 유지할 수 있었던 토대가 문화였다고 했다. 72년의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과 86년 문화협정으로 이어진 바탕에는 독일이 공통의 문화를 지닌 역사적 공동체라는 믿음이 놓여있다. “문화는 독일 국가가 통일을 이루는 과정과 유럽연합으로 가는 길에 있어 자주적이며 필수불가결한 기여를 한다”는 조항이 그런 신념의 소산이다. 각 주의 ‘문화주권’과 연방정부의 관할권 사이의 긴장이 없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는 평화통일의 능동적 요인으로 작동한 것으로 평가한다. 클라우디어 로스 장관 역시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문화”가 신뢰와 중재의 힘을 발휘했고 음악, 연극, 문학이 동독 내부의 불만, 비판, 자유를 향한 열망을 대변하면서도 그것에 ‘평화로운’이란 수식어를 붙게 만드는 핵심적 요인이었다고 썼다.

슈납파우프는 기본조약의 체결로 서로의 실체를 제도화하면서도 “독일 민족이 자유로운 자결권을 바탕으로 한 재통일”을 추구할 권리를 부인하지 않는 지속적 노력이 통일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기본조약이 국적관련 사안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표명도 같은 맥락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기본법이 독일의 분단을 인정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을 근거로 양독 간 경계선을 연방주들 사이의 경계선과 같은 성격으로 판시했다. 비행기 속에서 읽었던 김영희 대기자의 [베를린 여행]에서 브란트 정부가 동방정책을 추진하고 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도 모스크바와 주변국가들을 대상으로 독일의 통일이라는 미래비전을 인정받으려고 부단히 애썼음을 읽은 바 있었다. 조약이라는 양자관계의 틀을 발전시키면서 외교라는 고도의 정치과정을 통해 통일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려 한 노력이 1990년 통일에 소중한 자산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문화와 조약을 근거로 동서독의 단일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독일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한 특성이다. 문화국가는 민족국가의 부정적 함의를 대신할 대안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인을 증명하는 국적법의 핵심 요소는 혈통이다. 속지주의를 채택한 미국과 달리 독일은 한국과 같은 속인주의를 견지한다. 실제로 통일과정에서 동독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독일인이 국적을 인정받고 독일로 이주했다. 나는 토론에서 국적법의 혈통변수가 독일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어떤 비중을 점하는지 질문했으나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극우의 부상에 담긴 종족주의를 우려하는 독일사회에서 민족 개념은 여전히 인정하기엔 부담스럽고 부정하기엔 뿌리깊은 그 무엇일지 모르겠다. 언어, 문자, 전통, 역사, 신화가 문화의 핵심이라면 문화는 종족의 특성을 가르키는 것일 수 있으니 문화국가와 민족국가의 간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문화국가와 민족국가의 구별과 대비는 매우 중요했다고 판단된다. 문화가 혈통을 포괄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여백과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문화국가라는 말이 갖는 유연함, 포괄성, 비정치성을 내세워 민족감정의 분출을 우려하는 안팎의 염려를 관리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하버마스가 강조한 ‘헌법 애국주의’도 민주주의를 본질로 하는 헌법적 가치를 중시하고 혈통주의적 민족론을 극복하게 하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문화국가론은 통일과정의 여러 문제들을 감추는 이데올로기적 기능도 수행했고 냉정한 계산을 넘어 기대와 꿈을 갖게 만드는 유토피아적 전망으로도 작용했다. 통일 후의 여러 비판과 논란은 문화라는 말에 담겼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의 긴장에서 유래하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의 민족국가론도 문화주의적인 재해석과 국제주의적 감각을 보다 수용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정주외국인 비율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다문화적 상황이 확대되는 시대에 통일논의의 종족주의적 혐의를 벗어나려면 공동체의 문화적 재구성이 절실하다. 또한 그런 지향이 전지구적 가치와 연대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것임을 설득하고 보여주려는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이산가족찾기에서 보듯 민족정서는 남북을 하나로 잇는 강력한 자원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21세기 한국사회가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원화하고 있고 북한의 민족관념도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다성과 이질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포용적 정체성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권헌익 교수가 발제에서 민족을 넘는 다양한 남북간 소통과 관계양식을 고민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으리라. BTS를 위시한 K-Culture의 개방성과 역동성을 수용하고 다양한 혈통과 다중적 존재를 포용할 수 있는 혼성적 정체성이 자리잡을 때 통일의 가능성도 커질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려면 민주주의 가치의 일상화, 제도화가 필수적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activities

12차 한독통일자문회의

12차 한독통일자문회의가 베를린에서 개최되어 5월 20-25일간 독일을 방문했다. 한국과 독일 정부간 정례 회의로 양국을 오가며 개최되는 이 모임은 분단의 경험과 통일의 과제와 관련한 정보와 지식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장이다. 유럽에서 독일이 겪고 있는 여러 난관과 동북아의 지정학적 동요 속에서 한국이 감당해야 할 여러 문제들을 서로 나누는 공부기회이기도 하다. 감사하게도 나는 한국측 위원으로 여러 차례 이 회의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이번 회의는 슈나이더 독일 연방총리실 차관과 한국의 김기웅 통일부차관이 주재했다. 회의는 총리실 대회의장에서 열렸는데 출입시 철저한 보안체크를 받아야 하는 불편이 있었지만 그만큼 무게감이 느껴졌다. 아데나워부터 역대 총리의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아직 메르켈 총리의 그림은 걸려 있지 않았다. 때마침 슐츠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고 DMZ에서 한국분단의 현실을 안타까와하며 통일의 열정에 공감을 표한 뉴스가 전해져 회의의 시의성이 더 크게 느껴졌다. 콜 총리의 외교자문으로 통일과정을 조율한 텔칙과 통일의 전후과정에서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 슈뢰더도 80대 후반의 나이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회의에 열심으로 참여했다. 여러해 이 모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글라이케 차관, 슈납아우프 박사 등과도 반갑게 인사했다.

많은 쟁점들이 이틀동안 진지하게 논의되었고 현장 답사를 통해서도 새로운 사실들을 접했다. 언제나 그렇듯 두 나라 상황이 다른 탓에 발제의 초점과 고민의 수준이 일대 일로 대응되지는 않는다. 분단과 통일이라는 큰 화두를 공유하고 있고 모든 주제가 그렇게 모아지지만 구체적인 문제들과 정책구상, 사회적 평가등에는 차이도 적지 않다. 2023년에 개최된 이번 회의는 두 나라 사이에 고민의 성격과 내용의 차이가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느껴졌다. 남북한 간의 단절이 심해지고 핵위기로 인한 정치군사적 대결상황이 강화된 한반도 상황이 동서독 내부통합과 민주주의의 성숙을 고민하는 독일의 현실과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진 탓일지 모르겠다. 다만 독일측이 통일의 성공이야기를 내놓는 대신 현재 겪고 있는 고민과 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우리로서 참조할 공부거리를 새롭게 얻은 느낌이다.

회의가 종료된 후 개인적으로 만난 한 원로 정치학자는 자신은 요즈음 독일통일을 점점 더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한국도 독일로부터 배우려는 태도를 벗어날 필요가 있으리라고 했다. 여전히 독일의 많은 점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바 없지 않으나 저 부분까지 포함하는 종합적인 시선이 없이 독일통일 과정을 단순화하거나 공식화하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여러모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한 학술회의였기에 그 쟁점을 몇 가지로 나누어 정리해 보려 한다.

life · 오늘의 화두

이사

2년간 단독주택 생활을 끝내고 다시 아파트로 이사했다. 주인이 집을 매매하기로 했다는 전갈을 받은 후 새 전세집을 구했기 때문이다. 새소리로 잠을 깨고 정원의 잔디를 깎던 즐거움을 더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다행히 이사한 아파트도 넓은 공유 정원과 각종 주민시설을 갖추고 있어 또다른 만족이 있으려니 기대를 가져본다.

이번 이사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집값 하락으로 매매의사를 철회한 주인이 전세금 반환의 어려움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융자받아 전세금 일부를 지급하고 나머지는 전세가 구해지는대로 상환하겠다고 했다.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는 통상 새 임차인의 전세금으로 앞 사람 전세금을 갚는 구조여서 어느 한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선의 여부와 상관없이 연쇄적인 파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세대란 뉴스가 연일 들리는 것은 경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이런 연쇄구조에 문제가 생긴 것일테다.

주변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구두 약속만 믿고 이사해서는 낭패를 당할 수 있음을 염려했다. 언론에는 전해지는 소식에는 전세사기라 할만한 고약한 사례도 있지만 상당부분은 주택 임대의 연쇄고리가 깨어지면서 파생된 불가항력적인 사태여서 어느 한 편을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연쇄고리에서 나도 자유로울 수는 없어 법적 자문을 받기로 했다. 변호사는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추가초지의 불가피함을 설명했다. 이미 주민등록을 옮겨 법적 대항권이 소멸되었으므로 차선책으로 임차권 등기 신청, 지급명령 신청을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했다. 생소한 법률 절차를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 설명이 타당하게 여겨져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내가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주민등록을 다시 현주소로 옮겨놓고 임차권 등기가 완료될 때까지 이사짐 일부를 남겨두겠다고 알리자 집주인은 서운함을 표했다. 자기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은행대출까지 해서 일부를 지급하는 성의를 보였는데 이런 조처를 취하느냐는 섭섭한 감정이 느껴졌다. 신뢰할 수 없어서 한 일이 아니고 불가항력적 상황에 대비한 것일 뿐이니 양해하시라 설명했지만 사실 나로서도 이런 일은 정서적으로 불편할 밖에 없다. 이사 당일 찾아온 주인의 부인은 나의 조처를 충분히 이해하며 제때 전세금을 반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심성이 좋은 분들인데 이분 들도 마음 고생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사 당일, 새벽부터 시작된 기민한 작업과정을 지켜본 것은 또다른 경험이었다. 7-8명이 한 팀으로 작업하는데 누구의 지시나 명시적 업무절차도 없이 고도의 정밀 기계처럼 이곳 저곳 크고 작은 짐들을 재빠르게 정리하고 포장했다. 새 집에 와서 그 짐들을 배치할 때도 손발이 척척 맞는 기민한 일처리 과정이 마치 고속으로 상영되는 한편의 모노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K-culture에는 한국 영화나 음악 만이 아니라 포장이사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과연 그럴 만했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전체가 조화롭고 다이내믹한 장면을 구성하는 K-Pop 공연이, 저 포장이사의 놀라운 협업시스템과 맥이 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버리기보다 쌓아두는 것이 더 익숙한 탓에 짐은 언제나 불어난다. 내 삶에 요긴한 도움을 준 것들이니 계속 지닐 필요가 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 중에는 사실 버려도 지장이 없는 것이 적지 않다. 저 많은 책들 가운데 앞으로 내가 다시 볼 것은 얼마나 될 것이며 이런 저런 계기로 생긴 물건들 역시 언제까지 소장해야 할지 모르겠다. 운동을 해야 몸이 가벼워지고 묵은 것을 비울 때 새로운 것이 채워지는 법이니 이제는 더 과감하게 버리고 줄이는 삶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도 마음도 물건도 가볍게 하기 – 이사를 마무리 하며 다짐해 본 단상이다.

Uncategorized

도헌학술원 자문위원회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의 자문위원회가 2월 2일 프라자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 김용학 전 연세대 총장, 김도연 전 포항공대 총장 등이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나도 자문위원이지만 이들의 유명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데 송 원장은 나를 자문위원장이라고 했다. 하긴 아무런 역할이 없는 이런 직함은 그냥 듣기 좋으라고 부르는 이름일 뿐이리라.

하긴 나는 이 학술원의 출범에 꽤 역할을 한 셈이니 전혀 뜬금없는 명칭은 아닐 수도 있겠다. 내가 쓴 학술원 현판을 내건 현판식이 12월에 있었는데 꽤 좋은 평판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청명 선생의 글씨로 만들어진 한림과학원 현판과 비교가 되는데 내가 보아도 도헌학술원 현판이 더 좋아 보인다. 한학과 한문에 대한 조예에서는 청명선생에 비할 바가 아님에도 그 분의 현판과 나란히 내 글씨가 자리잡고 글의 기세가 크게 모자라지 않다는 것 자체로 보람있는 일이다.

자문위원으로 함께 위촉된 분들 중에는 한림대학 재단관계자도 있고 오랫동안 한림대학교와 인연을 맺은 학자들도 있다. 건강이 다소 안좋아진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 현직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을 여러 영역에 기여하고 있는 중이다. ‘자문’이라는 역할이 유명무실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필요한 독특한 지혜를 만들어갈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