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녹비홍수 인수가비 (綠肥紅瘦 人瘦可肥)

정민 교수께서 자신이 쓴 컬럼을 보내주셨다. 제목은 녹비홍수 (綠肥紅瘦) – 초록은 무성해지고 붉은 꽃은 시든다는 뜻인데 5월을 맞이하는 계절에 걸맞는 표현이다. 매일 내가 산책하는 집 주변 공원에도 날이 다르게 초록은 짙어져 중학교 시절 읽었던 ‘신록예찬’이 저절로 떠올려지곤 한다. 곳곳에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이팝나무의 흰 꽃과 천변 야생화들의 제각각 원색을 뽐내는 중이라 ‘꽃이 시든다’라는 표현은 다소 와닿지 않는 느낌이긴 하다.

초록과 붉음, 신록과 꽃을 살짐과 수척함으로 표현한 단어구사가 신선하다. 단순히 문학적 비유에 그치지 않고 삼라만상의 생명연쇄를 꿰뚫은 철학적 표현으로도 읽힌다. 만물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누군가 성장하면 누군가 사라지는 것이 섭리다. 다산, 추사 등이 편지에 이 말을 즐겨 썼다는데 성리학에 친숙했던 그들이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던 시선과도 친화력이 있었을 법 하다. 그에 비해보면 성장지향의 시대, 효용중심의 현실, 각자도생의 압박 속에서는 친숙해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오늘날 녹비홍수란 표현이 매우 낯설게 된 것은 편지글이 사라진 탓도 없지 않을게다. 편지는 언제나 그 시작부분이 어려워 일종의 공식적 표현에 의존했다. 건강과 안부를 묻는 것이 그 대표적인 것인데 계절의 변화를 함께 언급하는 것이 상례였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주로 입춘지절에, 폭염가운데, 엄동설한에, 환절기에… 등등을 골라 썼다. 녹비홍수를 써본 기억은 없다. 어느 때부터인가 편지를 쓸 기회가 없어졌고 자연히 저런 표현들을 사용할 이유도 사라졌다.

정교수는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말하고 찔러 얘기하는 대신 빙 돌려 말하는 것이 문화’라 했다. 전달과 접수 사이에 여백이 많아야 정서의 두께가 생긴다는 것인데 공감하면서도 그런 문화개념으로 오늘을 이해하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온갖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시공의 간격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즉각적인 정보연쇄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카톡 덕분에 의외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안부를 묻게 된 것을 고마워할 때가 있으니 잃는 것만 있는 건 아니라 하겠다. 문화의 양식과 내용이 달라지고 있는게다.

녹비홍수 – 살짐과 수척함의 대비를 읽다 보니 언젠가 소동파의 글귀 ‘인수상가비 사속불가의’(人瘦尙可肥 士俗不可醫)를 썼던 기억이 난다. ‘사람의 수척함은 다시 살찌울 수 있으나 선비가 속되면 고칠 길이 없다’는 뜻이다. 좋아하던 후배 교수가 정치권을 기웃거리면서 점점 권력과 위세를 탐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까와 그 글을 썼었다. 그때 비(肥)-수(瘦) 대비의 시적 표현에 깊이 공감하면서 스스로를 경계하는 화두로 삼아야겠다 생각했었다.

​두번의 정년을 지낸 지금이야말로 그 말을 일상 속에서 실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인생여정을 계절에 비유하면 은퇴 후의 삶은 가을 이후에 해당하니, 당연히 살집이 아니라 수척함에 대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박경리의 시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는 표현이 있는데 정말 그런 홀가분함이 내면에 자리해야 할 때다. 속되지 않고 의연하게, 가을과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인수상가비(人瘦尙可肥) 대신 ‘인비상가수’ (人肥尙可瘦)를 새 화두로 삼아야 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