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기한과 때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나니 /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

아침에 전도서 3장을 읽다가 며칠전 정전기념일, 북한의 전승절 기념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전한 영상을 떠올린다. 남북협력과 북미협상에의 기대보다 핵무력에 기초한 자주노선의 길을 견지하겠다는 분명한 선언이었다. 특히 한국에 대해 전례없이 강한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 예사롭지 않다. 윤석렬 정부의 출범이나 남한 보수층의 대북 비난이 빌미가 되었을 테지만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 미중 대립의 격화와 북중관계의 호전이라는 달라진 국제환경이 체제내구력에 대한 확신을 강화시킨 결과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북한의 호전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언사의 표출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한 시대가 가고 있다는 예감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낯설게 느껴졌다. 탈냉전 이후 30년간 남북의 대화, 화해, 접촉, 신뢰가 2018년 한껏 고조되었다가 비행기 추락하듯 향후의 기대감마저 현저히 위축시킨 지금, 다시 그런 시대를 전제한 대응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크다. 물론 냉전시대의 대결로 회귀하거나 일전불사를 외치는 무책임함이 그 대응책일 수는 없고 우리 사회 한켠에는 여전히 그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과연 그 기대가 지속가능할까를 회의하게 만드는 상황이 너무 뚜렷한 것 같아 편치않다.

범사에 기한이 있다… 사랑할 때와 평화할 때의 기한이 다 된 것인가.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 (전도서 3장 5-8) 이제는 되지 않을 미련을 갖기 보다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가 답답하다. 이 말씀이 위로가 되기보다 걱정을 더하는데 지혜자의 훈계에서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