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장욱진과 사사친

덕수궁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전시를 관람했다. 사사친 번개로 모이는 기회에 함께 고궁을 산책하고 좋은 그림 감상기회도 가지게 된 것이다. 노치준, 김필동, 황경숙, 정근식, 김경일, 박명규 등 여섯이 모여 고궁을 둘러보고 미술관을 관람하고 식사와 커피타임을 가졌는데 학창시절 소풍날의 즐거움을 잠시 느꼈다. 각자 올해 공직을 마감하기도 하고 새로이 손자를 얻기도 했으며 이사를 했거나 자녀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는 등 분주하게 2023년을 보냈지만 이전에는 누리기 어려운 망중한의 여유를 무료관람권으로 누리게 되었으니 복많은 백수세대의 일원이 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장욱진 화백은 1917년 생으로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등과 함께 2세대 서양화가이자 1세대 모더니스트로 꼽힌다. 대부분 크지 않은 아담한 사이즈의 유화 730여점, 먹그림 300여점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전시는 총 4개 관으로 나뉘어져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의 작품 상당수가 전시되어 그의 그림 인생을 조감하기에 족했다. 그의 그림에는 까치와 나무와 길, 사람과 집과 태양 같은 단순하면서도 친숙한 일상의 대상이 거의 예외없이 등장한다. 작은 캔버스에 동화적인 분위기로 비슷한 대상과 소재를 자유롭게 담아내는 방식이 거의 전 기간을 관통하고 있다. 수십년 활동해온 화가 중에는 시기별로 화풍이 크게 달라지거나 실험적인 작업에 심취하는 시기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상대적으로 장욱진 화백은 일생 유사한 화풍을 견지하여 ‘일관성’이 특징으로 이야기 될 정도다. 일견 신선함과 다양성이 아쉬운 느낌도 없지 않지만 초기의 동화적인 분위기와 친근한 대상에 대한 애정을 평생동안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새 것 컴플렉스가 유난히 강할 창작예술계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일까 그림 못지 않게 곳곳에 배치된 장욱진 화백의 말과 글에 눈이 갔다. “그림처럼 정확한 나의 분신은 없다. 난 나의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녹여서 넣는다. “/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저항 속에 사는 것 같다. …나는 이 저항이야말로 자기의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된다.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임을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된다.”/ “그림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톡톡 튀어나온다. 마음으로부터….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맑은 거울이나 맑은 바다처럼 순수하게 비어 있어야 한다. 어린이의 마음처럼 조그만… 이런 텅 비워진 마음에는 모든 사물이 순수하게 비친다. 그런 마음이 되어야 붓을 든다.”

세번째 홀에는 상대적으로 실험적이고 불교적인 모티브가 강한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아름다움, 진眞진眞묘妙”라 이름붙여진 이 곳에는 그의 불교적 세계관과 정신세계가 드러나는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유화의 형태가 아닌 동양화 풍의 먹그림도 이 시기에 등장한다. 먹을 사용하지만 전통적인 동양화와는 다른 유화식 붓터치가 내게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진진묘는 장욱진 화백의 부인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인데 실제로 장화백은 아내를 보살로 지칭할 정도로 존중하고 귀하게 여겼다 한다. 또한 인간과 동물, 자연과 산천이 함께 가족처럼 등장하는 그림을 통해 만물이 가족처럼 연계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정동교회, 정동극장 앞을 지나 이화여고로 이어지는 길은 유서깊은 문화지구로 젊은이들이 데이트 장소로 곧잘 오가던 곳이다. 하지만 미술관이나 주변 까페에는 젊은 세대보다 중년 및 노년의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띠었다. 평일의 업무 시간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는 세대의 나들이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할 테다. 고령화의 실상을 커피숍과 산책로에서 실감하게 되고 우리 또한 그런 상황을 뒷받침하는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다소 어색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중장년층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이런 형태의 그림에 어느 정도 정서적 공감을 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까치와 나무 대신 로봇과 자동차가 주된 이미지가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