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ties

사사친, 사비넷

오랜 대학생활을 하면서 주로 학술조직이나 연구관련 학회들에 참여해왔다. 사회학자로서 한국사회학회와 사회사 연구자로서 한국사회사학회는 내 오랜 학교생활과 거의 겹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낸 학술조직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나는 두 학회의 법인 이사장 직을 맡고 있다. 학회의 이사장이란 직책이 별 권한이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생 관여해온 학술조직을 그런 모양으로라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명예로운 일임은 분명하다.

정년을 하고 나니 새로운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 포럼이란 이름을 지닌 모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강연을 듣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형태에 따라 꽤 제도화가 된 규모있는 포럼도 있고 그동안 활동해온 개별적 인연을 바탕으로 가벼운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포럼도 있다. 개인적으로 어떤 포럼에는 수동적으로 참여하고 더이상 참여하지 않는 포럼도 있지만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포럼도 있다.

거창한 이름을 내걸지 않으면서 참여하게 되는 모임들도 있다. 최근 참여하게 된 사비넷과 사사친이 그런 사례다. 사비넷은 사회학과 비즈니스 네트워크란 말에서 짐작하듯 사회학과 동문들 가운데 비지니스 활동을 하는 분들 중심으로 이어져온 모임이다. 사회학과 동문회가 출범하고 주로 학계 바깥에서 중요한 활동을 하던 분들 중심으로 이 모임이 시작되었고 개인적으로는 그 출범과정을 지켜보면서 일부 뒷바라지를 했던 기억이 있다. 학교를 정년하자 김병용 회장께서 나도 초청해주어 참여하기 시작했다.

사사친은 사회사학회 친구들이란 말의 줄임말 격인데 한국사회사학회 활동에 깊이 참여해온 연구자들 가운데 이제 정년을 한 노학자들 중심의 친목모임이다. 사사친은 대체로 비슷한 연배의 학자들로 구성된 소규모 모임인 탓에 아직은 학술적인 주제나 학회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를 이룬다. 반면 사비넷은 세대를 달리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모임으로 골프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면서 서로의 유대를 확인하는 모임이다.

지난 주말 사비넷의 모임이 있었고 나로선 처음으로 참여했다. 오랫동안 기업을 경영해온 선배도 있고 퇴직을 한 분도 있지만 대부분 다양한 영역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동문 후배와 제자들이었다. 골프라는 운동이 한편으로 높은 문턱이 될 수 도 있어 보이지만 역으로 그 운동이 지닌 특성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묶어주고 또 정서적인 유대감을 강화하는 듯 했다. 학계 중심의 모임과는 그 색깔과 분위기가 다른, 독특한 정감과 적절한 자율성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life · 시공간 여행

소쇄원

GIST에 와 있는 기간동안 강의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서 남도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다녀보고 싶었지만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한 곳이 적지 않은데 광주를 거점으로 오갈 수 있으니 비교적 수월하게 길을 나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 그 첫 장소로 담양의 소쇄원을 택했는데 약 30분이면 갈 수 있다는 후배교수의 조언이었다. 실제로 주중이어서 길은 크게 붐비지 않았고 소쇄원을 찾은 방문객도 많지 않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소쇄원(瀟灑園)은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지은 별서정원이다. 소쇄라는 말은 ‘밝고 깨끗하다’는 뜻인데 자연미와 구도 면에서 조선시대 정원 중에서 첫손으로 꼽힌다. 1983년 7월 사적 제304호로 지정되었고, 2008년 5월에 명승 제40호로 변경되었다. 조선 중기 호남 사림문화를 이끈 인물들, 예컨대 면앙 송순, 하서 김인후,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이곳에서 교유하며 정치, 학문, 시를 논했다.

울창한 대숲을 배후로 하고 작지만 아름다운 계곡을 굽어보며 중앙에 ‘光風閣’이란 현판이 걸린 정자가 서 있다. 꾸미지 않은 담백한 모습이 주위와 잘 어울려 마치 원래부터 있던 자연물처럼 느껴진다. 왜 저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생각하다가 내가 국민학교 시절 매일 오가던 금호강변에도 ‘光風樓’라는 2층 누각이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조선 태종 12년(1412)에 처음 짓고 선화루라 이름 지었던 것을 성종 25년(1494)에 당시 안의 현감 정여창이 광풍루라고 이름을 바꾼 곳이다. 광풍각과 광풍루 – 어린 시절 고향의 기억을 남도여행 첫 날 담양에서 떠올리게 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광풍(光風)은 ‘비가 갠 뒤에 맑은 햇살과 함께 부는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란 뜻이다. 과연 두 곳 모두 그런 곳이어서 이름과 실제가 잘 어울린다. 하지만 저 이름 속에 그런 뜻만 담겨 있었을까는 의문이다.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후 향리로 내려온 양산보는 은거하는 선비의 삶에 더 이상 조정 권력다툼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 말기를 바라는 심정을 저 현판에 담고싶지 않았을까. 강직한 성품에 김종직 문하였던 정여창이 선화루를 광풍루로 바꿔 부른 것도 장차 무오사화가 일어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자신도 연루되어 유배될 것을 예감한 탓일지 모르겠다는 과한 상상까지 해보게 된다.

상쾌한 光風을 바랬는데 성난 狂風을 만나는 역경을 양산보도 정여창도 겪었다. 그런 인생사 아이러니는 지금 우리도 종종 접하지만, 자연은 그때나 오늘이나 멋과 여유를 잃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교훈하는 듯 하다. 소쇄나 광풍의 뜻에는 그렇게 살리라 다짐하는 사림 처사 특유의 결기가 담겨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며 21세기 오늘 내 삶도 되돌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