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벗’으로 만나 50년 가까이 우정을 이어온 친구들이 1박 2일의 오대산 여행을 했다. 다들 바쁘게 이곳 저곳에서 사느라 자주 만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현직에서 물러났거나 아들에게 일을 넘겨주어 다소 여유가 생기기도 해서 가을 단풍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횡성에서 새로운 사업을 일구고 성공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는 친구가 적극적으로 모든 숙박과 여정을 기획해 준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청량리에서 탄 강릉행 KTX 는 불과 1시간 만에 강원도 입구인 서원주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이곳이 소금강으로 알려진 곳이라는데 나는 처음 가보는 곳이다. 짧은 시간에 서울의 번잡한 분위기와는 너무 다른 자연의 풍광으로 들어선 것이 선뜻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고보면 우리 일상이 너무 좁은 공간, 익숙한 둘레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쳇바퀴 돌 듯 한 것 아닐까 싶다. 마음만 먹으면 이처럼 광활하고 멋진 산들과 만나고 또 싱그러운 가을 하늘을 맛볼 수 있는데….
원주의 소금강은 과연 ‘작은 금강’이라 이름할 만했다. 산세도 바위도 강도 서로 잘 어우러져 아름다왔다. 무엇보다도 규모가 한 눈에 들어와 아담하고 포근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먼 발치로 바라만 보았을 곳에 다리와 부교, 바위 옆 둘레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경치를 맛보게 만들었다. 바위에 구멍을 뚫고 허공에 철제통로를 만든 기술 덕택에 한적한 시골이 좋은 관광지로 변모한 셈이다. 또 새로운 공법을 활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비해 바위와 산의 모습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결국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심산유곡에까지 닿게 만드는 것이니 친환경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개발과 환경보존의 딜렘마를 이곳에서도 벗어나긴 힘들 듯 하다.
둘째날은 오대산 월정사를 거쳐 유명한 선재길을 걸었다. 십수년 전에 왔을 때에 비해보면 길도 잘 다듬어져 있고 단풍도 더 아름다운 느낌이지만 사람과 차량이 비교할 수 없이 많아졌다. 한국의 명산 대찰의 면모를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좋은 곳임은 분명한데 그만큼 몰려오는 인파가 남길 결과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 중년과 노년세대의 경제력과 체력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 같았다. 예전에는 주로 젊은 청년이나 학생들이 올라갔을 길을 이제 대부분 50대를 넘겼을 법한 중년의 사람들, 심지어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왁자지껄 산길을 오르고 있다. 시끄럽고 유쾌한 말들 속에서 활력과 건강을 느끼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점점 노화되고 있는 모습을 접하는 느낌도 피하기 어려웠다.
평창의 한 호텔에서 숙박을 했다. 평창 올림픽 때 선수촌으로 건립한 건물을 개조한 듯 객실이 무척 많았다. 그 많은 방이 모두 동이 나 예약이 어려웠다는 신사장의 말처럼 이곳도 관광객, 여행객으로 넘쳐난다.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가을의 풍광에 여유를 느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을 하려해도 할 수 없는 사람들, 점차 존재의미를 잃어가는 부류들이 많아지는 현상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친다.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배려해준 신언무 사장, 오랫동안 우정을 이어올 수 있는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