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여행

알함브라 궁전

기타연주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감미로운 선율로 일찍이 친숙해진 노래다. 하지만 정작 알함브라 궁전을 가보고 싶은 마음은 크지 않았다. 그럴 기회가 내게 올 리 없으리라는 지레 짐작이 이유였을지 모른다. 스페인의 중부도시 그라나다에서 회의가 있는 절호의 기회, 한 여행단에 섞여 안달루시아 지방을 둘러보았다. 이슬람 문명의 아름다움과 건축미가 온축되어 있는 알함브라 궁전의 섬세한 배치, 선, 대칭, 구도에 놀랐던 감동이 새롭다. 기독교 국가의 문화 속에 이슬람 문명의 예술성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 모습은 21세기 인류가 본받아야 할 어떤 방향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날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내 마음 속에 선율없는 노래로 남아있다.   

시공간 여행

효경언해

선대로부터 내려오던 오랜 문집들을 정리하다 발견한 책. 효경을 번역하여 부녀자들의 교육용으로 사용한 언해본으로 16세기에 처음 간행되었다. 이 판본을 사진으로 본 한 전문가의 견해로는 17세기에 제작된 목판본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경상도의 궁벽진 지역에까지 이런 언해본이 퍼져서 활용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이 목판본의 한글체가 매우 아름답고 정갈해서 더욱 관심이 간다. 

시공간 여행

명사산의 선

어릴 적부터 사막을 가보고 싶었다. 고운 모래만 한없이 펼쳐진 땅, 바람이 만들고 부수는 기이한 선, 그 속에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낙타행렬 등이 마음 속 사막의 이미지였다. 쓸모없는 땅을 뜻하는 황무지와는 달리 사막은 신비감과 장엄함의 아우라를 지닌, 살아있는 공간이다.  청마 유치환의 ‘그곳은 熱沙의 끝’ 이란 시구를 접했을 때 장엄한 불모성을 떠올렸던 것도 그런 감각의 연장이었을 것이다. 돈황을 가면서 들렀던 명사산은 글자 그대로 모래가 만든 산인데 그 아름다운 선은 바람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내 삶이 특별한 소출을 남기지 못해도 황무지의 삭막함이 아닌, 사막의 신비함으로 장엄하기를 기대해본다.   

오늘의 화두

讀書와 廳書

집콕의 시간이 계속되면서 책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데 강제로 유폐된 느낌이어서 그런지 책에 집중할 마음의 평정심이 자주 깨진다. 잡생각이 많아지고 이런 저런 염려들이 마음을 뒤흔든다. 유발 하라리의 3부작 [호모 사피엔스], [호모데우스]와 [21세를 위한 21가지 주제]를 e-book으로 읽다가 소리로 읽어주는 기능에 처음 접했다. 침대에 누워서 듣는 독서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직은 기계음의 어색함이 이해를 방해하고 눈으로 읽는 것만큼 의미파악이 되는 것 같진 않았지만 청각으로 와 닿는 타인의 생각은 확실히 달랐다. 독서가 아니라 청서의 시대가 오는 것인가.  

오늘의 화두

거연재 (居然齋)

번잡한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해 보려 마음먹은 지 몇 년이 지났다. 조용한 시골에 땅을 보러 다니기도 했고 어떤 집이 좋을지 다른 집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고 관련 프로그램들을 시청하기도 했다. 아직 그 꿈은 미완으로 남아있지만 가상의 공간에 새로운 집을 짓게 되니 마음이 즐겁다. 비대면의 기술환경이 강의나 회의, 거래와 소비에 한정될 이유는 없을 터, 웹사이트의 공간이 주는 새로운 방식이 21세기형 선비의 혁신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 제자들의 정성으로 터가 닦인 이 집을 ‘거연재’라 이름하면서 담담하면서도 역동적일 새 삶을 꿈꾸어 본다.    

시공간 여행

금강산 등정

2008년 겨울 금강산을 찾던 날 폭설이 내렸다. 등산이 불가능할까 염려했지만 이튿날은 활짝 개여 중턱까지의 산행에 지장이 없었다. 고려시대 이래 문인들이 일생 한번은 가보고자 했던 곳이다. 최남선, 이광수 등 이곳에서 명문을 남긴 이들이 적지 않다. 눈덮인 금강산은 과연  명승지요 절경이었다. 겨울 금강산을 일컫는 개골산이란 이름처럼 기암괴석과 흰 눈의 대비가 현란하게 아름다웠다. 그 중간 중간 솟아있는 금강송의 자태는 금상첨화라 할까. 중턱에서 잠시 쉬면서 찍은 한 컷. 지금 되돌아보니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이 느낌이 현실로 되살아날 때는 언제 다시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