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대추나무에 우주의 신비가

집앞 마당의 대추나무에 탐스런 대추들이 열렸다. 내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비바람 맞으며 제 스스로 열매를 맺고 또 익어왔으니 우주의 섭리가 고스란히 담긴 신비라 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대추나무 잎의 푸르름과 익어가는 대추빛깔이 매일 달라지는 것을 보는 즐거움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이다. 내 삶의 공간에 하늘의 사랑과 은총이 햇빛과 비바람과 더불어 함께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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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한국포럼

지혜한국포럼 9월 행사에서 사회혁신 컨설팅, 임팩트투자 기업 MYSC의 김정태 대표로부터 ‘ESG 시대, 기업이 변화하는 이유, 어디까지 왔는가?’ 라는 주제의 발제가 있었다.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고 기업의 공적 책임을 강조하는 가치지향성이 경영의 기조로 자리잡아가는 현실을 잘 짚어주었다. 아직 그 흐름이 부분적이고 그 비중도 제한적이지만 적어도 이런 가치지향성에 배치되는 기업이 환영받지 못하고 의외의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음은 폭넓게 인정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이익과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기업경영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좇는가가 핵심적인 과제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보면 이익추구와 가치추구를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결합시킬 것인가 하는 쟁점으로 연결된다. 그렇게 보면 ESG 라는 것이 기업 경영의 원리일 뿐 아니라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삶의 원칙이 되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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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빛깔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이후 첫 가을을 맞는다. 가을을 맞은 지 수십년이 되었지만 유난히 올해 계절이 바뀌는 것을 피부로 실감한다. 주택에서 거주하는 탓일게다. 아침 저녁으로 땅과 풀, 나무와 새들을 보고 신선한 공기를 맛보면서 우리의 삶이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매 순간 깨닫는다.

9월이 되니 햇볕의 느낌이 다르다. 노란 기운이 강해지고 여름의 맹렬함보다 푸근함이 더하다. 대추나무를 비추는 햇살도 대추가 익어가는 것과 함께 익어가는 느낌이다. 계절 마다 제 빛깔을 가진다 하겠지만 유독 가을의 빛깔이 눈에 띠는 것은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단풍과 낙엽때문이리라. 벌써 철이른 단풍과 낙엽을 보기가 어렵지 않다.

인생도 각 단계마다 제 빛깔이 있을 것이다. 지난 시기 내가 드러낸 삶의 빛깔이 어떠했든지 가을을 맞이한 나무들이 그윽한 색깔을 준비하는 것처럼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을은 자연의 섭리와 함께 인생을 되돌아보며 성찰할 준비를 하게 만드는 복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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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천도교, 기독교

동학, 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 1919

이영호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최근 쓴 자신의 저서를 보내왔다. 제목 그대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시기 한국에서 동학, 천도교, 기독교의 종교적, 사상적, 조직적 갈등과 연대를 추적한 역저다. 이 세 종교는 모두 한국의 상황 속에서는 새로 시작하거나 수용되는 것이어서 전통적 질서와 세계관이 해체되고 있던 당대의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경쟁 속에 위치하였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주제에는 관심이 컸었다. 동학의 발생, 그것의 천도교로의 전환, 기독교의 수용과 정착이 조선의 정치경제적 변화와 맞물려 진행되던 이 역동적 시기가 이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흥미를 끌었다. 특히 과학주의, 세속주의 세계관이 문명의 이름으로 급속히 밀려들고 사회불평등에 대한 계급적 시각도 조악한 형태이지만 급진전되고 있던 때에 사람의 마음과 영성을 중시하는 종교적인 세계관이 강력한 힘을 발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오랜 궁금함이었다.

되돌아보면 이런 개인적 관심을 충분히 끌어가지 못한 데에는 시대정신의 압력도 한 몫을 차지한다. 내적 윤리, 종교적 심성, 신앙의 본질을 정면에서 강조하기보다 늘 사회경제적 맥락과 기능의 관점에서, 외피와 문화의 수준에서만 인정하려는 역사유물론, 농민혁명론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진지한 시도로 평가할만하다. 세계관의 기초로서의 종교, 그것이 지닌 독자적 힘, 그러면서도 동학과 천도교 사이의 분명한 단절, 다시 천도교와 기독교의 접점과 간극을 깊이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1919년을 끝으로 삼고 있어서 결국 31운동에서의 천도교, 기독교의 연합으로 이어지는 맥락이 책 전체의 기본골격을 이룬다. 하지만 그 때문에 종교 자체의 본질적 긴장과 동학을 천착하는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1920년대, 문화운동과 농민운동, 계급운동과 기독교 사회운동이 분출하는 과정에서 신앙과 종교, 종교와 세속의 접점과 긴장이 어떠했는지를 주목했더라면 설명의 틀도 좀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물론 그것은 또 다른 책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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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사회학

내일부터 2학기가 시작된다. 여전히 학생들과 언제 대면할지 미지수인 상태다. 온라인 수업방식에는 꽤 익숙해졌지만 새로 개설한 ‘꿈의 사회학’ 강의 준비로 마음이 바쁘다. 한국사회학회장 취임논문으로 ‘희망의 사회학’을 썼고 3년 전 서울대 김홍중 교수와 [꿈의 사회학] 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으니 아주 낯선 주제는 아니지만 수업은 처음이다. 구글에서도 이런 명칭의 강의계획서는 찾질 못했다. 어쩌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처음 하는 강좌일지도 모르겠다.

기성세대의 꿈은 한국사회의 고도성장, 도시화, 민주화, 세계화의 역동적 흐름 속에서 구성되고 작동했다.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의 기회가 주어지던 시대에 가능했던 꿈이었다. 불평등은 고착화하고 지위상승의 가능성은 희박하며 원하는 일자리는 부족한 시대, 정치는 패거리 권력다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남북관계의 전망도 어두운 저성장의 시대에 어떤 꿈꾸기가 가능할 것인가. 디지털 기술혁신으로 열리는 초연결사회의 변화가 새로운 기회와 꿈자원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힘써 찾아보려는 마음이지만 수강생들의 공감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 단초만이라도 여는 수업이 되기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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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공동체

잠을 깨면 대문을 열고 심호흡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코로나와 무더위로 답답해진 만큼이나 아침 공기의 상쾌함이 좋다. 풀내음을 담은 신선한 바람을 폐부 깊이 들이마시노라면 내 숨이 생명의 원천에 가닿는듯한 신비함마저 느낀다. 헬라어에서 바람, 호흡, 영혼, 숨 등은 모두 같은 어원을 지녔다고 들었는데 충분히 그럴 법하다.

호흡공동체라는 책을 접했다. 인류는 물론이고 동식물까지도 공기를 나눠 마시는 생명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관점에서 공동체의 공기를 주목하자는 논지가 신선했다. 어떤 공기를 누구와 더불어 마시는지, 그로 인한 위험과 기회가 어떻게 배분되고 공유되는지를 공기관계로 개념화하고 그것을 둘러싼 공기의 과학과 공기의 정치를 도모하자는 제안도 새로웠다.

공기는 지구공동체에 속한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값없는 공유재이지만 오염되면 모든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미세먼지가 초래하는 오늘의 위기는 울리히 벡의 경고처럼 국경과 계층, 남녀와 노소를 불문하고 민주적으로 확산되는 위험의 명백한 신호탄이다. 숨쉬기가 힘든 위기 앞에서 공기의 과학을 강조하는 저자들의 주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activities

새로운 평화담론

한반도 평화 국제회의 (KGFP) 에서 ‘새로운 평화론’을 논의하는 세션이 구성되어 그 좌장을 맡았다. 젊고 유능한 학자들이 21세기적 맥락에서 평화의 성격과 확산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생각들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세 명의 발제자가 각각 ‘적극적 평화’ (정혁), ‘안정적 평화'(허지영), ‘생태적 평화'(주윤정)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들은 모두 국가의 무력강화와 안보체제로 전쟁을 방지하는 것 만으로는 평화의 본래적 가치실현이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듯 했다. 구조적 폭력을 해소하는 것, 평화를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이게 공고화하는 것, 평화의 가치를 인간을 넘어 동물과 환경에까지 확대하는 것을 주문한 이날의 발제는 신선하고 유익했다.

토론도 진지했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명예교수인 소에야 요시히데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이상주의적인 국제관계론, 평화론이 벽에 부딪치면서 현실주의적 반격이 거세지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이런 변화된 상황에 어느 정도 적합성을 가질 것인지를 질문했다. 깊이 숙고해야 할 쟁점이자 어려운 숙제인 셈이다.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의 이성용 교수도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보다 안정적 평화라는 개념이 좀 더 적합성이 높다고 평가하면서 그에 따르는 조건들이 좀더 명료해져야 할 필요를 제시했다. 강원대학교 강혁민 박사는 생태적 평화가 갖는 문명적 가치에 공감하면서 그것이 좀더 구체적인 정책아젠다로 자리잡아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