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놀란 때가 얼마되지 않았는데 오늘은 이스라엘-이란 전쟁 뉴스에 놀란다. 코로나 펜데믹에 놀라고 로스앤젤레스 대형 산불에 놀라다가 지구촌 곳곳에서 빈발하는 지진과 홍수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Chat GPT 라는 낯선 존재를 만난지 불과 2년인데 우리의 일상 곳곳에 스며든 인공지능의 끝모를 파워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놀라움은 내 자신에게서도 끊임없이 나타난다. 옛날 같지 않은 몸상태에 놀라고 깜박거리는 내 기억력 감퇴에 화들찍 긴장한다. 갑작스런 친구의 부음 소식에 놀라고 내 나이가 70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전혀 몰랐던 지식들, 천문학과 물리학의 세계를 조금씩 접하면서 내 지식과 사유가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알고 놀라고 새로운 영역이 보여주는 신비로운 현상들에 두 눈이 번쩍 뜨이곤 한다.
‘놀라움’에는 두가지 다른 감정이 포함된다. 경이로움을 느끼며 내 마음을 여는 wonder 와 두려움을 느끼며 움츠려드는 fear가 그것이다. 노란 국화꽃 앞에서 우주의 신비를 느낀 시인의 놀라움이 wonder 라면 군사분계선 철책 앞 젊은 초병에게 들리는 이상한 소리는 전형적인 fear 로서의 놀라움이다. 희로애락을 넘나드는 우리는 너나 없이 이런 두 종류의 놀라움을 겪으며 산다.
놀라움을 느끼는 것 – 나쁜 게 아니다. 뇌과학적으로 모든 놀라움은 낯선 외부자극으로 뇌가 고도의 각성상태로 돌입한 것을 의미한다. 이 자극이 위협적인가 안전한가에 따라 상반된 두 반응이 분기된다. 안전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몸은 편안, 뇌는 보상모드’라는 하이브리드 상태가 되어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태도가 강화된다. 반면에 자극이 위협이라고 판단되면 교감 신경이 활성화되고 회피 회로가 강화되며 스트레스를 높여 부정적인 정서를 불러온다.
wonder 와 fear를 나누는 요인이 외부자극에 대한 내면적 평가라는 사실은 내가 내 정서의 주체가 된다는 뜻이어서 반갑다. 하지만 주관적 해석이 미치는 힘에는 한계가 있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불안, 위기, 불쾌, 혼란의 반응을 야기시키는 자극들이 적지 않다. 경기불황, 대중혐오, 전쟁위험, 기후위기 등은 내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자극들이 아니다. 각자도생, 무한경쟁의 시대상황도 마찬가지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고 그런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정서에도 면역력이라는게 있다면 그것을 키우고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할 수 없다면 견디고 이겨낼 맺집을 키우는 수 밖에 없다. 내 마음으로 통제가능한 자극에 대해서는 가급적 긍정적 활력이 되도록 wonder 의 감정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일상의 주변에 널려있는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고 그 신선한 파장에 놀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내가 좌우하기 어려운 외부의 충격과 놀라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다. 일단은 거리감을 갖고 그 맥락을 이해하려는 공부하는 자세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다는 것이 염려를 해소시켜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희로애락의 감정에 내 몸과 마음이 휩쓸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데는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