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시공간 여행

단양과 삼봉

큰 딸 내외, 아들, 손주 들과 단양 여행을 했다. 아시아나 마일리지 소멸분을 이용해서 편하게 가 볼 곳으로 이곳을 선택한 것이 한 달여 전이다. 단양은 이름만 들었지 실제로 가볼 기회가 없었다는 아이들은 좋아했다. 세종에서 단양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는데 어차피 손주들 중심의 여행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오가는 길의 풍광이나 문화적 요소는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편안한 잠자리, 즐겁게 놀만한 시설과 공간, 맛있는 음식과 여행의 즐거움이 가장 중요한 것, 두루 괜찮은 가족여행이었다.

단양팔경이란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지질학적으로 독특한 기암괴석이 산과 강과 어우러져 소금강이라 할만한 명승지가 여러 곳이라는 학창 시절의 교육 탓이다. 어릴적에 들었던 이런 내용은 대체로 현지에서는 실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이번에도 실제 모습이 명성에 미치지 못한 느낌이 강했다. 지구 곳곳의 기이한 풍경과 관광지를 가보거나 영상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은 현대인이 이동이 제한된 과거의 평가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오래전 역사지식과 여행객의 들뜬 정서를 잘 섞으면 명승지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상상력이 쉽지 않은 아이들이나 일반인에게는 과거의 명성보다 맛집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도담삼봉의 모습은 아름다왔다. 차들이 달리는 큰 길과 바로 옆의 주차장, 그리고 멀리 보이는 아파트를 제외하고 보면 가히 명승지라 이름할만하다. 강 가운데 솟은 세 봉우리가 지는 해를 등지고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뒤섞여 한폭의 동양화를 선사한다. 조선왕조 창건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으로 한 것이 이곳과 관계가 있다는 말도 전한다. 고려말 권신들을 비판하다가 유배와 유랑의 시기를 보내기도 했는데 이때 제천 지방에도 잠시 머물렀다는 것이 근거인 모양이다. 하지만 삼봉이란 지명이 곳곳에 있는 데다가 정도전이 삼봉재라는 집을 지은 곳이 삼각산이었음을 고려하면 이곳보다 삼각산과 더 깊은 연관이 있을 개연성이 훨씬 높다. 불교에 기반한 고려체제를 혁신하고 신유학에 기초한 새 왕조 창건을 꿈꾸고 추진했던 혁명가 정도전을 생각하기에 도담 삼봉의 규모는 너무 작고 기세도 완만해 보였다.

삼봉 정도전은 한국사에서 접하는 몇 안되는 혁명적 사상가였다. 아니 사상적 혁명가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평범한 권신배와는 전혀 달라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려 하지 않은 담대함이 있었고 당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미래를 상상한 혁신적 인물이다. 조선왕조의 기틀을 쌓은 여러 조치들, 전제개혁, 사병철폐, 조선경국전, 한양천도, 숭유억불 등은 모두 정도전의 작품인데 어느 하나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정도전은 장량이란 별호를 갖고 있었는데 이성계와 자신의 관계를 한고조 유방과 그의 참모 장량에 빗대었기 때문이라 한다. 정도전은 유방이 장량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장량이 유방을 이용하여 새 왕조를 개창했다고 할만큼 자부심이 컸으며 실제로 국왕보다도 재상의 역할을 중시하는 정치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상상력과 미래비전의 폭과 깊이가 대단하다고 여겨지는데 이런 인물에 대한 우리의 이해수준은 너무 빈약하다.

온달산성 앞에 만들어진 고려시대 궁궐과 왕성의 세트장에서 지난 역사를 떠올리게 된 것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경험이었다. 여러 사극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이용되었다는 이곳은 온달산성을 배후로 하고 앞으로 강이 흐르는 곳인데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실감 나게 만들어 특히 아이들에게 역사적인 시공간감각을 갖게 하는데 좋아 보였다. 유적지로서의 제약도 거의 없어 관람객이 왕궁의 용상에 올라 앉아 사진을 찍어도 괜찮았다. 쌀쌀한 겨울날,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산성 앞에서 왕실의 생활공간과 백성들의 마을 모습을 보노라니 나도 타임머신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온 느낌이 든다. 몇 년전 와본 최완규 총장의 멋진 별장에서 들렀던 보발재가 멀지 않아 그리로 가볼까 하다가 아이들 생각에 그만두었다.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고구려, 백제가 서로 다투던 ‘중원’ 지역이라는데 지금은 너무도 한적하고 온달산성조차 평온한 관광지가 되었으니 ‘산천은 의구하다’는 옛말도 언제나 맞는 말은 아닌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