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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인플루엔서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개인이 다수를 향해 메시지를 발신할 기회가 많아졌다. 개인의 블로그도 그렇지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람, 트위터 같은 SNS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능을 제공한다. 개인들의 메시지가 불특정 다수의 공감을 얻어 급속히 확산됨으로써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집단동학을 가져온 경우도 적지 않다. 기획되지 않았으나 거대한 힘으로 분출했던 미투운동이 그랬고 단시간에 권력을 무너뜨릴 정도로 결집된 촛불시위가 그랬다.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유투브의 힘이 하늘을 찌를 정도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래 이 디지털 기술환경이 제공해준 소통과 연결의 힘은 놀랍고도 강력하다.

이제 개인은 단순한 정보수용자가 아니라 메시지의 발신자로서의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지상파 방송국과 활자 신문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현저히 감소했고 백화점의 브랜드 파워도 상품정보를 제공하는 유명 블로거의 파워 앞에 흔들린다. 학생들의 장래희망에 크리에이터, 인플루엔서가 상위로 거론되고 그런 제목을 단 책자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곤 한다. 많은 수익을 얻고 인기를 구가하는 유명 인플루엔서는 21세기 신데렐라의 꿈을 실현한 사례로 여겨진다. 컨텐츠의 내용은 천차만별이어서 먹방일 수도 있고 노래일 수도 있고 여행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남의 약점을 들추는 저급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어쨋든 거대한 조직과 자본, 권력 앞에서 홀홀 단신 개인으로 맞서 자신의 생각을 내놓을 수 있고 그것으로 영향력도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변화다.

거대한 조직이나 타인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발신하는 1인 활동이라는 점에서 인플루엔서 활동은 지식인이나 작가의 글쓰기와 닮았다. 하지만 컨텐츠의 질이나 전문가의 평가보다 대중의 반응과 즉각적 피드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많이 다르다. 구독자 숫자에 따라 소득이 주어지는 비즈니스 방식 탓에 재미나 흥미 위주로 치우칠 개연성이 높고 실제로 가짜뉴스나 저급한 내용을 퍼트리는 1인 매체의 폐해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고급한 내용, 정확한 팩트,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플루엔서들도 최근 등장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나 제프리 힌튼 같은 지식인들의 메시지를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전파하는, 기획된 인플루엔서 같은 현상도 주목할 일이다.

새로운 책을 출간할 때마다 그 사실이 언론매체의 뉴스가 되는 것을 보면 강준만 교수는 일종의 셀럽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는 인터넷 환경에 기대지 않고 전통적인 활자문화에 기반한 1인 비즈니스를 고집스럽게 이끌어오고 있다. 그의 많은 저서들은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흘린 땀의 결과이며 인물과사상사는 그것을 뒷받침 하는 개인적 출판사다. 대중들의 흥미, 취향, 비방에 기대지 않고, 또 학계나 정가의 평판이나 도움에 의존하지 않은 채 정치한 분석, 냉정한 비판, 새로운 담론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메시지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그의 활동은 지식인과 작가와 인플루엔서의 모습을 두루 겸했다. 김대중, 호남차별, 조선일보사태, 노무현 현상, 학력차별, 서울대 중심주의, 이준석 현상, 좀비정치, MBC 에 이르기까지 그의 글쓰기는 광범위하고 성역을 불허하며 무엇보다도 개성적이다.

강준만 정도의 개인적 능력없이 이런 활동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식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작가적 글쓰기를 소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런 형태의 인플루엔서가 확산될 가능성은 있다. 인터넷 인프라에 힘입지 않고, 대중들에 영합하는 가십거리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견해를 명쾌하게 전파할 수 있다는 것, 활자매체를 통해서도 강력한 소통력과 공감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준만의 사례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지금도 잠재적 영향력을 지닌 개성있는 작가, 지식인들이 새로운 인플루언서가 될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실과 진리가 그 어떤 선동이나 가십보다 강력한 전파력을 갖고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때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