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감동 감사 감내

2022년이 가고 있다. 변화가 컸던 한 해다. 코로나의 여진 속에서 일상은 그런대로 회복 중이지만 환경도 관계도 마음도 적지 않게 변했다. 정권의 교체와 이념갈등, 집값 폭등과 폭락, 청년층의 좌절과 세대격차, 디지털 기술의 명암, 재난을 내장한 역동성 등 전례없이 많은 문제들이 터져나온 한 해다. 2023년에도 역대급 경제불황이 닥칠 것이고 한반도 긴장도 심해질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뒤를 잇는다. 탈냉전 평화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해를 넘길 것이 분명하다.

박노해의 “여명에 물을 긷다”란 시를 떠올린다. 해뜨는 순간, 여명의 시간이 ‘생의 신비’라고 노래하는 시인은 에티오피아의 척박한 땅에서 먼 길을 걸어 물을 길어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을 상상한다. 그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의 반복 속에 놀랍게도 사랑과 희망이 자라고 그 힘이 삶의 무게를 감당케 한다는 것이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라는 마지막 연은 이런 생의 역동성, 신비로운 힘을 확인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아지는 독특한 품성이다.

감동의 정서가 점점 사라지는 것 – 현대인의 병폐이자 늙어가는 징조다. 감사하는 마음이 줄어드는 것 – 인간성의 고갈과 자기중심성의 표지다. 감내할 여력이 없어지는 것 – 믿음과 희망이 사라지는 시대의 징표다. 역설적으로 감동, 감사, 감내는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낼 핵심적인 자산이 된다. 얻기 여려운 것 같지만 누구든 마음공부로 얻을 수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 이 자세로 2022년을 마무리하고 2023년을 맞이할 것을 다짐해 본다.

life · 오늘의 화두

양림동 근대문화유적

12월 6일 광주시 양림문화마을을 탐방했다. 호남지방의 근대화 과정, 특히 기독교를 중심으로 진행된 초기의 다양한 변화가 역사적인 건물과 함께 농축되어 있는 곳이다. 이전부터 남도답사 대상 리스트에 올려 놓았었는데 이제야 현장을 오게 되었다. 오웬, 유진벨 등 이름이 익숙한 초기 선교사들의 삶이 배어있는 공간과 기념물을 둘러보았고 최흥종, 조아라, 김필례, 김현승 등 이곳에서 배출된 초기 한국 지도자들의 행적도 그들이 활동했던 병원,교회, 학교, 기념관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도로변의 한 건물이 눈에 띠었다. 붉은 3층 건물의 외벽에 이국적인 선교사 얼굴이 장식처럼 붙어있고 흰색의 부조로 제작된 ‘최후의 만찬’ 작품이 걸려있다. 가만히 보니 예수를 한 가운데 두고 좌우로 이 지역에서 헌신했던 선교사와 초기 기독교 리더들 11명을 배치한 것이다. 베드로, 요한 등을 대신하여 오웬, 유진벨, 쉐핑, 정율성, 최흥봉, 조아라 등을 식탁 주위에 배치한 창조적 구성이 놀랍다. 저런 작품을 상상하고 저런 컨텐츠를 거리에 조성할 수 있는 이 지역의 문화적 안목이 대단하다.

호남신학교에 연한 작은 동산에는 이곳에서 활동하고 생을 마친 벽안의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이 있다. 그 뒤에는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순교한 호남지방의 850여 순교자들을 기리는 돌비가 세워져 있다. 동산을 돌아나가는 곳에 이들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긴 돌계단이 있는데 ‘고난의 길’이란 이름처럼 한발 한발 걸으며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종교사회학자로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양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셨던 노치준 목사께서 이곳저곳을 설명해 주어 더욱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묘역에서 내려오면서 유진밸 기념관을 들러 4대에 걸친 이 가문의 헌신적 활동을 살펴보았다. 100년 이전 가난하고 낙후한 한국,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인들과 살기로 작정한 저들의 헌신과 수고는 참으로 고귀한 것인데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생각만큼 살갑지 않다. 한 때 북한돕기활동으로 만나곤 했던 인세반, 인요한 형제의 사진도 반갑게 확인했다.

이 지역에 큰 발자취를 남긴 오방 최흥종 목사의 일생을 자세히 알게 된 것도 큰 보람이었다. 3년전 완공되었다는 오방기념관에서 손자인 최협 교수를 반갑게 만났고 그로부터 직접 여러 설명을 들었다. 낯선 선교사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회심한 이후 평생 한센인을 위한 헌신자로 생활했고 평양신학교를 거쳐 시베리아 선교사로 활동한 신앙인이었으면서 3.1운동, 신간회, YMCA, 노동공제회 등 한국의 근현대사 곳곳에 깊은 족적을 남긴 최 목사의 활동 폭은 참으로 놀랍다.

기념관의 전시 내용을 통해 초기 한국기독교에는 참으로 폭이 넓고 뜻이 깊은 어른들이 계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옥고도 치루었고 해방 직후 사회정치적 영향력이 컸을 법한데 스스로 권력과 명성을 멀리했다 하니 왜 백범 김구가 그에게 ‘和光同塵’이란 휘호를 남겼는지 이해될 듯 했다. 공식역사에서조차 힘있는 유명인들만 기억되는 오늘날 뒤늦게라도 이런 기념관이 세워진 것이 얼마나 다행한가.

최근 젊은 여행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는 펭귄마을도 양림동의 중요한 한 모습이다. 정겨운 골목길, 오랜 담장들 곳곳에 재미있는 사진과 글귀를 붙이고 옛날 형식의 사진관과 점방 등을 만든 도시재생의 한 사례다. 선교와 교육과 계몽과 의료라는 중요하면서도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깉은 공간과 달리 이곳은 일반인들의 일상적 삶에 기반한 만큼 유쾌하고 소박한 느낌이 강했다.

골목길에 선교사와 기독교 지도자들의 이름이 붙여져 있고 담장에 이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걸로 미루어 당시의 근대문물이 주민들에게 이질적이거나 거부감을 주진 않았음이 분명하다. 종교적 가치와 계몽적 과학이 잘 어우러진 현장이었다 하겠다. 선교사들의 집과 기념관은 대체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영화를 찍을 때 배경으로 선호되기도 하고 문화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는 것도 좋아보인다.

다만 유산으로 남는 것과 현실의 영향력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종교와 역사가 지닌 무게감과 여행과 소비의 즐거움 사이의 차이도 점점 커진다. 한국의 기독교가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며 성장해오는 동안 가난하고 병든 민중과 함께 했던 모습은 점점 기념관 속으로 박제화되고 있는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저 유서깊은 공간과 건물에 담겨있는 숭고한 헌신과 교훈이 과거의 유적이나 기념물로만 남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더해져야 할까 내내 머리에 맴돈 생각이다.

activities

평화를 위한 대화

11월 30일 현 한반도 위기상황에서 평화를 모색하는 모임이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개최되었다. 나는 이 좌담의 사회자로 초청을 받아 세 시간을 넘기는 대화시간을 주재했다. 평창동 높은 곳에 호젓하게 위치한 이 아담한 4층 공간은 경동교회 목사로 한국의 기독교와 사회운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던 여해 강원룡의 정신을 기려 如海軒이라 이름붙인 곳이다. 이홍구 전 총리, 하태경 국민의 힘 의원, 이재정 민주당 의원, 이삼열 대화아카데미 이사장, 최상룡 전 주일대사, 이부영 전 의원, 이현숙 WPS 아카데미 이사장 등 다수의 원로와 전문가들이 자리를 같이 했고 줌으로 참여한 분도 여럿 되었다.

기조발제를 맡은 박명림 교수는 중요한 쟁점들과 제안들을 포괄적으로 제시했다. 미중대립은 신냉전이라기보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표준을 둘러싸고 복합적으로 진행되는 다층적 경쟁임을 강조하고 구별된 대응을 통해 패권경쟁에 한국이 휩쓸리지 않아야 할 것을 주장했다.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위에 통일보다 평화에 주목하는 남북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면서 안보와 대화의 병행전략을 추구해야 할 것도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선진국으로 부상하여 제국적 속성까지 지니게 된 한국이 민족주의적 특수주의를 벗어나 보편적이고 문명사적인 시야를 확보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 역사적 경험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발상을 강조한 박교수의 진지한 발제 내용에 대체로 공감하면서 참석자들은 그 실행방안, 구체적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두고 여려 견해들을 주고 받았다.

잔잔하지만 경륜이 담긴 이홍구 전 총리의 언급도 나로선 인상적이었다. 몇년전 같은 모임에서 나는 신냉전이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섞인 발언을 그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YS,DJ,JP,노태우 같은 큰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안타까움과 함께 북한변수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판단과 행동이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한반도 미래를 생각할 때 비관적인 느낌이 강해진다는 발언을 들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사회자로서 다른 분들께는 좀더 긍정적 미래전망을 말해달라고 주문하기는 했지만 문명사의 흐름은 반드시 진보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바우만이 말한 레트로토피아적 경로가 한반도에서 나타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70년대 아카데미의 대화 모임은 사회적 소통을 증진시키고 민주주의 정신을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민주화가 실현되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혼재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존재감이 크게 약화되었다. 언론과 국회가 사회적 소통의 기제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시민들의 일상적 대화는 굳이 무거운 쟁점들에 주목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숱한 미디어와 말들의 잔치 속에서 오히려 신뢰도 화해도 힘들어진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거대양당의 정략적 판단이 일사분란하게 작동하는 국회는 고급한 대화의 장이라기보다 말의 오남용과 논리싸움의 현장이 되고 있다. 유투버, 1인 미디어, 인플루언서, 소문과 팬덤이 혼합된 디지털 시대에 대화의 존재양식도 크게 달라졌다. 신뢰와 합의를 위한 의사소통 방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로 대두되는 상황인 것이다.

2022년 말, 유럽은 전쟁과 에너지난으로 뒤숭숭하고 미중의 대립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데 남북관계도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믿을 것은 무력 뿐이라는 신념으로 핵위협을 고도화하는 북한과 그에 따른 불안감을 호소하는 우리 내부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남남갈등은 다시 고개를 들고 정치권은 해묵은 보수 진보의 대립를 반복한다. 말이 정치가 되고 논리가 승패의 무기로 간주되는 시대에 위기해소의 지혜를 제공하는 대화란 어떤 것일까? 날선 편가름과 원초적 무력 숭배가 상황을 좌우할 때 대화가 제공하는 솔루션의 효용성은 어디까지일까? 일방적인 자기 주장, 타자와의 차별화를 목표로 한 진열장식 대화가 빈발하는 오늘, 대화가 진정 문제해결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근거와 조건은 무엇일까? 남북간에, 미중간에, 여야간의 갈등이 대화로 해소될 수 있으리란 믿음을 정말 우리는 공유하는가? 이런 근본적 질문들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새로운 소통양식을 탐구해야 할 문명적 전환기에 있다는 생각을 더욱 절감하게 된 자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