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온 종일 내리면서 채 물들지 못한 낙엽들로 마당이 어지럽다. 비 내리는 소리를 듣다가 중국 송대 문장가 구양수의 글 추성부(秋聲賦)가 생각났다. 한 폐친이 이에 관한 이야기를 올려놓은 글을 읽었던 기억 때문일터이다. 인터넷에서 전문을 다운 받아 다시 읽어보았다. 지금 읽어도 명문이니 명불허전이다.
동자와의 문답으로 시작해서 동자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글이다. 때론 조용한 듯 때론 요란한 듯 들리는 것이 무엇인가 물으니 동자는 나무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소리라 한다. 시인은 이것이 바로 秋聲 곧 ‘가을소리’라 했다. 차갑고 냉정한 기운으로 무성함을 자랑하던 초목의 잎을 떨어뜨리는 가을은 만물변화의 섭리를 드러내는 기운이 드러나는 계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말년의 김홍도가 추성부를 화제로 한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불현듯 나도 그 기분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먹을 갈고 붓을 잡아 잎이 떨어진 나목 두 그루를 그리고 추성부 문장 가운데 마음에 와닿는 부분들을 적었다. ‘성정이 없는 초목도 때가 오면 내려놓을 줄 안다’고 노래한 시인은 “사람이 금석의 몸을 지닌 것도 아닌데 어찌 초목과 더불어 영욕을 다툴 것인가”라고 자문한다. 그래서 가을소리를 안타까와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덧붙인다.
시인은 가을 소리를 들으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동자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한다. 계절을 즐기지 못하고 인생사의 교훈만 찾으려는 식자들의 버릇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이런 천진스런 행동 속에 담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니 가을비를 그냥 즐기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일거리를 만들려는 나한테도 던지는 가르침일지 모르겠다. 어쨋든 가을의 정서만은 담뿍 담으려 노력한 소품 한 점이 만들어졌다. 올 가을 거실에 걸어두고 추성을 들어보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