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에이티즈 게릴라

이틀간 에이티즈의 노래를 계속 들었다. 이번에 발매한 앨범 8집 타이틀곡 ‘게릴라’ 영상을 유투브에서 보게된 것이 계기였다. 이들이 해외에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고 특히 올해 초 유럽 현지공연에 수만의 청중을 열광시킨 그룹이란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다. 최근 빌보드 차트의 상위에 진입하고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 하지만 굳이 이들의 노래를 찾아 들어보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이들이 발산하려는 메시지가 내 사회학적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노래를 음악 외적인 시각에서 평가하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에이티즈 같은 아티스트의 경우는 그런 시각에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고 유용하리라 생각을 한다.

실제로 이번 앨범 발매에 앞서 공개한 트레일러와 포스트는 문명론적 관점에서 읽어야 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아이돌의 역동적인 노래에 어울리지 않는 디스토피아적 도시공간이 영상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나키스트를 상징하는 문양을 영상 속에 또렷하게 배치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왜 해적과 게릴라의 이미지를 내걸고자 하는가? 이런 물음들은 음악적이기에 앞서 사회문화적으로 답할 쟁점이다. 체계적으로 통제되고 감시되는 현실의 벽과 그 ‘지겨운 반복’을 부셔버리려는 자유로운 영혼을 대비시킨 노랫말들과 영상은 아티스트로서의 에이티즈 나름의 현실진단이자 응답인 셈이다. 세상을 바꾸고 벽을 허물라는 과격한 구호를 외치면서도 개개인의 필링, 감정, 사랑, 자유를 강조하는 모습에서 수십년 전 전세계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미쳤던 비틀즈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들이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열렬한 사랑을 받은 이유 가운데는 그런 점도 있을지 모른다.

이번 8집 앨범에 수록된 7곡은 서로 연결된 메시지로 뚜렷한 서사성을 지니고 있는데다 그 내용이 갖는 사회문화적 함의가 강렬하고 만만치 않다. 곡의 제목들만 봐도 프로파간다, 사이버펑크, 게릴라, Where Do I Go, 뉴월드 등으로 문명비판적 시리즈물을 방불케 한다. “세상이여 깨어나라”고 명령조로 일갈한 뒤 거짓, 통제, 규율, 증오, 이기심과 같은 저항할 대상을 열거하고 “우리를 감시하는 하늘의 눈(“eyes in the sky”)을 보라고 외친다. 또한 거짓과 감시로 박제된 디스토피아적 현실과 그것을 벗어나려는 움직임, 감정의 힘을 느끼기 시작한 자들의 결집과 각성,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힘과 운동을 강조한다. 동영상의 화면에는 프랑스 혁명, 감시사회, 대중통제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오마주되어 있고, 공식 설명 영상에서는 보다 직설적으로 이 게릴라적 저항운동의 의의와 그 범위를 언급하기도 한다.

가사들도 의외로 직설적이다. 시적이기보다 산문적이고 은유적이기보다 선언적이다. 그래서 노래말에 담긴 지향과 주장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내 안의 무언가가 계속 눈뜨려 하고 있어. 눈을 떠 느껴 봐, 하늘에 날린 빛처럼 우린 자유로워…(섹터1) /사슬에 묶인 듯 꼭두각시 같은 춤사위만, 무엇도 느낄 수 없는 이곳은 full of lies (사이버펑크) / 두 귀를 막은 채 두 눈을 가린 채 똑같은 인형처럼 살 수 없잖아 이제 시간이 됐어, 우리 필로 세상을 깨워, break the wall, 세상을 바꿀 우린 게릴라 (게릴라). / 눈을 떠 진실들과 마주할 때 비로소 세상은 바뀔 수 있어, 어둠이 걷힐 때는 한 줄기 빛이면 충분하지, 천둥처럼 깨워 세상을, 신세계가 눈앞에 곧 다가올 이 시대. 새로운 세계를 준비해.. (뉴월드)

유투브로 노래와 영상을 들으면서 나는 소설 ‘멋진 신세계’를 생각했다. 고도의 과학기술에 기반한 감시사회의 도래, 인간의 기계화를 추적한 문명비판물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이 암울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의 출현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에이티즈의 앨범에서도 완벽하게 관리되는 세상, 뻔한 행동이 지겹게 반복되는 현실 앞에서 내면의 감정, feeling,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저항의 연대를 형성하는 것을 주요한 모티브로 삼는다. 노래로 예술로 감정과 필링으로 암울한 시대상을 깨트리자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아나키즘의 세계관을 표방하면서도 과거 유럽의 68세대나 미국의 히피들에게서 보였던 거칠고 퇴폐적인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주목할 일이다. 멤버들은 한결같이 단정하고 깔끔하며 밝은 표정으로 역동적인 군무를 춘다. 영화배우를 뺨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과 단정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이들과 노랫말에 담긴 강렬한 저항서사는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아름다운 개성과 저항의 파워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한국 아이돌 문화의 놀라운 혁신일지 모르겠다. 에이티지는 그런 가능성을 전형적으로 또 성공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만하다. 나름의 세계관을 노래 속에 담아 전파하려는 이들의 원대한 포부가 앞으로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지 궁금하다. 이 대담한 그룹의 활동이 예술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문화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