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시공간 여행

울릉도 1, 유치환과 김민기

청마 유치환의 ‘울릉도’ 시비가 독도박물관 입구에 서 있다. 울릉도를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묏부리 방울 튀어” 이루어진 “애닯은 국토의 막내”라고 노래한 시인의 상상이 기발하다. 울릉도와 한반도의 밀접한 연결성을 이 표현 이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시인의 상상력은 문화와 역사, 정치로까지 이어져 “멀리 조국의 사직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올 적마다/ 미칠 수 없음이 이렇게도 간절”한 “어린 마음”을 울릉도에서 읽어낸다. 식민지와 분단, 전쟁의 험난한 역사를 살아와야 했던 시인 자신의 정서가 먼 바다 외딴 섬의 모습 속에 투영되었을 법하다.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 앞에도 또다른 시비 하나가 서 있다. 70년대 문화운동의 주역이었던 김민기의 “내 나라 내 겨레” 라는 시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위에 이글거리나”로 시작되는 이 글은 송창식이 곡을 붙인 노래로도 널리 알려졌다. “피어린 항쟁의 세월 속에 고귀한 순결함을 얻은 우리” 라거나 “눈부신 선조의 얼 속에 고요히 기다려온 우리 민족”이라는 표현 속에서 전쟁과 가난과 독재를 뚫고 의연히 성장해온 한반도 백성에 대한 강한 신뢰를 읽을 수 있다. 이 시비 건립을 위해 2000년에 김민기가 새로 글씨를 썼다는데 민주화된 21세기를 맞이하는 감격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이 글에 덧입혀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유치환의 시와 김민기의 시는 정서와 분위기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청마의 시에서는 애절함과 고독함이 강하게 느껴지고 김민기의 노래에선 자신감과 공동체성이 읽혀진다. 청마는 바다, 파도, 바위, 사막 등을 통해 꺾이지 않는 생명의 강인함을 확인하려 한데 반해 김민기는 항쟁의 역사와 선조의 얼, 순결함과 기다림의 공동체를 노래한다. 유치환이 울릉도를 통해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을 읽어내는 것과는 달리 김민기는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라며 선언하듯 과감하게 자신감을 피력한다. 이 두 시비 건립의 사이에는 수십년 한국 현대사가 자리하고 두 시인의 감성 사이에는 그동안 변해온 시대정서의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2022년 지금 또 다른 시인이 이곳에서 노래한다면 어떤 정서를 담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