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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주술

오늘 한국사회는 종교사회학의 주된 관점에 근본적 수정이 불가피함을 또렷이 보여준다.

첫째로 종교는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리라는 세속화 명제는 그대로 수용되기 어렵다. 현재 한국은 세계 3대 종교인 불교, 기독교, 천주교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비중으로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각종 종교와 신흥종교를 포함하면 인구의 상당수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엘리트층이 다양한 종교적 자원을 공유하고 종교적 네트워크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둘째로 종교는 공적 영역에서는 퇴장하고 사적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시각에도 수정이 필요하다. 대통령 부부를 비롯하여 총리, 국회의원, 권력에 줄서려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이 주술적 예지력을 가졌다는 자칭 도사나 인사들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는 사실은 부끄럽고도 놀랍다. 군의 최고지도자였던 예비역 장성은 스스로 점집을 열었을 정도다. 드러나지 않은 경제와 문화 영역에도 종교가 권력과 금력을 동원하여 개입하는 정도가 상당하리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셋째로 종교와 주술을 구분하지 않고 ‘믿는 행위’ 일반을 종교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해석도 수정되어야 한다. 제도종교를 중시하는 태도를 서구중심적이라고 비판하고 민간신앙과 주술신앙을 종교의 반열에 함께 올려놓는 것이 올바른 시각이라는 다원주의적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양자의 질적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오늘 한국사회가 보여준다. 주술적 예언을 믿고 그것이 공공영역을 왜곡시키는 현실에서 주술과 사술의 해악을 가려내는 지적 엄밀성이 필수적이다. 세속적 가치와 맞설 종교적 세계관의 존재여부로 양자를 구분하려 했던 베버의 관점을 되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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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를 어떻게 만날까? (3)

하기 여행의 두번째 지역은 조카마치 구역이다. 일본에서 가장 잘 보존된 막부 시대 조카마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옛 성곽, 성주인 모리가문의 저택 유적, 사무라이 거주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관과 박물관, 미술관 등을 방문하여 이곳의 내용을 좀더 세밀하게 접해볼 수 있다. 조카마치를 이해하기 위해 하기시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하기는 현재 야마구치현에 위치한 인구 4만 4천명의 도시다. 한편은 동해에 면하고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막부 말기부터 대동아전쟁 전까지는 정·재계의 거물을 다수 배출하는 주요 지역이었다. 하기가 배출한 지사 8인 가운데 일본 총리가 5명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도로, 철도, 항만의 정비가 늦어 발전이 더딘 곳으로 평가된다. 인구의 감소가 현저하며 최근에는 진학·취직 등도 규슈로의 지향이 강하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인 《세상에 사는 나날》과 《화신》은 모두 하기를 무대로 한다.

옛날에는 오우치 가문의 가신인 요시미 가문의 영지였다. 세키가하라 전투 후인 1608년에 모리 데루모토가 시즈키산의 기슭에 하기성을 축성해 이후 야마구치의 정사당에 번청이 옮겨질 때까지의 약 260년간 조슈 번 36만석의 성시로서 발전했다. 에도 막부 말기에는 요시다 쇼인이 쇼카손주쿠에서 많은 인재를 육성해 이곳에서 기도 다카요시, 요시다 토시마로, 다카스기 신사쿠, 쿠사카 겐즈이, 이토 히로부미 등을 배출하고 이들과 우호가 있던 이노우에 가오루 등을 배출했다. 또 일본의 근대적 군사제도를 만든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고향이기도 하다. 막부 말기 유명한 이케다야 사건의 발단이 된 과격파 유신지사들의 교토 방화 계획에서 천황의 거처를 이곳으로 옮기려는 계획이 있기도 했다

메이린 학사는 하기번교로서 상층 사무라이의 교육기관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박물관

명륜학사

우라가미 기념관

크리스천 순교자 기념공원

유네스코 문화유산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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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를 어떻게 만날까? (2)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조슈와 사쓰마에 관련된 글들을 많이 접했다. 가고시마는 들릴 기회가 있어 사쓰마 시대의 박물관과 사이고 다카모리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조슈는 막부 말기 가장 많은 인물들이 피해를 입었던 곳인데다 한국과 악연이 깊은 인물들이 다수 배출된 곳이어서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지금껏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 정년을 한 지금에야 이곳 탐방을 하게 되니 내가 조슈에 관심을 가졌던 때로부터 거의 35년만이다. 하기 일원의 지도를 펴고 여행계획을 구상하다 보니 하바드 엔칭 도서관에서 독학의 편식증을 무릅쓰고 조슈 지방사 책자들을 열독했던 때가 새삼 생각난다.

“한국과 일본의 근대국가 형성과정의 비교사적 연구”라는 타이틀의 내 학위논문은 19세기 말 조선과 일본의 근대개혁이 왜 실패와 성공이라는 차이로 나타났는가를 밝히려는 것이었다. 개항기 조선과 막부 일본의 내적 역량이나 개혁지향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고 다만 개혁과정에 작용한 외세의 강도와 성격 차이가 결정적이었다는 것이 주된 주장이었다. 당시 지배적이었던 세계체제론적 사고와 민족주의적 열정이 뒤섞인 가설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조선의 ‘개화파’와 일본의 ‘개혁파’를 가급적 상세히 비교하고 그 차이가 대단치 않았음을 밝히는데 많은 힘을 쏟았다. 요시다 쇼인, 다카스키 신사쿠, 오쿠보 도시미치, 사이고 다카모리 등 일본의 토막유신파들에 대한 상세한 연구에 비해 김옥균, 김윤식, 유길준, 김홍집 등의 전기적 연구가 부족해 비교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행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메이지 시기를 다룬 책자들을 빌렸다. 그 중 미요시 도오루가 쓴 [史傳 이토 히로부미] 책자가 상세하면서도 흥미있어 보여 먼저 읽기 시작했다. 조슈와 사쓰마에서 활동한 여러 인물들의 일화와 인물평들까지 담겨있어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저자가 저널리스트 작가라는 점에서 학계의 신중한 평가보다 대중의 반응을 염두에 둔 책 같은 느낌도 없지 않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이토를 비롯한 당대의 주역들이 모두 대단한 기지와 역량, 헌신성을 지닌 인물이고 일본의 미래를 염려하는 지사들로 그려져있다. 시바 료타로 사관이라 불리는 대중적 영웅주의의 또다른 버전일 수 있어서 주의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박영신 교수께서 내 학위논문을 출간하겠다고 동의를 구하신 적이 있다. 그때 선뜻 응하지 못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 논지에 대한 논증이 아직 불충분하다는 판단때문이었다. 당시로서는 약간 더 실증적인 자료를 보완하면 출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고 일본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나는 내 기본논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크게 두 가지 쟁점이 심각한 질문으로 내게 떠올랐는데 1) 19세기 후반 한일의 정치변동을 성공과 실패라는 시각에서 대비하는 것이 타당한가 2) 한말 개화파 세력이 막부말기 개혁파세력과 역량과 세력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내리지 못해 결국 출간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일본에서도 메이지유신에 대한 평가는 성공과 실패라는 시각과 직결되어 있다. 한편에서는 일본의 근대국가형성에 성공하고 동북아에서 서구문명화를 선도하는 문명국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이를 높이 평가한다. 반면 천황제 군국주의로의 진행으로 일본이 전쟁국가가 되고 결국 패전으로 이르게 된 계기가 메이지유신에 있다고 보아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통상 보수적인 역사관에서는 메이지 유신을 높이 평가하는데 비해 진보적인 역사학계는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다. 최근에는 [메이지유신이라는 과오] 란 책이 간행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을 멸망시킨 요시다 쇼인과 조슈 테러리스트”라는 부제를 달고 있을 정도로 조슈의 메이지 주역들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유교의 선린평화론적 사상을 확장할 수 있는 싹을 억누르고 대외침략의 길로 나가게 된 결정적인 책임이 이들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국가중심의 역사해석은 불가피한 것일까? 근대 역사학이 국가학과 밀접하고 민족주의와 친연성이 강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내가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를 비교하겠다고 생각한 발상 그 자체가 이미 국가중심적인 패러다임을 수용한 것임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고보면 메이지 시기 조슈의 인물들을 다룬 많은 글들도 전형적으로 ‘국가사’의 관점에서 평가되고 있다. 사쓰마의 사이고 다카모리가 영웅시되어 영화로 만들어지고 도사의 사카모도 료마가 시바 료타로의 작품에 의해 구국스토리의 주인공이 된 것이 그 전형적 사례다. 조슈를 만나면서 그들의 영광과 우리의 치욕, 그들의 성공과 우리의 패배라는 이분법을 넘어설 어떤 스토리를 준비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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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회 6 기억과 미래

미래센터를 책임진 미하엘 마르텐 과정의 발제는 이런 시각의 종합판이라 할만 했다. 그는 현재 추진하는 미래센터가 과거경험을 정형화하고 박제화한 박물관이 아니라,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시각과 경험들이 소통하고 대화하며 성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동독과 서독, 과거와 미래, 독일과 유럽 사이에 존재했고 또 존재하는 기억과 기대의 차이, 대립하는 시각을 드러내는 장으로 기획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역사는 (동서독인, 또 전 유럽인) 이 함께 이루어낸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정한 집단이 중심이 된 해석이 아니라 기억문화 내부의 다원적인 목소리를 용인하고 서로 다른 기억들이 소통되게 만드는 것을 중시한다. 당연히 열린토론과 대화를 강조하는데 일방적이고 단순화된 공식기억, 기억의 독점으로 개개인의 생애사가 부정당할 때 포퓰리스트의 선동에 취약해진다는 것을 언급했다.

기억의 주체는 사람이며 그런만큼 다양하다. 또 기억은 늘 새롭게 재구성되는 과정이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는 지점이다. 기억은 늘 미래를 향해 열려있어야 하며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분단, 북한과 관련한 우리의 과거경험을 어떻게 말하고 서술할 것인지, 우리의 분단서사와 통일서사를 보다 세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박제화되고 정형화된 기념관이나 전시관이 아닌, 상충하는 기대와 기억들이 소통하고 연결되며 공존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 — 앞으로의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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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자리

현실과 사상은 역사 속에서 늘 변증법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다. 현실에 따라 사상이 구성되지만 사상이 현실을 바꾸는 변수가 되기도 한다. 잘 정리된 사고체계가 현존질서를 옹호하고 뒷받침하는 역할도 하고 때로는 혁명적 변화를 추동하기도 한다. 만하임이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를 구별한 것은 이런 양면성을 밝히려 한 작업이었다.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가운데 이념의 대립이 다양하게 부상한다. 정치권이 자기 세력확장을 위해 정략적으로 활용하려하고 또 대통령이 이를 강조한 탓이 일차적으로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그렇게 치부하는 것은 이 시대 논쟁에 담긴 사상적 함의와 문제의 깊이를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정략적 논란의 뒷면에 자리하고 있는 작금의 집단적 심성, 사상적 전환의 필요성을 찾아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긴요한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그 핵심에는 북한, 중국, 일본, 미국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크게 달라져왔다는 집합심성의 변화가 놓여있다. 먼저 남북관계의 전환은 지난 시기 역설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불가피하게 요청한다. 2018년을 전후하여 짧은 시기 남북지도자가 보여주었던 정치적 약속과 미래전망이 왜 그토록 금방 파탄나게 되었는지, 북한을 그 어떤 정치지도자보다 이해해주고 포용하려한 문재인 정부가 왜 평양으로부터 응당한 반응과 연결고리를 유지할 수 없었는지, 북한이 핵무력을 전략자산으로 공언하고 대남위협까지도 숨기지 않는 호전적 태도를 보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뻐아픈 성찰이 요구되는 것이다. 단순히 북한비난이나 미국책임으로 설명하는 것은 진지하지도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관습적이고 정파적인 태도에 다름아닐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더 심대한 변화가 국제상황으로부터 오고 있다.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이에 대항하여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한국의 양다리 걸치기가 극히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심대한 전환 앞에서 어떤 사상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을까? 최근 곳곳에서 겪고 있는 역사논쟁은 많은 경우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담론싸움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당위적으로는 패권경쟁에 한반도가 말려들어가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미래를 열어갈 사상적 자원은 매우 빈약헤보인다. 아직은 불투명하지만 북한이 중국 및 러시아와 군사적, 기술적으로 밀착하는 상황이 전개되면 더더욱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각한 수준이 될 우려도 없지 않다. 일본과의 관계개선 문제도 기본적으로는 이런 지정학적 변화와 직결되어 있다. 사상의 시대가 오는 것은 그다지 달갑지 않지만, 그런 시대가 오는데 사상적 바탕이 없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걱정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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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헌학술원 자문위원회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의 자문위원회가 2월 2일 프라자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 김용학 전 연세대 총장, 김도연 전 포항공대 총장 등이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나도 자문위원이지만 이들의 유명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데 송 원장은 나를 자문위원장이라고 했다. 하긴 아무런 역할이 없는 이런 직함은 그냥 듣기 좋으라고 부르는 이름일 뿐이리라.

하긴 나는 이 학술원의 출범에 꽤 역할을 한 셈이니 전혀 뜬금없는 명칭은 아닐 수도 있겠다. 내가 쓴 학술원 현판을 내건 현판식이 12월에 있었는데 꽤 좋은 평판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청명 선생의 글씨로 만들어진 한림과학원 현판과 비교가 되는데 내가 보아도 도헌학술원 현판이 더 좋아 보인다. 한학과 한문에 대한 조예에서는 청명선생에 비할 바가 아님에도 그 분의 현판과 나란히 내 글씨가 자리잡고 글의 기세가 크게 모자라지 않다는 것 자체로 보람있는 일이다.

자문위원으로 함께 위촉된 분들 중에는 한림대학 재단관계자도 있고 오랫동안 한림대학교와 인연을 맺은 학자들도 있다. 건강이 다소 안좋아진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 현직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을 여러 영역에 기여하고 있는 중이다. ‘자문’이라는 역할이 유명무실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필요한 독특한 지혜를 만들어갈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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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聲

가을비가 온 종일 내리면서 채 물들지 못한 나뭇잎들도 떨어진다. 조용히 비 내리는 소리를 듣다가 중국 당대 문장가 구양수의 명문 추성부를 떠올렸다. 한 폐친이 이에 관한 이야기를 올려놓은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지만 인터넷에서 추성부 전문을 다운 받아 천천히 읽어보았다. 명문으로 알려져온 글귀 답게 지금 읽어도 글맛이 좋다.

동자와의 문답으로 시작해서 동자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글이다. 때론 조용한 듯 때론 요란한 듯 들리는 것이 무엇인가 물으니 동자는 나무들 사이에서 나오는 소리라 한다. 작자는 이것을 ‘가을소리’라 했다. 그리고 곧 가을풍경으로 시선을 옮긴다. 가을은 그 차갑고 냉정한 기운으로 무성함을 자랑하던 초목의 색을 물들이고 잎을 떨어뜨린다. 시인은 가을을 만물의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는 기운으로 파악한다.

불현듯 추성부의 기분을 표현해 보고 싶어 붓을 잡았다. 잎이 떨어진 나목 두 그루를 앞에 배치하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의 대부분을 화제처럼 담았다. ‘초목은 성정이 없으나 때가 오면 내려놓을 줄 안다’고 노래한 시인은 다시 “사람이 금석의 몸을 지닌 것도 아닌데 어찌 초목과 더불어 영욕을 다툴 것인가”라고 자문하고 마침내 가을소리를 안타까와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마무리한다. 이런 감정을 획 속에 충분히 담아내기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글씨 속에 담뿍 담으려 노력했다.

과거의 명문들 속에는 종종 제3자가 등장하여 작가의 허세를 뒤흔드는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던지곤 한다. 이 글에 등장한 동자는 가을 소리를 배경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다. 계절을 즐기지 못하고 인생사의 교훈만 찾으려는 식자들의 버릇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니 가을비를 그냥 즐기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일거리를 만들고 만 나한테도 던지는 동자의 가르침일지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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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새와 꽃의 영광을 노래하라

이것은 이종민 교수가 출간한 책의 제목이다. 영문학자이면서 시와 음악, 문화 전반을 사랑하는 이교수가 정년을 맞아 자신이 좋아하는 영시들을 엮은 것이다. 영시명시 다시 읽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우리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영시의 진수를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솔직히 우리 시인들의 시에 비해 다소 어색한 문장들도 많지만 시인의 감수성과 표현력이 갖는 신선함과 놀라움은 보편적일 수밖에 없을 터… 정독하려는 자세를 좀더 키워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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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상 심사

2021년도 월봉상 1차 심사를 했다. 코로나 19의 거리두기 지침이 완화되기를 기다린 탓에 평년에 비해 많이 늦어졌다. 작년에 출간된 200여권의 연구서들을 살펴보면서 2차심사에 올릴 5권의 저작을 선정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해 동안 한국학계의 한 흐름을 일별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임에 틀림없다.

같은 심사위원인 이기동 교수님과 도진순 교수님은 한국사 분야의 학자 개개인의 장점과 그들의 연구성향, 학계 안팎의 동향에 매우 밝다. 나는 상대적으로 사회과학계의 사회사나 근대변동, 한국학 일반을 살펴본다. 손쉽게 합의되는 수작도 있지만 평가와 의의를 달리보는 견해차가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술상의 무게와 영예가 과거에 비해 약해진 느낌이지만 필생의 연구활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격려라는 점에서 심사의 역할은 영예로우면서도 무겁고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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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남 외, 절멸과 갱생 사이

박해남, 김재형, 곽귀병, 김일환, 이상직, 최종숙, 추지현 등이 함께 연구하고 펴낸 책 <절멸과 갱생 사이: 형제복지원의 사회학>이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간행되었다. 40여년 전 신용하 교수님 주도로 사회사학회를 만들어 역사적 사건과 자료들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한 이래 역사사회학, 사회사적 연구가 그 폭과 너비를 확장해왔다. 이 책이 그로부터 시작된 지적 역량의 꾸준한 발전상을 보여준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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