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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시간 여행

한국사회사학회 주관으로 6월 29-30 이틀간 군산 일대의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한국 근대의 역사가 건물과 공간 속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는 도시의 하나인 이곳을 오랫만에 다시 방문하니 여러모로 새로웠다. 2022년의 군산은 고층 아파트가 곳곳에 있고 새만금 1차 간척지로 확보된 넓은 공단지대와 고군산군도까지 방제도로와 연육교로 이어져 20여년 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십여 년전 새만금 제방의 최종연결을 앞두고 이 간척지의 용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을 때 고 김석철 교수가 국제적 바다 도시를 만들자는 주장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유럽의 베니스처럼 한중일을 통합하고 연결하는 미래형 도시, 초국경 공간을 창조하자는 신선한 발상에는 감탄을 하면서도 과연 실현가능성이 있을까 못내 의아했었다. 초국경 국제 바다도시라는 구상이 헛된 망상처럼 여겨질만큼 바다에도 하늘에도 국가간 불신의 담이 높아지고 있는 오늘, 새만금 넓은 간척지를 바라보는 마음은 시원하기보다 다소 착잡했다.

주 답사지역인 군산 구도심의 변화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지역 출신으로 영국에서 공부한 이현경 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도시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어 지방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된지 여러 해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로를 걷는 것 만으로도 수십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 세트장을 떠올릴 정도로 각양 모습의 주택과 건물이 새로운 문화공간과 까페들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 골목마다 눈에 들어왔다. 숙소 옆에 ‘신민회 1907’ 이란 간판을 달고 태극기까지 걸려있는 건물이 기념관인줄 알고 들어가보려다가 까페임을 알고 혼자 웃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던 도산 안창호를 군산에서 떠올리게 되다니….시차와 거리를 뛰어넘은 카페공간의 이미지가 흥미롭고 신선했다. 역사적 유산과 흔적을 문화적으로 재구성하여 한국의 압축근대화의 모습을 재현하고 이것을 관광과 소비, 지역경제와 결합하는 것은 분명 뜻있고 의미있는 일이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이런 저런 논란도 있고 실제 도시재생 사업의 명암이 있지만 과거와 현재, 전통과 미래를 삶의 현장과 연결시키는 작업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다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과거를 문화적으로 재현하고 그곳에 현재적 의미를 제공해줄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하고 발전시킬 것인가가 큰 숙제일 듯 싶다. 열정적으로 해설을 해준 현지의 퇴직 언론인의 스토리 구조는 일제의 수탈이란 프레임에만 의존하고 있는 듯 해서 답답했다. 군산의 도시유산이 지닌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성격을 단순화시키지 않고 저 공간성에 담긴 근대성과 식민성과 현재성을 종합적으로 해석해줄 창의적 스토리가 절실해 보였다. 식민지 시대를 견디면서 때론 타협하고 때론 저항하며 독특한 삶의 지혜들을 찾아내고 전유했을 이 지역의 간단치 않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재현된 문화적 상상이 오늘 이곳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주민들의 자부심과 정체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교과서적 해설이나 민족주의 서사, 국가주의 담론으로 그 답이 얻어질 리는 없다. 지역사나 도시사, 미시사 차원에서 새로운 담론과 서사, 이론의 창안이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물론 과거를 읽는 학계의 역량이 더 성숙해져야 함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

조정우 교수의 안내로 식민지시대 농업이민회사로 유명했던 불이흥업의 현장을 답사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옥구 저수지의 거대한 규모, 풀로 뒤덮여있는 옥구역의 녹슨 철길, 여전히 활용되고 있는 관개시설 등에서 100년 전 이 일대에서 이루어진 변화를 상상해 보았다. 근대 기술을 동원한 간척, 수리조합과 농업이민, 농장제 영농의 변화 속에서 진행되었을 혁신과 수탈, 환영과 거부, 탄성과 소외, 지배와 복종의 복잡한 조합들을 생각해 보지만 넓은 논밭과 농촌의 주거에서 그 흔적을 찾아내기란 어려웠다. 땅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인간만 굳이 과거의 역사와 유산을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려 애쓰는 것일까? 21세기 우리에게 20세기 전반 식민지시대의 의미는 무엇인가? 꽤 오래 공부한 주제인데 이 과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쾌하고 즐거우면서 남겨진 숙제를 떠올리게 만든 유익한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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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포럼 2.0 단상

코로나 상황으로 오랫동안 지체되던 가진포럼 모임이 6월 16일 새롭게 재출범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상황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 저런 자리에서 종종 만나게 된 학계, 관계, 외교, 정치 영역의 전문가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지면서 시작된 비공식 모임이다. 현직에서 한발 물러나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분이 대부분이다. 이전에 비해 여유가 생긴만큼 자유로운 모임 그 자체가 주는 의미가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된다.

주로 모여 식사하던 식당의 이름을 따서 가진포럼이란 이름을 붙였었는데 촛불시위와 뒤이은 코로나 상황을 거치면서 점점 가기가 어려운 곳이 되었다. 다시 모임을 하게 되면서는 교통도 좀더 편리하고 근처에 있는 한 연구소 세미나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안국동에서 모이게 되었다. 앞뒤의 시간을 이용해서 화랑들을 둘러볼 수 있는 것도 좋은 덤이다. 앞으로 이름도 안국포럼으로 불러야 할까 모르겠다.

모두들 한국사회에서 최고수준의 전문가들이고 다양한 경험과 조직운영을 해본 분들인데 그 역량과 에너지를 공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더이상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취업의 어려움을 겪는 젋은 세대와 급속하게 변화하는 기술문화 생태계를 생각하면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퇴직해야 하는 제도가 반드시 부정적이진 않다. 실제로 조직상층이 고령화될수록 권위주의와 관행주의가 힘을 얻고 혁신과 변화에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전체로 볼 때 은퇴자가 늘어나는 것 자체를 안타까워 하기보다는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는 모습에 주목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 연령을 근거로 현역과 퇴역을 기계적으로 분할하는 지금의 방식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우선 이런 제도는 공공의 조직분야에서만 적용될 뿐 변호사, 의사, 기업가의 영역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공공조직분야에서 능력을 키운 고급엘리트층이 예비군처럼 늘어나면서 정치적 연줄로 임명되는 자리를 둘러싼 갈등이 커진다. 5년마다 열리는 대선이 점점 더 엽관제의 모습을 띠게 되고 캠프에 많은 엘리트 예비군들이 참여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텐데 그것이 미치는 영향의 명암을 손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인구학적 고령화와 더불어 늘어가는 퇴직 고급인력의 활용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향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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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조정과 사회통합

6월 14일 강원도 사회갈등조정위원회가 주관하고 한국사회학회 및 한국갈등학회 등이 공동주관하는 심포지엄에 참여했다. “갈등조정과 사회통합”을 대주제로 하고 해소되기 어려운 사회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책적, 학술적 기법과 그 운용사례를 점검하는 야심찬 행사였다. 나를 초청해준 강원대 김원동 교수가 국가 및 지방 단위의 통합적 거버넌스 모색을 위해 관련 학회들과 함께 심포지엄 전반을 기획한 듯 했다. 기조강연을 한 고려대 김문조 명예교수는 오늘날 변화하는 사회기술환경 속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증진시키기 위해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를 종합적으로 발제했다. 도 차원의 직제에 사회갈등조정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신선했고 학계 전문가와 지방행정 담당자, 시민운동가가 머리를 맞대어 지혜를 모색하려는 기획 자체가 그런 통합지향 거버넌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내가 좌장을 맡은 첫날 두번째 세션은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고리원전 5,6호기 건설문제와 사용후 핵연료 처리관련 추진된 공론화위원회의 성과와 한계를 논하는 자리였다. 첫번째 발제를 맡은 김주환 교수는 고리원전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공론화 방식을 거쳐 조건부 공사재개로 이어진 과정과 제주녹지병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 다른 결과로 이어진 사례을 비교검토한 연구였다. 두번째 정정화 교수 발제는 사용후 핵원료 처리와 관련한 갈등과 그 해소를 위한 정부위원회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 과정과 결과를 비판적으로 점검한 것이었다. 원자력과 관련한 쟁점 자체도 쉬운 것이 아니지만 공론화라는 방식 자체에도 따져볼 조건과 변수가 적지 않았다. 공론화의 전 과정에 유관주체들이 모두 참여하는지, 정부가 내정한 정책적 결론이 존재하는지, 위원회의 중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되는지 등 여러 변수에 따라 그 방식과 효과도 달리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두 발제와 토론을 통해 한가지 명확해진 사실은 공론화 방식이 갈등해소의 유용한 절차이긴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거나 이미 정해진 정책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경우 갈등해소의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실 갈등이 큰 사안은 그만큼 정책결정의 기회비용이 클 가능성이 높고 정책효과에 대한 중장기적이고 전문적인 평가가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을 경주하지 않은 채 중요한 결정을 공론화란 이름으로 시민적 판단에 위임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클 수 있다. 첫 세션에서 공론화라는 방식 이외에도 다양한 갈등해소방법 (ADR) 이 있다는 점이 발제되었는데 사안과 맥락에 따라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거버넌스와 지혜의 요체일지 모르겠다. 최종적으로는 정치적 판단과 책임윤리의 문제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한 사회의 총체적 문화수준과 이어질 터이다. 저런 노력들이 의미있는 공공의 지혜로 축적되어 통합의 역량이 커지기를 기대해 본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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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대상으로의 교회공동체

공동체에 대한 공부모임에서 윤진수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의 ‘교회분열의 법적 고찰’ 발표를 들었다. 이전에도 교회의 공동체적 속성과 그 변화에 대한 서구 사례를 법학의 관점에서 다룬 발표를 들은 바 있다. 같은 신앙을 공유한 신자들의 자율적 모임이라 할 교회가 법률가의 연구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일견 의아해 보이지만 유럽의 경우 정교분리의 제도화가 근대화의 핵심이었던 점, 교회 내분으로 인한 갈등을 법정에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한국의 현실, 가족간의 일에도 법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경우가 적지 않은 오늘의 상황을 고려하면 법률적 관심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교회공동체의 법인격이 분할 가능한지, 분열의 절차적 타당성은 어떻게 충족되는지, 교회재산은 신자들의 공유인지 총유인지 등이 중요한 쟁점이 된다고 한다. 판례의 변화와 최근의 다수의견이 어떠한지 등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한국의 개신교는 이미 다양한 학문영역에서 연구대상이 되어 왔다. 비서구사회에서 1세기만에 강력한 종교로 성장한 것, 세계최대의 대형교회들이 한국에 집결되어 있는 것, 유난히 많은 교단과 교파로 나뉘어진 것, 통일교를 비롯한 신흥종교들이 출현한 것, 불교 및 천주교와 더불어 종교다원주의가 자리잡은 것 등이 국내외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어온 주제다. 70, 80년대 민주화와 인권운동과 친화력을 보이던 개신교가 정치문화적 보수주의와 결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최근 새로운 연구주제가 된다. 곳곳에서 빈발하는 교회분열이라는 현상도 공동체론이나 조직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발표를 들으면서 종교사회학을 전공한 교수였다가 현장 목회자가 되어 사역한 노치준 목사의 최근 저서가 생각났다. 그는 [평신도 시대, 평신도 교회] (동연, 2021)에서 ‘평신도 아마추어리즘’과 ‘교역자 프로페셔널리즘’을 한 축으로 하고, 교회공동체의 양극화를 다른 한 축으로 하여 한국교회의 변화상을 설명하려 했다. 그에 의하면 평신도가 교회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 1980년대 이래 한국교회의 특성인데 평신도의 역량과 열정이 커지고 평신도 신학이 자리를 잡는 한편으로 교권과 전통에 의존한 교역자 권위는 점점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열정적 참여를 가능케 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아마추어리즘의 한계와 보수적이고 성직주의에 근거한 교역자 프로페셔널리즘의 위기가 만나게 되었다고 본다. 역동성과 위험성의 동시 성장이 다양한 문제들의 출현배경에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한편 조직규모의 관점에서 보면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현재 한국의 교회는 100명 이하의 소형교회가 66.5%에 달하고 자립이 불가능한 50명 이하의 교회도 거의 50%에 육박한다. 이에 반해 1만명 이상이 모이는 23개 초대형교회의 신도가 전체 신자의 20%를 넘는다. 당연히 대형교회와 중형 교회, 소형교회가 갖는 문제의 양상이 매우 다르다. 재벌과 소규모 자영업자를 상법만으로 규율하기 어렵듯이 교회공동체라는 본질론적 개념만으로 불균등한 현실 개교회를 포괄하는 것은 매우 불충분하다. 교회공동체에 대한 신학적인 답과 법률적인 답이 있겠으나 조직사회학적으로 주목할 쟁점들도 민감하게 대응하는 노력이 절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노치준 목사는 자립이 어려운 소형교회 경우 앞으로 교회폐지, 합병을 비롯한 조직형태의 재편성이 불가피하리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마을목회, 분교회 모델, 자비량 목회, 작은 교회운동 등이 고려될 수 있겠지만 충분한 대안일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반면 대형교회의 경우는 제도개혁과 함께 분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긴 하지만 그것이 대형교회의 또다른 확산모델로 변질될 우려도 없지 않다. 중간규모의 교회는 자립성과 공동체성을 공유할 수 있지만 다양한 변화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거버넌스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못해 내부의 갈등과 분열의 가능성이 상존할 수 있다. 신앙공동체의 바람직한 규모와 그것을 보장할 제도가 어떠해야 할지, 그 규범력을 사회법에 의존할지 자체적으로 정립할 수 있을지, 신자와 교역자의 역할을 어떻게 재편할지, 분립과 통합의 새로운 조직형성을 어떻게 제도화할지 등이 앞으로 불가피할 과제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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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강

2022년도 1학기 종강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3학기 연속 비대면 강의로 학기를 마쳤는데 광주과학기술원에 부임한 이래 대면수업을 해볼 기회를 지금껏 갖지 못한 셈이다. 오고 가는 수고를 덜었으니 분명 몸은 편했는데 모니터 앞에서만 1년 반을 보낸 허전함을 부인하기 어렵다. 두 과목을 열심히 준비해 가르쳤지만 일방적인 강의로 시종하게 된 것도, 학생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를 갖지 못한 것도 아쉽다.

5월 초 대면수업으로 전환해도 좋다는 조치가 있어 학생들의 의견을 물었다. 90% 이상이 비대면 수업을 찬성했다. 이미 익숙해진 강의방식이 주는 편리함에서 굳이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읽혀졌다. 강의하는 나도 관성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데 학생들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스크린 앞에서 수동적인 청중으로 앉아있어야 하는 비대면 수업이 결코 즐거운 것만은 아니겠으나 외출에 필요한 여러 부담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은 결코 무시하지 못할 듯하다.

다음 학기는 대면 수업으로 전환할 것이 예상되지만 비대면 수업의 장점을 어떻게 이어갈지는 새로운 과제다. 각자 편리한 자리에서 화면을 통해서지만 서로의 얼굴을 정면으로 대하고 눈과 눈을 마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던 비대면 수업에 비해, 마스크를 한 채 떨어져 앉아 조심스레 강의하는 대면 수업이 얼마나 더 ‘face to face’ 에 부합할지 내 스스로 확신이 서질 않는다. 디지털 환경이 가져온 상호관계와 정보전달 방식의 대전환이 교육현장에 미치고 있는 변화가 팬데믹이 끝난다고 중단될 리는 없을 터… 앞으로의 변화와 경험이 흥미로운 관찰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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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평화연구원 창립 16주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6주년 기념심포지엄이 5월 17일 시흥캠퍼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오세정 총장께서 축사를 해 주셨고 2006년 당시 서울대 총장으로 연구원 설립을 주도했던 정운찬 전 총리께서 ‘동반성장과 남북관계’라는 기조발제를 해 주셨다. 뒤이어 내가 ‘통일평화의 16년 여정과 새로운 길찾기’라는 발표를 했다. 서울대학교에 통일관련 종합연구원 설립을 기획하고 전 과정을 주도할 수 있게 적극 후원해주셨던 정운찬 전 총장님과 함께 기조발제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다.

발제후 김병연 원장의 사회로 회고와 전망을 담은 대담을 했다. 정운찬 전 총장께서는 통일평화연구원 설립을 구상하게 된 배경, 총장으로서 당시 가졌던 꿈과 비전을 말씀하셨고 국정을 담당하셨던 분 답게 동반성장의 대의와 남북관계의 미래를 결합시킬 것을 주문하셨다. 나는 연구원을 설립하면서 지키려 했던 몇가지 원칙들과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 것인지 고민했던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특히 현실적인 쟁점을 다루면서도 정파적이지 않을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 진보보수 및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뢰하고 공유할 데이터와 담론을 산출할 역량을 확보하려 했음을 말했다. 개인적인 회고이고 경험이지만 나름의 역사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메시지였다고 해도 좋을 듯 싶다.

돌이켜볼 때 이처럼 중요한 연구기관을 설립에서부터 10년간 책임질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과분한 축복이었다. 내 능력을 뛰어넘은 일이라는 생각이 강했던만큼 더 절실하게 애쓰고 선학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해외의 유명 연구소를 벤치마킹하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내 50대 10년 동안을 줄곧 고민하게 만들었지만 이 기간을 통해 개인적으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 함께 큰 꿈을 나누고 지식의 지평을 넓혀가면서 사회적으로 유익한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성과 뒤에 담긴 수고를 기억해주며 그 뜻을 이어가려는 동학, 후배 교수들이 계시니 그 감사함은 말로 하기 어렵다.

한 해 전 통일평화연구원이 시흥캠퍼스로 옮겨간 것을 기념해서 써준 액자를 김병연 원장께서 로비 입구에 잘 보이게 배치해 두어 빛이 났다. 반갑게 만난 여러 연구원들과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통일평화’라는 생소한 개념을 내걸고 두 과제를 새롭게 사고하려던 문제의식을 떠올리며 며칠 고심하던 끝에 생각해낸 글귀였다. “통일은 평화로 가는 길이고 평화는 통일이 피울 꽃이다”. 남북관계가 교착된 오늘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런 길이 열리고 그런 꽃이 필 날을 고대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터인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큰 역할을 감당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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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대학원 열정이 남긴 것

서울대 대학원 50주년 기념책자가 간행되었다. 간행위원회로부터 글을 부탁받고 “주체적 학문을 향하여 – 7080 대학원 열정이 남긴 것”이란 글을 썼다. 내 대학원 시절을 되돌아보는 기회였고 그 시대의 긴장, 고민, 열정, 방황을 추체험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1978년 대학원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해가 1991년이었으니 13년 가까운 시간을 대학원에 적을 두었던 셈이다. 서울대 대학원 시절이 내 개인적으로 성장의 시기였지만 특히 그 과정이 한국사회학의 주체화랄까 정체성 강화의 흐름과 결부되어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역사적 흐름에 동참하면서 시야를 넓히고 문제의식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하던 1978년은 유신체제 말기의 억압과 좌절감이 극에 달했던 해다. 캠퍼스 안에서는 몇 명만 모여도 감시의 눈초리가 번득이고 교수들이 학생지도의 명목으로 소위 문제학생의 가정을 방문하고 시위현장에 설득하러 나서던 시절이었다. 열정적인 선후배들이 시위로 구속되고 노학연대를 위해 노동현장으로 뛰어들던 상황에서 대학원으로의 진학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처럼 여겨져 심리적으로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것이 노동운동이나 시위참여에 맞먹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명분을 애써 찾으려는 강박감 같은 것이 있었다. 밤 10시 이전에 연구실을 나서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대학원 시절 저녁시간은 거의 관악캠퍼스에서 지냈던 것 같다.

당시 사회학과 대학원은 학문의 주체성을 내건 학술운동의 진원지였다. 지식생산의 대외종속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움직임은 두 모임으로 시작되어 한국학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주목하면서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사회과학을 주장하는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 특수성에 바탕을 둔 사회과학을 주장하는 역사지향의 그룹이었다. 나는 두 번째 그룹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의 하나였다. 1980년 신용하 교수의 연구실에서 5-6 명의 대학원생들이 모여 유럽의 사회사 저작들을 독해하는 모임을 시작했고 참여자들의 공동작업으로 [사회학과 사회사]라는 책을 번역하는 것을 비롯하여 역사적 맥락을 강조하는 사회과학의 정립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 시기가 엄청난 세계사적 변혁기였다. 부시와 고르바쵸프의 탈냉전 선언이 있었고 그해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으며 마침내 1990년에는 독일이 통일되는 대변혁이 진행된 것이다. 비난 일색이었던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이 탈냉전과 세계화의 흐름과 맞물려 미친 전방위적 효과는 참으로 엄청났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직후엔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되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들이 당시 대학원에 공부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자 혼돈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세계사적 격변과 관악의 사회과학 사이의 간극이 주는 혼란을 극복하느라 이 시기 대학원생들은 적지 않은 어려움과 긴장을 겪어야 했다.

그런 시기를 거쳐 학자가 되고 모교의 교수로 부임하는 영광을 입었다. 특히 7080년대학문의 주체화를 내걸고 국내에서 씨름하던 연구자가 서울대 사회대의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기사화될 정도로 주위의 관심을 받기도 한 탓에 부임 이후에도 부담과 긴장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자의식이 나로 하여금 나름의 이론적 지향과 개념적 작업을 수행하는 독립적인 학자가 되는데 큰 밑거름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나를 성장케 해 주었던 한국사회학회와 한국사회사학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이사장으로 미력이나마 뒷받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정년을 하고 돌이켜보니 서울대학교 대학원의 시기가 그런 자산을 배양한 비옥한 토양이었다. 비록 거친 땅에서 마구 자란 야생화처럼 다듬어지지 않고 열정만 넘쳐났던 시기였지만 그 힘이 오늘까지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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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과 나눔 심포지엄 발제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이 주최한 학술행사가 많은 청중의 참여로 성황리에 끝났다. 통일을 준비하는 민간재단으로 출범한 이후 다양한 연구지원과 차세대 육성에 애써오다가 이번에 큰 학술회의를 연 것이다. 인사말을 한 이영선 이사장은 한반도 안팎의 어려움이 커질수록 장기적 전망으로 통일을 향한 준비와 노력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통합으로 통일을 연다’라는 대 주제가 그런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는데 윤영관 전장관이 국제정치적 시각에서,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이 경제통합의 관점에서 그리고 내가 사회문화교류의 측면에서 각기 발제를 했다. 세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줄곧 자리를 지킨 청중들의 표정에서 진지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지만 코로나 상황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남북관계는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어서 이런 행사가 다소 위축될지 모르겠다는 염려도 있었는데 대한상공회의소 대강당 200여명 자리가 꽉 찼고 유투브 실황중계에 접속한 사람들 숫자만 7천명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심포지엄을 준비한 주최측의 노력이 컸을 것은 물론이고 남북관계의 개선을 바라고 통일의 꿈을 지닌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구성 상 나는 사회문화통합을 위주로 발표했지만 남북관계는 언제나 정치와 경제가 주를 이루어왔다.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서 민간교류, 사회문화적 신뢰구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정치군사적인 쟁점과 국제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냉정한 계산이 늘 우선되는 것이 현실이다. 핵무력과 정치주의를 앞세운 북한은 더더욱 민간교류에 소극적이고 사회문화 접촉이 북한 체제의 이완을 가져올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당위적 균형감각과 현실적 우선순위가 어긋나는 경우는 남남갈등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며 최근 세대간, 젠더간 그 편차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름길을 찾으려는 조급함이 드센 시기에 지속가능한 신뢰와 장기적 통합역량을 키워나갈 큰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확인하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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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국가연합’ 구상

새 책을 출간했다. 포스텍 평화연구소의 후원을 받아 내가 책임연구자로 주관을 했고 박영호 박사, 김상준 교수, 전재성 교수가 함께 참여한 공동연구의 결과물이다.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남북관계의 새로운 틀을 모색하려 한 작업인데 ‘평화공존의 중간단계 구상’을 부제로 [한반도평화 신로드맵]이란 제목을 달게 되었다.

2018년 판문점과 평양에서 보였던 남북정상간 합의와 신뢰는 불과 한두해를 지속하지 못하고 예전의 단절상태로 되돌아갔다. 단순히 되돌아간 것에 그치지 않고 낙담과 좌절, 비방과 신뢰상실의 후유증이 매우 큰 전환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적 공조가 뚜렷했던 이전에 비해 미중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이제 유엔 차원에서의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할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국내에서도 이번 대선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관심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의 견해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애매한 남북한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국가간 관계가 아닌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규정과 민족내부관계라는 틀이 활용되어 왔고 지금도 그 논리가 남북관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지만 이것은 21세기 남북관계를 총체적으로 규율하는 틀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손쉽게 한반도 두 국가론을 받아들이면서 두 개의 주권국가임을 공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필자들은 표현은 다르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두 국가성을 전제한 위에 책무성과 협약존중의 틀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이와 관련하여 남북관계 진전의 중간단계로 설정되어 있는 남북연합 구상이 그런 국제법적 원칙과 상호존중의 정신을 반영하기 어려움을 지적한다. 나는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과정으로 미래를 보는 관점에 근거한 이 모델이 70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형성되어 온 두 주권체 사이의 모순적인 관계를 조율하기 어렵다고 보아 분단국가로서의 정체성과 서로 다른 분단국가간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좀더 생각을 다듬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지만 새로운 사고와 혁신적인 대응이 불가피한 시대에 들어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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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공동체성 세미나

공동체론에 대한 연구모임에서 성균관대 권철 교수의 프랑스 종교단체 법제에 관한 발제를 들었다. 종교는 오래된 공동체의 하나이지만 근대 이후 그 법적 사회적 지위는 사회마다 또 시대마다 달라져왔다. 근대화를 탈종교화와 동일시하는 견해가 많을 정도로 종교의 우월한 지위가 오늘날은 크게 약화되어 최소한 공적으로는 특권적인 위상을 지니지 못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회단체와는 달리 종교는 그 역사가 오래고 신성한 가치를 향한 신자들의 전적 헌신에 기초한 공동체인만큼 관습적인 자율성과 법적 통제가 충돌을 빚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회나 성당, 사찰 경내에 공적 이유로 경찰이 들어가는 것조차 큰 반발을 불러오는 것을 지금도 종종 보고 있다. 특히 종교국가가 아니지만 불교, 기독교, 천주교가 각기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점하는 다종교사회 한국에서 이들 종교의 공동체적 속성이 어떻게 유지되고 변화하는지는 흥미롭고 중요한 주제다.

프랑스는 근대사회를 연 최초의 국가이자 전형적인 사회로 알려져왔다. 특히 프랑스혁명은 네이션에 입각한 근대국가주의를 천명하고 카톨릭이 지녀온 오랜 권한을 국가로 귀속시킴으로써 이후 역사과정의 한 모델이 되었다. 이번 발표에서 프랑스혁명 이후 공화파는 국가와 개인 사이에 어떤 중간집단의 특수한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 원칙을 강력히 고수했음을 확인했다. 구체제와의 대결에서 종교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중대한 비중을 점했음을 알게 되었다.

발제를 들으면서 에밀 뒤르켐이 계속 생각났다. 그는 종교가 사라지는 시대에 종교적인 것이 어떻게 지속되는가를 물었고 그것이 결국 근대국가의 시민종교로 나타날 것이라 예상했다. 국가가 도덕공동체가 되기를 바란 그의 가치관이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종교와 국가가 단순한 대립관계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중요한 고찰이기도 하다. 법적인 시각과 사회학적 관점의 접점과 차이를 느껴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