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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규장각 국제심포 기조강연

서울대 규장각에서 매년 개최하는 한국학 국제학술회의가 11월 4-5일에 개최되었다. 첫날 “디지털 시대의 한국학 – 개념사의 성취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새로운 연구발표는 아니지만, 디지털과 세계화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한국학’이란 학문의 정체성과 위상에 대한 내 나름의 생각을 담았다.

주최측에서는 일찌기 결정을 했다는데 정작 나에게는 보름 전에야 연락이 되어 급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다학제적이면서 글로벌하고 그러면서도 한국적인 주제를 드러낸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다. 그래도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더 확대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1990년대 초반에 세계한국학대회의 하나인 PACKS 일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탈냉전과 세계화의 격동기에 국제적인 학술장에 ‘한국’과 ‘한국적’인 것을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이었는데 여러 한계들 속에서 새로운 영역을 만드느라 애쓴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도 성장했고 어느듯 기조강연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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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월봉상 시상식(11.4.)

제46회 월봉상 시상식이 11월 4일 개최되었고 [김육평전]이라는 묵직한 책을 상재한 고려대학교 이헌창 교수가 영예의 상을 받았다. 나는 심사위원을 대표하여 심사평을 겸한 서폄을 발표했다. 소소한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주제의 묵직함과 연구자의 긴 호흡, 성실한 글쓰기가 돋보이는 좋은 저작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헌창 교수와는 오랜 지기이고 간간히 자료와 관련한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근년에는 잘 보지 못했다. 천생이 학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분인데 정년까지 그 모습이 한결같다. 오랫만에 서울대 경제학부 안병직 명예교수님도 뵐 수 있었다.

연세대 이철우 교수가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되었다. 조선조 이래의 학맥과 일제하 독립운동의 인연, 해방후의 지적 교류 등으로 끈끈히 맺어진 두 집안의 인연이 그 배후에 있음을 들으면서 참 흔치 않은 사례란 생각을 했다. 좋은 선조와 뛰어난 후손이 함께 하기도 쉽지 않으려니와 적절한 사회적 지위와 더불어 품격있는 삭식과 안목을 겸한 활동이 지속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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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의 새로운 연대” 집필

UNESCO Korea 의 Issue Brief 6호로 “디지털-팬데믹 디지털 시대 지적 도덕적 연대의 의미”를 출간했다. 보고서 간행에 앞서 11월 1일에 초고발표회를 통해 유네스코가 초기부터 강조한 ‘지적 도덕적 연대’라는 가치가 21세기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재구축될 수 있을지를 관련 전문가들과 토론한 바 있다. 내 발제에 대해 한경구 사무총장이 좌장을 맡았고 이재열 서울대 교수와 한건수 강원대 교수가 좋은 토론을 해 주었다.

‘전쟁이 사람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를 구축해야 하는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라는 유네스코 헌장의 귀절은 지금도 평화를 논의하는 많은 곳에서 회자되는 정신이다. 하지만 현실은 국가주의, 민족주의, 문화의 장벽 등으로 인해 그런 지구적 연대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태다. 팬데믹이 그 우려를 더하는 중이고 개인들에게는 각자도생의 절박함이 확산되는 모습도 보인다.

나는 이 글에서 디지털화와 팬데믹의 중첩이 생각보다 훨씬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진단했고 그 결과는 양면적이며 모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인류적 대응과 지적도덕적 연대의 필요성이 절실한 상황이 도래하는 한편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런 정신을 실현하고 결집시키기 어려운 환경도 심화될 것이다. 그 격랑을 헤치고 항해해야 하는 인생과 시대가 바아흐로 다가오고 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뒤르켐이 종교 이후의 종교성을 평생의 학문적 문제의식으로 삼았던 것을 생각했다. 지식은 전문화하고 도덕도 상대화하여 인류적 차원의 연대라는 주장이 철지난 당위론처럼 간주되는 이 시대에, 역설적으로 더욱 그 필요가 절실해지는 고급한 지적도덕적 연대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당분간의 개인적 숙제가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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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김대중평화회의(10.27.)

제1회 김대중평화회의가 11월 27-28일 목포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화해에 힘썼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그의 생애와 정신을 기리기 위한 회의로 카톨릭 프란치스코 교황, 고르바쵸프 전 소련대통령 등 세계의 주요 인사들의 축하메시지와 기조강연이 있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참석자는 적었지만 전지구가 팬데믹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개최된 뜻깊은 행사였다.

나는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과 브루스 커밍스 미 시카고대학 교수의 발제로 구성된 제1세션의 사회를 맡았다. 두 분 모두 고 김대중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지닌 분들이고 정계와 학계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이고 발제 역시 그런 무게감을 담은 것이었다. 다만 새로운 과제와 씨름하는 오늘의 젊은 세대와의 사이에 정서적, 인지적 거리를 좁힐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든 자리였다.

평화라는 말, 화해라는 주제는 중요하고 매력적이지만 현재의 맥락에서 지속적으로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지 않으면 그 자체가 당위적인 슬로건이나 정치명분으로 변할 가능성이 큰 어휘다. 이를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할 것인가는 여전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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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학회 이사장 취임

한국사회학회 임시총회에서 새로이 학회 이사장으로 선임되었다. 특별한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회장을 역임한 회원 가운데서 법인이사회를 대표할 사람을 한 명 선정하여 이사장 역할을 부탁하는 절차에 불과하지만 사회학 공동체 안에서 평생 살아온 학자로서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돌이켜보면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학회와 이런 저런 인연을 맺었다. 70년대만 해도 학회는 법인격을 갖춘 것도 아닌 관련 학자들의 자발적 결사체에 불과했다. 학회 행사도 비공식 세미나 같이 오손도손한 분위기였다. 학회가 조직적인 특성을 띠고 체계적으로 관리되면서 법인이 되었는데 좋은 점도 불편한 점도 공존하는 듯하다.

앞으로 학회라는 조직은 어떻게 변해갈까? 힘과 돈이 없는 순수학술단체로서의 학회가 급변하는 지식유통과 문화소비의 바람 속에서 어떻게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 개개인의 역량과는 별도로 결집된 정체성은 약화되고 있는 분과학문 공동체의 앞날이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아 마음 한켠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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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헌장과 한글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유네스코헌장 전문을 전지 두 폭에 쓴 병풍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기증했다. 한국문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유네스코를 찾는 국내외 인사들의 기념촬영과 각종 회의의 배경으로 사용될 만한 한글작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한경구 사무총장의 부탁에 따라 지난여름 나름 공들여 썼던 글이다. 의미 있는 문화상징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 헌장 첫 머리의 이 문장은 유네스코 설립의 기본정신을 온전히 드러낸다. 모든 분쟁의 원인도 해법도 모두 인간에게 있다는 이 명제는 두 차례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으면서 뜻있는 학자, 예술가, 교사, 과학자, 문인 들이 숙고하면서 합의한 결론이자 원칙이다. 제정된 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지만 지금도 그 메시지의 울림은 강하고 명료하다.

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한글의 조형원리가 문화다양성과 평화방벽을 강조하는 유네스코 정신과 묘하게 부합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글의 개별 획은 정형화된 기하학적 모양을 띠지만 글자의 조합에서는 자유로운 여백과 강약이 허용되어 글씨마다 개성이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의 조형미 속에 담긴 이 역동적인 힘이 오늘의 BTS도 K-Pop도 가능하게 해준 문화적 자산일 수 있겠다 생각해보는 한글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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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평화담론

한반도 평화 국제회의 (KGFP) 에서 ‘새로운 평화론’을 논의하는 세션이 구성되어 그 좌장을 맡았다. 젊고 유능한 학자들이 21세기적 맥락에서 평화의 성격과 확산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생각들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세 명의 발제자가 각각 ‘적극적 평화’ (정혁), ‘안정적 평화'(허지영), ‘생태적 평화'(주윤정)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들은 모두 국가의 무력강화와 안보체제로 전쟁을 방지하는 것 만으로는 평화의 본래적 가치실현이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듯 했다. 구조적 폭력을 해소하는 것, 평화를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이게 공고화하는 것, 평화의 가치를 인간을 넘어 동물과 환경에까지 확대하는 것을 주문한 이날의 발제는 신선하고 유익했다.

토론도 진지했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명예교수인 소에야 요시히데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이상주의적인 국제관계론, 평화론이 벽에 부딪치면서 현실주의적 반격이 거세지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이런 변화된 상황에 어느 정도 적합성을 가질 것인지를 질문했다. 깊이 숙고해야 할 쟁점이자 어려운 숙제인 셈이다.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의 이성용 교수도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보다 안정적 평화라는 개념이 좀 더 적합성이 높다고 평가하면서 그에 따르는 조건들이 좀더 명료해져야 할 필요를 제시했다. 강원대학교 강혁민 박사는 생태적 평화가 갖는 문명적 가치에 공감하면서 그것이 좀더 구체적인 정책아젠다로 자리잡아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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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통일자문회의

독일통일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남북관계의 진전을 모색하는 한독통일자문회의가 8월 4,5일 이틀간 열렸다. 코로나로 인해 계속 연기되다가 뒤늦게 온라인으로 개최된 이번 포럼에서는 통일독일의 내적 통합이 핵심 주제로 다루어졌다.

독일 통일 30년에 대한 양국 전문가들의 평가는 두 가지 점에서 일치했다. 구동독 지역의 경제는 구서독의 80% 수준을 상회하고 여타 영역의 통합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통일의 효과는 명백히 긍정적이다. 동시에 30%를 넘는 신연방주 주민들이 여전히 이등시민이라는 자의식을 피력하고 자신들이 차별받는다는 ‘머릿속 장벽’을 호소하고 있다. 마음과 감정의 통합은 정치와 경제의 수렴과는 별개의 과제임을 말해준다.

우리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본디 통합을 앞세우는 정책이다. 통합은 통일과 평화의 두 프로세스를 연결시키는 매개조건이자 필수요소다. 통합 없는 평화가 통일로 이어질리 없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통합-통일-평화의 정책조합을 혁신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어디에선가는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려니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겨우 군통신선 복원이란 뉴스 하나에 온 정치권이 들썩이는 오늘의 모습이 너무 처량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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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학기 수업 개강

6월 28일부터 계절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도 ‘현대사회사상의 흐름’이란 과목을 설강했고 15명의 학생이 수강신청을 해서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영어로는 Lives and Thoughts of the Great Thinkers 라 했는데 사회학이라는 분과학에 한정하지 않은 삶의 궤적과 사상적 특징을 살펴보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자연히 ‘사회학사’ 수업과는 구성도 내용도 다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같은 사람의 삶과 사상도 그것이 사회학에 미친 영향과 일반 사회에 미친 영향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학계에 남긴 이론적 영향보다도 일반인의 삶과 행동에 남긴 기여에 좀더 초점을 맞추어 수업을 재구성해볼 생각이다.

새로운 강의안을 준비하면서 새삼스레 분과학의 틀이 내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크게 규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학계에 남긴 족적은 잘 알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활동과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모르는 학자를 강의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이번 계절학기 수업은 그런 점에서 내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일반인에게 사회학, 또는 사회과학이란 어떤 의미를 가졌고 또 가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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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포럼 발제


6월 24-6일 제주포럼에 다녀왔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이영호) 에서 주관하는 “화해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역사” 세션에서 발제를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총 4명이 발제하고 2명이 토론을 하는 자리였고 동북아의 여러 쟁점들이 언급되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밀도있는 대화로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나는 민족주의 문제를 다루었다. 근대 이래 한,중,일의 역동성을 담보했던 민족주의가 탈냉전 이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기회가 있었던 점, 최근 10여년간 그 흐름으로부터 퇴행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의 대국지향적 민족주의, 일본에서 나타나는 ‘불안형’ 네셔널리즘, 그리고 한국의 분열형 민족주의의 현상 – 그 차이도 분명하지만 모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했던 레트로토피아의 특징을 수반할 수 있다는 염려를 피력했다.

해묵은 주제인데 여전히 현안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새롭고도 답답했다. 민족이란 화두, 민족주의란 동력으로부터 벗어나기엔 인간의 존재양식이 너무 근대적인 것일지 모르겠다. 남북관계의 교착으로 인해 현실과 상상력 사이의 간극이 큰 한국의 민족주의가 자기분열적인 성격을 노정하는 것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