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ties

7080 대학원 열정이 남긴 것

서울대 대학원 50주년 기념책자가 간행되었다. 간행위원회로부터 글을 부탁받고 “주체적 학문을 향하여 – 7080 대학원 열정이 남긴 것”이란 글을 썼다. 내 대학원 시절을 되돌아보는 기회였고 그 시대의 긴장, 고민, 열정, 방황을 추체험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1978년 대학원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해가 1991년이었으니 13년 가까운 시간을 대학원에 적을 두었던 셈이다. 서울대 대학원 시절이 내 개인적으로 성장의 시기였지만 특히 그 과정이 한국사회학의 주체화랄까 정체성 강화의 흐름과 결부되어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역사적 흐름에 동참하면서 시야를 넓히고 문제의식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하던 1978년은 유신체제 말기의 억압과 좌절감이 극에 달했던 해다. 캠퍼스 안에서는 몇 명만 모여도 감시의 눈초리가 번득이고 교수들이 학생지도의 명목으로 소위 문제학생의 가정을 방문하고 시위현장에 설득하러 나서던 시절이었다. 열정적인 선후배들이 시위로 구속되고 노학연대를 위해 노동현장으로 뛰어들던 상황에서 대학원으로의 진학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처럼 여겨져 심리적으로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것이 노동운동이나 시위참여에 맞먹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명분을 애써 찾으려는 강박감 같은 것이 있었다. 밤 10시 이전에 연구실을 나서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대학원 시절 저녁시간은 거의 관악캠퍼스에서 지냈던 것 같다.

당시 사회학과 대학원은 학문의 주체성을 내건 학술운동의 진원지였다. 지식생산의 대외종속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움직임은 두 모임으로 시작되어 한국학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주목하면서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사회과학을 주장하는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 특수성에 바탕을 둔 사회과학을 주장하는 역사지향의 그룹이었다. 나는 두 번째 그룹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의 하나였다. 1980년 신용하 교수의 연구실에서 5-6 명의 대학원생들이 모여 유럽의 사회사 저작들을 독해하는 모임을 시작했고 참여자들의 공동작업으로 [사회학과 사회사]라는 책을 번역하는 것을 비롯하여 역사적 맥락을 강조하는 사회과학의 정립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 시기가 엄청난 세계사적 변혁기였다. 부시와 고르바쵸프의 탈냉전 선언이 있었고 그해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으며 마침내 1990년에는 독일이 통일되는 대변혁이 진행된 것이다. 비난 일색이었던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이 탈냉전과 세계화의 흐름과 맞물려 미친 전방위적 효과는 참으로 엄청났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직후엔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되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들이 당시 대학원에 공부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자 혼돈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세계사적 격변과 관악의 사회과학 사이의 간극이 주는 혼란을 극복하느라 이 시기 대학원생들은 적지 않은 어려움과 긴장을 겪어야 했다.

그런 시기를 거쳐 학자가 되고 모교의 교수로 부임하는 영광을 입었다. 특히 7080년대학문의 주체화를 내걸고 국내에서 씨름하던 연구자가 서울대 사회대의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기사화될 정도로 주위의 관심을 받기도 한 탓에 부임 이후에도 부담과 긴장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자의식이 나로 하여금 나름의 이론적 지향과 개념적 작업을 수행하는 독립적인 학자가 되는데 큰 밑거름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나를 성장케 해 주었던 한국사회학회와 한국사회사학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이사장으로 미력이나마 뒷받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정년을 하고 돌이켜보니 서울대학교 대학원의 시기가 그런 자산을 배양한 비옥한 토양이었다. 비록 거친 땅에서 마구 자란 야생화처럼 다듬어지지 않고 열정만 넘쳐났던 시기였지만 그 힘이 오늘까지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